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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2016)는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세상의 차별에 맞서야 했던 1960년대 흑인 여성들에 대한, 조금은 늦게 만들어진 영화다. 나사(NASA)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에서 “인간 컴퓨터”로 일했던 실존 인물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메리 잭슨(저넬 모네이),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의 이야기는 모두 감동적이지만, 영화를 보다 유독 뭉클했던 순간은 도로시 본이 혼자만을 위한 승진을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내 앞가림조차 쉽지 않았던 때에 모두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표현하는 확고한 얼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판사 앞에서 최초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변론하는 메리 잭슨이나 직장 내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캐서린 존슨과 달리 도로시 본은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 없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때가 찾아왔을 때 주저 없이 요청한다.
[people] <히든 피겨스> 옥타비아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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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10개월 만의 컴백이다. 2014년 10월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던 소니픽처스릴리징인터내셔널(이하 소니)이 지난 2월 올해 라인업을 발표하며 한국 시장에 복귀했다. 당시 “세계 경제 불황 탓에 영화사업 축소가 불가피해졌다”는 게 철수 이유였고, 소니가 철수한 뒤로 소니 라인업은 UPI 라인업을 통해 배급돼왔다. 그러다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0월, 소니는 한국 시장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소니의 출사표를 듣고 싶어 황선용 대표에게 만남을 청했으나 처음에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소니의 전신인 컬럼비아트라이스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26년간 소니 외길 인생을 걸어오면서 단 한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그다. 황선용 대표가 그리고 있는 소니는 디즈니, UPI,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파라마운트 등 기존의 직배사 질서에 어떤 긴장감을 부여할까.
-한국 시장 철수 이후 약 2년 만의 복귀다.
=정확하게 1년10개월 만이다. 2
[people] 황선용 소니픽처스릴리징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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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남>(2005), <고백>(2010), <악인>(2010), <늑대아이>(2012), <바쿠만>(2015), <너의 이름은.>(2016)의 공통점은? 모두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의 손을 거쳐 기획,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가와무라 겐키는 도호영화사 입사 이래 뛰어난 안목과 기획력으로 꾸준히 흥행작을 선보여왔다. 주목받는 일본영화의 뒤엔 항상 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유명 프로듀서인 그에게 또 다른 얼굴이 있으니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이다. 2012년 발표한 첫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120만부 넘는 판매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를 만나 성공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성공한 프로듀서이자 차분한 이야기꾼, 그리고 흥미로운 에세이스트로서의 답변을 전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people] <분노> 가와무라 겐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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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헌재의 위헌정당해산 결정으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지난해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정당 해산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통합진보당을 입에 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정희 전 대표 또한 지난해 <진보를 복기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지만, 그동안 폐기됐거나 발의가 되지 못해 안타까운 진보 정책 11가지를 소개했을 뿐 정당 해산 과정에서 겪은 일이나 심정만큼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달여 전 새 책 <이정희, 다시 시작하는 대화> 출간을 기념해 이정희 전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다. 그러다가 며칠 전, 만나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치에 민감해진 시기에 정치 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과 조금 더 숨을 고르고 대화하고 싶었다”는 이유와 함께. 인터뷰가 끝난 뒤 그녀는 “글을 쓸 때는 마음을 정리정돈했다
[trans x cross] 이제는 종북몰이를 끝내자 - 책 <이정희, 다시 시작하는 대화> 출간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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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부터 강렬했다. 연기파라고 하면 또래배우 중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천우희는 그간 남들이 쉽게 넘보기 힘든 캐릭터를 도맡아왔지만 본인은 그마저도 고정관념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느날>의 미소는 이제껏 그녀가 맡은 역할 중 가장 편하고 귀엽고 발랄한 인물이다. 하지만 배우 천우희의 연기인생에 있어선 도전이자 도약의 시점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걸음이 경쾌하고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3월 11일 팬미팅을 가졌다. 축하드린다. ‘희소식’이란 팬미팅 제목이 참 좋다.
=사실 지난해에 하려다가 부득이하게 미뤄졌다. 그동안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시사회 정도뿐이라 여러 가지로 아쉬웠는데 열심히 준비한 만큼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뿌듯하다.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쑥스럽긴 했지만. (웃음)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나 인터뷰에서의 모습과 달라서 혹시나 깨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좋아해주셔서 편안해졌다.
-스스로 생각할 때도
[커버스타]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 <어느날> 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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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뭐했어?” “그냥 집에 있었어. 기념일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천우희와 김남길의 대화를 듣고 며칠 전이 김남길의 생일(3월 13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남길에게 생일은 특별한 ‘어느 날’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는 “특별함보다 일상의 소소함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평범한 이들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는 영화 <어느날>을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멜로라는 드라마틱한 장치를 끌어오지 않고서도 남자와 여자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말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영화는, 최근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 배우 김남길에게 좋은 힌트가 되어줬다고 그는 말한다.
-<어느날>의 출연을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다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에는 어른 동화 같은 느낌의 작품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촬영하
[커버스타] 본질을 더듬는 마음으로 - <어느날> 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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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남매라고 해도 믿겠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천우희와 김남길의 모습이 그렇다. 생일을 그냥 별일 없이 보내버렸다는 김남길의 말에 “밥이라도 같이 먹을걸”이라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천우희와 촬영 도중 분위기 전환을 위해 소소한 농담을 건네던 김남길의 모습을 보며 촬영장에서 그들이 주고받았을 합을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이윤기 감독의 신작 <어느날>은 한국영화계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도맡아왔던 천우희와 김남길의 일상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시각장애인 미소와 과거의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보험조사원 강수가 바로 두 배우가 새로 입은 옷이다. 육체는 죽어가고 있지만 정신은 누구보다 명징하게 살아 있는 여자와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이 죽어가는 남자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볕 좋은 어느 날, 천우희와 김남길을 만나 <어느날>의 현장에서 그들이 공유했던 어떤 것들에 대해 물었다.
[커버스타] 다정한 교감 - <어느날> 김남길·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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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도 않는 헐렁한 군복을 입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패잔병이 돼 덴마크군의 포로가 된 독일 소년병들. 그들은 독일군이 덴마크 서해안 해변에 매설한 지뢰 해체 작업에 투입된다. <랜드 오브 마인>은 이 실화를 극화하면서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역전시킨다. 독일 소년들의 얼굴은 먼지와 피로가 뒤덮여 엉망이다. 작은 실수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들의 얼굴엔 저항과 체념과 절망의 그림자가 더해진다. 그때부터 소년들의 얼굴이 하나씩 구별되기 시작한다. 10여명의 소년병들 중 세바스티안(루이스 호프만)은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조심스레 희망을 품어보는 소년이다. 동료들을 다독이며 지뢰 해체 작업을 해나가는 세바스티안은 자신들을 관리하는 덴마크 군인 칼 라스무센(로랜드 몰러)과 우정도 쌓아간다.
죽음의 해변에서 꿋꿋이 삶의 의지를 지켜가는 선한 얼굴의 세바스티안은 독일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의 1997년생 루이스 호프만이 연기했다. 루이스 호
[who are you] 희망과 의지의 얼굴 - <랜드 오브 마인> 루이스 호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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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시대, 4·13 호헌조치가 내려지고 6월항쟁이 일어났던 1987년. 영화 <보통사람>은 평범한 한 경찰이 유혹에 놓이고 선택을 하게 되는 궤적을 좇는 영화다. 시대 속 가장 보통의 삶을 호출한 영화의 이면엔 서성경 미술감독의 노력이 있었다. “주인공은 픽션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최대한 진실하게 보였으면 했기에 고증을 많이 신경 썼다.” 시대를 가장 근접하게 재현해내기 위해 성진(손현주)의 집은 부산의 철거촌에 오픈 세트로 지었다. 1980년대 시대상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재개발 지역 빈 주택들의 마감재, 문짝 등을 ‘득템’했고, 지방의 장판집을 뒤져 옛날 벽지와 장판들을 찾아냈다. 성진이 일하는 경찰서와 대폿집에는 당시 유행했던 컬러인 ‘옥색’을 포인트로 사용해 친숙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단지 고증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아카이빙된 당시 기사 사진들을 숱하게 찾아본 그는 “그 시대엔 세뇌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국심을 강조하는 슬로건과 표어, 포스
[영화人] <보통사람> 서성경 미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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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은 이야기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분노>는 평범한 부부의 살인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장엔 ‘분노’라는 글자만이 남겨져 있고, 1년 후 세명의 용의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분노>는 범인을 쫓는 추리물이 아니다. 내 곁의 누군가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불신과 두려움에 관한 드라마다. 혹은 믿음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여러 인물 군상의 내면을 동등하게 건드리는 원작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압축할 것인가. <분노>는 이상일 감독이 내놓은 해답이자 일본영화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한자리에 모은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역대급 캐스팅과 최고의 스탭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높은 완성도의 영화로 매 장면 만족스럽다. <분노>의 이상일 감독을 만나 한층 깊어진 그의 영화 세계에 대해 물었다.
-<악인>(2010)에 이어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에는 단행본이 나오기 전부터
[씨네 인터뷰] "응어리진 분노를 묘사하고 싶었다" - <분노> 이상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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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핸들링은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TIFF)의 집행위원장이자 토론토를 대표하는 문화센터 벨라이트 박스(TIFF Bell Lightbox) 대표다. 1994년 TIFF에 몸담은 그는 영화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일등공신이자 벨라이트 박스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난 2010년 설립해 운영하는 토론토 문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서 주최한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건립과 운영 현황을 논의하는 워크숍 ‘영화의 미래를 위한 건축: TIFF Bell Lightbox’와 ‘프로그램의 재발명: 영화센터의 현황과 전망’ 참석차 지난 3월 15일 한국을 찾은 피어스 핸들링을 만나, 시네마테크의 중요성과 운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올해 TIFF 42주년이다. 1994년부터 프로그램 위원장, 예술위원장을 거쳐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30년 이상을 영화제와 함께했다.
=그러고보니 초반부터 함께했다. 처음 참여했을 때만 해도 작고 새로운 신생 영화제였다. 하지만 T
[people] 피어스 핸들링 토론토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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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에너지 넘친다. 요한 필립 애스백은 2008년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감독의 <두개의 세계>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덴마크 출신의 라이징 스타다. <루시>(2014), <벤허>(2016) 등 규모 있는 작품은 물론 <왕좌의 게임> 등의 TV시리즈에도 잇따라 출연하며 착실히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를 보조하는 철벽의 파트너 바토 역을 맡은 그는 원작의 오랜 팬이었다며 이번 영화에 출연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와 달리 풍성한 표정으로 장면을 재현해주는 모습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진중하지만 따뜻한 내면을 지닌 바토와 점점 겹쳐 보였다.
-<공각기동대>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봤나.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진즉부터 팬이었고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는 나중에 봤다. 내가 어릴 땐 덴마크에서 만화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웃음) 오시
[people]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요한 필립 애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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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공각기동대>)의 내한 스타 중 줄리엣 비노쉬를 발견한 이라면 누구나 ‘왜?’라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숱한 거장들과 함께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해온 줄리엣 비노쉬를 SF 블록버스터라는 생소한 장르에서 만나다니, 이색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그녀가 필요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것이다. 줄리엣 비노쉬는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를 탄생시킨 과학자 닥터 오우레역을 맡았다. 존재만으로 화면을 장악할 배우가 필요했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완벽하다. “반복은 폭력”이라던 배우, 아니 예술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모험을 만끽 중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는 봤는지. SF나 사이버펑크 장르에 관심이 있었나.
=내겐 미지의 영역이다. 처음 스크립트를 받았을 때 전혀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웃음) 이해할 만한 체계가 없었다고 할까. 당연히 거
[people]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배우 줄리엣 비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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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 매거진>에 연재된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오시이 마모루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뒤, <공각기동대>가 SF와 사이버펑크물에 끼친 파급력은 절대적이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은 물론,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TV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 가능한 모든 장르로 제작된 원작의 ‘무게’는 무거웠다. 제작사 드림웍스가 기획 개발에만 6년 넘게 투자했다는 후문이다. ‘원작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 루퍼스 샌더스 감독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을 연출한 후 지난 3년간 온전히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미래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원작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참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대학 시절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를 접했다. 당시 유일하게 꽂힌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5년 전쯤 시나리오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들
[people]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루퍼스 샌더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