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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였더라면 선택이 더 빨랐을 거다.” 강동원이 말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작품에 대한 취향이 명확한 그에게도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 속에 오랫동안 갇혔던 소년이 홀로 어른이 되어 또래 소녀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이다보니, 아무래도 더 젊은 2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검사외전>의 촬영지였던 부산까지 내려가 강동원을 설득했다. 엄태화 감독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고, 소년과 어른이 경험하는 시간대를 폭 넓게 보여주어야 하며,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모호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떠올렸을 때, 강동원은 여전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택지다. <M>(2007)과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와 <검은 사제들>(2015) 등 강동원이
[커버스타] 정지된 시간 -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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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사라지고 소녀는 그를 기다린다. 엄태화 감독의 신작 <가려진 시간>이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숲속 어스름한 동굴에서의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 같았던 단짝 친구는 서로 다른 시간의 타래에 갇히게 된다. 불현듯 어른이 되어 나타난 소년을 소녀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비련의 소년 소녀를 연기하는 두 배우에 주목할 만하다. 올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배우 강동원과 지금 막, 배우로서의 시간을 시작한 신인배우 신은수의 현재를 들여다보자.
[커버스타] 영화의 시간 속으로 - <가려진 시간> 강동원과 신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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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얼굴 뒤로 결연한 저항의 의지가 꿈틀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에서 임모탄의 노예 중 한명인 덱 역으로 출연한 그녀는 5명의 여성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단지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와 백발의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때론 화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배역들이 있는데 <매드맥스> 속 임모탄의 여인들이 그렇다. 하지만 애비 리는 첫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해냈다. 슈퍼모델 출신의 각기 다른 개성의 여성들 사이에서 관객의 시선을 한번 더 사로잡은 건 이미 연기의 영역이라 할 만하다. 1987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난 애비 리는 어린 시절부터 앓아온 뇌수막염 탓에 곧잘 뼈가 부러지곤 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은 뒤 수줍음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모델 대회에서 상을 휩쓸기 시작한 지고작 4년 만에 2008년 뉴욕 패션 위크까지 진출하며 타고난 재능을 뽐낸다. 이후 밀라
[who are you] 시선을 사로잡는 힘 - <네온 데몬> 애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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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거 하나는 잘하는 무사태평 소녀, 만복(심은경)은 어디든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엔 영화만큼이나 통통 튀는 가사와 리듬의 음악도 함께다. <걷기왕>의 강민국 음악감독은 “가벼우면서도 계속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을 주된 컨셉으로 잡았다. “자신을 찾아간다는 주제를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데 음악이 흥을 돋우었으면 했다.” 홍대 인디밴드 출신인 강민국 음악감독은 인디음악의 정서를 기반으로 “가볍고 친숙한 기타 선율을 주로 사용했고, 멜로디컬하고 리듬감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백승화 감독이 작사하고 배우 심은경이 부르는 엔딩송은 단순하고 흥겨운 돌림노래다. “기타에 하모니카 하나로, 악기 구성이 심플하다. 후렴구 구간을 10분은 더 돌릴 수도 있다. (웃음)”
<걷기왕>에서 음악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목은 만복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힘차게 들려오는 <타이타닉>(1997) 주제곡의 리코더 버전 연주다. 엉성하
[영화人] <걷기왕> 강민국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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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에선 한번을 불러주는 일이 없던데 <씨네21>은 책이 나올 때마다 인터뷰하자고 불러주니 고맙다. 은근히 나를 변두리 영화인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웃음)” 천명관 작가는 어쩐지 자조적으로 들리는 첫인사를 건네왔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2004)로 단박에 문단의 스타가 되었으나 그는 일찍이 영화판을 떠돌다 온 반영화인, 반소설가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북경반점>(1999), <이웃집 남자>(2009) 등의 각본과 <고령화가족>(2013)의 원작 소설을 쓴 바 있다. 얼마 전 출간된 천명관 작가의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지난 3월7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한 웹소설을 책으로 묶은 작품이다. 20억원의 다이아몬드와 35억원 가치의 종마를 두고 인천 연안파의 양 사장, 전남 영암 조폭 남 회장, 부산을 주름잡고 있는 손 회
[씨네 인터뷰] 신작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출간한 천명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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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물결을 본 적 있는가. 그것은 무상한 시간의 흐름이다. 김진도 감독은 “무한한 시간성 앞에 서 있는 나약한 인간, 그 실존의 문제”를 데뷔작 <흔들리는 물결>에 담으려 했다. 영화 곳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고요한 시골 병원 방사선과에서 일하는 연우(심희섭)는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뒤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한다. 간호사 원희(고원희)는 그런 연우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넨다. 실은 그녀는 홀로 암과 싸우며 매일같이 죽음의 두려움과 사투를 벌인다. 한없이 나약하고 깨지기 쉬운 사람들은 서로의 고통을 예민하게도 감지한다. 그런 이들이 온기를 나누며 각자의 마음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괜찮은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잔잔한 강물이 흘러가듯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이 질문의 대답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소개된 후 1년여 만에 개봉(10월27일)하게 됐다.
=설
[people] <흔들리는 물결> 김진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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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과 ‘노오력’을 강권하는 시대 속에서 ‘힘든데 왜 참고 견디기만 해야 하냐’고 묻는 이가 여기 있다. 모두가 바삐 뛰고 버스와 차를 타는데 걷는 이 소녀, 선천적 멀미증후군이지만 걷는 것 하나는 자신 있는 무사태평한 만복(심은경)의 이야기를 그려낸 <걷기왕>은 청년세대에게 뛰지 않고 걸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세대론을 직설적이면서도 경쾌하고 발랄하게 풀어낸 백승화 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12)을 연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동한 그는 늘 “되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다. 애니메이션도, 밴드도, 다큐멘터리도,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걷기왕>도 “재미있겠다 싶어 하게 됐다”는 그에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보단 즐거움이 우선”이란다. <걷기왕&
[people] <걷기왕> 백승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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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중딩’ 심은경은 <걷기왕>의 ‘고딩’ 만복(심은경)이를 꼭 빼닮았다. 편도 두 시간의 통학 거리를 걸어다니는 만복이처럼 ‘중딩’ 심은경은 “쉬는 시간에도 꼼짝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가 “체육 시간만 되면 날아다녔”다고 한다(<씨네21> 633호 심은경 인터뷰). 많은 드라마에서 ‘누구 누구의 어린 시절’을 주로 맡다가 영화 데뷔작 <헨젤과 그레텔>(2007)에서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아이를 연기해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불신지옥>(2009), <써니>(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수상한 그녀>(2014), <널 기다리며>(2016) 등의 작품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부지런히 걸어온 그녀다. 심은경이 뛰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는 만복이를 만난 건 운명인가보다.
[메모리] 꾸준한 걸음 -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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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특급’ 게스트는 바로 이들이었다. 이창동, 허우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10월10일 오후 5시 부산국제영화제 아주담담 라운지에 함께 등장했다. 공식 석상에 자주 나오지 않거니와 함께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이들 세 감독이 영화의 전당에 모인 이유는 지난 2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었던 각종 논란으로 말미암아 국경을 넘어선 영화인들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대만•일본에서 젊은 영화인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의 위상을 드높이는 이 거장 감독들이야말로 ‘연대’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주인공들이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사회로 진행된 세 감독의 특별대담을 전한다.
-세분의 근황을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창동_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게 잘 진행되면 아마 11월쯤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 지금 말하기는 좀 어렵고, 굳이 말하자면 미스터리한 이야기
[커버스타] 이창동, 허우샤오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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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앤 로우>는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며 NTV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형 프로젝트다. 5개의 불량 조직이 영역싸움을 하고 있는 우범지대 ‘스워드’를 배경으로 한 액션물. 일본에선 지난 7월에 1편 <하이 앤 로우 더 무비>가 개봉했고, 10월8일엔 2편 <하이 앤 로우 더 레드 레인>이 개봉했다(2017년 상반기 국내 개봉예정). 영화 속 절대 강자인 야마미야 형제는 에그자일의 보컬 다카히로와 산다이메 제이 솔 브러더스의 보컬 도사카 히로오미가 연기했다. 가수로서 이미 톱스타 자리에 오른 이들은 최근 연기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카히로는 2014년 드라마 <전력 외 수사관>을 시작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도사카 히로오미는 <핫로드>(2014)에 출연해 일본 아카데미 신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영화 속 카리스마를 그대로 장착한 채 나타난 형 마사키 역의 다카히로, 동생 히로시 역의 도사
[who are you] 척하면 척 - <하이 앤 로우> 프로젝트의 다카히로, 도사카 히로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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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BIAF, 옛 이름은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프로그래밍을 책임져온 김성일 프로그래머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소문난 마당발이다. 미국 뉴욕주립대학 버팔로에서 미디어 스터디, 영화해석학을 전공하고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연출전공 수업에도 출강하고 있다. 전공대로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공부하던 그는 한 영화제에서 일하며 <바시르와 왈츠를>(2008)의 아리 폴만 감독을 만나게 됐다. “최근 업계의 대세가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융합에 관해 아리 폴만과 대화를 나누며” 애니메이션으로 커리어를 선회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일을 하며 중요하다고 느낀 건 “네트워크”라고. 김성일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치고는 출장을 많이 다니지 않는다. 대신 여름이나 겨울쯤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 감독들의 집이나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해외 세일즈사
[영화人]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김성일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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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톱에 가까운 주연으로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십대 초반의 배우는 드물다. <널 기다리며> <수상한 그녀> <광해, 왕이 된 남자> <써니> <불신지옥>…. 13년 동안 심은경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 그녀가 쉼표 하나를 찍었다. 그녀가 출연한 첫 독립영화 <걷기왕>은 만사태평에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걷기’ 하나는 잘하는 소녀 만복의 이야기다. 청년들에게 꿈과 열정, ‘노오력’과 극복의 서사를 강조하는 현 세태 속에서도 만복은 뛰지 않고 걷는다. 대중의 기대에 따른 부담감과 책임감을 등에 업고, 보다 나은 연기를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달려온 심은경도 만복을 만나 잠시 멈춰 섰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복의 속도로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그녀다. 13년차, 그럼에도 아직 23살인 그녀는 자기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오래도록 걷는 법을 모색 중이다. 천
[씨네 인터뷰] "뛰지 않고 걸어도 괜찮아 만복이처럼" - <걷기왕>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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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일까. 그들의 음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데뷔 이후부터 지금을 포함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고 생기 넘치는 공연들이 있다. 비틀스는 1962년 6월부터 1966년 8월, 투어를 종료할 때까지 전세계 15개국 90개 도시에서 총 815회의 공연을 했다.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이하 <비틀스>)는 그 공연의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당시 공연 영상과 자료 화면 인터뷰를 재구성하는 이 프로젝트의 총지휘는 론 하워드 감독이 맡았다. 그가 비틀스를 만나고 공연의 열기를 되살리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물었다.
-비틀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비틀스의 회사로부터 비틀스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제의가 왔다. 올리비아 해리슨과 오노 요코도 동의했다. 너무나 기뻤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비틀스에 대해 이미 훌륭한 자료들이 많이 나와 있었
[people]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 론 하워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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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제1회 서울이카루스드론영화제가 10월21부터 27일까지 여의도 물빛무대 및 CGV여의도에서 열린다. 사단법인 플러스나눔 김대은 이사장은 영화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 1회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시종일관 미래 기술에 대한 선도적인 역할을 강조한 김대은 조직위원장에게 영화제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드론영화제라는 컨셉이 이색적이다.
=2014년 즈음에 움직임이 일기 시작해 다른나라에서도 영화제와 유사한 행사들이 꾸려지고 있는 건 지난해부터다. 우리도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복지부 산하의 봉사단체인 사단법인 플러스나눔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영화제를 조직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영화와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2000년 무렵 이지 아이넷이라는 인터넷 영화사를 운영했고, 어릴 적부터 영화를 비롯한 문화사업 전반에 관심이 컸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이다보니
[people] 서울이카루스드론국제영화제 김대은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