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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오르 제국과 아카파 왕국은 합병한 뒤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 적어도 아카파를 침략한 츠오르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반면 아카파의 수뇌부는 오래전 츠오르 군대에 치명타를 입힌 질병을 불러와 츠오르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아카파의 저주’로 칭해진 전염병 미차르(흑랑열)를 의도적으로 퍼뜨려 아카파의 위상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한편 성스러운 의사 홋사르(다케우치 료마)는 역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분투하다 미차르의 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츠오르 소금 광산에서 노역하던 반(쓰쓰미 신이치)이 그 주인공. 홋사르는 미차르의 치료법을 품은 반을 찾아나서고, 부모를 잃은 소녀 유나와 함께 광산에서 도망친 후 작은 마을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반과 조우한다. <사슴의 왕>은 우에하시 나오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쿠로코의 농구> <하이큐!!>의 제작사인 프로덕션 I.G가 제작을 맡고
[리뷰] ‘사슴의 왕’, 낯익은 볼거리에 정확한 메시지, 사랑 앞에서는 운명도 거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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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살이 된 줄리아(루 드 라주)는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한다. 몇 차례의 우연과 사소한 계기가 이끈 전환점을 되새겨보기로 한 것이다. 줄리아의 시간은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장벽이 붕괴하던 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17살 줄리아. 그는 베를린의 역사적인 현장으로 향하려다 아주 작은 결정으로 인해 베를린행 버스에 올라타거나 타지 못한다. 그 후 줄리아의 삶은 몇 차례의 사건을 거치며 네 가지 갈래로 나뉜다.
<줄리아의 인생극장>은 우연적 사건에 따라 변화하는 생의 행로를 포착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리프물이나, 특정 시간 혹은 장소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타임루프 설정과는 다르다. 줄리아가 걸어온 길은 결정돼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네 방향으로 펼쳐지는 줄리아의 노정을 함께 좇으며 무엇이 그의 ‘진짜’ 삶일지 고심하게 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길로 향하길 바라게 돼서다. 그러나 영화는 인생에 관한 오래된 수사를 꺼내놓는다. 어떤 생이라도
[리뷰] ‘줄리아의 인생극장’, 우연에 관한 익숙한 상상, 닫힌 결말이라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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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마츠리(고마쓰 나나)는 병원에서 사귄 한 친구에게 캠코더를 선물로 받는다. 친구는 캠코더에 가족과의 추억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마츠리가 처음으로 목도한 죽음이다. 시간은 흘러 2013년. 마츠리는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한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병원에서 쓴 노트를 펼쳐본다. 노트엔 ‘폐동맥 고혈압’이란 병명과 ‘남은 인생 10년’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2014년 마츠리는 중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우편을 받는다. 그녀는 그곳에서 동창 카즈토(사카구치 겐타로)를 만난다. 삶의 의지를 잃은 카즈토는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 병실에 누워 나약한 태도를 보인 그에게 마츠리는 한소리 한다. 이를 계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카즈토는 마츠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건다.
<남은 인생 10년>은 10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 영화다. 심은경이 주연한 <신문기자>로 국내에 알려진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작품이다. <
[리뷰] ‘남은 인생 10년’, 시대의 청춘과 통증을 멜로 드라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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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젊은 감독 비간의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가 극장을 찾는다. 국내에서는 꽤 늦은 개봉이다.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필름메이커 경쟁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우리는 많은 시네아스트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데이비드 린치, 허우샤오시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의 그림자가 아른거렸고, 이는 이 오묘해 보이는 영화의 독창성을 다소간 의심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카일리라는 도시에 사는 남자 천성(진영충)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작은 진료소에서 일하는 그는 계속해서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꾼다. 어머니가 신던 푸른 신발, 루성(갈대로 만든 생황) 소리,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먀오인들…. 잠에서 깬 후에도 맴도는 이미지들에 기분이 께름칙하다. 게다가 삼촌인 자신을 형이라 부를 정도로 가까웠던 어린 조카 웨이웨이가 시골 마을 전위안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조카를 찾기
[리뷰] ‘카일리 블루스’, 이정표 없이 가속하는 영화, 불안정한 기착지는 사실 내가 떠나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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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단거리 육상을 소재로 한 <스프린터>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놓인 세 선수의 사연을 파고든다. 우선, ‘아직도’ 달리는 사람인 현수(박성일). 10살 넘게 차이나는 선수들 틈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한때 국내 최고 주자였지만 이제는 죽어라 뛰어도 줄곧 4위에 머문다. 아내 지현(공민정)은 홀로 동네를 전전하며 훈련하는 현수에게 마땅한 위로를 전할 수 없어 갑갑하기만 하다. 그는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다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이자 이 종목의 유망주인 준서(임지호)가 있다. 앞길이 창창하지만 학교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육상부를 해체하려 한다. 육상부의 존폐 위기가 계약직 코치인 지완(전신환)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과 대치되면서 양쪽 모두에게 원만한 해피 엔딩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쓸쓸함 또한 감돌게 된다. 늘 1위를 거머쥐어온 젊은 선수 정호(송덕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후배들이 그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견제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향한
[리뷰] ‘스프린터’, 모범적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게, 이야기가 된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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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유럽으로, 1년의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내는 중년의 선장 야코프(헤이스 나버르)가 주인공이다. 직업 특성상 자유롭고도 고독하게 살아가던 야코프는 이유 모를 만성 복통에 시달리다 치료를 위해 결혼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얼마 뒤 육지의 카페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던 야코프는 그곳에 들어오는 첫 번째 여성과 결혼을 하겠다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야코프는 카페에 처음으로 들어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 리지(레아 세두)에게 다가가 즉흥적으로 청혼을 하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야코프의 청혼을 승낙한다. 부부가 된 둘은 얼마간 즐겁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지만, 일을 위해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야코프가 리지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하며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아내의 친구인 데딘(루이 가렐)의 존재가 야코프를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게 만든다. 야코프의 불신과 집착으로 갈등을 겪던 리지는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제안을 건넨다.
헝가리 작가 밀란 퓌슈트
[리뷰] ‘내 아내 이야기’, 사랑과 불안속에 요동치는 복잡한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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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났다.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가 이끄는 희대의 조직 돔패밀리가 이번엔 진짜로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여러 편으로 구성된다는 루머가 도는 최종장의 1부에 해당한다. 현재 알려진 이 영화의 제작비는 3억4천만달러로, 시리즈 사상 최대 제작비이자 유니버설 픽처스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제작비 규모다. 즉 전세계 도시를 오가며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길을 질주하며 이들의 질주를 가로막는 모든 걸 때려부수려 든다.
FBI와 범죄 조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비밀 작전에 투입됐던 돔패밀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는 이들의 과거에서 비롯된다. 패밀리의 리더 도미닉과 오랜 악연을 이어온 남미의 마약 카르텔 캄포스 조직의 일원이자 미스터리한 인물 단테(제이슨 모모아)가 지난 일을 복수하겠다며 이들을 찾아온다. 이번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시리즈 5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의
[리뷰]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시원한 질주와 통 큰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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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엄마>는 4기 암 환우들의 생과 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호경 감독은 위암 4기를 선고받은 누나의 행복한 시기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세 환우의 사연도 함께 담아냈다. 암 환우와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커뮤니티 ‘아름다운 동행’에서 만난 세 환우. 중학교 음악 교사 출신 김정화씨, 아름다운 동행에서 여러 암 환우들의 증상을 진단해주던 외과 레지던트 출신 정우철씨, 암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이혼을 진행하던 김현정씨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입학할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둔 젊은 부모들이다. 자기 죽음보다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선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 되묻는다.
<울지마 엄마>는 암 환우의 쾌활한 모습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 환우의 죽음 이후에 남은 가족들의 일상까지 차근차근 짚어간다. 암 선고를 받은 환우들의 모습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처럼 고통으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니다. 활기찬 목소리
[리뷰] ‘울지마 엄마’, 죽음은 애달프지만, 기억은 이어진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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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는 모델 동료이지만 처지가 다르다. 여성 모델 임금의 3분의 1에 불과한 남성 모델 칼과 패션쇼 런웨이의 첫 주자인 야야. 톱모델이면서 인플루언서인 야야 덕에 두 사람은 고급 크루즈에 승선할 기회를 얻는다. 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크루즈는 철저히 계급화돼 있다. 승객의 즉흥적인 한마디에 모든 승무원은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고, 누텔라를 원한다면 먼바다에서 공수하길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파도가 심상찮은 날 펼쳐진 선상 만찬과 난파로 인해 이들의 권력 구조가 뒤집힌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 <더 스퀘어>에서 미술계의 허상을 폭로했듯 <슬픔의 삼각형>에서도 패션업계와 자본의 계급성을 신랄히 비판한다. 칼과 야야의 권력 불균형을 통해서는 사회적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반사해 비추고, 크루즈에서의 부자들의 행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부의 천박함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특히 고급스러운 선상 만찬을 구토로 뒤덮은 장면은 웃음
[리뷰] ‘슬픔의 삼각형’, 웃음과 역겨움을 동시에 감각게 하는 탁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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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전설 속 ‘바람의 신주’를 찾아 헤매던 과학자들이 동굴 속에 잠들어 있던 신주를 발견한다. 마침내 신주와 마주했다는 감격에 잠긴 것도 잠시, 갑작스레 신주가 작동하며 과학자들은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한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1230년대 탐라. 과학자들은 시대상에 맞게 저마다 외형과 직업을 바꿔가며 현실에 적응한다. 가령 과학자 도무(권성혁)는 대장장이로 분해 간간이 현대의 문물을 만들어 선보이는데, 마을의 소년 유랑(심규혁)이 이에 관심을 보이며 도무와 가까워진다. 어느 날, 유랑은 해적에게서 도망치다 마을에 들어선 한 소녀를 구출한다. 알고 보니 그는 신주를 지켜야 하는 운명의 소녀 영등(민아)이었다. 세계를 파괴할 힘을 가진 신주를 얻기 위해 해적들은 포기하지 않고 탐라로 다시 쳐들어온다. ‘적귀’에 맞서기 위해 유랑과 도무는 숨겨뒀던 거대한 돌하르방 로봇 ‘거신’을 선보인다.
<거신: 바람의 아이>는 바람과 바다의 여신 영등할망신화를 바탕으로 돌하르방의
[리뷰] ‘거신: 바람의 아이’, 제주 신화와 상징의 흥미로운 인용, 다소 평범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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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앞선 형사 생활을 이어가는 우밍한(허광한)은 마약범 구속 과정에서 폭행과 성차별이라는 죄목으로 징계를 받게 된다. 동성애자를 향한 차별을 습관처럼 일삼는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 채 수사에만 집중한다. 여느 날처럼 범인을 잡다 길에 쏟아진 물건을 정리하던 우밍한은 붉은 봉투 하나를 줍게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바로 영혼 결혼식 초대장. 이 초대장엔 영험한 저주 하나가 걸려 있으니, 봉투를 주운 사람은 무조건 영혼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밍한은 일면식 없는 남성과 결혼할 운명을 거부하려 발버둥치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냉장고가 떨어지거나 차 사고가 나는 등 재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결국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결혼 상대자의 이름은 마오마오(임백굉).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를 애도하기 위해 가족이 영혼 결혼식을 계획한 것이었다. 혼인 이후 모습을 드러낸 마오마오는 우밍한에게 빙의를 협박하며 자신의 한을 풀어줄 것을 부탁하고, 어느덧
[리뷰] ‘메리 마이 데드 바디’, 변화한 사회가 자아낸 참신한 상상, 다만 너무 익숙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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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으로 한 가족이 이사 중이다. 엄마 줄리아(알렉스 에소)는 두 자식을 데리고 오래된 수도원으로 가고 있다. 이곳은 1년 전 죽은 남편이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줄리아는 이곳을 수리하여 팔 생각이다. 아들 헨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수도원을 구경하다가 악령에 씌인다. 수상함을 느낀 나머지 가족은 헨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의사는 단순히 정신병이라고 진단한다. 그날 밤 헨리는 괴상한 목소리로 신부를 데려 오라고 가족에게 명령한다. 줄리아는 에스퀴벨 신부(다니엘 소바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몸속 악령이 원하는 신부가 아니었다. 악령이 원한 자는 교황청 수석 구마 사제인 아모르트 신부(러셀 크로)였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실제 바티칸 교황청이 공식으로 인정한 수석 엑소시스트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의 회고록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포 스릴러 영화다. 영화는 오래된 수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편의 실내극 같다. 하지만 단조로움을
[리뷰]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우리의 죄를 우리가 찾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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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하나의 신, 두 사람의 대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를 채운 6편의 단편은 이 약속된 제한 위에서 피어난 재기발랄한 말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카페, 집, 회사, 파티룸 등 그다지 유별날 것 없는 일상의 무대 위로 흘러나오는 대화들은 하나같이 ‘갈등’ 중이다. 소셜 코미디를 표방한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노사, 지역, 젠더, 세대 갈등에 익숙한 동시대 성원들 저마다의 뻔뻔한 입장 차를 풍자한다. 동물권, 환경문제, 미투 운동 등 사회적 이슈가 개인의 일상에서 모순적으로 어긋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장면들이 특히 웃음을 낳는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프롤로그>는 서로의 악덕과 편법을 유능함으로 착각한 기업 관리자들의 허세 가득한 대화를 들려준다. 단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우리의 낮과 밤>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김소형 감독은 <하리보>에서
[리뷰]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혐오를 겨냥하는 재기발랄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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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정훈(차선우)은 복싱 선수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우연히 동네 양아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승희(유지애)를 구하면서 인생은 그가 원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 양아치 무리를 이끌던 족제비(이원석)와 싸움을 벌이고 손목을 다쳐 복싱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정훈은, 자신을 좋아하지만 족제비와 친분이 있던 미자(김소희)와 멀어지고, 승희와 결혼을 약속한다.
성긴 이야기 탓에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모티프는 결혼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잃은 정훈은 “술도 마시지 않고 여자도 때리지 않는다”. 정훈이 가진 이러한 미덕은 미자가 그를 마음에 품는 이유다. 하지만 정훈은 미자가 “쉬운 여자”이기 때문에 선을 긋는다. 동시대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러한 갈등 상황과 함께 ‘누아르’라고 상정되었을 (검은 양복을 입은 조폭들, 칼부림, 피투성이 시체 등) 몇몇 이미지들 역시
[리뷰] ‘바람개비’, 잔혹보다는 조잡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