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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들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시가미 타케토(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말과 함께 영화는 그가 직접 겪은 기담 속으로 들어간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결혼 1주년을 맞은 행복한 새신랑이다. 하지만 기념일 당일, 아내의 생사를 확인도 못한 채 이상한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기억이 조작된 것임을 깨달으면서 정체성 혼란에까지 빠진다. 그런 그를 얼떨결에 돕게 되는 이가 취재차 일본에 와 있던 열혈 기자 강지원(김효진)이다. 그녀의 도움을 얻어 이시가미는 자신이 지난 1년간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 이유를 파헤치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기억도 되찾는다.
방송작가 출신 소설가 쓰카사키 시로의 <게놈 해저드>를 옮긴 영화답게 국면을 전화해나가는 호흡이 두드러진다.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단서와 인물들이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도 없지 않다. 하지만 두 가지가 이 미스터리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 <무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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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반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감찰반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에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급히 경찰서로 향한다. 가는 길에 사람을 친 건수는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사체 유기까지 하고 만다. 모든 걸 무사히 덮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의 범행을 알고 있는 정체불명의 목격자 박창민(조진웅)으로부터 협박전화가 걸려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가기 시작한다.
한놈만 팬다. 아니, 한놈만 따라간다. 서스펜스란 각자가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고 믿는 정보들을 가지고 노는 한판의 카드게임과 같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선 상대로 하여금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 건 언제나 잘 먹히는 기술 중 하나다. <끝까지 간다>는 특별한 반전이나 숨김 패에 주력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한눈팔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끝을 향해 치고 달려나간다. 곁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오직 한 인물, 한 사건에 집중한 덕분에 영화의 호흡은
한놈만 따라간다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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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교수 아담(제이크 질렌홀)의 일상은 평화롭지만 건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은 동료가 추천해준 영화에서 자신과 똑같은 외모의 배우 앤서니를 발견한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앤서니를 찾아나서던 아담은 결국 앤서니와 직접 대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둘의 첫 만남 이후 도리어 앤서니가 아담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담의 여자친구에게 흥미를 느낀 앤서니가 아담에게 서로의 신분을 바꿔볼 것을 제안하고 아담이 이를 받아들이며 상황은 점점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The Double)를 영화화한 <에너미>는 <그을린 사랑>(2010)으로 주목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 <프리즈너스>(2013)에서 함께한 제이크 질렌홀이 아담과 앤서니, 1인2역을 소화하며 다시 한번 감독의 욕망을 대변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의중을 알고싶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더블’이 아닌 ‘에너미
똑같은 외모의 두 남자 <에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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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이 아니다. 이번에는 온(怨)이다. 그리드 아일랜드에서의 모험이 끝나고 찾아온 잠깐의 휴식. 곤과 키르아는 추억이 깃든 장소인 천공격투장으로 향한다. 격투가들의 축제인 배틀 올림피아에 즈시가 출전하기 때문이다. 크라피카와 레오리오는 물론 비스케와 윙 등 반가운 얼굴이 오랜만에 모이고, 히소카와 네테로 회장까지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의문의 사내들이 경기장을 점령하더니 ‘온’이라 불리는 베일에 싸인 능력으로 네테로 회장을 인질로 잡는다. 곤을 비롯한 헌터들은 이들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까.
도가시 요시히로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헌터x헌터>의 두 번째 극장판인 <극장판 헌터x헌터: 더 라스트 미션>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갖는 ‘이벤트’로서의 성격에 충실한 작품이다. 특히 다양한 캐릭터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건 원작 팬들이 좋아할만한 점이다. 비스케에서 윙, 즈시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합동 작전이라든지 옛날부
<헌터x헌터>의 두 번째 극장판 <극장판 헌터x헌터: 더 라스트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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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승사자도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연락용이 아니다. 영(靈)을 전송하고, 소환하며, 때려잡는 저승사자의 만능무기, ‘소울폰’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령을 보는 꼬마강림이 이 신기한 소울폰을 손에 넣는다. 주인은 저승사자 강림도령. 전투 중 자신의 휴대폰 속에 갇히고 말았다. 꼬마강림은 도령을 풀어줄 생각보다 휴대폰을 가지고 놀기 바쁘다. 결국 강림도령이 잡은 유령을 소환하게 되고, 꼬마강림은 저승세계의 걷잡을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린다.
<고스트 메신저>는 총 6부작으로 계획된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2010년 비디오 판매용(OVA)으로 출시한 1화에 두 번째 편을 묶어 극장판으로 만들었다. 전편이 소울폰의 기능과 전통 설화에 기반한 세계관을 소개하는 데에 치중했다면, 극장판에 추가된 2화의 전개는 사뭇 다르다. 부모와 친구가 없는 꼬마강림의 외로운 사정과, 다른 저승사자와 대치하는 도령의 비밀이 부각된다. 긴 제작기간 때문인지 전반부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저승세계의 싸움에 휘말리다 <고스트 메신저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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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찬 재력가 알렉스(우고 실바)는 새로운 애인과 함께할 달콤한 미래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이기로 한다. 작전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만 그날 밤 알렉스는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영안실에 있던 아내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상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숨겨두었던 살인의 증거가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하고, 경찰은 알렉스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아내가 일부러 죽은 척한 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이라 판단한 알렉스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 한다.
스페인 출신의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데뷔작인 <더 바디>는 반전에 모든 것을 건 스릴러영화다.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트릭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다가 결정적인 ‘한방’으로 모든 퍼즐을 풀어버리는 그런 영화 말이다. 이러한 ‘반전영화’의 공식을 따라 <더 바디>는 죽은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사라진 물건이 갑자기 등장하는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을 보여준 뒤 마
반전에 모든 것을 건 스릴러영화 <더 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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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이효)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 보이는 소녀다. 보기에 따라 고등학생으로도, 대학생으로도 보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기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미조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이후 입양됐으나 입양부모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녔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태에 다다른 미조는 자신의 친부를 찾아가 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미조의 친부 우상(윤동환)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냉혈한이다. 퇴직 경찰인 우상은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미조는 그런 우상에게 자신이 입은 상처를 되돌려줄 수 있을까.
2000년에 등장한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감독 남기웅은 이후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를 만들며 B급 하드코어 판타지 장르에 있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바 있다. <미조>
불쌍한 소녀 대 나쁜 어른 <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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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에 부적절한 사생활’로 인해 작은 마을로 좌천되어 내려온 파출소장 영남(배두나)은 마을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매일을 술로 살아간다. 하지만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에게 학대받고, 학교에서도 따돌림받는 소녀 도희(김새론)에게 영남의 등장은 구원과도 같다. 도희를 우연히 도와주게 된 영남은 그녀를 용하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며 돌보기로 결정한다.
‘두명의 상처 입은 영혼이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쉽게 정리하고 싶겠지만, 사실 <도희야>가 건드리고 있는 이야기의 결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영화는 도희와 영남(그리고 영남의 여자친구 은정)을 하나로 묶은 뒤, 이들의 문제를 ‘감정적’ 차원으로 접근하지만, 이들의 대척점에 놓인 불법 이주노동자들과 마을 주민들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불균질성이 관객의 마음을 힘들게 만든다. 문제는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두명의 상처 입은 영혼 <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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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동일본 대지진이 자연재난이 아니었다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1954년 비키니섬에서 행해진 핵실험 또한 다른 목적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포드(애런 존슨)는 15년 전 일본에서 살던 시절, 그 사건으로 인해 어머니(줄리엣 비노쉬)를 잃었다. 이후 해군 장교가 된 그는 아내 엘르(엘리자베스 올슨)와 행복하게 지내지만, 일본에 남아 과거의 사건을 계속 연구 중인 아버지 조(브라이언 크랜스턴)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다. 한편, 필리핀 정글에서 화석화된 매우 크고 오래된 방사능 잔존물이 발견되는데, 고질라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세리자와 박사(와타나베 겐)는 그 공포의 괴수의 존재를 직감한다.
<고질라>는 앞서 만들어진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1998)처럼 그저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이기보다, 오히려 지구의 균형을 되찾아주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 같은 존재인 것. 폐쇄돼 있던 일본의 잔지라 원자력 발전소를 시작으로 하와이를
지구를 위해 나타난 구세주 <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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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일부와도 같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습니다.” 탐(자비에 돌란)은 친구 기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욤의 가족이 살고 있는 농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기욤의 애인이기도 했던 탐은 마음껏 슬퍼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욤의 어머니(리즈 로이)는 아들에게 다른 애인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기욤의 형인 프랑시스(피에르-이브 카디날)는 이상할 정도로 탐에게 적대적이다. 동시에 이들은 탐이 농장에 계속 머물기를 바라고, 결국 탐은 이 가족의 기묘한 분위기 속으로 조금씩 침잠해 들어간다.
최근 <로렌스 애니웨이> 등의 작품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선보인 자비에 돌란이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만든 <탐엣더팜>은 긴장을 놓지 않는 이야기와 이야기에 녹아들기를 거부하는 이미지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먼저 주목할 것은 배경 설명 없이 던지는 대사와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법이다. 영화는 ‘탐이 애인의
친구이자 애인의 장례식 <탐엣더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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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7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7인에 의해 차례로 불려나와 지난 5월9일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자백하기를 강요받는다. 테러리스트 집단인 그림자들은 권력의 중심과 일대일로 맞서기 위해 과격한 폭력을 동원한다. 이들은 권력(공수부대, 경찰, 미군, 조직폭력배, 국정원 직원 등)의 가짜 복장을 입고 권력이 가한 수위를 능가하는 폭력을 용의자들에게 가한다. 피해자들이 권력의 옷을 입고 더 큰 폭력을 가하게 되는 서글픈 아이러니다. 영화는 10일 동안 10회차의 촬영으로 완성되었다. 감독, 각본, 제작, 촬영 모두 김기덕이 담당했다. 김기덕 사단의 영화 <배우는 배우다>에 이어 마동석은 그림자7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수취인불명>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김기덕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배우 김영민은 용의자1 및 기타 그림자의 가해자들로 등장하여 1인8역의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했다. 이이경, 조동인, 테오, 안지혜 등 젊고 가능성
김기덕의 스무 번째 영화 <일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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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 중인 테오도르(와킨 피닉스)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고백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이 음성인식으로 작동되는 근미래에 살고 있는 러브레터 대필 작가이며, 깊이 아꼈던 아내와 이혼 소송 중이다. 그런 그가 의외의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바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란 이름의 인공지능 운영체제다. 사만다는 따뜻한 목소리와 뛰어난 전산처리 능력을 통해 테오도르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테오도르는 자신의 육체를 통해 사만다가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렇게 둘은 직접적인 접촉보다 밀도 높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보통의 연인들처럼 함께 기승전결을 헤쳐 나간다.
<그녀>는 상투적인 로맨스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으나 그럼에도 충분히 특별해 보이는 영화다. 연애의 과정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면면을 단순히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차원으로만 환원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표정들을 시청각적 경험
인공지능 운영체제와의 연애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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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 감독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는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다시금 샘솟게 만든 훌륭한 프리퀄이었다.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 이야기, 즉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셔가 어떻게 만났고 또 반목하게 되는지를 그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돌연변이들의 힘의 과시에만 집중했던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과는 다른 노선을 걸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역시 돌연변이들의 능력보다 그들의 사연과 관계에 관심을 보인다. 이것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2000), <엑스맨2>를 통해 보여준 장기이기도 하다. 그가 11년 만에 귀환해 만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엑스맨>과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자장 안에서 시리즈의 새 길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성공적인 복귀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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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좀비만화>는 류승완 감독의 <유령>,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 김태용 감독의 <피크닉>을 묶은 3D 옴니버스영화다. <신촌좀비만화>는 장르나 주제가 아니라 3D라는 기술을 공유한다. 세 감독 모두 3D영화는 처음이다. 류승완 감독의 <유령>은 2012년 일어난 ‘신촌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영화는 고등학생 승호(이다윗)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나 짝사랑하게 된 여우비(손수현), 승호의 또 다른 온라인 친구 비젠(박정민)을 통해 가상의 세계에 갇혀 사는 10대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그린다. 류승완 감독은 “냉혹하게 현실을 구현하는 방식으로서의 3D를 고민했다”라고 말했는데, <유령>에서 3D는 판타지를 위한 요소가 아니라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한지승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멜로 장르에 좀비물을 결합해 <너를 봤어>를 만들었다. 인간과 좀비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 좀비들은
3D 옴니버스영화 <신촌좀비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