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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고시원 수도요금이 무려 120만원 나왔다. 한번 물면 끝장을 보고 마는 엄마 양미경(박지영)이 가만있을 리 없다. <범죄의 여왕>의 미경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상경하나 점점 더 큰 비밀과 마주한다. 스릴러와 홍콩 누아르를 연상케 하다가도 일순간 코믹물로 변모하며 장르 규정을 불허하려는 투다. ‘억척 엄마’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그리는 대신 장르 안에서 ‘여성’ 양미경을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효재 촬영감독도 바로 이 점에 매료돼 <범죄의 여왕>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지금의 아내이자 당시 여자친구였던 김보희 프로듀서가 이 작품을 준비하는 걸 지켜봤다. 오지랖 넓은 엄마, 녹록지 않은 청춘들의 이야기는 꽤 보편적인데 그걸 정말 독특하게 풀더라. ‘프로듀서님께’ 부탁이란 걸 했다. ‘이요섭 감독님과 딱 한번만 인터뷰할 수 있게 약속을 잡아달라’고. (웃음) 운이 좋았다.”
4억원 규모의 저예산영화인 만큼 꼼꼼한 콘티 작업은 필수였다. 신별로 코
[영화人] 연출자의 의도와 서사의 흐름을 좇는 게 우선 - <범죄의 여왕> 이효재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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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처절하게 파멸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 모든 게 그를 개처럼 부리던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 때문이었을까. 호형호제하던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는 그를 버리고 박성배의 수하로 갔고, 자신의 약점을 쥔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은 박성배를 잡겠다고 한도경의 숨통을 죄어온다. 폭력과 부패가 판을 치는 132분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아수라>라는 버스에서 관객들이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라고 말하는 김성수 감독은 이 지독한 소용돌이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통증, 혼란을 관객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지독한 ‘악취미’에 관객이 갑갑함을 호소한다고 해도 그는 애초 타협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끝까지 밀어붙인 그 생생한 풍경은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생경함이자 <아수라>가 김성수 감독의 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또 다른 성취임을 알려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안남시의 전경을 촬영
[씨네 인터뷰] “한국형 범죄 누아르와는 다른 영화를 찍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 <아수라> 김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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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 이소현 감독은 그길로 외할머니가 있는 화순에 내려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의 먼 집>은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라 할머니에게 강한 애착을 가진 이소현 감독이 할머니의 지금을 보듬고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를 할머니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고자 만든 다큐멘터리다. 할머니에게 오랜 시간 보살핌을 받아온 손녀의 고마움과 애정이 짙게 묻어난 작품이다.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젝트 마켓에서 KB국민카드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요즘 어떠신가.
=벌써 아흔여섯이 되셨다.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지금은 병원에 계신다. 이젠 요양사들이 항상 곁에 있어주어서 한달에 한번 정도 2, 3일씩 할머니 곁에 머물다 온다. 다른 어른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단번에 알아보시더라.
-할머니는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시던가.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다. 할머니께 서울에서 상영
[people] 손녀가 카메라에 담은 할머니의 삶 - <할머니의 먼 집> 이소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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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인생영화라고 하시면, 제가 해야죠.”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정우성은 덥석 김성수 감독의 뜻을 지지하고 나섰다. 감독과 배우로 둘은 그렇게 늘, 서로의 차기작을 점검하는 사이다.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로 이어져온 김성수-정우성 협업의 아름다운 연장선. <아수라>에서 그가 연기하는 부패한 형사 한도경은 악의 충돌과 대립 속, 갑갑하게 죄어오는 곤경에 처해 복잡하게 일그러지기를 반복한다. 그 처연한 모습에서 마냥 순수했던 <비트>의 청년 민을, 기어코 찾아내보고 싶어진다. <비트>는 정우성이라는 존재의 탄생기였다. 첫사랑 로미(고소영), 절친 태수(유오성)를 지키려던 20년 전의 민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지금의 한도경처럼 좌절의 순간을 맞게 되지 않았을까. 한층 성숙하고 노련해진 정우성의 연기를 보며, 한없이 맑고 투명했던 <비트>에서의 풋
[메모리] 한없이 투명했던 - <비트>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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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유명인에게 ‘~녀’랍시고 라벨을 붙여대는 미디어의 안이한 습성은 일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배우 구로키 하루의 경우, 한때 현지 대중지들은 ‘갓포기(割烹着)녀’라는 수식어와 함께 헤드라인을 뽑았다. 갓포기란 과거 기모노가 평상복이던 시대, 일본 여성들이 밥을 짓거나 청소할 때 덧입던 구식 앞치마를 가리킨다. 즉 ‘앞치마녀’다.
한국이었다면 아마도 그녀에겐 ‘베를린의 여왕’ 내지 ‘시상식의 여왕’이라는 라벨이 붙었을 듯하다. 구로키 하루가 <도쿄 오아시스>로 영화에 데뷔한 때는 대학 4학년이었던 2011년. 그로부터 불과 2년 만에 <행복한 사전>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을 비롯해 2013년에만 총 7개의 신인상을 석권했다. 기세를 몰아 이듬해에는 <작은 집>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에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여배우상(은곰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설마 하는 기대감조차 없이 시상식 당일 낮에도 베를린 관광만 즐겼다는
[액터/액트리스] 독을 품은 성실함 – 구로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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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출(송강호)의 딜레마를 좇는 <밀정>은 그의 얼굴에 음영을 짙게 드리우고, 명암을 채워넣으면서 마음의 궤적을 그려내는 영화다. 송강호의 얼굴을 극적으로 연출한 빛과 그림자들은 조규영 조명감독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인물의 얼굴에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주기 위해 톱 라이팅을 많이 줬다. 옆에서 키 라이팅을 할 땐, 딱 얼굴의 반만 잡아서 라이팅을 했다. 아이라이트도 신경 쓴 부분이다. 얼굴엔 그림자를 드리워도 눈에는 빛이 있어야 했다.” 송강호의 얼굴을 화폭 삼아, 어둠과 밝음을 한데 공존시킨 그는 이번 작업이 무척이나 보람찼다고 회상한다. “송강호 선배의 이목구비가 큼직한 편은 아니라, 조명을 하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라이팅을 하니 정말 잘 받으시더라. 표정 연기가 뛰어나 오히려 조명이 연기에 묻히는 것 같았달까. (웃음)” 조규영 조명감독이 조명을 만들어냈다면, 김지용 촬영감독은 조명을 구상해냈다. 촬영감독이 촬영, 조명, 그립을 관장하며 전반적인 영상 구도를
[영화人] 영화 구석구석 숨결 불어넣는 빛과 그림자 - <밀정> 조규영 조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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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재현을 만났다. 앞서 단편다큐멘터리 <김성수 할아버지의 어느 특별한 날>(2013)을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꿈을 밝혔던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나홀로 휴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올해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공개되었다. 영화는 중년 남성 강재(박혁권)가 십년 전 불륜 상대였던 시연(윤주)을 잊지 못하고 지켜보다가 결국 스토커가 돼버린 씁쓸한 이야기다. 조재현 감독은 강재가 ‘사랑’이라 믿고 있는 그 십년간의 시간을 교차편집과 엿보기식 촬영을 활용해 구성해낸다. 김기덕, 전수일, 전규환 감독같이 자기만의 스타일과 영화적 태도로 일관된 작업을 해오는 감독들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조재현. 연출가로서 그는, 자신이 배우로 표현 해냈던 영화 속 주제, 태도, 형식을 어떤 식으로 체화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대학로의 수현재씨어터를 찾았다.
-‘감독 조재현’이라는 말이 의외로 낯설
[씨네 인터뷰] “내가 이 나이에 느끼는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 <나홀로 휴가> 감독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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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묵은지 고등어조림, 어묵 김치찌개, 어향 가지볶음 등 못하는 요리가 없는 ‘차줌마’로 불리지만 데뷔 시절 차승원은 앞치마와 거리가 먼 ‘차도남’이었다. <세기말>(감독 송능한, 1999)에서 그가 연기했던 대학 강사 문상우는 세기말의 불안감이 반영된 캐릭터였다. 모순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조바심내며 풀리지 않는 현실을 핑계삼아 불륜의 섹스에 탐닉했던 그다. 짜증으로 가득한 차승원의 얼굴에는 차줌마의 포근한 인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두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해나간 김정호(차승원)의 깊게 팬 주름을 보니 세월 참 많이 흘렀단 생각이 든다.
[메모리] 세기말적 차도남의 초상 –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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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같은 건 벗어던지고 앞뒤 안 가리고 뛰어놀면 되겠다.” <아수라>에 합류했을 때 주지훈이 했던 생각이다. 드라마 <궁>으로 데뷔한 게 2006년. 올해로 연기 경력 10년을 꽉 채운 30대 중반의 주지훈이건만 <아수라> 현장에선 막내였다. 하지만 다를 건 없었다. “존경하는” 황정민과 “우상” 정우성과 ‘배우 대 배우’로 만나 ‘대결’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형들에게 배울 거 잘 배우자”는 마음이 컸다.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배려가 있었기에 주지훈은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다. “김성수 감독님이 그러셨다. ‘현장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졸리면 자고,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하고. 그렇게 해서 너의 최고의 연기 컨디션을 만들어라.’ 감독님뿐 아니라 모두가 오픈 마인드로 대해주었다.”
“수컷 냄새 물씬 나는 악인들의 지옥도” <아수라>에서 주지훈이 받아든 캐릭터는 도경(정우성)을 친형처럼 따르는 후배 형사
[커버스타] 지금 이 순간 - 주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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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 같기도 하고, 순한 것 같기도 하고… 동물적인 눈이다. 개의 눈 같달까.” <아수라> 김성수 감독이 배우 정만식을 표현한 말이다. “스파르타 검투사 같은 얼굴이라고도 하시더라. 감독님 취향의 남자다운 얼굴이라고. (웃음)” ‘개의 눈’에 ‘검투사의 얼굴’을 지닌 정만식은 김차인(곽도원) 검사의 사냥개, 검찰수사관 도창학으로 분했다. 욕망이 들끓는 <아수라>에서 검사, 시장(황정민)이 욕망의 두축이 된다면, 도창학은 검사 김차인에게 충성하며 그의 지시를 받아 한도경(정우성)을 이용하는 행동대장에 가깝다. 머리를 쓰고 지시를 내리는 이들에 비해, 손발이 먼저 나가고 거친 욕설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도창학은 동물적인 위압감을 주는 인물이다. “리얼한 액션을 위해 합도 없이 ‘개싸움’을 했더니, 어릴 때 하던 가락이 나오더라. 동네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형이었지. 오해는 마시라. 지금은 온순하고 와이프 말 잘 듣는다. (웃음)”
정만식에게 <아수라&g
[커버스타] 뜨거운 사나이 - 정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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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경찰, 정부쪽 조사관. 한국영화에서 이 직업인은 정의의 편이기보다는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진 비열한인 경우가 많다. 곽도원은 유독 그런 무람없는 전문인을 척척 소화해왔다. 조직 폭력배와 비리 공무원을 소탕하는 검사인데 왠지 더 나쁜 놈처럼 보이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2011)의 조범석 검사, 뒤틀린 애국 신념으로 무장한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의 고문 경찰 차동영, 용의자를 잡기 위해 그 애인을 불러와 돼지 발정제를 발라서라도 제가 알고 싶은 걸 취하겠다고 달려드는 <무뢰한>(감독 오승욱, 2014)의 형사 문기범. 이 나쁜놈들에 이어 <아수라>의 검사 김차인의 이름도 새겨넣어야겠다.
“아, 또 검사란 말인가.” 곽도원도 이 걱정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배우가 비슷한 역할로 계속 나오면 관객은 피로해진다.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곽도원은 “꼭 함께하자!”며 김성수
[커버스타] 디테일의 왕 –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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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경은 어떤 사람일까. <아수라>를 작업하며 정우성이 가장 자주 던졌던 질문이다. 김성수 감독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한도경은 수많은 물음표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악덕 시장의 뒤를 봐주는 비리 형사.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질러야 하는 나쁜 남자. 눈 밝은 검사에게 부정을 들켜 이제는 시장을 따라야 할지 검사를 따라야 할지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 위기의 사내. 정우성의 표현에 따르면 한도경은 “주인공의 옆의 옆쯤 서 있을 법”한, 전형적인 주인공의 서사와 법칙을 벗어나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때때로 선한 사람을 배신하고 그 무엇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캐릭터로부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배우로서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가까운 영화적 동지인 김성수 감독에게조차 캐릭터에 대한 답을 구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예요, 하고 말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
[커버스타] 왜 정우성인가 –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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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치인. 누군가가 앞을 막으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아랫사람(정우성)을 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 <아수라>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 안남 시장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조직 폭력배인지 헷갈릴 만큼 질 나쁜 정치인이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개발 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이는 모습은 현실의 어떤 정치인이, 막말을 밥 먹듯이 하는 모습은 또 다른 어떤 정치인이 연상되는데, 황정민은 박성배가 특정인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란다. “매일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좋은 표본이자 교과서였다. 덕분에 접근하기가 편했다.”
되돌아보면 황정민이 맡은 악역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마흔편 가까이 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신세계>의 정청이나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을 제외하면 그는 대체로 불의를 보면 못 참고(<베테랑> <검사외전> <모비딕>), 가족과 동료를 위해
[커버스타] 안경 너머의 비밀 –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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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다르긴 달라.” 주지훈의 촬영을 지켜보던 곽도원이 말한다. “도대체 저런 포즈는 어떻게 잡는 거야?” 그러자 주지훈이 “이런 것도 있어요”라며 한쪽 발로 큰 원을 돌려 보인다. 9월28일 개봉을 앞둔 <아수라>의 표지 촬영현장, 농담을 하면 재치로 임기응변 하는 다섯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며 영화에서 그들이 주고받았을 합도 덩달아 짐작해본다. 현장에서의 화기애애함과 달리 김성수감독의 신작 <아수라>는 어둠의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악덕 시장, 교활한 검사와 그의 포악한 부하, 비리 형사와 꿍꿍이를 알 수 없는 후배 형사. 진창 같은 삶의 미로 속에서 마지막에 살아남아 웃는 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들의 초상을 충무로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연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누가 누가 더 매력적으로 나쁠까. 김성수 버전의 ‘고담’에서 살아돌아온 다섯 남자배우들의 후일담을 전한다.
곽도원이 김성수 감독에게
“10여년 전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
[커버스타] 지옥으로부터 온 남자들 - <아수라>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정만식 주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