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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마지막, 분분히 흩날리는 눈발처럼 애틋하고 아픈 감정을 품은 소년과 소녀가 있다. <눈발>(2016)은 명필름영화학교 1호 작품,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시나리오 제작지원작,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 2016까지, 공개 전부터 여러 이슈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명필름영화학교 1기로 입학해 처음으로 영화를 완성한 조재민 감독을 만나 첫 장편영화에 대한, 그리고 <눈발>을 시작하게 한 오래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남 고성 촬영현장에서 보고 1년 만이다. 영화는 만족스럽게 나왔나.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편집에서 달라진 게 꽤 많다. 편집기사가 <우리들>(2015) 박세영 기사로 바뀌면서 신의 순서와 호흡이 바뀌었다. 그때는 영화제에 제출하기 위해 급하게 한 감이 있는데, 다듬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한겨울에 낮 촬영이 대부분이라 하루에 네 테이크 이상
[people] <눈발> 조재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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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야, 살아 있니.” 작고 여윈 손이 벽을 두드린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던 소녀들. 그들이 걷는 눈길이 훤하고 서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눈길>은 2015년 KBS 2부작 단막극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다.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한 까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눈길>을 연출한 이나정 감독은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2015),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를 공동 연출하고 <드라마 스페셜-연우의 여름>(2013) 등을 연출한 KBS 드라마국 소속 PD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와 <눈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기존 드라마 단막극으로 반영된 작품을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했다.
=KBS에서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했다. 방송 콘텐츠는 일본에서 보여주기 어려운데, 영화면 영화제에 가거나 상영을 하기가 더 쉽더라
[people] <눈길> 이나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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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한번 보자. ‘죽음’도 좋은 장사가 된다. 전도유망한 화가 지젤(류현경)의 요절 앞에서, 수완이 출중한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은 ‘지젤 프로젝트’의 사업적 전망을 발견한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작품이라는 ‘진짜’와 ‘진실’이 비즈니스로, 가짜로 포장되는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이다. 준엄하고 심각한 경고 대신 웃지 못할 해프닝의 연발 속, 미술계 종사자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와 속물근성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우디 앨런식 블랙코미디가 주는 씁쓸한 긴장! 마치 핑퐁게임하듯 극을 이끄는 것은 류현경, 박정민 두 배우의 호흡이다. 둘은 <오피스>(2014),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영화감독이다2>를 함께한 동료이자, 평소 고민을 터놓는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지젤만큼이나 데뷔 때부터 ‘진짜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을 나누어온 두 배우와 함께, 아티스트의 방법론을 논의해봤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 지젤도,
[액터] 스타가 아닌 배우로 살아남기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류현경·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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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은 자신만의 화법을 분명히 가진 배우다. 그 화법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자, 이런 얘긴 어때요. 자, 이런 얘기도 있어요. 마치 무수한 예시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듯 운을 뗀 다음엔 과거의 상황을 그대로 복사하듯 묘사하기 시작한다. 가능하다면 상황 속 인물의 성대모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청자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타고난 배우의 느낌이랄까. 여러 작품에서 조진웅은 배역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관객이 한눈팔지 않도록 장면을 장악해왔다. <해빙>에서도 조진웅은 혼자서 많은 장면을 이끌어간다. 전락한 중산층의 얼굴을 대변하는 승훈 캐릭터는 이제껏 조진웅이 연기해온 캐릭터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뽐냈던 공격적 캐릭터들과 달리 승훈은 스스로 불안함에 잠식되는 인물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조진웅의 표정이 영화에 길게 여운을 드리운다. 다작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조진웅과 <해빙>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해빙&
[커버스타] 감정을 따라가다 - <해빙>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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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명석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히든 피겨스>의 메리 잭슨을 연기한 저넬 모네이는 152cm의 작은 체구임에도 강인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판사 앞에서의 스피치는 가히 오스카 클립으로 쓰일 만한 위엄이 있으며, “어떻게 백인 남자한테 추파를 던지냐”는 친구에게는 “그게 평등권이야, 인종을 왜 신경 써야 해?”라고 되묻기도 한다. 메리 잭슨은 실제 저넬 모네이와 닮아 있다. 저넬 모네이는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우에 대해 계속해서 말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흑인에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면 모두에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그는 강인함만큼 자애로움도 지녔다. <문라이트>에서 후안이 떠난 뒤에도 한결같이 샤이론을 돌봐주는 테레사 역할을 맡은 그에게선 성숙한 성인 여성이 주는 신뢰가 묻어난다. 테레사 역시 저넬 모네이의 한 일면이다. “나는 샤이론, 후안, 파울라 같은 이웃과 가족들 속에서 자랐고, 나는 실제 내 삶에서도 테레사
[who are you] 오롯이 선 당당함 - 저넬 모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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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이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00만명을 돌파했다. 박성일 프로듀서는 “성적이 좋아 다행”이라며 담담한 반응이었고, 윤기호 프로듀서는 “김태윤 감독은 20년 만에 ‘인생 스코어’가 나왔다고 좋아하더라”며 감독의 얘기로 기쁜 마음을 대신 전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라는 실화 자체의 무게 때문인지 무겁고 어두운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런데 <재심>은 대단한 르포르타주가 아니라 따뜻한 휴먼 드라마다. 개봉 전 그런 포지셔닝을 했던 게 결과적으로 통한 것 같다.”(윤기호) 두 사람은 영화의 흥행 분석까지 곁들이며 제작자 마인드를 발동했다.
박성일, 윤기호 프로듀서의 전작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제작비 걱정을 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동시에 “따뜻한 마음이 모여 영화가 만들
[영화人] <재심> 제작한 박성일, 윤기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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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없는 주성치 영화에 실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인어>(2016)는 주성치 영화의 정수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조금 더 대중적이고, 조금 더 규모가 커지고, 조금 더 친절해졌을 뿐이다. <몬스터 헌트>(2015)를 제치고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주성치에게 감독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에 이어 이번에도 기록적인 오프닝 성적을 거뒀다.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깊게 고민한다. 관객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흥행이다. 그게 기본이자 출발이고 끝이다. 흥행은 관객이 좋아하는 것과 비례해서 움직이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관객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이 이번에도 통했다고 생각한다.
-오프닝이 매우 인상적이다. 스펙터클한 화면이 아니라 유머에 집중한다. 초창기 B급 유머 감성의 집약을 보는 것 같다.
=관객을 웃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people] <미인어> 주성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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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은 언뜻 보기에 이제 막 첫 장편영화를 연출하는 데뷔 감독이 짊어져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아 보이는 영화다. 소재도 낯설고 심지어 제목도 낯설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 안에서 설명해야 할 것도, 보여줘야 할 것도 많다. 또 화려한 할리우드영화에 익숙한 관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특수효과도 가미되어야 한다. 김준성 감독은 이 모든 난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현장을 밀어붙였다. 인터뷰 도중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대중성이었다. 완성에 대한 책임감은 흥행에 대한 부담감으로 바뀌어 그의 어깨를 여전히 내리누르고 있을지 모른다. 벌써 차기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젊은 패기로 똘똘 뭉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 꾸는 꿈을 일컫는 ‘자각몽’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스릴러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자각몽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관련 영화나 TV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정도였다가 자각몽에는 딜
[people] <루시드 드림> 김준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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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더>는 <밀정>에 이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두 번째 배급작이자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지도, 배우 이병헌이 시나리오에 반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제작 하정우((주)퍼펙트스톰필름), 최근 극장가에 흔치 않은 장르인 드라마의 도전이라는 점 등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잘나가는 증권사 지점장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재훈(이병헌)의 시선을 통해 성공 위주의 경쟁구도 속에서 사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잃고 있는 현대인을 조명한다. 광고감독으로 활동하다 불현듯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해 영화 연출의 길에 접어든 이주영 감독 개인의 경험 역시 <싱글라이더>에 영향을 미쳤다. 반전을 활용한 독특한 플롯 전개 안에 울림인 동시에 각성이자 고백의 톤을 이병헌의 안정된 연기에 차분하게 실어나른다.
-제작, 배급, 캐스팅 등 이 영화를 표현하는 화려한 수식 중 광고계 출신 감독의 입봉작이라는 점에서
[people]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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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메이트>(감독 이현하)에서 오지호와 윤진서는 커피 친구다. 일면식도 없는 둘은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나 합석하게 된 사이다. 서로의 연락처를
모른 채 오로지 커피숍에서만 만나 대화를 나눈다. 혹여나 밖에서 마주치더라도 아는 체하지 않기로 한다. 그들만의 특별한 규칙 속에서 서로의 과거와 생각 그리고 감정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희수(오지호)와 인영(윤진서) 두 남녀의 대화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품인 만큼 오지호, 윤진서 두 배우의 호흡과 집중력이 관건이다. 웬만한 영화보다 많은 대사 양을 함께 감당해낸 까닭일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오랜만에 만난 오지호와 윤진서는 서로에게 익숙한 듯 무척 편안해 보였다. 윤진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많이 긴장했는데 오늘은 덜 떨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윤진서_ 잠을 못 이뤘을 만큼 생생했다. 인영처럼 결혼한 여자는 아니지만 뭔가 공감이 됐다. 과거와
[액터] 멜로영화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시기 - <커피 메이트> 오지호·윤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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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조근 말하고 미동 없이 움직인다. 고수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하던 중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뒤편에서 진행 중인 “설경구 선배의 인터뷰에 방해가 될까” 그랬다며 조심스레 말하고, 어느 순간엔 조용히 훌쩍 일어나 반대편에 앉아 왜 그런가 물었더니 “대화하는 데 옆머리가 얼굴을 가려서” 그랬노라고 나직하게 하하 웃는 그다. 정직하고 큰 눈, 반듯한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 성정이다. 선한 얼굴과 나직한 목소리로 세상에 없는 듯 우직하고 착한 역할을 맡아왔던 그는 이번엔 아들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열혈 아버지로 돌아왔다. 김준성 감독은 “보편적인 부성애를 다룬 이야기이면서도 장르 특성상 판타지적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고수는 그에 적격이었다”라고 말하고, 고수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여느 때보다 작품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판타지와 현실 양쪽에서 완연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고수와의 대화를 전한다.
-꿈을 소재로 한 본격적인 S
[커버스타] 아들을 찾는 남자 -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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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은 배우 설경구가 세 번째로 형사 캐릭터에 도전하는 영화다. ‘강철중’으로 3편의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마치 반장 전문 배우로 보이기도 한다. <감시자들>의 황 반장을 거쳐 그에게 도착한 세 번째 형사 방섭은 어떤 인물일까. 사건이 예사롭지 않다. 3년째 수사가 진행 중인 아이 납치사건의 피해자 부모가 꿈속으로 들어가 범인을 잡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해온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방섭은 고민하지 않고 일단 믿는다. 앞뒤 재지 않고 한발 쑥 들이밀고 보는 자세는 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와도 어울린다. 배우가 가진 고유의 매력 같다. 언제나 사무실이 아닌 현장이 어울릴 것 같은 반장님, 아니 배우 설경구에게 SF 스릴러 장르에 도전한 소회를 물었다.
-설경구와 SF 스릴러의 만남이 신선해 보인다.
=SF라고 생각하며 접근하지 않았다. 꿈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가 잘 읽혔고, 젊은 감독이 맡는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배우 캐
[커버스타] 잡아야 사는 남자 -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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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추적 SF 스릴러’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영화 <루시드 드림>은 참 바쁜 영화다. 열혈 기자 대호(고수)와 강력반장 방섭(설경구)은 대호의 아들 납치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3년째 범인을 쫓느라 바쁘다. ‘자각몽’이란 방법을 통해 용의자의 꿈속으로 들어가 진범을 찾아낼 방법을 알게 된 대호 덕분에 영화는 자각몽, 즉 ‘루시드 드림’이라 불리는 신종 기술의 개념을 소개하느라 바빠진다. 또 현실과 꿈을 오가며 펼쳐지는 기묘한 액션도 표현해야 하므로 특수효과 영역도 바쁘다. 어떤 영화가 안 그렇겠느냐마는 <루시드 드림>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유사 장르 팬들도 만족할 플롯과 CG를 구현해야 했고, 배우들은 낯선 시나리오를 들고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믿음 하나를 믿고 다른 사람의 꿈속까지 들어간 한 아버지의 처절한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커버스타] <루시드 드림> 설경구와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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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루스 네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그녀의 눈망울이다. 어떤 악의도 찾아볼 수 없는, 맑고 깊은 눈. 루스 네가의 눈매는 제프 니콜스의 신작 <러빙>의 드라마를 납득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일조한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1960년대의 미국 버지니아주, 백인 남자 리처드 러빙과 사랑에 빠진 밀드레드는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한밤중에 불현듯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와 부부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백인 경찰에 대한 공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 대한 애틋함,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종차별에 맞서겠다는 결연함. 이처럼 다양한 맥락의 감정들이 루스 네가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실존 인물인 밀드레드 러빙이 조용하고 차분한 여성이었던 까닭에 무척이나 절제되고 섬세한 결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던 루스 네가에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의 눈매는 강력한
[who are you] 다양한 감정을 담은 눈빛 - <러빙> 루스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