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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차 신입 간호사 다솔(김다솔)은 한 가지 결심을 품고 있다. 신입이 들어오면 절대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말대꾸하지 말라는 선배의 주문에도 꼿꼿한 고개는 마음속으로 이러한 다짐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전염병이 덮쳐오고 간호사 수가 부족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다솔의 결심은 무너진다. 다솔은 자신의 사수에게서 들었던 모욕을 기어이 신입 간호사인 은비(추선우)에게 되풀이한다. 서로의 탓으로 밀어내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폭탄 돌리기.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염병의 양성 판정을 받는 일보다 어려워 보인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전염이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과 ‘태움’으로 알려진 간호사들 사이의 폭력의 대물림. 실상 영화가 방점을 찍는 것은 후자의 전염이다. 코로나가 아닌, 판토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바이러스는 각혈과 발작을 일으킨다는 자극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감염자가 들썩거리며 토하는 피보다 무서운 것은 간호
[리뷰] 재난이 또 다른 비극의 메타포가 될 때, '인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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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도 탄지로(하나에 나쓰키)는 식인귀 도깨비 키부츠지 무잔(세키 도시히코)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동생 네즈코(기토 아카리)는 도깨비가 된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 이후 탄지로는 도깨비 토벌대인 귀살대원의 길을 걷고자 한다. 스승 우로코다키는 도깨비와의 결투에 필요한 대원복과 일륜도, 네즈코가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인 옻 상자를 탄지로에게 하사한다. 도쿄에 간 탄지로는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키부츠지의 존재를 냄새로 알아채고 키부츠지로부터 피습당한 시민을 구하던 중 인간을 돕는 의사 도깨비 타마요(사카모토 마아야)와 유시로(야마시타 다이키)를 만난다. 한편 키부츠지는 자신의 심복 스사마루와 야하바에게 탄지로와 네즈코를 제거하라 명한다. 그날 밤 키부츠지를 따르는 도깨비들과 탄지로 일행은 벚꽃 벌판 아래에서 격전을 펼친다.
<귀멸의 칼날: 아사쿠사편>은 <귀멸의 칼날> TV판 입지편 6화부터 10화까지의 내용을 극장 상영본으로 재편한 영화다. 그간 작
[리뷰] 캐릭터별 위력보다 강력한 원작 만화의 힘, '귀멸의 칼날: 아사쿠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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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직업도 다른 여섯 사람이 정체불명의 큐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무슨 경위로 큐브에 갇히게 되었는지 누가 큐브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큐브의 각 면에 설치된 6개의 문 중 하나를 통과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문제는 두 가지다. 문을 열면 또 다른 큐브가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큐브에는 살인 장치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 함정이 설치된 몇개의 큐브를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각자의 사연을 숨긴 채 여섯 사람은 갈등하고 협업하며 함정이 설치된 큐브를 피해 바깥으로 향할 방법을 모색한다.
영화는 1997년에 개봉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큐브>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은 미지의 공간과 주변 인물이 견인하는 공포를 극대화해 저예산 스릴러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탈옥수, 경찰, 의사, 수학과 학생, 자폐증 환자 등 특색이 강한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큐브의 덫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부각했었다.
[리뷰] 지나친 감정적 호소가 견인한 미지근한 스릴,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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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는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히면 거액의 당첨금을 주는 복권이다. 한장의 로또 용지가 바람을 타고 남한 최전방 감시초소(GP)의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에게 찾아온다. 당첨금이 무려 57억원인 1등 당첨 로또였다. 기쁨도 잠시, 로또는 바람을 타고 천우를 떠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한다. 북한측 GP 상급 병사 용호(이이경)는 우연히 이 로또 용지를 줍는다. 해킹 전문 병사인 철진(김민호)은 이를 ‘육사오’라고 알려주는데 이들 역시 당첨금을 확인하고 놀란다. 한편 천우는 로또를 찾기 위해 몰래 철책을 넘어 비무장지대를 돌아다니다 매복한 용호를 만난다. 용호는 로또를 보여주며 천우에게 지분 협상을 제안한다.
<육사오(6/45)>는 57억원 1등 로또를 두고 남북한 병사들이 소유권 협상을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박규태 감독은 이 영화를 <공동경비구역 JSA>의 코미디 버전이라 소개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엔 코미디
[리뷰] 방심하다 크게 웃게 될 육사오 웃음 특공대, '육사오(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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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식탁과 밀린 빨랫거리들.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주리(심달기)가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할 찰나,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리네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중개업자는 ‘엄마가 집을 내놓았는데 몰랐냐’고 반문한다. 엄마 영심(정은경)은 주리에게 ‘편찮으신 할머니에게 가 있는 동안 자신의 김밥집을 운영해달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리의 집을 팔아버리겠다고 말한다. 장을 봐 재료를 준비하고 서툴게나마 김밥 마는 연습을 하며 주리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할 준비를 한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주리가 엄마의 김밥집으로 출퇴근을 하며 조금씩 과거의 일상을 되찾는다. 우연찮게 교통카드를 두고 온 취준생 이원(우효원)을 도와주면서 변한 일상을 공유할 새로운 인연 또한 생긴다.
<말아>는 곽민승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팬데믹 시대의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웅덩이처럼 집에 혼자 고여 있던 주리가 일을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을
[리뷰] 고민도 슬픔도, 인생의 재료 삼아 맛있게 요리하기,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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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만 들려오는 사제 앞에서 수녀 베네딕타가 정결과 청빈, 순명을 서원하고 신을 향해 찬송을 한다. 그는 축하 행렬을 뒤로한 채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수녀원의 문은 굳게 닫힌다. <기도의 숨결>은 남프랑스 주크에 자리한 노트르담 드 피델리테 수녀원의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암전 속 관객을 향한 축복의 기도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며 시작하는 영화는 다루는 소재의 속성을 반영하듯, 앞으로의 내용을 예고하듯 러닝타임 내내 수녀들의 기도와 찬송으로 가득하다. 주목할 점은 영화의 촬영과 편집 방식 또한 기도와 찬송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기도문을 인터 타이틀로 활용해 챕터를 나누고 가톨릭에서 으레 마침기도로 사용하는 영광송으로 매 챕터를 끝맺는다. 영화는 수녀원의 삶에서 독특한 흥미 요소를 애써 찾아내 중점적으로 부각하거나 그곳의 삶을 수녀원 밖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하지 않고 수녀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화면에 담아내는
[리뷰] 고요한 기도, 거룩한 찬송, '기도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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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공군을 무참히 격파했던 전투를 지시하는 명칭의 호수 파로호. 이 근처 화천에서 도우(이중옥)는 물려받은 모텔을 운영하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본다. 무력해 보이기만 하는 그에게 모텔에서 벌어진, 벌써 세 번째인 투숙객 자살 사건은 도우를 더욱 작아 보이게 한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날 노모가 실종되고, 다른 여성 투숙객이 같은 날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잖아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젊은 청년, 당돌한 다방 여종업원, 루게릭병을 앓는 미용실 주인의 남편 등 평범하지 않은 주변 인물들과 접하면서 주의가 흐트러지던 차, 경찰이 호의적이었던 태도를 거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자 도우는 당황한다.
도우의 내면은 물로 이루어진 장소에서 느끼는 여러 정서 중 고요, 침체, 불안, 어둠, 공포 등의 정념과 상통한다. 작품은 호수의 심연을 닮은 도우에게 벌어진 사태를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며 그려낸다.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인식의 혼돈을 현실
[리뷰] 여유롭고 진중한 스릴,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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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쥘리(로르 칼라미)는 매일 숨 막히는 장거리 출근길에 오른다. 늘 이웃집에 읍소하듯 아이들을 맡기는 그는 파리 시내의 5성급 호텔에서 경력직 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마침 이직하고 싶은 회사의 면접 기회를 얻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드는데, 바로 대중교통 파업이다. 시위의 여파로 도시에는 발이 묶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집까지 가는 차량이 없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늘어난 쥘리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두발로 달린다. 그야말로 ‘쥘리 런’이다. 고대하던 면접날. 쥘리는 호텔 수습 직원에게 자신의 출입증을 찍어달라 부탁해 퇴근 시간을 속이고 면접을 치르러 가는데, 이 일을 알게 된 상사가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쥘리를 압박해온다.
<풀타임>은 제목대로 시간을 꽉 채워야 겨우 삶을 보존할 수 있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여타 미디어나 브
[리뷰] 시간을 따라가는 것과 시간을 담는 것의 머나먼 거리,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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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를 평등하게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손민서씨 가족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첫째 아들인 은성호씨가 자폐인이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첫째에게 음악이 생계 수단이자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라는 엄마는 아들이 피아니스트이자 클라리네티스트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의 삶에 밀착하기를 택한다. 그러나 피아노를 치는 건 둘째 아들 은건기씨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가 형에게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기씨지만 자신이 연주하는 동안에도 형에게 집중하는 엄마가 그는 못내 섭섭하다.
<녹턴>은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성을 가진다. 헌신적인 어머니와 천재 아들의 익숙한 성공담일 줄 알았던 영화는 괄호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아들을 끄집어내 등장시킴으로써 기묘한 가족 드라마란 자아를 형성한다. 카메라 앞에 원망과 불편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건기씨는 엄마와 형이 맺은 내밀한 관계의 틈
[리뷰] 괄호 안에 숨겨져 있던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개성을 입는다,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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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이정현)은 과중한 업무에 한푼이 아쉬운 살림이지만 책상에 놓인 아들 사진만 보면 기운이 솟는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이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관할 내에서 아동 유괴 사건이 발생한다. 소은은 쇼크로 입원한 유괴된 여자아이의 엄마 연주(진서연)를 대신해 유괴범과의 전화 협상에 강제 투입된다. 첫 협상은 간신히 넘긴 듯했으나 유괴범으로부터 자신의 아들도 데려간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그는 대역이 진즉에 들통났음을 알게 된다. 아연실색한 소은에게 유괴범은 몸값 3억원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소은은 아들을 되찾기 위한 비밀 작전에 돌입한다.
목표가 뚜렷한 범죄 스릴러 <리미트>는 87분이란 간결한 러닝타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머니가 자식을 구출하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모자의 행복했던 한때를 보여주거나 악당의 전사를 설명하고 싶은 유혹을 과감히 뿌리친 결과다. 영화의 생동감은 전적으로 이정현에게서 나온다. <헤어질 결심>의 정안처럼 귀여운 어른으로 시작해 점차
[리뷰] 윤곽만 존재하는 악당 캐릭터가 내달리는 영화에 제동을 건다, '리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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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상한 구름이 흑인 가문 ‘헤이우드’가 운영하는 말 목장에 드리운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이상한 것들이 쏟아진다. 말 조련사인 OJ 헤이우드(대니얼 컬루야)는 낙마하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사망한다. 아버지 눈에 박힌 동전 한닢과 말에 박힌 열쇠가 그날의 흔적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OJ는 광고 현장에 투입된 말 ‘럭키’를 조련하지 못해 일을 망치고 말을 주피터 파크에 판다. 어느 밤 ‘고스트’란 말이 이유도 없이 밖에 나와 있고 모든 전자기기가 꺼진다. 그리고 구름 뒤에서 나타난 원반 형태의 비행접시. 여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키키 파머)는 오빠에게 이것을 찍어 돈을 벌어보자고 제안한다.
<놉>은 구름 뒤에 정체를 감춘 ‘그것’을 둘러싼 기묘한 현상을 그린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겟 아웃> <어스>를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신작 <놉>에서 하늘이란 장소를 택
[리뷰] 부정할수록 긍정하게 되는 매혹적인 그것과 그것에 관한 기록 영화, '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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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60대 중등 종교 교사 낸시 스토크(엠마 톰슨)는 모범적인 아내상과 어머니상은 물론 여성상까지 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녀의 일탈 없는 생활은 남편이 죽고 나서도 계속될 것으로 짐작됐으나 사별 2년 뒤 낸시는 일평생 느낀 척만 해왔던 성적 만족을 제대로 얻고자 섹스 서비스를 신청한다. 그러나 그녀의 모험심은 예약 당일, 서비스 제공자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를 만나기도 전에 사라진다. 다행히 능수능란한 청년 직업인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고객을 경청과 성의 있는 답변으로 안심시킨다. 덕분에 첫 이용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낸시는 다음 약속을 잡고, 리오에 대한 선 넘는 호기심을 키운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가 주는 가장 큰 감흥은 뜻밖에도 안정감이다. 영화는 관습에 속박돼 자신의 결핍을 방치한 채로 살아온 낸시가 리오와의 대화에서 이완과 충만의 미덕을 배워가는 과정을 시간을 들여 담아냄으로써 심리 치료극의 성격을 띤다. 자기 몸에서 단점을
[리뷰] 뒤만 보게 했던 내 몸을 정면으로 돌려세우기까지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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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새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마침 그곳을 자각하는 우리가 거기 있을 테니까.” 일종의 제사로 쓰인 이 두 문장은 영화의 제목 ‘모퉁이’가 어떤 장소를 지칭하는지 말해준다. 그곳은 모종의 운명이나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다다르게 되는 곳이 아닌, 수없이 지나치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다가 우리가 알아채는 순간에야 존재하는 곳이다. 바로 이 모퉁이에서 영화과 졸업생인 성원(이택근), 중순(하성국), 병수(박봉준)가 만난다. 세 사람, 특히 성원과 병수는 거의 10년 만에 만났음에도 서로에게 받은 상처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지 못한 성원은 과거에 자신의 이야기를 훔쳐 영화로 만들었던 병수에게 적의를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중순이 이 사이에 끼어 있다.
세 사람이 마주친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그들이 학생 때 자주 찾던 단골 가게가 있다. 이 가게와 근처 골목에서 세 사람은 함께, 또는 둘씩 짝을 지어 예전에 끝냈어야 할 말들을 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리뷰] 말들은 이미 그곳에 있고, 우리는 자꾸만 그곳을 지나쳐버린다 ‘모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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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식의 파격. <카우>는 형식적으로 다큐멘터리지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는 궤를 달리한다. <피쉬 탱크>(2009),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로 남다른 관점을 선보였던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은 편견 없는 카메라의 힘에 기대어 또 한번 자신의 독특한 시선의 위력을 증명했다. 내용은 별다를 것 없다. 영국 켄트의 한 낙농장에서 사육되는 젖소 루마와 갓 태어난 아기 젖소의 일생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그게 전부다. 아무런 설명도 내레이션도 없이 관객의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화면은 얼핏 상황을 그대로 찍어낸 관찰 카메라나 CCTV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니멀한 화면,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는 장면들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찍은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다. 서사의 토대가 되는 극적인 구성과도 다르다. 이것은 차라리 젖소가 직접 전하는 ‘홈비디오’에 가깝다.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은 서사적 관점이나 낭만적 시선들을 카메라로부터 철저히 배
[리뷰] 무형식의 파격. 전지적 동물 시점으로 다시 기록한 홈 비디오의 괴력. ‘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