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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드라마 <로망스>(2002)에서 선생으로 분한 김하늘이 제자인 관우(김재원)를 때리며 내뱉는 이 한마디는 사실 매우 애절하고 가슴 아픈 대사다. 서로를 그리지만 사제지간이기에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압축한 것. 그러나 이 대사는 타고난 발랄함과 귀여움으로 무장한 배우의 독특한 매력과 섞여 희한한 유행어로 승화되어버렸다. 그 시절 김하늘에겐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의 철부지 과외교사가 훨씬 잘 맞는 옷이었다. “<로망스> 이후 마음껏 망가지는 재미를 알았다”던 김하늘은 장르에 관계없이 어쩌면 처음부터 여교사라는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였는지도 모른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찬찬히 쌓아온 내공은 <여교사>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폭발한다. 가히 대한민국 최고의 여교사 전문배우답다고 해야 할까.
[메모리] 오 나의 선생님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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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헐레벌떡 범인을 쫓는 품새를 보니 어째 좀 어설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북쪽 형사 철령(현빈)과 달리 어떤 사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숨겨둔 필살기는커녕 제 한몸 간수하기조차 어려워 보이는데, 대체 무슨 실력으로 남북 공조수사의 남쪽 대표로 선택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유해진이 연기한 진태는 위장수사 실패 때문에 정직 처분을 받고 있다가 철령의 공조수사 파트너로 낙점된 남한 형사다. 진태의 임무는 공조수사를 하면서 북한의 또 다른 속내가 있는지 철령을 감시하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15년차 형사다. 집에 가면 딸과 아내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가장이고. 매일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남북 공조수사라는 생소하고 큰일이 닥친 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유해진이 공조수사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극비수사>(감독 곽경택, 2015)에서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짝을 이뤄 실종된 아이를 찾아낸 적이 있다. 물론 그 영화에서 그
[커버스타] 함께 또 홀로 - <공조>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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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란 시간이 커다란 공백으로 느껴지는 건 기대와 반가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현빈은 2014년 <역린>을 선보였고, 2015년에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 출연했다. 2015년 가을부터 <공조> 작업에 착수했으며 지금은 <꾼> 촬영에 여념이 없다. 그 사이 ‘길라임’으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이 뜻하지 않게 재조명됐고 연애 뉴스가 신작 소식보다 앞섰다. 작품으로는 <하이드 지킬, 나>가 마지막인 셈이어서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긴 공백도 아닌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과 <시크릿 가든>이 지금의 현빈이 있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운 작품이긴 하지만 현빈을 로맨틱 코미디의 왕자님으로 기억하기엔 그간의 변신이 너무도 다채로웠다.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의 지오,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8)의 동수, <
[커버스타] 눈빛을 바꾸다 - <공조> 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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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의 <공조>는 남북 최초의 공조수사라는 소재를 코미디 반, 액션 반으로 풀어내는 영화다. 과묵한 특수부대 출신 북한 형사는 현빈, 말 많고 요령 좋은 남한 형사는 유해진이 맡았다. 누구보다 벅찬 한해를 보낸 유해진과 <역린>(2014)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는 현빈은 공조수사뿐만 아니라 공조 연기도 멋지게 완수했다. 두 배우가 연기로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이지만 첫 만남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호흡이 좋았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현빈의 액션과 유해진의 코미디, 그 둘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성찬이 차려졌다.
[커버스타] 완벽한 한팀 - <공조> 현빈·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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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인’에서 ‘소시민’으로 타이틀이 바뀌는 영화, <소시민>에서 한성천은 영업직 사원 구재필을 연기한다. 승진에선 계속 미끄러지고, 상사는 실적으로 쪼아대는 와중에 이혼을 재촉하는 아내와 양육권을 놓고 다투기까지 해야 하는 재필은 한시도 숨 돌릴 틈이 없다. 배우 한성천 특유의 억울한 표정, 구부정한 자세는 우리 곁의 수많은, 아주 보통의 소심한 남자를 금세 떠올리게 한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이른바 연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때 무척 허약한 아이였다. (웃음) 집안 어른들이 15살 전까지 천식 못 고치면 쟤 죽는다고 하셨을 정도다. 그러다 침술을 배우신 외삼촌에게 한달쯤 침을 맞고 약을 지어 먹었더니 좀 나아졌다. 집 안에서만 놀다 그때부턴 바깥에서 활발히 놀게 됐는데 사람들이 내가 노는 걸 봐주는 게 너무 좋아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수나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예고를 못 가고
[who are you] 완벽히 준비된 자세로 - <소시민> 한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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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는 ‘금수저’에게 정규직 자리를 빼앗긴 비정규직 교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모든 걸 가진 이와 그에게 남은 자존감마저 빼앗겨야 하는 주인공, 그들의 욕망의 매개가 되는 소년이라는 삼각 구도의 역학 관계 속에서 파국의 드라마를 그려낸다. 사회안전망에서 탈락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거인>(2014)의 소년 영재(최우식)를 기억한다면, 김태용 감독이 언제나 계급의 벼랑 끝에 자리한 이들을 생생하고 기민하게 묘사해온 감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표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가라앉지만 않으려던 아이는 <여교사>에서는 형형한 눈빛을 하고 내 자리를 밀어낸 이와 함께 기꺼이 침몰하려는 인간이 된다. 영재부터 효주(김하늘)까지, 절박한 인물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회의 폐부를 들춰내는 김태용 감독을 만났다. 영화와는 달리 밝고 상냥했던 그와 <여교사>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전한다.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장편
[씨네 인터뷰] "여성 캐릭터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영화가 됐으면…" - <여교사> 김태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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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의 진 회장의 심복, <푸른 바다의 전설>의 ‘미친 미저리’ 형사, <육룡이 나르샤>의 이지란 장군, <됴화만발>의 2천년을 산 무사K…. 매서운 눈매와 서늘한 인상의 박해수 배우는 다양한 작품에서 무사, 장군, 형사 등 거칠거나 위압감을 주는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배우다. “보기보다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진 않았다”며 웃는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선 뉴페이스지만, 연극에서는 2011년과 2012년 신인상을 휩쓸었던 베테랑이다. <마스터>와 <푸른 바다의 전설>로 영화, 드라마 연기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그를 만나 매체 연기에 대한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마스터>에서 진 회장의 충실한 심복 역을 맡았다. 액션과 표정 연기가 살벌하다.
=조의석 감독님이 진 회장 곁을 지키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서 뱀같이 섬뜩한 이미지를 주문하셨다. 진 회장의 넓은 저택 공간에 하나의 미장센처럼
[who are you] 위로가 된다면 - <마스터> 박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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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의 전반부는 서울을 무대로, 후반부는 필리핀 마닐라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지 멋진 ‘그림’을 건지기 위한 로케이션이 아니었다. 예산과 일정과 장소 헌팅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제작부로선 <마스터>가 산 넘어 산인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었다. 백지선 프로듀서와 <좋은 친구들>을 함께한 인연으로 <마스터>에 합류한 오현암 제작실장 역시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굴러가게 만드는 해결사가 돼야 했다.
<마스터>팀은 2016년 6월 한달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필리핀에서는 본 촬영이 24회차, 추가 촬영이 2회차 진행됐다. 필리핀 로케이션은 날씨와의 싸움, 그로 인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최고로 더울 땐 45도. 우기여서 수시로 비가 왔고 배수 시설은 좋지 않았다. 오현암 제작실장을 특히 골치 아프게 만든 장면은 영화 후반부 사기꾼 진 회장(이병헌)과 형사 김재명(강동원)이 결전을 벌이는 마닐라 존스 브리지에서의 촬영이
[영화人] <마스터> 오현암 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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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최고 게이트’를 준비했건만 현실이 선수쳤다. 하지만 현실의 기시감이 드는 대사와 상황들, 결국엔 정의가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드라마에서 관객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는 다단계 사업으로 수조원대 사기를 친 사기꾼 조희팔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시작된 프로젝트다. 희대의 사기꾼 진 회장(이병헌)과 그를 쫓는 지능범죄수사팀 형사 김재명(강동원), 둘 사이를 오가며 자기 살길을 모색하는 박장군(김우빈)이 서로를 속고 속이고, 쫓고 쫓는 이야기. 데뷔작 <일단 뛰어>(2002)와 <조용한 세상>(2006) 이후 <감시자들>(2013)을 선보였던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에 이르러 자신의 영화적 색깔을 분명히 찾은듯 보인다. 본인은 “15세 관람가 권선징악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했지만, ‘현실에 촉수를 댄 오락영화’는 앞으로 조의석표 영화의 인장이 될 것이다. <마스터> 개봉 하
[씨네 인터뷰] "현실이 더 극적이더라도 영화는 제 갈 길을 간다" - <마스터> 조의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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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르 톰슨은 우리에겐 <라 붐>(1980), <여왕 마고>(1994)의 각본가로 더 친숙하다. 선 굵은 드라마부터 하이틴 장르까지 다양한 장르를 거친 이야기꾼이지만 감독 다니엘르 톰슨이 17년간 주력해온 장르는 코미디였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의 신작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다시금 인물과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밀도 높은 심리묘사를 보노라면 애초에 이쪽이 더 익숙했던 옷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프렌치 시네마 투어 2016을 위해 내한한 다니엘르 톰슨 감독을 만났다. 차분한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감독의 설명은 그것만으로도 한편의 영화 같았다.
-15년 전부터 구상한 소재라고 들었다. 연출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15년 전 세잔과 졸라에 대한 짧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두 예술가 사이의 균열에 대해 알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두 사람에 대해 잘 몰랐고 영화화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전작 <포옹
[people]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다니엘르 톰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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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노래를 부르기 위해 종로로 가는 이들이 있다.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게이 합창단 ‘G-Voice’(이하 지보이스)의 단원들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소모임으로 시작한 지보이스가 정식 합창단으로 활동한 지 벌써 13년째. 2013년, 지보이스는 창단 10주년을 기념하며 공연을 준비했다. 이동하 감독의 데뷔작 <위켄즈>(개봉 12월22일)는 이 공연의 준비부터 피날레까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위켄즈>는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돼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상을 수상했다.
-지보이스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을 영화화까지 하게 됐다.
=전부터 지보이스 공연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해왔다. 지보이스의 이야기를 단원들끼리만 보고 끝내는 게 아쉬웠다. 지보이스를 관두는 이들도 생겼고, 죽음으로 단원들 곁을 떠나간 이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지보이스를 제대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단원들도 ‘아무도 하지
[people] <위켄즈> 이동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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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장수이, 자칭 스컬리. 맞다. 미국 드라마 <X파일>의 그 스컬리다. 월담 전문, 학교생활 틈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함. 특이사항, 외계 세계와의 접촉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수상한’ 과학책들을 수시로 봄.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발랄한 소녀. <사랑하기 때문에>의 고등학생 장수이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이다. 김유정은 자신과 또래인 스컬리가 자꾸만 궁금해졌다. “스컬리? 이름 한번 특이하지 않나. 내가 <X파일>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서 감독님께 스컬리에 대해 한참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도 보면, 스컬리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당차고 밝고 또 엉뚱하다. 그런 면은 나랑 닮은 것도 같고! (웃음)” 영화에서 이형(차태현)이라는 남자가 사고를 겪은 후 다른 사람들 몸에 빙의해갈 때 이 황당한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인물이 스컬리다. 이형의 못다 한 사랑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는 이형의
[커버스타]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서 - <사랑하기 때문에>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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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읽은 시나리오 중 최고로 재밌었다.” 차태현이 <사랑하기 때문에>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이유다. 친형인 차지현 대표의 제작사 AD406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이후 오랜만에 손잡은 작품. “형의 제작사라고 해서 출연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오해를 받을까봐 더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는 시나리오를 당시에 정말 재밌게 읽어서 미리부터 출연을 점찍어둔 거였다.” 마음이 가벼워진 덕이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의 이형은 <엽기적인 그녀2>(2016)로 인생 캐릭터인 ‘견우’를 온전히 털어낸 차태현이 그 이후 처음 맡은 역할
이다.
이형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알 수 없는 규칙을 따라 여러 신체를 전전하게 된다. 난데없이 여고생이 되었다가, 피곤에 찌든 중년 형사가 되었다가, 언제는 배 나온 교사도 되었다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로도 빙의한다. 규칙도 전조도 없는 이 빙의 릴레이
[커버스타] 평생 연기하며 살 수 있기를 - <사랑하기 때문에> 차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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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밀림도 없이 그야말로 박빙이다. 난데없이 카메라 앞에서 차태현과 김유정의 ‘포즈 취하기’ 대결이 펼쳐졌다. 두 사람은 새해 첫 코미디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로 <씨네21>의 신년호 표지를 장식하게 됐다. 고 유재하의 동명 노래에서 출발하는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차태현은 사고를 겪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전전하게 된 불우한 영혼 이형을 연기한다. 김유정은 그런 이형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인물 장수이, 아니 ‘스컬리’로 분했다. ‘보이지 않아도 아는’ 영화 속 케미스트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싶었더니 촬영현장에서의 찰떡 호흡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날 있던 영화 홍보 일정까지 마무리한 하루의 막바지, 늦은 시간에 잡힌 촬영일정으로 두 사람 모두 피곤했을 텐데도 카메라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재치 있는 표정과 포즈를 만들어주었다. 꾸준히 기복 없는 차태현과 요즘 가장 반짝이는 김유정이 달리 스타가 아님을 새삼 증명한 시간이었다.
[커버스타] 찰떡 호흡 - <사랑하기 때문에> 차태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