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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성훈(김재영)은, 말하자면 ‘비뚤어진 금수저’다. 성훈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 무엇에 아쉬워한 적이 없고, 사람 부리는 일도 손가락질 한번이면 족하다. 미성년자들을 데려다 성매매와 마약 밀매를 시키면서도 죄책감 따위는 없다. 곁에 있는 사람이 절로 눈치를 보게 만드는 신경질적인 태도, 비열함, 강박적인 권력욕을 지녔다. 그는 익숙한 듯 트렌디한 유형의 악인이다. 영화계엔 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김재영은 놀라울 정도로 성훈의 면면을 호연했다. 첫 악역 연기의 설렘(?)을 아직도 깊이 품고 있는 듯한 신인 김재영을 만났다.
-<두 남자>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성태 감독님이 동명이인 배우 김재영을 검색하던 중 내가 같이 검색이 된 거다. 사진만 보고 성훈 이미지에 맞다고 생각해 회사로 연락을 하셨다고 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안의 악을 보셨다고 했다. 나는 내가 웃으면 개구쟁이 같고 해맑아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은 웃는 게 무
[who are you] 트렌디한 악인 연기는 처음입니다 - <두 남자>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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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진 기술감독은 일년 동안 열리는 대부분의 영화제에 이름이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제 상영 기술 지원업체 진미디어를 공동으로 차렸고, 올해 열린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기술감독이란 직함을 달았다. 방송기술을 전공했고, 2004년 제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술팀 자원활동가로 영화와 처음 연을 맺었다. 당시 목에 생긴 종양으로 수술을 받느라 의가사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소리내 말하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말하기가 힘든 상태라 자원활동가 면접까지 가서도 별 기대는 없었다. 뜻밖에도 운전병으로 복무한 경험 덕에 상영관에 필름을 수송하는 일을 맡게 됐다. (웃음)” 그해에만 쉼없이 여섯개의 영화제를 돌았고 12월에 제30회 서울독립영화제 기술팀 자원활동가로 일한 뒤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기술팀 스탭으로 일해왔다.
프로그램팀이 영화를 수급하고 어느 시간대에 영화를 상영할지 프로그래밍을 완료하면 그때부터 기술팀의 일이 시작된다. 영화 상영을 위한 장비를 상영관에
[영화人] 박찬진 서울독립영화제 기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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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감독의 블랙코미디 <우리 손자 베스트>는 당혹스럽다. 주인공인 교환(구교환)과 정수(동방우, 동방우는 배우 명계남의 새 이름이다)는 각각 사회적 약자 혐오, 지역감정 조장 등 기형적인 이념을 담은 게시물을 제작·유통하는 웹사이트 일베저장소(이하 일베)의 헤비 유저와 극우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을 모델로 했다. 교환과 정수의 안쓰러운 작태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관객은 금세 끝간 데 모를 그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 중 하나인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대상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눈에 띄지만 결론은 유보적이란 인상을 준다. 영화에 대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오랜만에 또 한편의 장편을 내놓은 김수현 감독을 만났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전작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2012)
[씨네 인터뷰] "보편적인 얘길 했다고 생각한다" -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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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진 감독은 2000년, 한 충무로 젊은 감독의 꿈과 사랑을 소박하게 그려낸 <불후의 명작>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7년 뒤, 외롭게 나이 든 가장과 그의 가족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이대근, 이댁은>(2007)을 내놓았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이 걸려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세 번째 작품 <작은형>을 완성했다. <작은형>은 사기꾼 동생이 지적장애를 가진 형과 형의 동거인들의 돈을 노리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바깥에서 바라본 영화의 컨셉은 새롭지 않지만 현실감 있는 대사, 전형성을 탈피한 캐릭터, 촘촘한 갈등 구조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사연 많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착한 시선이 특히나 반갑다. 작품과 작품 사이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지만 결국 연출로 돌아온 감독은 앞으로 “더 자주, 많이, 애를 써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대근, 이댁은> 이후 7년 만에 연출한 영화다.
=하
[people] <작은형> 심광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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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정가영)은 무턱대고 애인이 있는 전 남자친구 정훈(김최용준)의 집에 찾아가 섹스를 하자고 떼쓴다. 가영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진 물러서지 않을 태세고, 정훈은 나름 철벽을 치지만 가영의 공격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다. <비치온더비치>는 가영과 정훈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사(주로 가영이 얘기하고 정훈이 들어주는 식이지만)가 사실상 전부인 영화라 할 수 있다. 고정된 앵글, 흑백의 롱테이크는 오롯이 이들의 얘기에 귀기울이게 만든다. 그런데 가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심상치 않다. 욕망의 솔직한 발현부터 색드립의 향연까지, 가영에겐 모든 게 거침없다. 단편 <혀의 미래>(2014), <내가 어때섷ㅎㅎ>(2015) 등을 통해 남녀 사이 성적 긴장감을 흥미롭게 담아온 정가영 감독은 장편 데뷔작 <비치온더비치>를 통해 성과 연애와 사랑에 대해 발칙하게 발언한다.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Woman On the Bea
[people] <비치온더비치> 정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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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탁 뱉고, 담배를 빼물고, 몸싸움도 불사한다. <두 남자>의 진일은 가출팸의 리더다. 악덕업주 형석(마동석)에게 잡혀간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는 거친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두 남자>는 그룹 샤이니의 햇살 같은 이미지를 걷어낸, 주연배우 최민호의 본격 연기 도전작이다. 거친 범죄 액션물에 몸을 맞추는 그는, 100%의 열정과 노력으로 진일을 소화해낸다.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그가 스스로 ‘만화를 찢고’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그 경계의 넘나듦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최민호의 신고식에 응원을 더한다.
-초반부터 맞고 멍들고 피나는 연기가 많더라. <아수라>의 정우성 배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너무 궁금했다. 내가 어떻게 그려질까. 한번 해보고 싶었다. 스크린이라는 매체가 가진 전달력과 흡인력에 나 자신을 대입해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두 남자>의 진일을 표현할 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한번 해보자,
[액터/액트리스] 끝을 보겠다 - <두 남자>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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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판도라>는 한마디로 말하면 막막함에 관한 영화다.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한 원자력은 일단 인간의 통제를 한번 벗어나는 순간 인간의 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는 이 정지된 세계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발버둥치는 이들의 사투를 담아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장 평섭(정진영)은 모두가 혼란에 빠진 그 순간 유일하게 정신을 부여잡고 지옥문이 열리는 걸 막으려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고뇌에 빠질 시간도, 괴로워할 여유도 없다. 사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건 그뿐이기 때문이다. “아마 배우 중엔 내가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봤을 것”이라는 정진영은 제안을 받자마자 일말의 고민 없이 수락했다. “필요한 이야기이자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라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사실 평섭은 입체적인 인물이 아니다. 아니, 이 영화 속 누구도 입체적일 수 없다. 거대한 재난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다. 달아나
[커버스타] 내 할 일을 할 뿐 - <판도라> 정진영, 김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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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부패와 무능으로 재난을 초래한 정부는 국민 안전보다 국정 안정을 앞세우고,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에서 국민들은 희생양이 된다. 현 시국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강진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가 붕괴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판도라> 이야기다. 한국의 현주소를 그려낸 재난영화 <판도라>에 출연한 김남길과 문정희의 소회도 각별했다.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컨트롤타워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자연재해도 인재가 되는데 하물며 지금은…. (웃음) 나뿐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다.” 김남길의 말에 문정희도 십분 동의한다. “국가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고들에 미흡하게 대응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재난 속에서 끈끈한 가족애로 뭉친 그들은 각각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과 그의 형수 정혜 역을 맡아 재난을 최전선에서 맞닥뜨린 시민이 됐다. 현실적인 성격의 재혁은 회사나 국가에 충성심이나 애착이 없
[커버스타] 희망이 있을 거라는 믿음 - <판도라> 김남길,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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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 같다. 문정희 배우가 손수 따온 귤을 나눠주자 정진영 배우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한쪽 구석에서 김남길과 김대명 배우가 쉴 새 없이 장난을 친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친해지는 거야 다반사지만, 익숙하고 온화한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까지 절로 편안해진다.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판도라>는 지옥 같은 상황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고난을 함께 버티고 이겨낸 배우들 사이에는 가족 같은 끈끈함이 생겼나보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설마 했던 일들이 하나씩 사실이 되어가는 게 무섭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 시국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이야기지만 정진영 배우의 말처럼 “그렇다고 마냥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재미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많은 관객이 쉽게 호응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네명의 배우들은 서로를 챙기며 그날의 울고 웃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커버스타] 현실이라는 재난 - <판도라> 김남길, 문정희, 정진영, 김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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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톰 크루즈)에게 딸이 있다? <잭 리처>의 속편인 <잭 리처: 네버 고 백>에서 출생의 비밀은 영화의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미스터리다. 잭 리처와 생김새는 그다지 닮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의 DNA를 물려받은 것 같은 소녀 사만다의 존재가 미스터리를 증폭시킨다. 속편의 연출을 맡은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리 차일드의 동명 원작 소설과 가장 거리를 둔 캐릭터 중 하나라고 밝힌 사만다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소녀처럼 보인다.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으며 잭 리처의 호주머니에 몰래 휴대폰을 집어넣는 데 성공할 정도로 민첩한 이 소녀는, 방랑자 잭 리처가 뉴올리언스에 오래 머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법하다. “잭 리처의 10대 소녀 버전이라고 할까. (중략) 사만다는 강하고 독립적이다. 그녀는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는데, 여느 10대 소녀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다.” 사만다를 연기한 19
[who are you] 만능 스포츠걸 - <잭 리처: 네버 고 백> 다니카 야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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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연애담>은 윤주(이상희)와 지수(류선영)의 사랑이 시작되고 잠정적으로 그 사랑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손진용 촬영감독은 “최대한 담담하게 찍자”는 생각뿐이었다. “인물은 가만히 있는데 카메라가 인물 가까이 들어가는 건 지양했다. 카메라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고 가만히 인물을 지켜보는 걸 택했다.” 컷 자체도 많지 않고, 컷과 컷 사이의 호흡도 길다. “관객이 윤주와 지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감정이 전해지길 바라”는 손진용 촬영감독의 촬영 의도였다.
불균질한 장면들도 더러 있다. 윤주가 지수를 만나러 인천행 전철에 몸을 싣고 창밖을 내다볼 때가 대표적이다. “영화 전체를 알렉사 카메라로 찍었는데 그 장면만 몸집이 작은 캐논 5D 마크2로 촬영했다. 좁은 지하철 안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마음에 든다. 인천에 간 윤주의 미래가 마냥 밝지 않다는, 어떤 분위기를 주는 것도 같고.” 촬영자로서
[영화人] <연애담> 손진용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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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우 대표를 마지막으로 본 건 8년 전이었다. 2009년 가을,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린 아시아필름마켓을 찾았다. 2006년 그는 서울 명동의 한 건물과 임대 계약을 맺은 뒤 5개 스크린을 갖춘 극장 ‘시큐엔(CQN) 명동’을 운영하다가 6개월 만에 건물주에게 사기당해 건물에서 쫓겨났다.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판을 진행했던 그는 수입이나 공동 제작을 할 만한 프로젝트들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부산을 찾았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봉우 대표의 인생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 <박치기!>(2004)의 제목처럼 늘 박치기의 연속이었다. 영화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씨네콰논’을 설립해 <서편제>(1993), <쉬리>(1998),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한국영화를 일본에 배급했고, <박치기!>, <아무도 모른다>(2004), <훌라걸스>(2006), 등 일본영화를 제작해 한국
[씨네 인터뷰] "과거를 되돌아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레스페 이봉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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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김태영 감독과의 인터뷰를 결심한 건 1980년대에 만든 그의 첫 영화 때문이었다. 그는 <칸트씨의 발표회>(1987), <황무지>(1988) 등 독립영화의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을 만들었다. 전작의 무거운 현실과 <딜쿠샤>의 가벼운 몽상 사이에 놓인 무수한 간극이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그는 <세계영화기행> 등 다수의 방송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잔뼈 굵은 연출가이자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실험적인 대작의 손 큰 제작자였다. 그러다 미완으로 남은 비운의 뮤지컬영화 <미스터 레이디>의 실패 이후 뇌출혈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장애를 안게 되었다. <딜쿠샤>는 어쩌면 영화를 둘러싼 그의 모든 삶이 녹아든,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대작이다. 그의 삶 자체가 곧 드라마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욕심내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people] <딜쿠샤> 김태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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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식사 시간을 피해서 읽을 것’이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단편 <예술과 중력가속도>의 주인공은 현대무용을 한 은경씨를 만나 그녀에게 푹 빠진다. 은경씨는 원래 달에서 춤추던 무용수였다. 지구와는 중력이 달라서 점프의 높이가 완전히 달랐다. 어느 날 달과 화성의 중력으로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은경씨는 주인공을 초대하는데, 주인공은 중력이 바뀌는 데 적응을 못하고 구토를 시작한다. 당장 경험 가능한 선에서만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SF라는 장르가 그런 경험을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SF장르에 대한 은유가 되고, 배명훈 작가의 말을 빌리면, 백령도 여행길에 배 위에서 구토를 하며 떠올린 이 이야기는 “어떤 장이 어떤 예술을 발생시킬 수 있고 그게 안 이루어질 때 왜 예술가는 괴로워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SF의 기본 구조 중 하나다. 내가 뭘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게 하는 무언가. 국제정치학에 대한
[trans x cross]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안 되게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들” - 단편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 출간한 배명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