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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쩐지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날에는, <미망> 김태양 감독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4-11-19

<미망>은 로맨스영화일까, 도시의 전경을 좇는 영화일까. 혹은 기억 한편을 끄집어낸 자전적 영화일까.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이명하 배우를 우연히 만난 김태양 감독은 영화 속 남자와 여자처럼 한참 길을 거닐며 안부를 나누었다. 작별하기 아쉬운 목소리로 “영화 같이 찍어야지~” 라며 헤어진 뒤, 이 순간을 단편영화 <달팽이>로 완성했다. 헤어진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 현재 연인이 주는 안정감, 새로운 인연의 고백 등 다양한 연인의 모습을 통해 로맨스적 서사를 품고 있지만 그것만이 <미망>의 전부라 하긴 부족하다. 실제 영화 안팎으로 흐른 4년의 시간은 서사의 깊이를 밀도 있게 더해주고 인간관계의 변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등 시간이 다르게 만드는 것을 고백한다. 사랑과 도시, 기억과 산책. 네 가지 키워드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이 우리는 시나브로 김태양 감독과 가까워졌다.

- 길에서 이명하 배우를 우연히 만난 일화가 단편영화이자 <미망>의 1막인 ‘달팽이’의 시초가 되었다. 이것을 촬영한 뒤 4년이 흘러 남은 2막 ‘서울극장’과 3막 ‘소우’를 촬영했다. 그 시차가 너무 커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진 않았나.

처음 1막을 촬영한 뒤에 남자가 걷던 공간을 2막에서 여자가 다시 걷는다는 아이디어가 명확했기 때문에 구조상 장면이 튈 거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1막과 2막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앞에서 낮에 있던 일을 보여준다면 그 뒤에는 밤에 생기는 일을 마주한다. 남자가 느낀 감정을 여자가 다시 떠올리고 이전에 그랬듯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이점도 있었다. 1막에서 공사 중인 건물들이 2막에서는 다 세워져 있었다. 배경으로서도 그 시간의 흐름을 완연히 감지할 수 있다. 다만 많이 변해버리면 같은 장소라는 감각이 덜할까봐 중간중간 장소를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공간도 있어서 랜드마크로 삼을 수 있었다.

- 인물들이 롱테이크로 길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미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야외촬영이 지닌 변수들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텐데.

일단 영화에 배경으로 보여지는 모든 가게에 허락을 구했다. 시민들에게도 지금 영화 촬영 중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길을 지나가면 영화에 등장할 수 있다고 미리 고지했다. 이런 경우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기 마련인데 모두가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다만 날씨에 어려움이 있었다. 1막을 촬영할 당시 연달아 태풍이 오는 시기였다. 촬영을 더 미룰 수 없어 결국 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를 준비해갔다. 비가 안 오는 경우, 살짝 내리는 경우, 많이 내리는 경우 등 상황의 정도에 맞춰 다르게 준비해갔다. 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의미를 파생해보고 싶기도 했다.

- 길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재료도 다양해졌다. 길가에 세워진 오토바이 사이드미러로 여자와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가기도 한다.

김진형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설정은 계속 같은 앵글을 반복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약간의 변화를 줄 포인트를 고민하다가 영화 중간에 오토바이를 활용해보았다. 김진형 촬영감독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카메라가 거기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면을 바라보는 구도, 시선 등에 대한 고민이 깊다.

- <미망>은 촬영의 한끗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응시하는 힘 또한 스크린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촬영에 내세우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나.

원칙까진 아니지만 선호하는 건 있다. 인물이 감정을 드러내거나 특정한 변화를 갖지 않는데 카메라가 움직이는 건 조금 불편하다. 연출자가 너무 개입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게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한동안은 그런 접근을 지양할 것 같다.

-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미망>을 두고 ‘<비포> 시리즈에 대한 한국의 답장’인 것 같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나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떠올렸고 또 누군가는 <멋진 하루>가 떠올랐다고 하더라.

너무 감사한 일이다. 모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롱테이크, 길 위, 조근조근한 대화 등의 요소 덕에 비슷한 결의 영화를 떠올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실제 지나간 시간을 영화에 접목할 생각은 아니었다. 우연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의도치 않은 공백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선례가 없었다면 그렇게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비포>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업 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만의 다음 챕터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때부턴 공백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설렜다. 자기만의 가치관과 신념, 영화철학과 시스템을 가진 많은 감독들이 더 다양하게 나와야 하는 이유라고도 생각한다.

- 영화는 크고 굵직한 사건을 다루기보다 우리의 일상에 놓인 것들을 이야기한다. 평범함 속에서 살아 있는 입말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나.

한국말에는 정말 재미있는 은유와 중의적 표현이 다양하다. 나는 이게 너무 흥미롭다. 영화를 하면서 말의 맛을 살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란 걸 배웠다. 삶의 단면을 슬라이스처럼 나누기 위해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이 전체를 연결할 때 한편의 시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중의성을 더했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에 “길을 잃었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대사는 물리적으로 도시를 헤맨다는 뜻이지만 인생에서 잠시 방황하는 사람의 상황이기도 하다. 일종의 나만의 실험극이기도 했다. 대사에 다양한 의미와 중요성을 조금씩 점철시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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