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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도, 미래도 모든 게 불분명했던 1940년대 중·후반의 조선. 그곳에서 시체조차 찾을 수 없고, 목격자조차 오리무중에 빠진 살인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빌 S. 밸린저의 소설 <이와 손톱>을 영화로 옮겨온 서스펜스 스릴러물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배경이다. 영화는 한편에선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술사 이석진(고수)의 사랑과 복수의 서사가 교차로 편집돼간다. 영화 개봉 다음날, 부산을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는 김휘 감독을 서울에서 만났다. <해운대>(2009)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를 각색해온 경험과 <이웃사람>(2012)을 시작으로 장르영화 연출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살려 <석조저택 살인사건> 작업을 마쳤다. 장르영화로 영화시장의 틈새를 노리겠다는 그의 계획도 들어봤다.
-대통령 선거일에 개봉해 전국 관객 8만4108명이 들었다.
=상영관이 적어서 걱정했는데 보신 분들 반응이 그리
[people] <석조저택 살인사건> 김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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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완이 달라졌다. 샛노란 염색 머리를 하고 양미간을 찌푸리고는 거친 육두문자를 내뱉는 그의 모습을 본 적 있던가. 얼굴에는 핏자국도 묻어있고 능글맞게 눈을 치켜뜨고는 자신의 덩치보다 족히 두배는 커 보이는 사내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전작 <원라인>에서도 임시완은 이미 대출 사기를 저지르는 범죄자 민 대리 역을 맡기는 했지만, 실은 민 대리는 영화 내내 욕설 한마디도 없이 심지어 주먹도 쓰지 않는 얌전한 범죄 철학을 지닌 인물이었다. 때문에 임시완 특유의 유약한 눈빛을 무기 삼아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뒤통수치는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치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보여준 최선의 변신 같았다. 하지만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현수는 임시완에 관한 모든 선입견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이제껏 맡았던 작품
[커버스타] 혁신적으로 나쁜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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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을 빳빳하게 펴고 싶어요.” 설경구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 합류하게 된 건, 변성현 감독의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변성현 감독의 예전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그런 대답을 봤다. <나의 PS 파트너>에 지성을 캐스팅한 이유가 굉장히 반듯한 그의 이미지를 구겨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너무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에 나도 물어봤다. ‘그럼 나도 구겨버릴 거니?’ 그랬더니 변 감독이 이렇게 답하더라. ‘선배님은 워낙 구겨진 이미지라, 빳빳하게 펴고 싶어요.’ 얼마나 재미있고 솔직한 답변인가?”
<불한당>의 재호는, 변성현 감독이 새롭게 발견한 설경구의 ‘빳빳한’ 모습이다. 포마드를 바른 머리에 명품시계, 잘 재단된 슈트 차림의 불한당. 재호는 그동안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 <감시자들>의 황 반장 등을 통해 둔탁하고 선 굵은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설경구의 기존
[커버스타] 그 남자의 멜로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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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놈, 잔인한 놈, 간사한 놈, 거짓말하는 놈. 누가누가 더 나쁠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나의 PS 파트너>의 변성현 감독이 창조해낸 잿빛 세계에는 온갖 유형의 ‘불한당’들이 존재한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재호와 임시완이 분한 현수는 이 비정하고 차가운 세계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는 존재들이다. ‘철창 안의 지저스 크라이스트’처럼 절대적인 존재였던 재호와 있는 건 ‘깡다구’뿐인 신참 현수가 감옥 내부에서 만나 출소 이후까지 나누는 교감은 우정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감정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격렬하다. 한편 이번 영화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모색하던 설경구와 임시완에게 하나의 시도이자 모험이었다. 그 모험의 여정을 두 배우가 짜릿하고 즐거웠던 경험으로 기억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커버스타] 남자, 남자를 만나다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설경구·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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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반전이다. <보안관>에서 배정남이 연기한 춘모는 에어컨 장사를 하는 기장 ‘아재’다. 기장 보안관 대호(이성민) 옆을 지키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사업가 종진(조진웅)이 에어컨을 무려 100대나 팔아주겠다고 하니 대호를 향한 일편단심이 흔들리는 순진한 청년이다. 옷 잘 입고, 런웨이를 활보하던 모델 시절이나 <베를린>, <마스터>에서 말 없이 각 잡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보안관> 개봉 전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슈어, 와이 낫?”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은 배정남은 “배우로서 앞으로 계속 망가지고 싶다”라며 각오를 드러냈다.
-(강)동원씨 소개로 손상범 영화사 월광(사나이픽처스와 함께 <보안관> 공동제작) 대표를 만났다던데.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고 있는데 손상범 대표와 <검사외전>(2016) 이일형 감독이 합류했다. 손 대표가 ‘춘모에 딱인데’라며 김형주
[who are you] 오래가고 싶다 - <보안관> 배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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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굿 무비!’라고 하더라. 반응이 좋아서 즐겁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장편 제작 지원 프로젝트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이하 JCP)를 담당하는 송현영 프로듀서의 말이다. 올해의 JCP는 이례적으로 한국영화만 세편을 선정했다.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와 김양희 감독의 <시인의 사랑>, 김대환 감독의 <초행>이 그 작품들이다. “한국 독립영화가 요즘 침체기라고들 하잖나. 한국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내부적으로 컸고” 그 결과의 산물이 바로 올해 JCP에서 선보인 한국영화 세편이라고 송현영 프로듀서는 말했다.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도 JCP의 세 작품들이 한국 극장가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길 바라는 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향하는 더 큰 목표다.
JCP 프로젝트는 작품 선정부터 후반작업까지 10여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결코 길지만은 않은 이
[영화人] 송현영 전주시네마프로젝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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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은 세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로컬, 의리, 그리고 아재. 영화를 보고 나면 세 단어들에 대한 느낌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다. 로컬영화로서 <보안관>은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지방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성장, 성공, 개발이란 가치에 매몰되어온 우리 사회가 놓치고 온 가치들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지방에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한편 <보안관>의 아재들은 귀엽다. 그들은 지역을 지키며 의리처럼 촌스러운 가치에 매달린다. 육체적으로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아저씨들은 순수한 소년 같다. <보안관>의 김형주 감독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 삼촌을 그리고 싶어 시작했는데 결국 형으로 끝나는 영화”가 됐다고 표현했다. <보안관>은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또 한편의 남탕영화가 아니다. 아재들의 이번 조합은 꽤 신선하고 색다르다. 김형주 감독에게 그 촌스럽고 투박한 매력에 대해 물었다
[people] <보안관> 김형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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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제작된 광고니 가물가물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박카스 CF 속 ‘바른생활청년’ 고수의 모습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젊음, 지킬 것은 지킨다!”는 카피는 오랫동안 고수를 반듯한 이미지에 가두어두었지만, <피아노>(2001), <순수의 시대>(2002) 같은 드라마에서 순수와 우수를 오갔던 고수에게 그 이미지는 꽤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이미지가 답답했는지 첫 영화 <썸>(2004)에서 마약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로 변신을 꾀했다. <썸>의 개봉을 앞둔 고수가 당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재밌다.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후시녹음하러 가서, 감독님한테 다시 찍자고 졸랐다니까요. 궁금해요. 최민식 선생님이나 설경구 선생님 같은 분들도 작품 끝내고 나면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그러실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여전히 “걱정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과묵하게 생각을 불리길 즐기
[메모리] ‘바른생활 청년’에서 진지한 배우로 -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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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김주혁은 해방 후 경성의 최고 재력가이자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남도진 역을 맡았다. <비밀은 없다>(2015),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공조>(2016) 등 최근 그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는데, 남도진 역시 이제껏 선보인 적 없는 악인이다. “끝나고 나면 모든 작품이 아쉽다. 기본적으로 난 ‘우리 영화 죽여요. 보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같은 말을 못하는 놈이다. (웃음) 후회를 하니 또 발전하는 거 아니겠나.” 자신의 연기건 작품이건 냉정한 평가를 서슴지 않는 그는 자신의 연기가 보다 솔직하고 담백해지기를 바랐다.
-영화적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하지 못한 <비밀은 없다>, 영화적 평가는 박했지만 흥행한 <공조>가 최근작이었다. 어느 쪽이 더 아쉬웠나.
=둘 다 만족한다. 하나는 건졌으니까. 뭐든 하나만 건지면 만족하는 거지 뭘 더 바라나. (웃음) 평가도
[커버스타] 갈증이 컸다 - <석조저택 살인사건>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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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으로 모든 걸 상실한 남자 이석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에 휩싸인 석진은 이름도 직업도 처지도 전혀 다른 최승만으로 위장해 연인을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선다. 오직 그것만이 그를 살아가게 한다. 고수가 석진과 승만 두 이름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된 사연 많고 미스터리한 인물을 연기한다. 고수의 반듯한 얼굴 너머에서 우수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의뭉과 회한 서린 그의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할 시간이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어떤 면에 끌렸나.
=<이와 손톱>이라는 원제를 보는 순간 궁금증이 마구 생겼다. ‘필사적으로 처절하게, 온힘을 다해서’라는 의미더라. 무엇을 향한 처절함일지 의문을 갖고 시나리오를 읽어가는데 이야기의 구성이며 분위기가 기존에 받아 본 시나리오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어졌다.
-신분을 숨기고 연인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석진의 상황이 굉장히
[커버스타] 현장이 정말 재밌다 - <석조저택 살인사건>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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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석진/승만(고수)은 사랑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위장하는 인물이고, 그런 석진/승만의 감시망에 들어온 도진(김주혁)은 경성 최고의 재력가이자 시체 없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법정에 서는 인물이다. 고수와 김주혁 두 배우는 위장과 속임수와 배신과 응징의 집행자가 되어 영화를 극적으로 몰고 간다. 영화에서 발산했던 에너지가 무색하게, 현실의 두 배우는 밝고 편해 보였다. 말의 무게를 알기에 언제고 신중한 고수와 귀엽게 솔직한 김주혁을 만났다.
[커버스타] 신중하게 솔직하게 - <석조저택 살인사건> 고수·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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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위에 더한 사기꾼, 그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다. ‘대출 사기’를 벌이는 <원라인>의 사기단 속 캐릭터들 이야기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속여먹으려는 이보다 한발 앞서 뒤통수를 치고, 필요하다면 자기를 속이려는 자와 손을 잡을 의향이 있으며, 한패가 돼 한건 제대로 올리고서도 다음 스텝을 위해선 뒤도 안 돌아보고 ‘안녕’을 고하는 ‘독고다이’가 있다. 할 줄아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어 보이던 모범 대학생 해선이다. 하지만 그런 해선은 극이 진행될수록 돈이라는 확고한 자기 목표를 향해 변신 또 변신한다. 사내들 사이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해선을 왕지원이 연기했다. <원라인>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사기단의 사기가 진행될수록 대학생이던 해선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을 것 같다.
=해선은 사람 사이의 정보다는 자기 이익을 따르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영화 속 많은 남
[who are you] 관객 전체를 속일 수 있기를 원했다 - <원라인> 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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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서 밀려드는 취재 요청을 게스트 스케줄에 맞춰 조율하고 통역가 섭외를 하는 틈틈이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한다. 그 와중에 수많은 게스트의 호텔 체크인, 체크아웃 일정까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웃음)” 개막식을 이틀 앞둔 홍보팀장에게 직무에 관해 소개해달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심지어 이건 전체 답변의 절반쯤에 해당한다. “전주 돔 상영관에 의자가 몇개 놓이는지, 스피커는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기린 오피스텔 3층 전시장에서 <100Films, 100Posters> 전시가 언제까지 열리는지, 행사 가로등 배너와 포스터는 어디에 걸려야 하는지 등등을 모두 알고 있어야” 홍보팀장을 할 수 있다며 거의 랩처럼 답변을 쏟아내는 이지은 팀장은 사실 영화제 출신(?) 스탭이 아니다. 영화, 드라마 홍보, 배우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다가 전주로 오게 된 그녀는 영화제 업무가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그녀가 이전까지 해왔던 업무와 비교해 영화제 홍보란 것이 “행사 전
[영화人] 이지은 전주국제영화제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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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의사라고 가정하자. 동료와 언쟁을 벌이던 중, 한 흑인 소녀가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것에 응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 흑인 소녀가 다른 병원으로 가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은 내 잘못이 아니니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언노운 걸>(2016)의 주인공 제니(아델 에넬)는 환자를 받아주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소녀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제니가 맞닥뜨리는 윤리적 딜레마는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소녀의 정체를 쫓은 이유를 아델 에넬은 “휴머니티”로 꼽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만난 그녀는 제니처럼 용기가 넘치는 배우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다르덴 형제가 건네준 시나리오는 나를 그들의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고, 의사 제니의 내면 깊은 곳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제니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줬다. 제니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
[people] <언노운 걸> 배우 아델 에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