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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라인>은 작업 대출계에 발을 들인 대학생 민재(임시완), 민재를 작업 대출의 세계로 인도하는 소신 뚜렷한 석구(진구), 야망이 큰 행동대장 박 실장(박병은) 그리고 이들을 잡겠다고 모인 검경 수사대가 서로를 쫓고 또 물먹이는 이야기다. 서류를 불법으로 조작해 신용대출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은행권 대출을 받아주는 작업 대출 업자들은 돈의 흐름에 밝은 사기꾼이다. <원라인>은 하이스트 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탕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사기행각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현실의 정밀묘사를 통해 돈에 대한 욕망과 돈이 굴러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단편 <일출>(2015), <하얀돼지>(2012), <디지털 무비>(2011), 독립 장편 <떨>(2006) 등을 만들며 다양한 실험을 해온 신인 양경모 감독은 장르의 전형을 영리하게 취하고 피하면서 영화에 자신만의 개성을 새겨넣는다. “조금이라도 다
[people] <원라인> 양경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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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감독은 인터뷰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말했다. 장편 데뷔작이자 코미디영화 <히어로>(2013) 이후 약 4년 만에 내놓은 영화라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를 거의 받지 못해 만만치 않은 펀딩 과정을 겪었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개봉조차 불투명했던 영화가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영화 <보통사람>은 1987년 형사 성진(손현주)이 안기부의 기획 수사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구나 기획 수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그럼에도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은 보통사람이라고 강조한다.
-1975년 전국을 돌며 1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김대두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신문의 ‘오늘의 역사’ 코너에 ‘최초 연쇄살인마 김대두’라는 기사가 눈에 띄어 찾아봤다. 연쇄살인마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과거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이상했던 건 그가 잡히
[people] <보통사람> 김봉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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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장혁은 <화산고>(2001)에서 노랑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고 시도 때도 없이 장풍을 쏴댔다. 타고난 공력을 주체하지 못해 여덟번이나 퇴학을 맞고 화산고에 전학온 김경수가 되는 길은 사실 험난했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던 와이어 액션 연기를 찍은 지도 벌써 나흘째. 경수가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튀어나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도 와이어를 쓴다. 그런데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거짓말 아니라 서른몇번쯤 땅바닥을 굴렀다. 결국엔 카메라를 머리로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감독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기에, ‘열정, 패기, 젊음밖에 없슴다’라고 앙다문 소리를 했다.” 장혁이 직접 쓴 <화산고> 촬영일지 중 한 대목이다. 속마음이 그대로 담긴 이 촬영일지를 읽다보면 장혁의 연기 욕심이 데뷔 초부터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꾸준히 절권도를 연마하며 몸과 마음을 수련해온 장혁은 어느덧 반항적인 청춘의 얼굴을 지나 노련한 배우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보
[메모리] 변치 않는 연기 욕심 - 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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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었다. <추노>의 이대길로 대변되는, 뜨겁고 정의로운 역할을 주로 맡아온 장혁이 안기부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역을 맡다니. 인터뷰에서 또 한번의 반전이 이어졌다. 소탈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장혁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그리고 풍성하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섬세한 비유와 은유들을 동원하는 달변가였다. 40대의 초입, 한순간도 방만해지지 않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도전 중이라는 장혁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보통사람>은 혼란하고 어두웠던 1987년의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느낌은 어땠나.
=먹먹하고 막막했다. 80년대에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진(손현주)의 아들 민국이 정도의 나이였고, 그 나이 땐 운신의 폭이 적었으니까. 체험해서 알게 된 것과 학습해서 알게 된 것간의 괴리가 있지 않나. 후자의 세대였지만, <보통사람> 속에 들어가 연기하면서는 직접 체감하는 느낌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안기부 실장 규
[커버스타] 감정을 지우는 감정 연기 - <보통사람> 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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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숨바꼭질>(2013), <악의 연대기>(2015), <더 폰>(2015)까지 연이어 액션, 스릴러 영화에 출연하며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운신했던 손현주는 <보통사람>에서 오랜만에 조금은 풀어져도 좋은 소시민의 모습을 슬쩍 꺼내 보여준다. 그의 희극적 면모는 이내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이의 사투로 이어지며 서사에 깊은 굴곡을 만들어낸다. 1980년대, 오직 나라와 가족을 위해 살았던 형사 성진이 된 손현주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보통사람은 또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보통사람>에 뛰어들었다. “주향은 백리, 화향은 천리, 인향은 만리라고 하지 않나. 김봉한 감독과 함께 ‘사람’의 얘기를 담고자 했다.” 손현주는 이 작품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고 진한 향으로 남길 희망했다.
-그간 드라마를 통해 서민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다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었고 다
[커버스타] 평범함을 지킨다는 것 - <보통사람> 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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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라 믿었던 형사 성진. 반공이 국시라 믿으며 그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 했던 안기부 실장 규남. 연쇄살인사건의 조작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1987년 봄을 통과하며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막역한 사이로 잘 알려진 손현주와 장혁이 <보통사람>에서 성진과 규남으로 만났다. 손현주와 장혁은 영화에서 권력의 위계질서 안에서 지시와 복종의 관계를 따르지만, 스크린 밖에선 이보다 더 서로를 챙길 수 없겠다 싶을만큼 끈끈함을 보였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며 삶을 대하는 성실한 자세는 물론 아재개그 감각까지 닮은 두 배우를 만났다.
[커버스타] <보통사람> 손현주·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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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의 아즈미를 연기한 배우 스기사키 하나는 어린 나이에도 꽤 어려운 감정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감독들이 유독 그녀에게 어렵고 힘든 역할을 맡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답다.
-<행복 목욕탕>으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버스데이 카드>의 미야자키 아오이, <신 고질라>의 이시하라 사토미와 이치카와 미카코, <분노>의 히로세 스즈 등 쟁쟁한 배우들이 후보였는데 소감이 어떤가.
=일본 아카데미는 많은 영화상 중에서도 규모가 큰 시상식이라 너무 떨렸다. 시상식 전날에 엄마 역의 미야자와 리에에게 잠이 안 올 정도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가 촬영하면서 느낀 자긍심은 변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답해줘서 고마웠다.
-이번 영화로 일본 내에서만 7개의 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출연작 중에서 가장
[who are you]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 <행복 목욕탕> 스기사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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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정체를 안다고 확신하는 내과의사 승훈(조진웅). <해빙>의 카메라는 승훈의 믿음,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승훈의 인식은 한점 의심 없이 믿을 만한 것일까. <해빙>은 승훈을 시작으로 때론 꿈처럼 몽환적으로, 때론 엽기적인 살인의 민낯으로, 그리고 승훈이 놀라 깨어난 후 바라보는 현실처럼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이수연 감독의 꼼꼼한 시나리오를 스크린에 효과적으로 옮긴 이는 바로 이수연 감독과 단편 <텐 텐_Rabbit> <가족 시네마_E.D. 571>을 함께 작업해온 촬영감독 엄혜정이다.
엄혜정 촬영감독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해줄 가장 효과적인 재료로 사용한 것은 빛과 어둠의 끊임없는 대비였다. 승훈과 승훈이 살인범이라고 규정하는 정육점 부자 정 노인(신구), 성근(김대명), 그리고 그의 상상 안에서 창조된 인물인 형사 경환(송영창) 등 ‘의심스러운’ 인물들은, 영화의 주요 공간인 변두리의 낡은 병원, 정육점, 승훈의 방에
[영화人] <해빙> 엄혜정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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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말이 넘쳐난다. 배우 김민희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확히는 두 가지 말들이 있다. 하나는 홍상수 감독의 사생활 주변을 더듬는 말이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란 한줄 시놉시스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영화와 현실을 겹쳐보고 싶은 심정도 이해가 간다. 다른 하나는 영화 속 넘쳐나는 대화들이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삶에서 영감을 얻고 그때 그때의 반응을 자동 기술한다. 당연히 감독 본인의 삶에서 뽑아왔다는 착시가 일어날 만한 대사들이 가득하다. 이는 쉽고 자극적이며 한편으론 타당한 연결이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만큼 언어의 무용함을 절감하는 순간도 드물다. 영화 바깥의 가십은 물론 영화 속 의미심장한 대사들도 서사적인 의미로 고착되진 않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스크린에 옮겨온 것은 결코 설명되지 않을, 순간에 대한 기록이자 감독 자신이 감각하고 받아들인
[씨네 인터뷰]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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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기피 연예인을 풍자한 <연예인 지옥>(2002), 북한의 지도자를 풍자한 <중년탐정 김정일>(2006) 등 오인용의 작품에 성역은 없다. 창작집단 오인용의 다섯 멤버는 욕과 폭력과 억지가 난무하는 19금 B급 웹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했다. 2002년 5명으로 시작한 오인용은 현재 정지혁, 장석조 감독이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형태로 그 이름을 지켜가고 있다. 주먹이 아닌 말로 싸우는 무림고수들의 ‘드립’ 혈전 <만담강호>를 극장에 걸게 된 오인용의 두 감독을 만났다.
-<만담강호>가 첫 번째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이다.
=정지혁_ 오인용의 이름이 알려지고 한창때 극장판에 열심히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 제작비를 깎고 깎아서 2억원만 해주시면 1년 동안 눈썹 밀고 산에 들어가서 작품을 완성해 오겠다고 했는데도 그 2억원을 주려는 곳이 없더라. 장편 경험, 극장 개봉 경험이 없다
[people] <만담강호> 만든 오인용의 정지혁·장석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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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더라. <프리즌>이 블록버스터 버전의 <예언자>라고. 예술영화와 비교해주니 고맙다. (웃음)” 나현 감독의 데뷔작 <프리즌>은 한국영화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이 돋보인다. 교도소가 배경이지만 아무도 교도소를 벗어나려 하질 않으니 탈옥 영화는 아니고, 죄수들이 교도소 내에서 권력 다툼을 벌이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온다. 장르영화의 관습을 메쳐버린 시나리오작가 출신 데뷔 감독의 재기를 즐겨보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마당을 나온 암탉>(2011), <남쪽으로 튀어>(2012) 등을 쓴 시나리오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든, 소위 말해 ‘쎈’ 장르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입봉을 준비하던 작품들이 몇번 엎어지면서 이번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나 미국 드라마 같은 화끈한 분위기의 영화를 해보고 싶어졌다. 전부터 교도소가 배경인 영화를 고민하던 중에
[people] <프리즌> 나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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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라는 이름이 지닌 여유로움과 선량함, <프리즌>은 그 모든 것을 한번에 뒤엎는 영화다. 교도소의 왕 익호는 사자보다는 하이에나처럼 음습하고 무자비하며,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처럼 한톤 올라간 목소리로 가볍고 빠른 말투를 구사하면서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는다. 약 37년의 연기생활 동안 조폭에 깡패들을 죄다 섭렵한 그지만, 이토록 익호가 반전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사진관 주인 정원과 <접속>(1997)의 라디오 PD 동현의 부드러운 말투와 인간적인 미소가 한석규의 근간을 이루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리라. 시한부 삶을 앞둔 정원과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이 몸에 밴 도시인 동현은 같은 온도를 지닌 사람이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질곡 앞에서 담담하게 그러나 애틋하게 누군가를 그리고 사랑하던 한석규. 1990년대의 그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그가 긴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끊
[메모리] 이미지의 반전 -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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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의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투자 지원)로 의혹이 제기됐고(<씨네21> 1090호 특집 기사 ‘<아가씨>는 안 되고 <인천상륙작전>은 된 까닭’ 박스 참조. 태원엔터테인먼트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84억2900만원에 이르는 모태펀드 투자조합의 투자를 받았다. 모태펀드 지원을 받은 영화사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금액을 지원받았다-편집자), 아버지가 정광택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이하 탄기국) 공동대표라는 것에 대해 “사실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만나 그의 솔직한 말을 들어보았다.
-박근혜 정부의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 의혹 제기에 대해 억울해한다고 들었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 제작의 외적인 이야기가 회자되는 게 불편하다. 순수하게 영화를 만들어왔을 뿐인데 한국벤처투자의 화이트리스트로 거론되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people]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 의혹 제기 받은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심경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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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블랙 위도우 캐릭터처럼 액션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자주 맡아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고스트 인 더 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원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하는 일의 가장 재미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 동안에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물론 기나긴 준비 과정이 힘들고 지루할 때가 있지만 그 모든 준비 과정을 실전에 도입해 사용할 때면 짜릿하다.
-메이저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나. 마블의 블랙 위도우나 <언더 더 스킨>의 외계인 역시 복합적인 인물이었는데, 이처럼 과거에 맡은 역할이 도움이 되기도 했나.
=메이저는 유니크한 인물이다. 그녀의 머리 뒤쪽에는 아홉 가지 다른 모습들이 숨겨져 있다. 메이저의 자아가 내면에 잠재된 ‘어둠’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처럼 캐릭터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 것은 처
[커버스타]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배우 스칼렛 요한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