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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지로 강남 일대가 떠오르던 시절, 관련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시골 경찰 박준모(지창욱)는 두 계급 특진을 걸고 조직에 잠입해 수사를 벌인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이제 막 서울청 보안관 자리를 발령받은 의정(임세미)의 존재는 준모를 묘한 자격지심과 무한한 지지 사이에서 공중그네를 타게 한다. 강남연합 보스로 자리 잡은 정기철(위하준)은 박준모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그와 함께하게 되고, 과거에 알고 지낸 의정과 예기치 못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세 인물은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개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왜곡된 방향으로 무한 질주를 그려간다. 최악의 ‘악’을 각자의 형태로 현실화한 배우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를 만나 위태로운 관계의 서막을 물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최악의 악>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 배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은밀하게 사악하게, ‘최악의 악’ 지창욱, 위하준, 임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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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옷차림만큼이나 성숙한 말씨와 행동, 타인의 기분을 살필 줄 아는 배려심과 느긋한 성격.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강현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기보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후배 동준(홍사빈)의 시선을 빌린다. 관객과 강현 사이에 놓인 거리 또한 주인공 동준의 감정에 따라 좁혀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소년을 만난 배우 신주협은 자기 안에서 강현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리한 눈으로 그를 탐색했다. “강현은 LP를 모아 노래를 듣거나 단편소설을 써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유행에 민감한 여느 10대 아이들과 달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나간다.” 바깥세상의 일들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현의 단단함을 발견한 신주협은 “강현의 위태로움은 그가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예리한 관찰을 건네기도 했다.
뮤지컬 <난쟁이들>로 데뷔한 신주협은 어려서부터 무대와 친숙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 춤, 연기를 꾸준히
[WHO ARE YOU] ‘안녕, 내일 또 만나’ 신주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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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껍데기다. 그러나 이 껍데기는 너무 과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겨우 몇 글자의 이름은 가족 관계와 사회적 지위, 고유의 성격이나 밟아온 과거를 단순 합산하여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곤 한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곤 하나 실제 우리 삶의 부피에 비해 이 집은 종종 좁아 보이기 일쑤다. 이에 <한 남자>는 주인공 키도(쓰마부키 사토시)와 X(구보타 마사타카)를 둘러싼 껍데기들, 가령 그들의 이름이나 체면 같은 것들을 벗긴다. 더하여 <한 남자>는 영화의 이미지를 감싸안고 있는 몇 가지 껍데기, 이를테면 서사의 개입과 설명식의 주석들까지 벗겨낸다. 이로써 그것들 속에 진정 무엇이 들었는지 집요히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호기롭다. 브라운 톤의 안락한 조명, 카메라는 벽을 비추고 그곳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한 남자는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엔 본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프닝 타이틀이 오르자
스쳐가는 진실한 마음들, ‘한 남자’가 순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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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워터 보이즈>로 동시대 청춘의 표상이 됐던 쓰마부키 사토시.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한 남자>의 주인공 키도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란 질문에 답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비단 키도의 것만은 아니다. 쓰마부키 사토시 역시 오랜 배우 활동을 거치며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거듭하고 있다. “배우 경력이 쌓일수록 ‘나’란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게 된다.” 이에 그는 때마다 다른 영화 속 인물로 존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미지의 상자 속을 채우고 있다. 이를테면 키도를 연기하기 위해 직접 재판정을 찾거나 실제 변호사들과 만나 배역을 연구하고, 장면 하나하나의 영화적 의미를 적확히 꿰뚫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한 남자> 속 키도의 여정은 키도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의 여로이기도 한 셈이다. 이로써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한 남자
[인터뷰] 알 수 없는 것을 연기하기, ‘한 남자’ 쓰마부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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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변호사 키도(쓰마부키 사토시)가 X(구보타 마사타카)의 정체를 좇는다. 키도의 의뢰인인 리에(안도 사쿠라)의 남편 X가 사실 타니구치 다이스케란 타인의 호적으로 살아왔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X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키도는 재일 교포, 아버지, 남편, 변호사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깊이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시카와 게이 감독과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의 세 번째 협업인 <한 남자>는 2023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8관왕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후 지난 8월30일에 국내 개봉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 남자>가 집요하게 던지는 이 질문엔 쉽사리 규명할 수 없는 모호함의 정서가 깔려 있다. 키도를 연기한 쓰마부키 사토시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우선 그의 얼굴은 <워터 보이즈>(200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에서 보여줬던 풋풋한
[커버] 그 남자의 진심, ‘한 남자’와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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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인터넷 방송 BJ.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꿈인 <마스크걸>의 김모미.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진 못했으나 페이스오프 전 김모미를 연기한 배우 이한별에게만큼은 깊이 이해받았다. “모미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도, 얼굴을 고치지 않는 것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이 나타날 거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그가 성형수술을 택했다는 건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뜻이다.” 이한별은 <마스크걸>로 데뷔하기까지 숨찬 시간을 거쳤다. 2021년 9월부터 4개월간 오디션을 치렀고 2022년 대부분을 안무 연습과 촬영을 병행하며 보냈다. 함께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알게 된 현장에서 연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2화 모텔 신은 그 즐거움을 크게 느낀 장면이었다. “주오남(안재홍)이 제발 가달라고 외치는 순간에 모미가 맞대응하지 않는 감정 처리는 현장에서 내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즉
[WHO ARE YOU] ‘마스크걸’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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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드라마 <굿와이프>, 영화 <자백>에 이어 또 한번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났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작에 갇히는 느낌이 들어서 웬만하면 원작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나가 연기한 ‘김모미B’는 동명의 원작 웹툰 연재 당시에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파트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했던 김모미는 살인을 저지른 후 성형수술을 받고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간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자기답게,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나나의 신중한 태도는 단기간에 완성된 행운이 아니다. 원작의 모사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만의 ‘김모미B’를 연기하기까지, 나나가 배우로서 부단히 훈련해온 과정을 함께 들었다.
- 3인1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현정, 이한별 배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 대본 리딩 때 한번 뵀고, 촬영장에서
[인터뷰] 내 안의 나를 꺼내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스크걸’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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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뷔작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었듯, 첫 OTT 시리즈물 작업에 있어서도 고현정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준다. <마스크걸>의 세 번째 김모미, 일명 모미C인 그는 폭주기관차 같은 작품의 종착지에 묘령의 얼굴로 유유히 서 있다. 한국 여자배우 중 여왕(<선덕여왕>)과 대통령(<대물>)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인물인 그에겐 “혼자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도 있었다면, 좋은 배우들 사이의 일부로 놓여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어 새롭고 반가웠던” 작품이 <마스크걸>이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에르메스 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마저 아이코닉해 충격을 준 이 배우는, “평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표정과 근육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탈색시키면서 지금의 김모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렇게 몸의 움직임까지 최소화해 만들어낸 고현정의 김모미는 무망한 삶에 간신히 적응한 비련의 여자이기보
[인터뷰] 모른다는 주문을 외우며, ‘마스크걸’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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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에서는 세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한다. 배우의 변화는, 인물의 성형 여부와 세월을 말해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주효하게는 세개의 다른 자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흡인력을 갖는다. 동일인물을 연기함에도 결코 동일해지지 않는 배우들로부터 김모미는 비로소 고유해진다. 여기, 한 여자를 연기하는 두명의 여자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상하는 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을 모두 책임지는 배우들이다. 디바가 되고 싶었던 소녀, 인터넷 방송의 스타,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 교도소의 미친 여자, 그 누구도 아닌 초연한 존재에 도달하기까지 김모미는 고현정과 나나의 현신을 빌려 비로소 웹툰 밖으로 걸어나온다. 배우 고현정과 나나는 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사성에 집중하기보다 총 7회 분량의 드라마에서 단 2회씩 등장함에도 강력한 존재감과 개성을 남기는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파트너십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커버] 같지만 다른 존재들, ‘마스크걸’ 고현정 x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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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미소, 작은 생명체라도 밟을까 조심하는 듯한 걸음걸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기도를 올리는 신실한 손. <지옥만세>의 채린(정이주)은 누가 봐도 낙원행이 가장 유력한 청소년 신도다. 그런 그에겐 미소 띤 얼굴로 천천히 걸어가 제 손으로 친구의 얼굴에 케이크를 엎던 과거가 있다. 자신이 괴롭힌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가 선교회를 찾아왔을 때 채린은 새로 태어났다며 그들을 반기지만 겁먹은 두 친구를 본 관객은 그에 대한 의심을 시작한다. <지옥만세>를 말하는 배우 정이주는 명확했다. “두 인물에게 정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자극을 주는 역할”이라며 맡은 캐릭터의 쓰임을 간명히 소개했고, 가해자의 서사가 피해자의 그것보다 커져서는 안된다며 거듭 강조했다. 채린이 알 수 없는 인물로 정확히 표현될 수 있었던 건 캐릭터를 간파하고자 한 배우 정이주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임오정 감독이 “중전마마처럼 우아해 캐스팅했다”라고 하더라. 오디션 때 어떤 모
[인터뷰] 연기의 쾌감, ‘지옥만세’ 정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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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듯한 몽환적인 표정, 껄렁한 목소리, 성의 없는 말투. 황선우는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죽음을 자주 생각하지만, 기질적으로 타고난 엉뚱함과 명랑함은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학교 폭력 가해자 박채린(정이주)이 회개하고 낙원에 가겠다는 반전의 모습을 보여도 선우는 그를 끝까지 믿지 않는다. 누가 용서하고 누가 벌할 것인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전거 페달에 힘을 더하는 선우는 그간 외면한 지옥을 포용한다. 모든 게 쑥대밭이지만 마침내 “웰컴 백 헬이다”를 인사치레로 건넬 수 있게 된 두 여자아이를 보며, 어쩌면 이들 곁에 진짜 낙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얻는다. 오랫동안 선우를 생각하고 선우를 그려낸 배우 방효린을 만났다.
- <지옥만세>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오디션을 복기해보자면.
= 비대면 오디션으로 진행된 1차에서는 송나미와 황선우 모두
[인터뷰] 단단한 내면의 수호자, ‘지옥만세’ 방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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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억눌리고 상처받으며 살았을 때의 나 같다.” 배우 오우리는 <지옥만세> 속 송나미와 본인의 모습을 하나로 겹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소위 ‘오글거리는’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특유의 감성, 종종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왈가닥 같고 어리숙한 모습들. 최근 5년간 20편이 넘는 독립 장·단편 영화에 얼굴을 내비치면서 주로 사회의 그늘, 성장기의 아픔을 그려냈던 오우리의 본성은 이처럼 명랑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는 본인의 얼굴을 두고 영화의 문제의식과 서사성을 관객에게 던질 줄 아는 “물음표의 눈”을 가졌다고 규명한다.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적확히 아는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밀어붙이기에 충분한 활동량이 만나서 지금의 ‘배우 오우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 대략 5년째 매해 4~5편의 장·단편 영화에 출연 중이다. 그동안 3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워커홀릭인가.
= 맞다. 내가 봐도 일중독이다. (웃음) 사실
[인터뷰] 물음표의 눈, ‘지옥만세’ 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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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린(정이주) 얼굴에 흉터를 남겨서 평생 고통스러워하게 만들자.” 고등학생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가 세운 무시무시한 계획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미와 선우는 채린에게 지독한 학교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이다. 둘은 복수심을 참지 못하고 이사 간 채린을 찾아가기에 이르는데,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 채린은 미지의 종교 단체에 빠져 영 딴사람이 돼 있다. 낙원으로 가기 위해서 지난 죄를 회개하고 있다며 배시시 웃기만 한다. 나미와 선우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거… 복수를 해야 해? 말아야 해?”
무겁고 쓰라린 주제이지만, <지옥만세>는 우울함에 지배되지만은 않는다. 한시도 몸과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 나미, 침울해 보이다가도 당차게 “오키오키!”를 외치는 선우,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채린이 사춘기 시절의 다채로운 감정을 연신 뿜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또래 친구 셋의 현실감은 스크린을 뚫고 <씨네21> 촬영장에서도 이어졌다. 촬영을 앞두고
[커버] ‘우리들의 천국’, <지옥만세>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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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강훈은 정원고의 실체를 안다. 때문에 자신의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드러내는 대신 학급 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 역시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인다.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고, 혼자 알아서 공부 잘하는 이미지”라는 박인제 감독의 말대로 강훈을 연기한 김도훈은 유독 표정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내비친다. 영화 <최면>, 드라마 <다크홀> <목표가 생겼다> <오늘의 웹툰> <법대로 사랑하라> 등에 출연하며 내공을 다져온 덕일 테다. “의젓해 보여도 아직 순수함을 지닌 고등학생이란 점을 놓치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강훈을 더욱 입체감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 <무빙>의 배역을 따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는데 4화까지의 대본을 먼저 받았다.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액션, 판타지, 히어로
[인터뷰] 차분한 강인함, <무빙>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