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변주가 계속되거나 화려한 컷 분할로 영화 리듬을 만드는 방식이 아닌 편집이란 어떤 것일까.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 중 <스틸 플라워> <재꽃>을 함께한 조현주 편집감독의 질문이기도 하다. 핸드헬드 촬영이 중심이었던 <스틸 플라워>와는 또 다르게 길 위의 두 소녀 하담(정하담)과 해별(장해금)의 이야기를 말없이 지켜봐주는 <재꽃>의 단정한 카메라워킹을 받아들고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내러티브에 파고들 수밖에. 롱숏을 중간에 툭 자를 수도 없으니 순서를 바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서사를 살펴야 한다.” 촬영소스가 편집실에 도착하면 무조건 모든 숏들을 다 붙여놓고 보고 또 본다. 조현주 편집감독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중간자가 편집자”라고 생각하는 만큼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받아들였는데 감독님이 찍고자 한 게 그러하느냐”며 연출자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본다. 그가 편집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
<재꽃> 조현주 편집감독 - 진심을 담은 편집
-
“어머나,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꽃 안 가져왔으면 나 삐칠 뻔했어. 호호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 이틀 전인 지난 7월 11일, 호텔 그랜드 힐튼 서울에서 장미희와 인터뷰를 하는데, 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꽃을 들고 나타나자 장미희는 소녀마냥 쑥스러워했다. 순간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70, 8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끌던 ‘청순가련 비운의 여인’ 장미희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다. 한때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 영화진흥위원회부위원장, 서울영상위원회 부위원장 등 여러 ‘봉사직’을 맡은 뒤, 언제부터인가 교수와 배우로만 활동하던 그다. 그런 장미희가 7월 23일 막을 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조직위원장이라는 감투를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가시나 봐요.
=선생들은 방학이라도 나가야죠. 1989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교수와 배우를 병행해왔어요. 지난 6월 촬영에 들어가기로 한 영화가 대작
장미희, "내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그런 나 자신을 좋아해요"
-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는 무려 5년 만에 대상작이 나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여야만 대상작을 뽑는다는 영화제의 깐깐한 내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세게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나만 없는 집>(2017)의 김현정 감독이다. 심사위원 중 한명인 엄태화 감독은 “모든 심사위원이 지지를 넘어 눈에 하트가 보일 정도”였다며 호평했다. 심지어 이 부문에서 대상작이 나온 건 영화제 역사상 처음이다. 1998년 봄, 초등학교 4학년 세영(김민서)은 걸스카우트인 언니와 달리 어째서 자신은 걸스카우트 단원 가입 신청서를 낼 수 없는가를 두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바쁜 부모, 쌀쌀맞은 언니로부터 멀리 떨어져 세영은 늘 혼자다. 외롭고 쓸쓸하고 화가 나며 서럽기까지 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최동훈 감독은 “평범한 가족의 소담한 이야기에 우리 모두가 깊이 빨려들어갔다”며 이 어린 소녀의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힘에 지지를 보냈다
<나만 없는 집> 김현정 감독 -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
‘영화는 영화’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배우 같은 깡패가 있을까.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2008)에서 조직폭력배 강패 역을 맡은 소지섭은 그 자리에 서서 노려보기만 하는데도 말 그대로 멋짐이 넘쳐흐른다. 배우보다 더 배우 같은 깡패, 배우가 되고 싶었던 깡패라는 설정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 있다. 피폐하고 탁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힘 빼고 신경 안 쓰고 현장에 갔다”고 하지만 타고난 ‘간지’는 감출 수가 없다. <영화는 영화다>의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소지섭은 “내 것이 포함되면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투자”를 했다고. 이후 제작과 영화수입 분야에서 꾸준히 활약 중인 이 성실한 배우는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며 몸을 낮춘다. 하지만 9년 전 인터뷰에서 밝힌 본인의 좌우명처럼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곁에서 오늘도 멋짐을 연기 중이
[메모리] 소지섭, 멋짐을 연기 중
-
-
송강호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양쪽 눈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쌍꺼풀이 짙은 왼눈과 달리 오른눈은 외겹에 가깝다. 온전히 다른 눈의 형상이 배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 기류를 형성한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의 쌍꺼풀진 눈이 ‘너스레’로 대변되는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에 좀더 많은 기여를 한다면, 오른쪽의 외겹처럼 보이는 눈의 움직임은 차갑고 건조한 날선 표정으로 번진다. 1980년 5월18일. 단지 택시비 10만원을 벌기 위해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 <택시운전사>는 송강호가 가진 이 두개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의 비극이다. ‘딸라를 벌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줄 알고 ‘데모를 하는 학생들은’ 피해나 주는 문제아라고 여기던, 나쁜 정부와 거짓 언론에 이용당한 소시민 만섭에게 광주 그곳의 참상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려진 진실’이었다. 송강호는 서로 다른 두개의 눈이 빨갛게 충혈될 때까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현실을 두눈 감지 않고 똑똑히 목도한다.
<택시운전사> 송강호, ‘송강호’라는 장르
-
1년 반 전 런던 워털루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핀 화이트헤드가 올여름 전세계 극장가를 사로잡을 블록버스터 <덩케르크>로 ‘별’이 됐다. 이만큼 화려한 스크린 데뷔도 흔치 않다. 영화에서 그는 1940년 프랑스 케르크 지역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영국군 사병 토미 역을 맡아 깊은 불안을 띤 청년을 보여준다. 영국 출신, 1997년생인 그는 13살 때 극단에 들어갔고 국립유소년극단 멤버가 돼 틈날 때면 오디션을 보던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의 만남은 벼락같은 기적이었다. “시나리오도, 어떤 역할들이 나오는지도 모른 채 몇달간 계속된 오디션이었다. 어느 날 놀란 감독의 콜을 받고 뛸 듯이 기뻐 소리를 내질렀다”고 말할 만하다. 당시 그는 영국 ITV의 미니시리즈 <그에게>에 출연 중이었는데 영화 출연 사실을 비밀에 부쳐야 해 동료들을 속인 데 죄책감이 든다는 고백도 잊지 않는다. <덩케르크>에 대한
<덩케르크> 핀 화이트헤드 - 어느 날 찾아온 기적
-
“열리는 행사마다 ‘10주년’ 양념을 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웃음)” 김신형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에게 근황을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의 말대로 KT&G 상상마당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개관한 해부터 시작했던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지난 7월 9일 막을 내렸다)와 오는 9월 열릴 대단한 단편영화제 역시 올해가 10회째다. “이번 음악영화제의 경우 컨셉을 ‘레전더리’로 정해서 전설적인 뮤지션을 다룬 영화와 작품 자체로 고전이 되어버린 유명 음악영화를 상영했다. 올해는 이렇게 관객이 좋아했던 영화들, 우리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함께 봤던 영화들을 관객과 나누는 작업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상상마당 시네마가 첫 직장인 김신형 팀장은 하우스매니저로 극장 업무를 시작해 코디네이터와 프로그래머를 거쳐 영화사업팀장을 맡기까지 지난 9년간 극장의 주요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그의 행보가 곧 상상마당 시네마의 성장과정과 맞닿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년
김신형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 - 관객의 마음을 공략한다
-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2015, 개봉 7월 20일)에는 한국의 성소수자를 향해 ‘불온하다’고 외치는 이들과 온갖 ‘불온함’에 정면으로 맞서 돌파해가는 이들이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1945년생 이묵은 ‘바지씨’다. LGBT라는 말조차 익숙지 않던 시절,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달리 생각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칭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이묵의 인물다큐멘터리인가 싶었던 영화는 ‘동성애=종북, 빨갱이’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의 보수단체들의 집회 현장을 주목한다. 이어서 이영 감독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대재앙 앞에서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게 된 이유로까지 영화의 품을 확장시킨다. 그곳에서 관객은 혐오 사회가 가져온 불온한 기류와 죽음에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삶을 사수하려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묵의 인물다큐멘터리로 진행될 줄 알았던 영화는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와 뿌리 깊은 종북몰이의 민낯을 보여주는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 “혐오를 방치하면 사회 전반의 공기가 된다”
-
군함도를 소재로 했을 뿐 소설 <군함도>는 영화 <군함도>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작가는 굳이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한수산 작가는 누구보다 일찍 군함도에 주목했고 무려 27년을 매달려 소설 <군함도>를 완성했다. 일본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로 군함도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전부터 묵묵히 이야기를 발굴해왔다는 말이다. 오래 곁에 두고 진중하게 고민한 만큼 소설 <군함도>의 묵직함은 남다르다. 그렇다고 단지 무겁게만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한수산 작가는 <군함도>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이야기한다. 사람이야말로 역사, 민족,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소설 <군함도>가 다시 읽고 여러 번 읽고 나눠 읽기에 좋은 소설, 필요한 이야기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 작품이 첫발이 아니라도 좋다. 오히려 여러 이야
<군함도> 한수산 작가 - 소설로 쓸 수밖에 없었다
-
송중기에게는 미남 배우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까지 돌려놓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예상을 배반하는 의외성에서 오곤 했다. 외모가 빼어난 배우는 상대적으로 연기력이 아쉬울 것이라는 편견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와 영화 <늑대소년>(2012)의 호연으로 깼을 때도, 한류 스타가 된 이후 일제강점기 역사를 그린 <군함도>를 선택했을 때도 그랬다. 시나리오에서 30여신이 흘러간 후에야 등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자 주변의 영화 관계자들은 “너 이거 왜 하냐?”고 묻기도 했단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군함도>의 송중기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배신을 안겨줄 것이다.
-<군함도>의 박무영은 윤학철(이경영)을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하는 군인이다. 각 잡힌 군인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배경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았나.
=박무영에게는 군함도에 들어오게 된 과정만
<군함도> 송중기 - 더 넓게, 더 행복하게
-
<군함도>라는 제목 뒤에 부제를 하나 붙인다면, ‘소간지의 귀환’이 적절하지 않을까? 드라마에 출연하고 음원을 발표하며 팬들과 소통하던 그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역사 소재의 영화, 류승완 감독과의 첫 작업, 게다가 그가 연기하는 ‘조선 최고의 주먹’ 칠성이 원톱 스트라이커보다는 든든한 수비수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 등 그의 이전 작업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 보인다. 최근 영화 수입업으로까지 활발하게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는 그에게 지옥과도 같았던 <군함도>의 풍경에 대해 물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비극적인 역사 소재의 영화라서 출연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 때문에 시작했다. 이전부터 같이하자고 약속한 터라, 시나리오도 보기 전에 출연을 결정했는데 알고 보니 <군함도>더라.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과연 내가 정서적인 아픔을 건드리는 작품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군함도> 소지섭 - 새롭게, 열린 마음으로
-
말년은 들꽃이다. 군함도에 끌려온 여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말년은 잔인한 군홧발에 이리저리 채이면서도 강인한 뿌리로 땅을 부여잡고 제 색을 잃지 않는다. 이정현도 들꽃이다. 가냘픈 체구에 얼핏 한없이 여린 듯 보이지만 형형한 눈빛 안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명량>(2014)의 정씨부인이 한 맺힌 몸짓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이는 단 한 장면만으로 온전히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군함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년이란 캐릭터의 슬픔인지, 이정현이란 배우의 위력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정현은 애초에 두 가지를 나눌 필요 없는 영역에서 숨 쉬는 배우다.
-민감한 소재이고 어려운 이야기다. 출연을 고민하진 않았는지.
=캐스팅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은 지 한 시간 만에 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아니 사실 출연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하고 싶었다. 주차장에서 <군함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서 고함을 질렀으니까.
<군함도> 이정현 - 지지 않는다는 말
-
제 한몸 건사하기 힘든 <군함도> 촬영현장에서 황정민은 1인2역을 했다. 그가 연기한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은 식민지 조선의 사교계를 들썩거리게 하다가 딸 소희(김수안)와 함께 쫓기듯 현해탄을 건너면서 새 출발을 꿈꿨지만, 강제징용된 다른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꼼짝없이 군함도에 갇혀 석탄을 캐는 신세가 됐다. 매일 체중 감량하랴, 클라리넷 연주하랴 힘들었을 법도 한데, 수백여명에 이르는 보조 출연자들의 사기 진작도 황정민의 몫이었다. 그런 그를 류승완 감독은 “주연배우 이상의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이 이강옥을 “평소 황(정민) 선배가 탭댄스를 추고 악기 연주하는 걸 보고 만든 캐릭터”라고 얘기해주었다.
=<군함도>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고, 그만큼 나를 잘 아니까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했을 거다.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을 연달아 작업하면서 쌓은 신뢰감도 작용했을 것 같다.
=
<군함도> 황정민 - 이만한 에너지의 중심에 선다는 것
-
“새신랑 들어옵니다. 다들 박수!” 황정민의 흥겨운 외침에 송중기를 향한 축하가 쏟아진다. 표지 촬영 전날 결혼 소식을 전했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오던 송중기의 얼굴도 이내 환하게 밝아진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여기저기 인사하는 송중기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료들. <군함도>의 현장 분위기가 어땠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을 도전이었고 아픈 역사를 마주한다는 무게도 짊어져야 했다. 이를 즐겁게 소화할 수 있었던 건 해야 할 이야기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지탱한 현장의 일체감 덕분이었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다는 <군함도> 현장. 이야기를 할수록 배우들의 눈빛에 생기가 되살아난다.
<군함도> 황정민·이정현·소지섭·송중기 - 완벽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