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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부터 짚고 넘어가죠. 만지기 있기, 없기?” 여기, 한 근육질의 미남자가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마침내 ‘그곳’을 향할 때, 객석 곳곳에서 소프라노 비명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건 영화 속 여성뿐만이 아닐 것이다. 매끈하게 재단된 남성의 육신을 감칠맛나게 훑는 카메라는,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장박동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직 마이크>는 플로리다 템파 지역의 스트립 클럽 익스퀴짓에서 일하는 남성 스트리퍼들의 이야기다.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남자, 구릿빛 남자, 야성적인 남자, 노련한 남자, 인형 같은 남자들이 티팬티만 입고 여성들의 뜨거운 하룻밤을 위해 기꺼이 ‘수컷 쇼’를 벌인다. 이들 가운데서도 ‘매직 마이크’라 불리는 마이클(채닝 테이텀)은 단연 군계일학이다. 밤이 되면 익스퀴짓의 얼굴마담으로 변신하는 그는 낮 동안 공사장 인부로, 가구 제작자로 일하며 스트리퍼 너머의 미래를 꿈꾼다. 어느
‘무대에서 남자가 되는 법’ <매직 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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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속편이다. 아무리 <아이스 에이지>가 <슈렉>과 함께 대표적인 CG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고는 하지만 속편은 조금 무리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3편에서는 빙하기로 사라진 공룡까지 등장시키며 시리즈의 생명을 이어나갔지만 더이상 무슨 이야기를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제작진은 기막힌 꼼수를 찾아냈다. 대륙이동설이다.
영화에 따르면 대륙이동을 불러일으킨 건 다람쥐 스크랫이다. 이 집념의 다람쥐는 도토리 하나를 필사적으로 쫓다가 지구의 내핵을 건드려 대륙들이 하루아침에 쪼개져 나가도록 만든다. 조금 위험한 설정이다. 만약 부모 관객이라면 아이들에게 ‘대륙이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몇 억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고 꼭 설명을 곁들여야 할 거다. 어쨌든 다람쥐 하나 때문에 대륙과 바다가 갈라지는 대재앙이 일어나자 <아이스 에이지>의 오랜 주인공 매머드 매니, 검치호 디에고, 나무늘보 시드는 작은 빙하에 매달려 망망대해로
기막힌 꼼수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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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횟집 수족관으로 고등어 ‘파닥파닥’이 잡혀온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수족관 안에서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넙치’가 양어장 출신의 다른 생선들을 통제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다. 놀래미, 줄돔 같은 다른 생선들이 나름의 생존비법을 알려주지만 자유롭게 바다 속을 가르던 ‘파닥파닥’에겐 희망을 포기한 좁은 수족관 속 세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올드넙치’ 역시 부질없는 탈출 시도를 계속하는 ‘파닥파닥’의 존재가 거슬리긴 마찬가지다.
‘물고기’ 영화가 아니라 ‘생선’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신선하다. <파닥파닥>의 생선들은 <니모를 찾아서>의 익숙하고 깜찍한 물고기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애니메이션이 지닌 상징과 우화의 힘을 십분 활용한 이 작품에는 예쁜 관상용 물고기 대신 횟집 수족관에 갇힌 식용 생선들의 피곤한 표정이 담겨 있다. 당연히 이야기는 무거워지고 그만큼 우화도 짙어진다. 사회의 축소판인 수족관,
‘생선’ 영화 <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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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게임을 하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인은 메말라간다.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로 자란 한 소년과 애정을 전하는 데 서툴렀던 한 여인을 통해 모성의 다른 쪽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에바(틸다 스윈튼)는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당황시키는 건 자신을 향한 아들 케빈(이즈라 밀러)의 이유없는 적개심이다. 에바가 다가가려 할수록 케빈은 점점 더 교묘하게 그녀를 괴롭히고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급기야 더이상 에바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무시무시하다. 서늘한 정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완성도가 소름 돋을 정도다. 말랑한 가족영화들이 켜켜이 쌓아올린 모성 신화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난도질하는 이 영화는 손대면 베일 듯 섬뜩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불편함에도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할 기이한 마력 또한 함께한다.
데뷔작 <쥐잡이>를 통해 이름을
손대면 베일 듯한 섬뜩함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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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둑 다섯이 마카오에 간다. 거기서 중국 도둑 넷을 만나 한팀을 이룬다. 마카오 박(김윤석)이라는 인물이 이 팀을 조직하고 주도한다. 마카오의 대형 카지노에 있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값비싼 보석을 훔쳐내기 위해 뭉친 팀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각자 속사정이 따로 있다. 누군가는 팀원 중 하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왔고 누군가는 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고 다른 걸 챙기려 들고 누군가는 나누지 않고 혼자 통째로 가지려 한다. 그러므로 <도둑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카지노를 터는 이야기인 <오션스 일레븐>과는 사실 차이가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똘똘 뭉쳐 물건을 훔쳐내는 낭만적 공동체의 이야기이고 <도둑들>은 같이 모여 물건은 훔치지만 의심과 음모가 횡행하는 배신자들의 이야기다.
한국과 중국 배우들이 모여 한팀을 이루고 그 팀의 동력을 음모와 배신이라는 긴장감으로 움직이게 하는 발상 자체는 재미있다. 마카오 박, 뽀빠
의심과 음모가 횡행하는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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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남은 목숨을 맞바꿔야 했던 셰에라자드만큼 공포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주인공이 어디 있을까. 민규동 감독은 그녀가 풀어낸 <천일야화>의 액자구조를 빌려와 영화 속 영화 4편을 열고 닫는다. 서걱서걱, 칼질 소리에 기척이 든 여고생(김지원)은 정체불명의 사내(유연석)에게 저당 잡힌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정범식 감독의 <해와 달>이다.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는 오누이에 관한 전래동화를 초고층 아파트촌에 입주시킨 이 영화는 문(門)과 선(線)으로 공포를 짓는다. 열린 문틈 사이로 공포는 침투하고, 관객은 어린 선이(김현수)와 문이(노강민)를 따라 문 뒤에 숨었다 다음 문으로 달음질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악몽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어른들의 분노 혹은 죄의식임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악질적 보복담에 머무르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임대웅 감독의 <공포 비행기
목숨과 맞바꾼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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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람과 불>은 현재 한국이 앓고 있는 지독한 ‘미국병’의 근원을 찾아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되짚는다. 대한민국에서 미국이라는 표상은 자유, 민주주의, 기독교, 정의 등 홀로 있으면 바람직하기 그지없는 기표들과 결합하는 순간 민족주의, 신자유주의, 수구, 우익, 기득권과 같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기의들을 파생시킨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기록영상과 대한뉴스, 국정 홍보 영화 등 기존의 영상자료들과 현재 그 정신을 이어받은 행사들에 관한 촬영분을 교차편집하여 화면 안에 있는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비틀어 재기술한다. “어떤 숏도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관계가 마치 세계 자체가 그러하듯 중층적이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미로와 같은 것이길 바란다”는 김경만 감독의 발언은 하나의 숏에 담긴 내용보다는 숏과 숏의 연결을 통해 의미가 생성된다고 믿었던 ‘소비에트 몽타주’의 미학적 원칙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지독한 병의 근원 <미국의 바람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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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의 인력 수요가 증가하자 많은 일본인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1920년, 전체 하와이 인구 중 43%가 일본인일 정도로 일본인을 포함한 이민자 수가 급증하였고, 이에 하와이는 새로운 이민법을 도입해 추가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게 ‘일본인 하와이 이민사’를 꺼내든 까닭은 레오 요시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가 (영화에서 거의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힐링 무비’가 아니라 사실은 하와이에 고립된 일본인 이민자들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달 무지개를 보기 위해 여자친구와 하와이 호노카아 마을에 온 레오(오카다 마사키)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이곳으로 이사 온다. 그 마을엔 레오에게 밥 지어주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비 아줌마(바이쇼 지에코), 여배우들을 동경하는 할아버지 코이치(2011년 세상을 떠난 기미 고이시), 극장에서 빵을
그들의 달 무지개 <하와이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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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로비스트 한 상무(조성하)는 부하직원 영인(박진영)에게 로비자금 전달을 명한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 트렁크에 500만달러가 든 줄도 모른 채 검은돈을 운반하던 영인은 도중에 괴한에게 습격당한다. 정신을 차린 영인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유서를 발견하고, 형처럼 따르던 한 상무가 자신을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인은 500만달러를 미끼로 한 상무를 유인해 기업의 비리를 세상에 고발하려 한다. 한편, 날라리 여고생 미리(민효린)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들고 나갈 악기를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시도한다. 샤워 중인 깡패 필수(오정세)의 소지품을 모두 털어 도망간 미리는 본의 아니게 다이아몬드 도둑이 되어 필수 일당에게 쫓긴다.
두개의 추격전은 결국 영인과 미리가 같은 배를 타면서 하나로 모인다. 여기에 조폭 조 사장(조희봉) 일당과 경찰이 따라붙으면서 추격전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데 이 추격전에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긴장감이다. 추격전의 쾌감이 영화적으로 전
검은돈과 다이아몬드 <5백만불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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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풋풋한 처녀와의 뜨거운 밤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소.”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엘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는 친애하는 ‘뚜쟁이’ 로사 카바르카스(제랄딘 채플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이런 딱한 양반.” 청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늙음을 연민하는 두 늙은이들 앞에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가여운 소녀(파올라 메디나)가 나타나고, 그렇게 후텁지근한 밤하늘 아래 노인과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이후 노인과 소녀가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현재 속으로 노인이 쓰는 일요칼럼과 그의 과거의 잔영이 얽혀들면서, 영화는 한 노인의 절절한 연애소설이자 동시에 담담한 회상록이 되어간다.
감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일흔일곱살에 발표한 원작 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그 결과, 또 한편의 ‘소설 읽어주는 영화’가 완성됐다. 문제는 그 ‘충실함’이 종종 불필요한 독백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적인 분위기만으로 충분할 순간에, 영화는 노인의 입을 빌려 소설에 나오는
‘소설 읽어주는 영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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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가정을 장식해온 거의 유일한 악기였던 피아노가 언젠가부터 서서히 밀려나고 그 자리에 유행처럼 새로운 악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카리나가 그랬고 우쿨렐레도 그러하다. 우쿨렐레는 기타처럼 생긴 하와이에서 온 4줄 현악기이다. 하지만 이 영화, <우쿨렐레 사랑모임>을 보는 데 이런 정보는 몰라도 상관없다. 악기 소리를 듣는 순간,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선가 이 독특한 우쿨렐레의 소리를 들어봤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우쿨렐레 사랑모임>은 제목 그대로 우쿨렐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우쿨렐레를 시작한 계기는 모두 다르지만 단 하나, 우쿨렐레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친다. 영화 속 누군가의 인터뷰처럼 우쿨렐레는 이들에게 하와이 해변에 누워 칵테일을 한잔 마시는 듯한 ‘슬로 라이프’를 실현해줄 수 있는 악기인 것이다.
영화는 우쿨렐레 동호회인
알로하! <우쿨렐레 사랑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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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삶의 이유로 삼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다. 10대 때 만나 줄곧 서로 사랑하며 살아온 남편에게 갑자기 버림받은 여자 카롤(헬렌 플로랑)은 말한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해. 난 평생 그 사람만 사랑했어. 이유를 찾지 못하면 내가 죽어.” <카페 드 플로르>는 그처럼 꿈에도 대안을 상상한 일 없는 절대적 러브스토리 둘을 따라간다. 21세기 몬트리올에서는 성공한 DJ 앙투완(케빈 파랑)이 소년 시절부터 운명으로 믿어온 카롤과 행복하게 결혼해 두딸을 두고 산다. 영화의 내레이터는 그를 “행복할 수밖에 없고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자”라고 부른다. 한편 40여년의 시간 너머 1970년대 파리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들 로랑(마랭 게리에)을 하루라도 오래 살게 만드는 것이 인생 목표인 홀어머니 자클린(바네사 파라디)이 분투하고 있다. 영화는 로랑을 “행복할 수 없으며 그 사실조차 모르는 소년”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처럼 배신
절대적 사랑이야기 <카페 드 플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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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멤버 중에서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의 이름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작사·작곡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음악의 성격을 규정했으며 인기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나 존 레넌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리드 기타리스트 혹은 매카트니와 레넌 사이의 중재자 또는 그들 이후의 삼인자가 조지 해리슨이었다. 그가 비로소 자기의 음악적 활력을 펼친 건 비틀스가 결성된 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조지 해리슨은 자기가 만든 노래들이 발표할 길은 없고 쌓여만 가는 것에 조바심냈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그의 독창적인 음악적 세계가 점차 인정받게 된다. 그의 노래 <Something>을 두고 엘튼 존은 “지금까지 쓰인 역사상 최고의 연가다.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들려준다”고 극찬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핸드 메이드’라는 제작사를 차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테리 길리엄의 <시간 도둑들>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조지 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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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나 코언 형제를 흉내낸 가장 나쁜 예를 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이 영화를 권하겠다. 내용은 간단하다. 캣이란 가명을 쓰는 콜걸 카탈리나(파즈 베가)가 우연히 정치권 파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파티를 주최한 무기 딜러가 고용한 전문 암살자 헬렌(재닛 맥티어), 그리고 마침 탐정사무소를 차린 앤소니(스콧 메크로위즈)와 줄리안(알폰소 맥올리)의 출현. 이들과 함께 얽히고설킨 캣의 도주가 시작이다.
<캣 런>은 코믹스릴러다. 쫓고 쫓기는 기본 얼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감독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다.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잦은 분할화면, 다종다양한 캐릭터의 나열, 과도한 욕설과 잔인한 폭력의 사용이 버라이어티하게 전개된다. 진중한 앤소니와 에디 머피를 카피한 줄리안의 조합이 버디무비의 구성까지 더해준다. 전반적으로 어떤 식의 진지한 시도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유치함 일색의 상황과 대사들이 되레 고도로 의도한 결과가 아닐까 의심해야 할 정도다.
거침없이 쫓고 쫓기다 <캣 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