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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나 <컨테이젼>의 스티븐 소더버그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헤이와이어>는 실제 미국 종합격투기(MMA) 스타 출신 지나 카라노를 원맨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영화다. 그렇다고 <오션스> 시리즈의 그와 겹쳐보는 것도 딱히 큰 도움이 안된다. 오래전 소더버그의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한 <조지 클루니의 표적>이나 <오션스> 시리즈처럼 고전 장르영화의 쾌감을 산뜻하게 보여주는 작품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첩보액션 장르라는 점에서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본 시리즈다. 바르셀로나와 더블린, 그리고 뉴욕과 샌디에이고를 오가며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이 본 시리즈의 여성 버전이다.
말로리 케인(지나 카라노)은 1급 여성 첩보요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아론(채닝 테이텀)과 임무를 수행하던 그녀는 억류돼 있던 중국 기자를 구출해내는 데 성공하고, 케네스(이완 맥그리거)의 지시로 또 다른 극비 임무를
본 시리즈의 여성 버전 <헤이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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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가시>는 생소해도 ‘연가시’란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연가시란 곱등이, 메뚜기, 사마귀 등과 같은 곤충에 기생한 뒤 어느 정도 자라면 숙주를 물가로 데려가 자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기생충을 말한다. 영화는 신경조절물질로 숙주를 조정해 자살시키는 독특한 생존방식 덕분에 화제가 되었던 이 끔찍한 기생충이 어느 날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출발한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재혁(김명민)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달린다. 한때 강의도 했던 박사였지만 동생 재필(김동완)의 꾐에 넘어가 있던 재산 다 날리고 가족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영업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 하천에 일제히 변사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 원인이 인간에게까지 기생하는 ‘변종 연가시’ 때문임이 밝혀진다. 짧은 잠복시간과 치사율 100%의 기생충의 출현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정부는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등 과감한 대처에 돌입
가족, 재난, 그리고 광기 <연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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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가장 뻔한 클리셰를 제목으로 쓰는 사람들의 의도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이런 뻔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서재의 시체>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뻔해 보이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로 <캐빈 인 더 우즈>가 여기에 속한다.
제목만 봐도 <캐빈 인 더 우즈>는 슬래셔영화의 가장 고루한 공식으로 시작한다. 다섯명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숲속 오두막으로 간다. 가는 길에 그들은 음습한 경고를 하는 주유소 노인을 만나지만 그를 무시한다. 도착한 날부터 학살이 시작되는데, 최초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은 당연히…. 하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이들의 뻔한 이야기 뒤에 무언가 다른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예고편에도 나오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오두막과 평범해 보이는 좀비 살인귀들 뒤에는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정
R등급 장르 축제 <캐빈 인 더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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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인상적인 연인이다. 둘은 서로를 묶고 있는 운명의 끈을 놓지 못한 채 격정적인 사랑과 맹렬한 파국의 순간을 함께한다. 자신을 학대한 인물에게 처절한 응징을 하고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히스클리프의 어두운 집념과 구둣발로 남자의 얼굴을 짓밟고 죽어가면서도 연인의 삶을 놓아주지 않는 캐서린의 불같은 열정은 한패가 되어 보는 이의 심장을 뒤흔든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인 <폭풍의 언덕>은 서른살에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언덕 위해 세워진 저택(워더링 하이츠)에서 벌이지는 격정의 서사는 영화화된 것만 8번으로 알려져 있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고아 히스클리프(제임스 호손)를 집으로 데려와 자식처럼 키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처음부터 자신을 싫어하는 힌들리(리 쇼), 첫눈에 호감을 표시하는 캐서린(카야 스코델라리오)과 형제로 지내면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간으
팜므파탈 그녀의 비극적 사랑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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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대신 쾌락을 느끼다 죽게 하는 독약이 있다. 광둥오페라 <옥의 사형집행인>은 이 독약을 발명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월극이라고도 불리는 광둥오페라는 경극과 오페라를 결합한 무대극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로 결정했다면 감독은 이야기의 어떤 점에 가장 이끌렸을까. <옥의 사형집행인>을 원작으로 한 <레드나잇>을 보면 감독은 망상에 빠진 채 살인에 심취한 여성 캐릭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캐리(오가려)는 자신이 전생에 ‘옥의 사형집행인’이라 믿는 여자 살인마다. 비닐로 입을 막은 뒤 칼로 배를 찌르는 등 수많은 여성들을 밀실로 유혹해 제법 잔인하게 죽인 그다. 어느 날 그는 독약이 담긴 골동품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는다. 그 골동품은 프랑스 여자 캐서린(프레데릭 벨)이 자신의 애인을 죽인 뒤 훔친 것이다. 캐서린은 골동품을 비싼 값에 팔아 달아나려고 하고, 캐리는 대리인인 산드린(캐롤 브라나)을 통해 골동품을 챙긴
독약이 담긴 골동품 <레드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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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하라다 도모요)의 첫사랑은 초등학생 때 동네 도서관에서 읽은 그림책 <달과 마니>의 주인공 마니였다. 마니는 태양 때문에 마르고 쇠약해진 달을 위로하며 “네가 빛을 받아서 또다시 누군가를 비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해주는 속깊은 소년이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마니를 찾다 지친 리에는 마니는 없다고 결론내린다. 그런 그녀에게 미즈시마(오이즈미 요)가 손을 내밀고, 홋카이도 쓰키우라에 정착한 두 사람은 ‘카페 마니’를 연다. 미즈시마는 빵을 굽고 리에는 커피를 내리는 카페 마니 2층에는 여행객을 위한 아늑한 침대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아침마다 들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커피 한잔을 마시는 마을 회관 역할을 한다. 넓은 호숫가에 자리한 카페 마니는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외진 곳이라 낯선 손님은 거의 없다. <해피 해피 브레드>는 카페를 거쳐가는 낯설고 특별한 손님들이 들려주는 세 가지 사연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손님 가오리는
유별나지않아 특별한 인생의 답 <해피 해피 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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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는 어느 날 실험실의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린 뒤,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과 같은 거미의 초능력을 갖게 된다. 새로 생긴 능력에 도취되어 오만방자해 있던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그를 키워준 삼촌 벤의 죽음.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의 유언을 따르고 삼촌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피터는 가면과 유니폼을 입고 뉴욕의 자경단원이 되는데, 그의 새 이름은 바로 스파이더맨…. 이미 그런 내용의 영화를 최근에 한편 보았다고? 하긴 그렇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2002년작이니,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딱 10년 만의 리부트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나왔을 때, 이렇게 빨리 리부트가 나와도 되느냐고 다들 걱정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팀 버튼의 <배트맨>은 88년작,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과 로빈>은 97년작이었다.
10년만의 리부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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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곧 여느 때와 같은 자신의 얼굴이란 것을 인지하며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페이스 블라인드>는 자신의 모습을 비롯해 가족, 친구, 애인의 얼굴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데서 오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친구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밤, 애나(밀라 요보비치)는 우연히 연쇄살인마의 범죄현장을 목격한다. 자신을 쫓는 범인을 피해 도망가던 그녀는 다리 밑으로 추락하면서 난간에 머리를 부딪히고 그 충격으로 ‘안면인식장애’를 앓게 된다. 살인마는 애나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와 그녀의 애인, 친구들까지 위협하고 애나는 떠오르지 않는, 아니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 살인마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그런 애나는 형사 케레스트(줄리언 맥마혼)와 범인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처한 현실에 좌절감만 느낄 뿐이다.
얼핏 <페이스 블라인드>는 보이지 않는 살인마에
보이지 않는 살인마 <페이스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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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얏타맨은 추억의 이름이다. 물론 얏타맨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얏타맨>은 지난 1977년, 지금은 사라진 방송국 <TBC>를 통해 <이겨라 승리호>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오랫동안 한·일 양국에서 추억의 상품으로만 남아 있던 <이겨라 승리호>는 지난 2009년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케시가 실사영화로 만들어 애니메이션 원작영화로는 드물게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미이케 다케시의 영화와 달리 <뉴타입 히어로 얏타맨>은 완벽하게 유년 관객을 타깃으로 해 완성한 애니메이션이다.
토이토이 왕국은 장난감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나라다. 그런데 왕국의 실력자인 퍼즐 장군은 지구를 퍼즐처럼 파괴할 수 있는 비밀병기를 극비리에 제작 중이고, 심지어 얏타맨 1호의 아버지가 인질로 잡혀서 비밀병기 개발을 돕고 있다. 토이토이 왕국의 초대장을 받고
70년대를 추억하고 싶은 이들에게 <뉴타입 히어로 얏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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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음악이 깔리고 능숙하게 전범을 체포하는 최정예 외인부대가 등장한다. 탈레반에 납치된 종군기자 엘자(다이앤 크루거)를 구출하는 일도 그들에겐 아주 손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대로 엘자를 구출하는 일은 신속하게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본부와 교신이 끊기는 바람에 팀원들과 엘자는 예상치 못했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엘자를 노리는 탈레반의 추격이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팀원들과 엘자는 국경을 향해 험난한 도피를 시작한다.
탈레반과 엘자 사이의 집요한 추격과 도망은 신념 싸움이 된다. 팀원들에게 엘자는 구해내야 하는 인질인 동시에 인권과 정의의 상징이다. 엘자 때문에 이 사달이 벌어진 것임에도 팀원들과 엘자는 서로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당연한 길이기 때문이다. 정작 팀원들과 엘자를 두렵게 하는 것은 탈레반보다도 자연이다. 온갖 전투기술로 단련된 그들에게 탈레반의 허술한 공격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문제는 적의 수
자연과의 투쟁 그리고 인권 <스페셜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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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던(<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사춘기 소년은 대학에 진학해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눈치챈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한다(<친구사이?>(2010)). 김조광수 감독이 단편을 만든 시기순대로 나열하면 ‘동성애에 눈뜬 한 소년의 성장담’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소년이 30대가 되면 동성애자로서 어떤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극복하려 할까.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영화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의사 커플(?)의 행복한 결혼식에서 시작한다. 남자 민수(김동윤)는 게이이고, 여자 효진(류현경)은 레즈비언이다. 민수는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고, 효진은 진짜 연인인 서영(정애연)과 함께 키울 아기를 입양하길 원한다. 그러니까 이 결혼식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두 사람의 위장결혼이다. 그러나 무지갯빛 미래도 잠시뿐. 우
30대 게이의 사랑과 우정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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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가스 루나라는 이름으로부터 절로 떠올리는 영화가 하나 있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를 전세계에 소개한 1994년작 <하몽 하몽>이다. 비가스 루나는 이후에도 <골든볼> <달과 꼭지> <밤볼라> 등 가히 스페인적으로 섹시한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어떤 면에서 비가스 루나의 대표작들은 순결무구한 에로스의 동화라고 부를 만하다. 조금 덜 고상하고 조금 더 상업적인 페드로 알모도바르라고나 할까.
<디디 할리우드>는 2002년작 <마르니타> 이후 10년 만에 복귀한 비가스 루나의 신작이고, 무대는 스페인이 아니라 할리우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바텐더 일을 하는 다이아나 디아즈(엘사 파타키)는 스타가 되기 위해 미국 마이애미로 무작정 떠난다. 마이애미에서 입에 풀칠도 못하며 고생하던 다이아나는 조감독으로 일하는 로버트(루이스 하차)와 사랑에 빠져 할리우드로 향하고, 거기서 공격적인 에이전트 마이클(피터 코요
할리우드 드림 <디디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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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리가 없어>는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가 만든 두 번째 영화다. 만약 그의 데뷔작 <맛있는 인생>을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성규 대표, 아니 조성규 감독이 자신의 취향을 담은 개인적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맛있는 인생>이 미식가로서의 자신을 반영한 연애영화였다면, <설마 그럴리가 없어>는 음악 감식가로서의 감독 자신을 반영한 연애영화다. 그렇다. 이것 역시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여배우 윤소(최윤소)는 개그맨 황현희와 사귀다 차인 것 때문에 엄청난 조롱거리가 된 뒤 소속사로부터는 연애 금지령을 당한다. 돈도 없고 성격도 소심한 서른다섯 뮤지션 능룡(이능룡)은 누나의 강압에 의해 결혼정보업체를 찾았다가 가입 불가라는 말을 듣고 또 한번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능룡은 일종의 소셜 데이트 서비스인 ‘이음’에 가입하고 거기서 윤소를 만난다. 재미있게도 능룡은 윤소가 주연인 영화의 음악을 작업하고
인디 음악계의 <노팅힐> <설마 그럴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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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용산의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했고, 이를 경찰이 진압했다.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었다. 사람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잉진압이 진실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농성에 참가했던 철거민들이 이 사건의 책임자로 규정돼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단 두 부류다. 철거민과 경찰. 철거민의 입은 봉쇄됐고 이제는 경찰에 물을 수밖에 없다. 경찰과 그들의 수뇌부는 그때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두 개의 문>은 감춰진 동시에 파헤쳐지지 않았던 질문을 통해 “추웠고, 따뜻했고, 나중에는 뜨거웠던” 그날의 온도를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로서 <두 개의 문>이 지닌 힘은 역시 기록과 구성에 있다. 연출을 맡은 이들이 직접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용산에 있었던 카메라(칼라TV, 사자후TV, 채증동영상, CCTV)에 담긴 영상들은, 농성 시작부터 진압까지의 25시간
그날의 온도 <두 개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