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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뒤에 집에서 혼자 먹는 도시락과 맥주 한캔에 만족하는 남자. <오버 더 펜스>의 요시오는 조용한 지방 마을에 살면서 마치 도를 닦듯 아무것도 즐기려 하지 않는 인물이다. 오다기리 조에 최적화된 역할 같다. 너무 특이해서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독특한 그만의 표현력은 이 영화에서도 십분 활용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잔잔할 것 같으면서도 폭발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오다기리 조는 오답 같은 정답의 연기를 보여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졌던 인터뷰를 전한다.
-신작 촬영 때문에 멀리서 왔다고.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에르네스토> 촬영 때문에 몇달 동안 쿠바에 머물렀다가 바로 부산에 왔다.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활동을 했던 일본계 볼리비아 이민 2세 프레디 마이무라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사토 야스시의 자전적인 소설이 원작인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정도의 부담은 없었나.
[people] <오버 더 펜스> 오다기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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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경. 이 낯선 뮤지션의 이름이 지난 2월 말부터 SNS를 타고 범람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기에 한번 들어나보자는 생각으로 그의 노래를 플레이했다가 황홀한 별천지를 경험했다. 몽환적이고 나른한 사운드, 선명한 멜로디, 극적인 전개. 정반응과 역반응이 함께 일어난다는 ‘가역반응’의 의미처럼, 신해경의 첫 EP 앨범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음악적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치열한 균형감각이 매력적인 음반이다. 《나의 가역반응》을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신인답지 않은, 이토록 유려한 감각의 뮤지션을 왜 지금에서야 발견했을까. 신해경은 누구인가. 인터뷰 장소에 나온 그는 “오늘이 첫 인터뷰”라고 말했다. 그동안 음원으로만 활동해왔기에 《나의 가역반응》을 발매하기 이전까지 그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아직 아무도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 28살 뮤지션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첫 EP 《나의 가역반응》
[trans x cross] 첫 EP 《나의 가역반응》 발매한 뮤지션 신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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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라는 왕국의 군주이자 독재자.” 한석규는 <프리즌>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 정익호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전직 꼴통 경찰 송유건(김래원)이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교도소에 입소한 첫날부터 난동을 피우며 시끄럽게 굴자, 교도소장은 유건을 수감자들의 우두머리인 익호에게로 보낸다.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등지고 나타난 익호는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부하들을 눈빛으로 지휘한다. 그러고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송유건을 그 자리에서 제압한다. 한석규의 말을 빌리자면, 익호는 “폭력이 아니라 카리스마로 제압하는 자”이다. 그가 처음 스크린에 등장할 때부터 관객은 익호가 얼마나 못된 악역인지 확실하게 인지할 것이다.
<프리즌>의 우악스러운 이야기도 익호라는 인물에서부터 시작된다. 극중 익호는 출신과 죄명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장기수다. 그는 폭력 조직 출신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또 다른 세력을 키워 끼리끼리 군림하는 그 세계를 오직 카리스마 하나로 평정한
[커버스타] 뿌리 깊은 악을 보여주다 - <프리즌>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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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원은 한석규와 더불어 예능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이후 이렇게 많은 개그의 영감과 레퍼런스를 제공해준 대표적인 배우들이 또 있을까. 가끔 희화화되긴 하지만 그만큼 특징적인 연기를 적재적소에서 빵빵 터뜨린 배우라는 이야기도 된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연기했을 땐 대중에게 어떤 기대치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프리즌>은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닌 두 캐릭터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순간 함께 등장하면서 연기 대결을 펼쳐야 하는 영화다. 김래원은 이미 <강남 1970>을 통해 나름의 도전적인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데 <프리즌>은 그것의 심화 버전이라고 받아들여도 좋겠다. 일례로 <강남 1970>(2015)의 깡패 용기 역에 비해 이번 영화의 송유건이란 캐릭터 대사의 욕설이 두배가량 많다.
김래원이 연기하는 전직 경찰 송유건은 하루아침에 소위 말해 ‘빵쟁이’가 된 인물이다. 잘나가던 경찰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커버스타] 속시원한 분노를 보여주다 - <프리즌> 김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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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던 나현 감독의 데뷔작 <프리즌>은 범죄의 소굴인 교도소에서 수감자들끼리 벌이는 권력 싸움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누구도 교도소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감옥 소재의 영화들이 주로 탈옥을 주제로 하고 있는 반면, 이 영화는 거꾸로 장소를 옮겨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실제 교도소에서 실제 수감자들이 벽에 그린 낙서를 보며 찍었다는 <프리즌>은 어떤 영화일까.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배우 스스로 연기의 한계를 넓혀나가고 있는 김래원과 한석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수감복을 런웨이에서처럼 걸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서로를 물고 뜯고 권력의 꼭대기에 올라서는 게 삶의 목적인 사람들이다. 어둠이 장악한 교도소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처럼 굳세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래원과 한석규의 새로운 도전, <프리즌>을 만나볼 시간이다.
[커버스타] 서로를 장악하라 - <프리즌> 김래원·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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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누를 때마다 각양각색 자신감 넘치는 포즈가 팝업북처럼 펼쳐진다. 여유로운 표정에 반짝반짝 영민한 눈빛까지, 찍는 이와 보는 이를 모두 신나게 한 ‘화보 장인’ 진영은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멤버이자 영화 <눈발>로 데뷔하는 신인배우다. 3월1일 <눈발> 개봉에 이어 3월13일 갓세븐의 컴백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그는 “양쪽 다 힘닿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며 해사하게 웃는다. 다양성영화부터 장르영화까지 폭넓은 영화 취향을 말하며 눈을 빛내는 진영에겐 “좋아하는 게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라는 그 자신의 말이 딱인 듯하다. 넘치는 생기와 에너지로 무장한 이 신인배우에게 첫 영화를 개봉한 소회를 들어봤다.
-지난해엔 ‘주니어’라는 가명을 썼는데, 활동명이 ‘진영’으로 바뀌었다.
=내 이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기존에 ‘진영’이란 이름을 가진 연예인이 많아 힘들 거라고들 하시더라. 다 유명한 분들인데 난 이제 시작 단계니까. 하지만 힘든
[who are you] 꿈도 욕심도 많아서 - <눈발>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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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명필름영화학교에서 제작된 <눈발>은 타인의 고통을 방관했었다는 조재민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다. 만들어지기까지, 연출자의 고민을 통해 영화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지해준 이면엔 서정일 명필름영화학교 전임교수가 있었다. “영화를 세상에 보이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그는, <눈발>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좋더라. 감독에게 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직시하게 했고, 성장통을 구체화하며 시나리오를 10고까지 냈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말하고 싶은 바를 오롯이 전달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서정일 전임교수는 명필름영화학교에서 일종의 학과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학생을 선발하고 커리큘럼을 만들어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학생들이 영화를
[영화人] 서정일 명필름영화학교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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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은 내과 의사 승훈(조진웅)이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서울 인근 신도시에 기간제 월급 의사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스릴러영화지만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격’하는 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환자의 살인 고백을 듣고 범인을 예감한 승훈의 불안한 심리다. 그 불안의 정서가, 불길한 예감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을 때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한다. “앞에서 문제를 내고 뒤에서 정답을 맞히는” 과정에서 이수연 감독은 빠진 퍼즐 조각 없이 정확히 정답을 맞춰준다. 용두사미로 끝나고 마는 보통의 스릴러영화들과 달리 <해빙>은 정답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더 큰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다. 이수연 감독은 <라쇼몽>(1950)을 예로 들며 영화의 결말에 대해 의미 있는 설명을 들려주었지만 스포일러가 되고 말 그 이야기는 기사에 싣지 못했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은 잘 좀 피해서 써달라”는 당부를 여러 번 들어야만
[씨네 인터뷰] <해빙> 이수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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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자신만만하고, 패기가 넘친다. <콩: 스컬 아일랜드>가 구현한 괴수 ‘콩’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수십년간 이어진 킹콩영화의 계보 속에서 <콩: 스컬 아일랜드>가 차지하는 개성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유인원의 모습을 한 괴수와 금발 미녀로 상징되는, 고전적인 킹콩영화의 플롯에서 벗어난 이 작품은 197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밀리터리 장르영화의 개성과 21세기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서사를 배합한 매력적인 하이브리드영화로 거듭났다. <콩: 스컬 아일랜드>를 연출한 조던 보그트 로버츠 감독은 아직은 이국적인 이름만큼이나 낯선 존재이지만, 그의 첫 블록버스터 연출작인 이 영화는 또다시 재능 있는 신인감독을 발굴해낸 할리우드의 안목을 높이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을 찾은 조던 보그트 로버츠 감독과의 만남을 여기에 전한다.
-영화 <킹 오브 썸머>(2013), TV시리즈 <매시 업>(2012) 등
[people] <콩: 스컬 아일랜드> 조던 보그트 로버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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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마지막, 분분히 흩날리는 눈발처럼 애틋하고 아픈 감정을 품은 소년과 소녀가 있다. <눈발>(2016)은 명필름영화학교 1호 작품,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시나리오 제작지원작,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 2016까지, 공개 전부터 여러 이슈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명필름영화학교 1기로 입학해 처음으로 영화를 완성한 조재민 감독을 만나 첫 장편영화에 대한, 그리고 <눈발>을 시작하게 한 오래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남 고성 촬영현장에서 보고 1년 만이다. 영화는 만족스럽게 나왔나.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편집에서 달라진 게 꽤 많다. 편집기사가 <우리들>(2015) 박세영 기사로 바뀌면서 신의 순서와 호흡이 바뀌었다. 그때는 영화제에 제출하기 위해 급하게 한 감이 있는데, 다듬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한겨울에 낮 촬영이 대부분이라 하루에 네 테이크 이상
[people] <눈발> 조재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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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야, 살아 있니.” 작고 여윈 손이 벽을 두드린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던 소녀들. 그들이 걷는 눈길이 훤하고 서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눈길>은 2015년 KBS 2부작 단막극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다.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한 까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눈길>을 연출한 이나정 감독은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2015),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를 공동 연출하고 <드라마 스페셜-연우의 여름>(2013) 등을 연출한 KBS 드라마국 소속 PD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와 <눈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기존 드라마 단막극으로 반영된 작품을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했다.
=KBS에서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했다. 방송 콘텐츠는 일본에서 보여주기 어려운데, 영화면 영화제에 가거나 상영을 하기가 더 쉽더라
[people] <눈길> 이나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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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한번 보자. ‘죽음’도 좋은 장사가 된다. 전도유망한 화가 지젤(류현경)의 요절 앞에서, 수완이 출중한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은 ‘지젤 프로젝트’의 사업적 전망을 발견한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작품이라는 ‘진짜’와 ‘진실’이 비즈니스로, 가짜로 포장되는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이다. 준엄하고 심각한 경고 대신 웃지 못할 해프닝의 연발 속, 미술계 종사자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와 속물근성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우디 앨런식 블랙코미디가 주는 씁쓸한 긴장! 마치 핑퐁게임하듯 극을 이끄는 것은 류현경, 박정민 두 배우의 호흡이다. 둘은 <오피스>(2014),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영화감독이다2>를 함께한 동료이자, 평소 고민을 터놓는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지젤만큼이나 데뷔 때부터 ‘진짜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을 나누어온 두 배우와 함께, 아티스트의 방법론을 논의해봤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 지젤도,
[액터] 스타가 아닌 배우로 살아남기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류현경·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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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은 자신만의 화법을 분명히 가진 배우다. 그 화법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자, 이런 얘긴 어때요. 자, 이런 얘기도 있어요. 마치 무수한 예시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듯 운을 뗀 다음엔 과거의 상황을 그대로 복사하듯 묘사하기 시작한다. 가능하다면 상황 속 인물의 성대모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청자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타고난 배우의 느낌이랄까. 여러 작품에서 조진웅은 배역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관객이 한눈팔지 않도록 장면을 장악해왔다. <해빙>에서도 조진웅은 혼자서 많은 장면을 이끌어간다. 전락한 중산층의 얼굴을 대변하는 승훈 캐릭터는 이제껏 조진웅이 연기해온 캐릭터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뽐냈던 공격적 캐릭터들과 달리 승훈은 스스로 불안함에 잠식되는 인물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조진웅의 표정이 영화에 길게 여운을 드리운다. 다작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조진웅과 <해빙>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해빙&
[커버스타] 감정을 따라가다 - <해빙>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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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명석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히든 피겨스>의 메리 잭슨을 연기한 저넬 모네이는 152cm의 작은 체구임에도 강인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판사 앞에서의 스피치는 가히 오스카 클립으로 쓰일 만한 위엄이 있으며, “어떻게 백인 남자한테 추파를 던지냐”는 친구에게는 “그게 평등권이야, 인종을 왜 신경 써야 해?”라고 되묻기도 한다. 메리 잭슨은 실제 저넬 모네이와 닮아 있다. 저넬 모네이는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우에 대해 계속해서 말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흑인에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면 모두에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그는 강인함만큼 자애로움도 지녔다. <문라이트>에서 후안이 떠난 뒤에도 한결같이 샤이론을 돌봐주는 테레사 역할을 맡은 그에게선 성숙한 성인 여성이 주는 신뢰가 묻어난다. 테레사 역시 저넬 모네이의 한 일면이다. “나는 샤이론, 후안, 파울라 같은 이웃과 가족들 속에서 자랐고, 나는 실제 내 삶에서도 테레사
[who are you] 오롯이 선 당당함 - 저넬 모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