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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메이커>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과 <국가대표>(2009) 이후 지난해의 <글러브>와 <퍼펙트 게임> 등 이른바 ‘스포츠 휴먼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다. 굳이 그것이 실화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쓰러져도 그라운드 위에서 쓰러진다’ 혹은 ‘선수 생명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나는 꼭 끝까지 달릴 거야’류의 투혼의 스포츠영화다. 그런 가운데 빚에 시달리는 선수의 모습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자선수들끼리 갈등하고 화해하는 팀 분위기는 <국가대표>, 그리고 어딘가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마라토너의 모습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을 중심에 놓고 기존 스포츠영화들의 공식들을 영리하게 벤치마킹하는 전략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김명민의 영화라는 점이다. 홀로 버티고 선 ‘원톱’이 아닌 영화를 감히 상상하기 힘든 그의
폭주하는 감정에 페이스 메이커를 <페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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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은 지난 2007년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을 영화화했다. 대학입시 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김응수)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한다. 이후 김경호가 체포되고 담당판사의 피묻은 셔츠 등이 증거로 제출되지만 그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김경호는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며 박준 변호사(박원상)와 호흡을 맞춰 법정 투쟁을 계속한다.
<부러진 화살>은 지난해 의외의 흥행작 <도가니>처럼 법정에서 어처구니없이 종결된 사건에 대한 재점검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유사하다. 하지만 단선적인 자극의 파괴력보다 캐릭터 자체의 힘을 과감하고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진 화살>은 보다 은근한 재미가 있다. 말하자면 <부러진 화살>은 무
관객이 영화 내내 함께 싸운다 <부러진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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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엔딩 스토리>의 두 남녀는 죽음을 선고받는 자리에서 만난다. 그것도 똑같은 뇌종양 판정이다. 동생 부부에게 얹혀사는 백수인 동주(엄태웅)와 모든 미래를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하던 은행원 송경(정려원)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연인이 된다. “모든 의사가 말하듯”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은 전국을 돌며 데이트를 즐긴다. 죽기 전에 바다나 보자는 식의 체념이 아니다. 동주는 “행운 총량의 법칙”에 따라 죽기 전에 쏟아질 행운을 기대하며 전국의 로또 명당에서 번호를 고르고, 송경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화장장, 수목장 등 온갖 종류의 장례식장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어차피 누군가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혼자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시한부 연애. 죽음에 초연해 보이는 두 사람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지는 못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는 죽음을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게다가 로맨틱코미디의 소재로 설정한 전복적인 영화다. 설정의 힘
설정의 발칙한 기운 <네버 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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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왜 사신 거예요?”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던 동물원의 주임 사육사 켈리 포스터(스칼렛 요한슨)가 관객을 대신해 묻는다. 벤자민 미(맷 데이먼)가 우물쭈물 대답한다. “딸이 좋아하기에….” 사실 그는 동물원은커녕 자신이 키우는 개 한 마리에도 별 관심 없던 어설픈 가장이었다. 하지만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딛고 일어서보겠다며 덜컥 동물원이 딸린 집을 사버렸던 것이다. 막상 동물원을 재개장하자니 돈은 밑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가고, 그로테스크한 드로잉으로 엄마를 잃은 슬픔을 표출하는 아들과의 불화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왜, 굳이, 동물원을 산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제대로 된 답을 던져주지 못한다. 그의 어린 딸이 “우리가 동물원을 샀어요”라고 반복해 외치는 말도 공연하게 들린다.
동물도감이 빼곡한, 따뜻하고 가벼운 가족 드라마에 정색할 필요는 없지만 카메론 크로가 1996년에 만들었던 <제리 맥과이
절박한 제2의 인생이 필요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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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일본 북규슈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다섯 남자들은 오로지 이것에만 관심이 있다. 바로 가슴이다. 다섯명 모두 남자 배구부 소속이지만 배구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 후루야 미노루의 <이나중 탁구부> 주인공들이 배구부로 옮겼다고 해도 믿을 법한 이 아이들은 부실에 모여 도색잡지 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한심한 배구부는 ‘발리볼’부가 아닌 ‘바보’부라 불린다. 이렇게 유명무실한 배구부 아이들이 투지에 넘치는 아이들로 변하는 계기가 생긴다. 새로 부임한 미카코 선생님(아야세 하루카)이 배구부 지도교사가 되면서 아이들과 엉뚱한 약속을 했다. 대회에 출전해서 1승을 하면 가슴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가슴 배구단>은 유쾌한 일본판 <몽정기>다. 중학교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표출하는 에피소드가 웃음을 담당한다. 이웃 중학교 배구부에 전략 탐사를 갔다가 레오타드를 입은 리듬 체조부의 등장에 넋을 놓기도 하고, 힘든 훈련으로 지칠 때는
유쾌한 일본판 <몽정기> <가슴 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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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안무가 롤랑 프티가 찰리 채플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발레 <Charlot Danse avec Nous>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수오 마사유키. <쉘 위 댄스>의 연출가로도 유명한 그는 <댄싱 채플린>을 통해 발레가 영화로 옮겨지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연습이 진행될수록 댄서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누그러지는 묘한 순간과 의상 제작과정 등을 상세하게 다룬 제작기다. 매년 17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찰리 채플린의 새로운 영혼이 된 발레리노 루이지 보니노가 출연하는데 그의 파트너는 감독의 아내이자 <쉘 위 댄스>에서 이미 얼굴을 알린 발레리나 구사카리 다미요다. 전반부의 초점은 롤랑 프티와 수오 감독의 <댄싱 채플린>에 대한 회의로 수렴된다. 발레와 영화라는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은 때때로 대립하고 이해하며 새로운 채플린을 만들어간다. 작품의 후반은 마침내 탄생한 발레 공연이다. <
새로운 채플린의 탄생 <댄싱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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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이야기들은 왜 일부러 ‘동화’라고 구분해 부르는 걸까. ‘아이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까닭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가 굴뚝 타고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갔다고 믿는 어린 마음은 좁은 방 안에 피터팬을 날아다니게 하고, 언제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이미 단단히 배낭을 꾸리고 있다. 동화를 믿는 사람에게 꿈은 무엇보다 빛나고 생생한 현실이기에 우리가 동화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피어나고 동화 속 인물들도 생명을 얻는다. <엘리노의 비밀>은 이러한 동화의 힘을 일깨워주는 순수한 믿음에 가슴 따뜻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다니엘은 할머니 엘리노가 읽어주는 동화를 제일 좋아하는 일곱살 소년이다. 매년 여름 가족과 함께 할머니가 사는 바닷가 케리티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소년을 설레게 하는 건 늘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이윽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손녀딸 안젤리카에게는 예쁜 도자기
잃어버린 동화의 마력 <엘리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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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전화 수화기에 고집스럽게 귀를 대고 있다. 그는 결번을 알리는 신호음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시 뒤 소년은 보육원 선생님과 몸싸움을 벌인 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카메라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리듬, 다르덴 형제의 영화다. 다르덴의 인물들은 주로 생존문제 때문에 일상의 혈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혈투의 한가운데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아마도 이 소년은 처음부터 생존이 아닌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거의 유일한 다르덴의 인물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토마 도레)의 슬픔과 절망을 각별히 지켜보도록 만든다. 시릴은 소식이 끊긴 아빠(제레미 레니에)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자주 보육원에서 도망친다. 그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릴은 우연히 미용실 주인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를 만나고, 그녀는 시릴의 주말 위탁모가 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소년 <자전거 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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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미로스의 성스러운 별>(이하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이하 에드, 박로미)과 동생 알폰소 엘릭(이하 알, 구기미야 리에)은 여전히 여행 중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는 아라카와 히로무의 원작과 그간 방영된 TV애니메이션 1, 2기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숨겨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라는 소리다. 제작사인 본즈 스튜디오가 이런 이야기를 극장판으로 내세운 이유는 원작 만화와 TV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미 각각의 결말을 본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2005년 공개된 <강철의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가 선택한 무대는 국경도시 테이블 시티다.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계곡에는 사라진 왕국 미로스인들이 살고 있다. 탈옥수를 쫓아 이곳에 오게 된 에드와 알은
팬들만을 위한 숨겨진 에피소드 <강철의 연금술사: 미로스의 성스러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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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에이치로가 그린 초대박 히트 만화 <원피스>는 2억5천만부의 단행본 판매고를 자랑하는 콘텐츠다. <원피스>는 1997년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64권의 단행본이 발간됐고 공식 가이드북만 5권이 나올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TV애니메이션은 1999년부터 꾸준히 전파를 타고 있고 2012년 현재 17기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방송 중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모두 11편이 제작됐다. 2000년 이후 매년 제작되어 오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2010년 한해를 거르게 되는데 2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원피스 3D: 밀짚모자 체이스>(이하 <원피스 3D>)다.
2년의 기다림 끝에 탄생한 <원피스 3D>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루피(강수진)의 상징과도 같은 밀짚모자를 도둑 맞고 이를 쫓는 과정을 그린다. 루피와 친구들은 모자의 행방을 찾다 거대한 독수리가 물고 있는 모자를 발견한다. 밀짚모자 해적단의 사우전드
루피의 밀짚모자를 찾아서 <원피스 3D: 밀짚모자 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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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뒤 살해당한 쌍둥이 누나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국가대표 레슬러도 포기한 월터(애시튼 커처). 그는 어머니(캐시 베이츠)를 따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총기살해로 남편을 잃은 린다(미셸 파이퍼)를 만난다. 월터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재판 때문에, 린다는 자꾸 엇나가는 청각장애인 아들 클레이(스펜서 허드슨) 때문에, 상실의 상처에 더욱 시달린다. 우연히 법원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린다와 가까워진 월터는 클레이에게 레슬링을 가르쳐주고 두 남자는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음에도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다시 밝아진 클레이를 보며 월터와 린다가 사랑을 시작할 때 월터는 누나를 죽인 유력한 용의자가 무죄판결을 받게 되어 혼란에 빠진다. 상실의 그늘 안에서 가까워진 세 사람은 그 그늘로 인해 다시 멀어진다.
‘소지품’을 뜻하는 제목처럼 월터는 누나의 레코드판과 뮤직박스, 린다와 클레이는 남편이 수집하던 권총을 보며 그리움과 슬픔을 쉽게 떨쳐버리지
상실을 지나 희망으로 가는 법 <퍼스널 이펙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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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강도로 복역 중인 아드리안(알베르 뒤퐁텔)은 아내와 하나뿐인 딸을 끔찍이 아끼는 가정적인 남자다. 몇 개월 뒤면 출소할 예정인 그는 자신보다 조금 앞서 출소하게 된 감방 동료 모렐(슈테판 드박)에게 가족을 부탁한다. 그러나 그 직후 한 남자가 찾아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소심하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모렐이 사실은 소녀들을 강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것. 이윽고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자 불길한 예감에 탈출을 감행한 아드리안은 곧 아내의 시신과 마주하고 모렐의 조작으로 누명까지 쓰게 된다. 이제 행방을 알 수 없는 딸을 구하는 한편 경찰의 추격까지 따돌려야 하는 아드리안의 절박한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리암 니슨의 <테이큰>으로 출발해서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로 마무리한다. <테이큰>과 <13구역>의 흥행 이후 프랑스에서는 유사한 영화가 다수 쏟아져 나왔는데 이 영화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테이큰>보다
추격자인 동시에 도망자 <도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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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이크누스와 부경고사우루스. 한글도, 외국어도 아닌 두 단어의 공통점은? 모두 국내 지명이 사용된 공룡 이름이다. 전남 해남군에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해남이크누스는 하늘을 나는 익룡이고, 부경대팀이 골격 화석을 발견한 부경고사우루스는 기린처럼 목이 긴 초식 공룡이다. 이 설명만으로는 두 공룡의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를 보면 두 공룡뿐만 아니라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8천만년 전 백악기 시대의 한반도의 풍경을 3D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다.
육식 공룡의 제왕이라 불리는 타르보사우루스 가족의 막내 점박이는 어릴 때 가족을 잃었다. 제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티라노사우루스 ‘애꾸눈’의 습격에 당한 것이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공룡 세계에서 점박이는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숨어지내야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박이의 몸은 누구와 대적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커졌고, 짝을 만나 세 마
백과사전 속 공룡, 그 이상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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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신화가 되는 영화가 있다. <원스>가 그랬다. 2007년 선댄스가 선택한 이 작은 음악영화는 셀 수 없는 수상 명단을 자랑하며, 평단과 관객에게 만족을 안겨줬다. 끊임없이 성공 요인이 분석됐다. 거창한 스토리도, 극적 장치도 없는 뮤지션의 사랑 이야기. 고작 고장난 전기청소기로 이룬 이 사랑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기도 전에 <원스>는 이미 스크린을 벗어나 있었다. 아일랜드의 거리가, <Falling Slowly>의 고독한 선율이, 두 뮤지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이 모든 것이 영화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되어 있었다.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의 ‘진짜 연애’가 이 분위기에 일조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원스 어게인>은 아예 스크린 밖으로 비집고 나온 두 연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다큐멘터리다. 일종의 ‘원스: 그 뒤 버전’쯤의 부제를 붙이면 좋을 것 같다. 3명의 공동감독이 참여했는데, 그중
헤어짐의 노래 <원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