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이후 5년 만에 완성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신작인 <키메라>는 외견상 디지털영화의 연대기에서 비켜서 있다는 점만으로도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에르만노 올미, 페데리코 펠리니 등 이탈리아영화의 유산을 흡수한 목가적 풍경, 다양한 포맷으로 변주되는 필름 촬영의 생동감은 <키메라>가 가진 희귀한 기쁨이다. 영화는 막 감옥에서 풀려난 남자 아르투(조시 오코너)가 연인 베니아미나(일레 야라 비아넬로)의 집이 있는 토스카나로 향하는 기차 위에서 시작된다. 과거에 붙들린 아르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연인은 <키메라>에서 쉬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도굴꾼들과 생활하며 땅속 무덤에 묻힌 고대 에트루리아 유물을 훔쳐 파는 이들의 모험을 바라볼 뿐이다. <키메라>에서 지상과 지하는 신화 속 이종동물 키메라처럼 연결되어 있다. 종종 아르투에게 찾아와 죽은 자들의 세계를 감각하게 만드는 영적 능력도 ‘키메라 현상’이라 일컬어진다. 로르바케르 감독은 스타일과 형식의 차원에서도 그 초월적 권능을 자유자재로 누리며 비탄과 익살을 아우른다. 16mm에서 35mm 필름을 넘나들며 흙과 바람, 태양과 바다의 호흡을 살아 있는 질감으로 새긴 엘렌 루바르의 촬영 역시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