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그의 음악은 길고 긴 투쟁의 현장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광우병 촛불 시위(2008년),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2009년) 무대에 올랐고 제작 난항을 겪던 영화 <26년>(2012)에 투자자로 참여해 힘을 더했으며 세월호 참사 추모곡 <가만히 있으라>(2015)를 내놓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2015)를 직접 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난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들의 힘겨운 겨울나기에 든든한 힘을 보탰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싱글 앨범 <돈의 신>을 발표해 음원을 무료로 배포했다. <돈의 신>은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한 곡이다. 최근 들어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이승환은 “주진우 기자의 취재와 그가 출연한 영화 <저수지 게임>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오게 됐다
<돈의 신> 가수 이승환 - 적어도 정의롭게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
최근의 이제훈은 그와 함께한 배우들이 관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장을 보좌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까지 충무로에서 드물게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그들의 눈부신 순간을 옆에서 응원하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그는 명진구청 직원들에게 문제적 인물이라 불리던 옥분(나문희)에게 원리 원칙을 내세우며 꼼짝 못하게 하는 9급 공무원 박민재를 연기한다. <파수꾼>(2010)으로 영화인들과 관객에게 이제훈이 눈도장을 찍을 무렵, 이 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으리라. 이제훈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유망한 젊은 배우가 고민 끝에 찾아나간 어떤 길 중 하나다.
-영화를 공동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설득으로 <아이 캔 스피크>를 함께하게 됐다고.
=<건축학개론>(2012)을 함께하며 인연을 맺었다. ‘민재라는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 앙상블 연기의 즐거움
-
나옥분은 동네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는 할머니다. 구청 민원 접수 외에 옥분이 열심인 일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영어 공부다. 옥분이 영어에 매달리는 이유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옥분을 연기한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가 “할머니가 될수록 할 일이 있어야 하고, 할머니가 돼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과 ‘할 수 있다’는 다짐이 준 안도감을 느끼며 촬영에 임했다는 나문희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고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연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명의 관객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고마운 영화였다.
=그 말이 너무 고맙다. (웃음)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악몽이란 표현도 약한 것 같다. 악몽보다 더한 기억이 항상 짓누르고 있을 텐데. 연기자로서 그 아픔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줄 수는 없을까, 그런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옥분은 입체적이고, 아주 재밌고 훌륭한 사람"
-
“옥분 할머니 같은 모습이 아니잖아요.” 사진 촬영을 위해 스타일링을 마친 나문희를 보고 이제훈이 웃으며 말했다. 온 동네 사람들의 일에 오지랖을 떠는 ‘문제적 인물’,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과 나문희의 겉모습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다. 깐깐해 보이는 안경을 끼고 단정한 옷만 입는 민재 역시 웃음이 많고 살가운 이제훈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제훈에 따르면 나문희는 “일상과 연기에 큰 차이가 없는” 배우이며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촬영현장에서 틈틈이 스탭과 기자들을 챙기던 두 배우의 배려와 긍정적인 기운은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아픈 과거를 가진 피해자를 다루는 사려 깊으면서 연민에만 머물지 않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 <아이 캔 스피크>가 가진 힘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던 나문희, 이제훈과의 만남을 전한다.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이제훈 - 힘 빼기의 기술
-
-
눈을 가리느라, 귀를 막느라 양손이 분주한 공포영화. 허정 감독의 신작 <장산범>은 오랜만에 사운드가 선사하는 공포를 만끽할 수 있는 호러영화다.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괴수, 장산범에 얽힌 괴담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의 서스펜스로 관객을 공략한다. <장산범>의 음향효과는 영화 사운드 스튜디오 블루캡이 담당했다. 블루캡의 문철우 팀장은 <장산범>을 “처음부터 소리가 중요한 영화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김석원 대표를 포함해 블루캡의 많은 직원이 “개봉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만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고 <장산범>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문철우 팀장이 <장산범>의 음향효과를 맡으며 가장 주목한 건 괴담 속 존재, 장산범의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목격담에 등장하는 장산범이 ‘하얀 털을 뒤집어쓴 호랑이’의 모습을
<장산범> 문철우 사운드 이펙트 디자이너 - 소리에 두려움을 담았다
-
<택시운전사>가 관객 1100만명을 돌파했다(8월 3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올해 첫 천만 영화이자 제작자 박은경 더램프 대표의 첫 천만영화다. <도둑들> <암살>을 제작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베테랑>을 제작한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와 더불어 천만영화를 탄생시킨 또 한명의 여성 제작자가 된 박은경 대표는 쇼박스에서 마케팅과 투자 업무를 하다 2012년 제작사 더램프를 차려 그동안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4), <해어화>(2015)를 만들었다. 네 번째 영화 <택시운전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그는 영화 자체의 힘을 믿는 제작자다. 좋은 영화라면, 좋은 시나리오라면 영화가 스스로 힘을 키워가고 스스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만 관객이란 성공도 쉽게 자신의 몫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제작자는 그저
<택시운전사> 제작한 박은경 더램프 대표, "나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
너무 달라서 좋거나, 너무 달라서 거리감을 느끼거나. <브이아이피>에서 잔혹한 연쇄 살인마로 분한 이종석의 모습을 본 관객이라면, 영화나 그의 캐릭터 선택에 대한 호오와 상관없이 그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특히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는 작품 면에서나 캐릭터 면에서나 <브이아이피>와 양극단에 서 있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는 바로 그 이유로 10대라는 나이에 비해 철이 빨리 든 소년이었다. 수하는 그보다 10살 많은 변호사 장혜성(이보영)의 속내를 헤아리고 상대에게 부담 없는 위로를 전할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은 앞세우지 않는 성숙한 아이다. 비슷한 시기 그가 출연한 나랑드 사이다 광고에서 역시 이종석은 마음을 섣불리 고백하는 대신 여학생과 조심스럽게 눈높이를 맞추며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여자에게 폭언을 하며 무언가를 강요하는 남자 캐릭터들이 ‘츤데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종석 -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
“안녕하세요. 저는 9살 신린아입니다. 감사합니다.” 막힘없이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은 신린아는 7살 때 찍은 <장산범>의 촬영현장을 꽤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 특유의 솔직함과 엉뚱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은 물론, 이야기를 나눌수록 모험심과 강단 또한 보통이 아닌 듯 했다. 그러니 <장산범>을 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산범>에서 신린아는 숲속에서 발견되는 ‘어린애’로 출연해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드라마 <피고인>에서 지성의 딸로 나와 놀라운 감정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던 신린아는 “착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란다.
-<장산범>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오디션을 봤다. 감독님이 흉내내는 거 준비해오라고 해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준비해갔다. 미야옹~ 이렇게. 고양이뿐만 아니라 애완동물을 다 좋아한다. 사람 목소리 흉내는 잘 못 내는데 동물 소리는 아주 조금 비슷하게 낸다.
<장산범> 신린아 - 무섭기보다는 신기했다
-
<박열>은 일제강점기 민중의 투쟁을 다룬 시대극이지만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옐로, 레드 계열의 색감이 아나키스트들의 열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CJ 파워캐스트 이혜민 DI 컬러리스트는 <박열>의 따뜻한 색을 만든 장본인이다. “과거라는 이유로 채도를 빼는 것은 너무 진부했다. 불령사가 함께하는 초반에는 박열(이제훈)과 후미코(최희서)의 표정이 잘 드러나게 밝기를 키우고, 눈빛이 좀더 강조될 수 있게 눈쪽에 콘트라스트를 더 줬다. 반면 법원 장면 등이 등장하는 후반부에는 약간 채도를 낮추고 따뜻한 색을 많이 뺐다. 얼굴에 그림자가 지게 하는 등 묵직한 느낌도 함께 줬다.” 많은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 만큼 <박열>이 장소에 따른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전에 작업했던 <여교사>는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를 보여주는 만큼 섬세하고 두껍지 않게 색을 썼고, 콘트라스트도 진하게 주지 않는 등 필름 느낌을 살렸
<박열> 이혜민 DI 컬러리스트 - 색보정이라는 마법
-
“<신세계>(2012)를 기대하고 본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 <브이아이피>로 돌아온 박훈정 감독의 당부다. 누아르라는 같은 장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와 <브이아이피>는 전혀 다른 밀도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 <신세계>가 등장인물들의 뜨거운 감정을 싣고 질주한다면, <브이아이피>는 차갑고 건조하게 상황을 응시한다. 북에서 온 귀빈이자 잔혹한 연쇄살인범 김광일(이종석). 그를 잡기 위해 각 조직의 부품처럼 기능하던 인간 군상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서늘한 불협화음은 박훈정표 누아르 월드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전작을 통틀어 <브이아이피>가 가장 차갑고 서늘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는 박훈정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의 책상 서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메모로부터 <브이아이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세계> 이전부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 - 벼랑 끝에 매달린 인물들의 차가운 누아르
-
<스타워즈>와 <제5원소> <아바타>의 공통점은? 프랑스에서 탄생한 SF 그래픽노블을 이야기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1967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첫 등장한 <발레리안>은 방대한 세계관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로운 외계 생명체, 활력 넘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10살이었던 뤽 베송 또한 <발레리안>의 열렬한 팬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언젠가 반드시 이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소망은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로 구현됐다. 뤽 베송의 수많은 전작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약 2399억원)로 완성된 이 영화는 뤽 베송의 모험가적 기질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최근 전세계를 돌며 <발레리안>의 프로모션에 한창인 뤽 베송이 한국을 찾았다. 그와의 인터뷰와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 뤽 베송 감독 - 자, 지금은 28세기다 상상력을 동원해봐
-
<김광석>은 이상호 기자가 찍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굳이 ‘기자’라고 한 것은 이상호 감독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까지나 탐사 보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는 물론 영화를 찍을 때도 그의 정체성은 당연히 기자다. 그래서 이상호 기자가 할 만한 탐사, 보도, 고발 다큐멘터리를 예상하고 <김광석>을 본 관객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내밀하게 개인적인 기억과 체험을 따라간다.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파고드는 부분만큼 기자 이상호와 가수 김광석의 관계를 더듬는, 일종의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두 번째 영화 만에 기자 이상호는 감독 이상호라는 또 다른 자의식에 눈뜬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김광석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잊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변화를 촉구하는 쐐기가 되려 한다.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기 직전 이상호 감독을 만났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김광석에 대한 제
<김광석> 이상호 감독 - 21년 동안 의혹을 파헤쳤다
-
한국 만화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됐던 원작 <프리스트>의 형민우 작가가 웹툰 <삼별초>를 세상에 내놨다. 8월 16일 다음웹툰 플랫폼에 공개된 17회 분량의 시즌1이다. 만화는 고려 무신정권하의 특수부대로 알려진 삼별초와 삼별초 내에서도 몽골의 병사였다가 고려로 돌아오게 된 신의군에 주목한다. <삼별초>의 주인공인 ‘나’는 몽골의 대륙원정대의 선두에 선 바투 부대의 케식텐을 아버지로 둔 이다. 고려 삼별초를 웹툰으로 끌어오면서 형민우 작가는 삼별초 내부가 아닌 몽골의 시선으로 삼별초를 보는 방식을 택했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삼별초>의 세계관이 짙게 배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삼별초>는 CJ E&M 웹툰사업파트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과 투자에 뛰어든 작품이기도 하다. 향후 웹툰의 활용도 궁금증을 낳는 부분이다. 출판 만화로 시작해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온 형민우 작가에게 웹툰
웹툰 <삼별초> 연재 시작한 형민우 작가 - 무엇보다 만화는 재밌어야 한다
-
전설적인 래퍼 투팍의 전기영화는 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기획은 거의 10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투팍의 일대기라는 무게 앞에 수시로 표류를 거듭했다. 여러 차례 감독이 바뀐 끝에 기회를 잡은 이는 베테랑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의 베니 붐이다. 그는 투팍의 일대기를 담되 그를 미화하지 않고 대신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할 것이라 공언했다. 사실 감독보다 중요한 건 누가 투팍을 연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전기영화는 대개 두 가지 길을 걷는다. 하나는 인물의 재현보다 배우의 연기와 아우라에 집중하는 쪽이다. 이 경우 인물의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다른 하나는 최대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인물의 사소한 동작, 표정, 말투까지 재현하여 실제보다 생생하게 숨결을 부여하는 게 목표다. <올 아이즈 온 미>는 명백히 후자를 선택한 전기영화다. 그 중심에 디미트리어스 십 주니어가 있다. 디미트리어스 십 주니어의 발탁은 그야말로 스타 탄생이라 할 만하다. 4천 대 1의 경쟁률
<올 아이즈 온 미> 디미트리어스 십 주니어 - 투팍을 연기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