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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를 챙겨 보는 관객에게 손민지는 낯익은 이름이다. 지난 2010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단편 <910712 희정>(감독 유원상)에서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양손 지문 날인을 거부한 주인공 소녀를 연기한 그 배우다. 이후 <피끓는 청춘> <이쁜 것들이 되어라> <기화> 등 여러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악녀>에서 손민지가 연기한 민주는 숙희(김옥빈)가 국정원 조직에서 만난 친구다. 영화의 후반부, 요정에서 그가 김옥빈과 함께 험상궂은 남성 두명과 맞붙는 액션 신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날렵하고 박력이 넘친다.
-단편 <910712 희정> 때 모습과 많이 달라 깜짝 놀랐다.
=(기자가 영화 제목의 숫자를 제대로 못 외우자) 내 생일이라 나만 기억을 잘한다. (웃음) 그때가 20살이었다. 단편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비슷한 것 같아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악녀>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who are you] 액션 촬영은 짜릿했다 - <악녀> 배우 손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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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왕피천계곡, 동해 무릉계곡, 양양 서림계곡, 양구 도솔산, 고창 선운사. 어느 산악동호회의 추천 종주 코스가 아니다. 영화 <대립군>의 로케이션 촬영지다. 말이 계곡이지, 이곳들은 산 깊은 곳에 있거나 민간인 통제구역(도솔산)이라 일반인의 발길이 뜸하다. 총 75회차 중에서 무려 60회차가 넘는 촬영을 이런 곳에서 했다. <대립군> 제작진은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했던 광해(여진구)와 대립군(이정재)의 처지와 다름없었다(75회차 중 60회차가 낮 장면이고, 실내 세트 촬영은 단 한 장면도 없었다.-편집자).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에서 산을 좀 탔던 정창훈 제작실장에게 또 다른 ‘산악 사극’(?) <대립군>은 진행 난이도가 훨씬 더 높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산 하나만 헌팅하면 될 거”라고 만만하게 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풀 하나, 나무 하나도 지역마다 다르다”는 정윤철 감독의 ‘디테일’ 때문
[영화人] <대립군> 정창훈 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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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이야기를 기획하고 제작비를 충당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했던 제작진의 노고가 일궈낸 결과물이다. 심지어 영화 제목조차 어디 가서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극장에 내걸린 지금,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의 신기록을 세울 기세로 흥행몰이 중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백두대간에서 이광모 감독과 함께 예술영화 전용관 극장 운영 및 영화 수입과 배급에 힘써왔던 최낙용 부사장은 이 영화를 위해 사비를 털어 제작비를 충당해가며 제작사를 설립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이창재 감독을 도왔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어렵고 고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게 했던 것일까. 혹은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숨은 어려움은 없었던 것일까. 이번 영화의 고된 제작기와 더불어 극장 운영과 수입·배급을 두루 경험한 그에게서 예술영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에
[씨네 인터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라는 의미 자체가 컸다" - <노무현입니다> 최낙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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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조은성 감독은 우연히 대로변에서 꼬리가 잘려 너덜너덜해진 고양이를 만났다. 이 길고양이에게 조은성 감독은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던 순간, 처음으로 울음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60만번의 트라이> 등 그동안 스포츠 다큐멘터리영화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왔던 조은성 감독은 왜 길고양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나아가 길고양이를 처음으로 입양하게 되었을까. 거리의 동물들에게 너무도 혹독한 한국의 현실과 해외의 사례를 대비하며,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다큐멘터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출한 조은성 감독의 사연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2013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지하에서 벌어진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people]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조은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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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5월 24일부터 10월 9일까지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이름의 전시가 진행된다.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이 불확정성의 시대를 포착하고 읽어낼 것인가가 참여 작가들의 공통된 주제다. 그중 싱가포르 출신의 호추니엔 감독의 작업에 주목해봤다. 그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 단독 작가로 선발된 현대미술작가이며 <여기 어딘가에>(2009), <미지의 구름>(2011) 등을 만든 영화감독이다. 이번 전시에는 세편의 영상 작품이 소개된다. 신작 <동남아시아 비평 사전 볼륨2: G for Ghost(Writer)>(2017, 이하 <비평 사전>)는 26개 알파벳 각각에서 뽑아낸 26개의 키워드가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5천여개가 넘는 영상과 실시간으로 무작위 편집되면서 ‘동남아시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잠정적 답변을 전한다. 삼중 스파이로 알려진 라이 텍에 관한 이야기인 <The Nameless>(
[peopl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불확정성의 원리> 참여하는 호추니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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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의 작품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든 평범하지가 않다. <브레인>(2011), <미스터 백>(2014) 등 TV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광기 어린 눈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에너지를 발산해 시청자의 혼을 쏙 빼놓곤 했다. 야심적인 사극 도전이었던 <순수의 시대>(2014)에서는 체지방률을 2%대까지 줄이고 데뷔 이래 가장 수위 높은 베드신을 연기했다. 주로 신들리거나 혹은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대가 생길 즈음, 신하균은 힘을 쭉 빼고 <올레>(2016)에서 중년 남성의 지질한 면을 코믹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출연한 작품이 흥행이나 비평 면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할 때에도 신하균의 행보만큼은 결코 뻔하지 않았다. 그러니 신하균이 여성 원톱 액션영화 <악녀>를 선택한 것이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닐 것이다.
-주도하기보다 보조하는 역할이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악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커버스타] 악당의 품격 - <악녀>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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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보셨어요?” 김옥빈이 묻는다. 올 6월 극장가에서 <악녀>와 맞붙을 경쟁작이 모두 액션 블록버스터에 주인공은 여자라는 말도 덧붙이며. “<원더우먼>의 갤 가돗, <미이라>의 소피아 부텔라와 액션으로 경쟁하게 생겼어요. 심지어 갤 가돗은 군필자래. 어떻게 이기죠? (웃음)”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액션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김옥빈에게 이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선의의 경쟁에 불과하다. 특유의 생기발랄함에 성숙함을 더해 돌아온, 더욱 깊어진 김옥빈의 한순간을 공유한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원톱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다.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겠다.
=시나리오를 보고 숙희라는 인물이 너무 신기했다. 능력은 전사인데 마음은 소녀인 거다.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마음은 이렇게 여리고 착할 수가 있을까? 처음에는 숙희의 이 상반된 특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내
[커버스타] 전사와 소녀 사이 - <악녀> 김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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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다리는 좀 괜찮아?” 스튜디오에서 만나자마자 김옥빈이 신하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악녀>에서 비련의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이 작품이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된 올해의 칸국제영화제에서 끝내 만나지 못했다. 차기작 <바람 바람 바람> 촬영 도중 신하균이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쥐>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함께 걸었던 두 사람이기에, <박쥐>팀의 반가운 재결합(박찬욱 감독은 올해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이 성사되지 못해 못내 아쉽다며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영락없이 사이좋은 선후배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이들은 종종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는 역할로 만났다. <박쥐>의 무기력한 남편과 자유를 갈망하는 아내, 그리고 <고지전>의 남한군 중위와 북한군 저격수. 신하균과 김옥빈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악녀>에서 그들이 분한 인물간의 드라마는 더
[커버스타] 그 여자, 그 남자의 세 번째 드라마 - <악녀> 김옥빈·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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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체육 선생님을 뜨겁게 짝사랑했던 육상부 소녀. <용순>은 이런 줄거리를 가진 청춘영화에 기대할 법한 거의 모든 요소를 흥미롭게 배반한다. 무구한 얼굴 대신 뾰로통하고 불퉁한 표정으로 첫사랑을 경험하고 때로는 심한 언어폭력도 서슴지 않는 용순은 스크린에서 좀처럼 본 적 없는 아이지만 잊고 있던 사춘기 시절의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마약 중독으로 스스로 삶을 무너뜨리는 <차이나타운>의 쏭, 이별을 선고한 노을(최성원)을 협박하며 울리던 <응답하라 1988>의 문제아 학생 수경을 지나 이 심상찮은 소녀를 연기한 배우 이수경을 만났다.
-선배 배우가 많았던 <차이나타운>과 달리 타이틀롤을 맡은 <용순>을 촬영할 땐 마음가짐이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그땐 큰 상업영화가 처음이라 너무 얼떨떨해서 자신감이 없었다. 눈치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눈치를 많이 봤다. <호구의 사랑>을 찍을 때부터 좀 달라졌다. <
[who are you] 단단히 채운 자신감으로 - <용순>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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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에서 닷새로, 19편에서 50편으로, 가을에서 봄으로. 올해로 5회를 맞은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여러 면에서 변화의 시간을 거쳤다. <종로의 기적>과 <공동정범>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이 프로그래머로 합류하면서 ‘변화’의 틀은 완성됐다. “여러 영화제에 출품 중인 감독의 입장으로 내가 감히 상영작들을 선정하는 일을 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영감을 얻을 수 있길 기대”하는 “감독의 욕심”으로 신입 프로그래머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게 됐다. 사실 그에게 영화제 일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홍보팀원, 인터넷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초기 부산국제영화제의 기틀을 다진 경험이 있다. “그땐 좌충우돌, 오락가락”하며 일했다고 하지만 20여년 만의 영화제 복귀인 셈이다.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프로그램은 이혁상 프로그래머의 ‘존재감’을 실감케 한다. 이 프로그래머가 택한 올해 영화제의 테마는 ‘
[영화人]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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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이다. 정윤철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명박근혜’ 시절 단 한편의 영화도 찍지 못했다. 그동안 국민들도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창작의 에너지가 많이 고갈됐구나 싶었다.” 그런 그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 이후 9년 만의 차기작으로 <대립군>을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라를 떠맡게 된 젊은 왕 광해(여진구)와 다른 사람의 부역을 대신해 전쟁의 한복판으로 나선 대립군(이정재)의 여정을 조명한다.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던 시대, 스스로의 인생을 구하고자 하는 개인의 성장담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그동안의 한국 사회에 대한 정윤철 감독의 단상과도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개인 SNS 계정에 글을 하나 올렸다고.
=그동안 SNS에 영화 광고는 자제해왔는데, <대립군> 개봉까지 1주일
[씨네 인터뷰]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 <대립군> 정윤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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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도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꿈의 제인> 개봉을 앞두고 조현훈 감독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꿈의 제인>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CGV아트하우스상, 구교환과 이민지 모두 올해의 배우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관객상 수상)의 화제작이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이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소녀 소현(이민지)과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의 짧고 강렬한 만남을 통해 불행 속 한줌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와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영화제 관객이 아닌 대중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조현훈 감독은 말한다. <꿈의 제인>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런 방식의 위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는 조현훈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불행은 쭈욱 이어지는 데 반해 행복은 드문드문 있다는 대사가 유독
[people]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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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동료 형사를 질투하는 라이벌 혹은 2인자. 배우 장인섭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서 연기하는 형사 민철은 모두가 비현실적인 욕망에 좇겨 서서히 정신을 잃어갈 때 혼자서만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질투심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더더욱 민철의 존재감이 눈에 밟혔다. 데뷔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부터 줄곧 막내 형사로 투입되곤 했던 그가 <불한당>에 이르러 기능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사람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해석이 들어간, 사람다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그를 서둘러 만나봤다.
-시나리오에 비해서 ‘민철’이란 인물의 분량이 늘어났다.
=미팅은 제일 먼저 했는데 캐스팅은 제일 마지막에 됐다. 포기하고 있던 차에 맡게 된 역할이었다. (웃음) 사실 어떤 영화에서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장면을 연결해주는 역할 정도는 있는데 왠지 이번에는 더 잘해보고 싶었다.
[who are you] 사람다운 사람을 연기하다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배우 장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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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야 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의 촬영을 맡은 조형래 촬영감독이 촬영현장에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기존 영화들과 어떻게 하면 달라 보일 수 있느냐였다. 소재와 스타일 면에서 홍콩과 일본 등의 누아르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불한당>이 오마주나 계승이 아니라 차이를 지향점으로 두었다는 점이 신선하고 그래서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이미 차고 넘치는 한국형 범죄영화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갈 법도 하나, 그보다는 <불한당>이 스타일을 강조하기보다 “두 주인공 현수(임시완)와 재호(설경구)의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변성현 감독은 이런 영화의 촬영을 맡길 적임자를 찾기 시작했고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의 감각적인 촬영장면들을 보자마자 조형래 감독을 수소문했다. “다르게 찍고 싶다. 자신 있다”는 변성현 감독의 말을 믿고 작업을 시작한 조형래 촬영감독은 “구할 수 있는 누아르영화는
[영화人]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조형래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