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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은 낯선 침입자에게 한명씩 살해된다. 살인이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원망하며 급기야 몸싸움하는 지경에 이른다. 밀실살인 추리서사는 대체로 이런 공식을 따른다. <유아 넥스트>의 공간은 집이고 모이는 구성원은 가족이다. 가족이라서 뭉치기 좋은 것 같지만,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갈등은 오히려 증폭된다. 저예산영화로 만들어진 <유아 넥스트>는 미국에서만 제작비 대비 27배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두 가지는 <유아 넥스트>가 가진 관객 흡인력을 증명하는 지표다. 장르 관습을 잘 활용하여 관객이 친숙하게 느끼며 즐기도록 하는 동시에 새로운 요소를 첨가해 예상치 못한 놀람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잘 만든 장르영화의 핵심이다. <유아 넥스트>는 그런 면에서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택침입형 공포영화 <유아 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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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장르영화는 관객과의 암묵적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대놓고 특정 장르를 표방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약속된 장르의 법칙 아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니 황당하다고 토 달지 말고, 유치하다고 비웃지도 말라는 선언이라 생각해도 좋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코믹 어드벤처라는 깃발을 내걸고 <캐리비안의 해적>이 이미 지나갔던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성실하게 따라간다.
명나라에서 받아온 조선의 국새를 고래가 삼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다. 조정대신들은 모흥갑(김태우)을 수군통사로 명하고 비밀리에, 그것도 보름 안에 고래를 잡아오라고 명한다. 여기에 수군의 협박을 받은 해적단 두목 여월(손예진)과 모흥갑과 악연으로 얽힌 산적단 두목 장사정(김남길), 그리고 여월에게 원한을 품은 해적단 대두령 소마(이경영)까지 가세해 국새를 노리는 도적떼들로 바다가 시끌벅적해진다.
겨우 보름 동안 어찌 그리 신속하게 이동하며 조선 앞바다를 휘
신나는 해상 롤러코스터 <해적: 바다로 간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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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사회상을 다룬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1953)가 야마다 요지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지방에 사는 노부부가 자식들이 사는 도쿄에 찾아온다. 의사인 큰아들, 미용사인 둘째딸은 부모의 방문이 내심 부담스럽다. 프리타인 셋째아들 쇼지(쓰마부키 사토시)는 부모의 걱정만 끼쳐왔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노부부에게 위기가 닥치자 이젠 자식들이 부모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날 차례다.
오즈의 날인인 다다미숏과 로앵글은 여전하다. 하지만 오즈와 달리 야마다는 더이상 절제하지 않으리라 작정한 듯 감정을 쉽게 노출시킨다. 감독은 준비 과정에서 3•11 대지진에 연속하여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제작을 중단한 채 피해지역을 돌아보고는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원작의 형식은 그대로지만 일부 설정이 바뀌었다. 속내를 내비치지 않던 아버지는 다소 권위적이며 잔소리가 많은 성격으로 바뀌어 국가에 대한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동경가족>은 친밀함의 부재와 가족 해체의
<동경이야기>의 리메이크작 <동경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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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임진왜란 6년, 파면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12척의 배뿐이다.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의 회오리바다 울돌목으로 향한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2011)이 활이라는 무기 자체에 대한 탐구를 바탕에 깔고 남이(박해일)와 자인(문채원)의 멜로드라마를 중심에 놓았다면,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은 상영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 시간가량의 해상전투다. 전투 장면의 긴박감은 물론이거니와 수없이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도 저마다 그 안에서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이순신의 흔들림 없는 자존심 아래에서 그를 제압해 동생의 복수를 하려는 구루지마, 마치 그와 대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이름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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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엔 왜 칠면조를 먹을까?’ 역사 수업에서나 나올 듯한 질문이지만, 만일 내가 칠면조라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터키>는 한국어 제목 그대로 추수감사절에서 살아남기 위한 ‘터키’(칠면조)들의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칠면조 레지는 추수감사절 ‘학살’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먹는 풍습을 없애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진 또 다른 칠면조 제이크를 만나고, 얼떨결에 그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풍습이 처음 생긴 400년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비호감에 가까운 칠면조를 친근하면서 동시에 모험에 적합한 날렵하고 활동적인 신체를 가진 새로운 캐릭터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 우디 해럴슨과 오언 윌슨, 그리고 에이미 포엘러의 목소리로 생기까지 얻은 <터키>의 주인공들은 최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칠면조 농장을 탈출해 제이크를 만나
추수감사절에서 살아남기 위한 칠면조들의 모험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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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폭군처럼 거친 아버지와 단둘이 숲속에서 살아간다. 숲 밖 세계를 ‘머나먼 세상’이라고 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엄포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 아버지가 크게 다치자, 아들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머나먼 세상’으로 낯선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야생적 동심으로 충만한 <머나먼 세상 속으로>는 장 프랑수아 보슈맹의 동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숲에는 반인반수의 생령들도 살고 있는데, 이중에는 사슴얼굴의 엄마도 있고 말, 고양이, 개구리 얼굴을 가진 조력자들도 있다. 감독은 판타지 속에 전쟁을 경험한 유럽의 역사적 상처도 기입해넣었다. 아마도 숲속 생령들은 전쟁과 적의가 만들어낸 가여운 희생자들이지 않을까 싶다. 악몽 속에서 아빠는 징집을 거부하는 잠꼬대를 하고, 군대가 주둔한 마을에는 축제처럼 참전 권유 캠페인이 한창이다.
모네나 르누아르의 풍경화를 떠올리는 숲과 마을 풍경은 손작업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장 르노
아이들의 동심, 어른들의 본성 <머나먼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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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의 엘자(소피 마르소)는 성공한 소설가다. 어린 남자친구와의 캐주얼한 만남만을 이어오던 그녀는 자신의 새 소설 출판 기념 파티에서 만난 변호사 피에르(프랑수아 클루제)에게 짧은 순간, 운명 같은 사랑을 느낀다. 피에르 역시 엘자와의 사랑을 강렬하게 꿈꾸지만, 피에르에게는 그를 믿고 의지하는 아내 안네(리사 아주엘로스)와 아이들이 있다.
<어떤 만남>은 중년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성숙함’보다는 ‘풋풋함’에 더 관심이 많다. 엘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장을 뒤적이고, 그녀와 문자를 주고받느라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피에르의 모습이나 피에르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 친구의 휴대폰을 몰래 훔쳐보고, 어린 남자친구를 이용해 피에르의 질투를 끌어내려 애쓰는 엘자의 모습은 십대들의 연애 양상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하지만 어색하고 어설플 법한 이 에피소드들이 큰 무리 없이 흘러갈 수 있는 건 한때 ‘십대 멜로영화’의 여신이었던, 그래서 소녀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고
중년 남녀의 ‘풋풋한’ 사랑 <어떤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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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의 조선, 기근과 착취 탓에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의적단 ‘지리산 추설’의 활약이 시작된다. 무리의 정신적 지주 땡추(이경영)와 힘센 천보(마동석), 전략가 태기(조진웅) 등 사회에 분개한 인물들은 농민들의 한을 풀려고 힘을 합한다. 한편 백정으로 어렵게 살던 돌무치(하정우)의 가족도 양반의 꾐에 넘어가 몰살당한다. 혼자 남은 그를 안타까이 여긴 땡추는 돌무치를 추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는 이름을 도치로 개명한 뒤 원수인 조윤(강동원)에게 복수하려고 다짐한다.
윤종빈 감독의 네 번째 장편 <군도: 민란의 시대>는 다중적 플롯을 취했기 때문에 주인공 역할도 분산되고 스타일도 복합적이다. 서사를 통한 전복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이를 보완한 형식의 면면이 참신하다. 하정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복수극 플롯은 ‘웨스턴 활극’을 지향한다. 그리고 강동원이 연기하는 서자의 스토리는 비주얼 중심의 ‘바로크적 무협’
곤궁한 농민들을 구하라 <군도: 민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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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스미다구, 높은 빌딩을 헤치고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여기에 공동의 목적으로 자율적으로 모여 평등하게 활동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의 ‘공생’의 의미를 실천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워커즈 코프’가 있다. 이름은 어렵지만 하는 일들은 친숙하다. 이들은 이제는 사라진 지역 전통 행사인 ‘떡메치기 대회’를 준비하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아이들을 돌보는 ‘아동관’을 운영하며, 노인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워커즈>는 하고 싶은 말로 가득한 다큐멘터리다. 여기에 어떠한 ‘영화적’ 기교도 부리지 않는 카메라와 조근조근 상황만 설명하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언뜻 심심한 TV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메시지로 관객을 몰아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워커즈 코프의 정신을 실천하듯 관객에게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기를 조용히 제안한다. 자칫하면 산만했을 각각의 에피소드를 엮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작은 극장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우리 삶의 모습 <워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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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폴(귀욤 고익스)은 보기 드문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지만 별 야심이나 희망 없이 매일매일 이모들의 댄스 교습소에 출근하여 심심한 반주나 해주고 있다. 한편, 폴의 부모는 그가 두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게 충격이 되었는지 어른이 된 폴은 내내 실어증을 앓고 있다. 이웃집에 사는 기이한 부인 프루스트(앤 르니)를 알게 된 건 그때다. 그녀는 작은 아파트의 방 안에 자기만의 비밀스런 화원을 꾸며놓고 거기서 키운 작물로 차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내오는 차를 마시면, 마신 사람은 졸도를 하고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폴도 프루스트 부인 덕분에 그런 경험을 한다.
<벨빌의 세 쌍둥이> <일루셔니스트>와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의 감독 실뱅 쇼메가 연출한 첫번째 장편 실사 극영화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멜리에> <사랑해, 파리> 등 낭만적인 프랑스식 극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제작자 클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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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목소리(크리스티안 루오다넨)가 언젠가 아버지(투르카 마스토마키)와 함께 밤하늘을 보던 날을 회상한다. 그날 부자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 있었다. 지금은 나무가 한 그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과거엔 일대가 거대한 숲이었다고 아버지는 이른다. 그렇게 자연을 담은 카메라의 시선과 더불어 남자의 음성이 핀란드의 고대 전설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바다의 신 뵈이네는 육지로 올라와 달과 별을 보면서 숲을 건설했다고 한다. 뵈이네는 엄지손가락만 한 요정 삼프사에게 지시를 내려 그때부터 산에는 전나무가, 언덕에는 소나무가, 계곡에는 떨기나무, 그리고 늪에는 자작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여타의 자연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숲의 전설>은 자연의 모습을 세밀하게 파헤치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지구의 정신을 담으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두 감독의 범신론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숲의 모든 활동은 요정의 영역이라거나, 죽음조차 자연의 일부라는 해석, 모두가 잠잠해질 무
보이지 않는 지구의 정신 <숲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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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도 이미지가 있다면 ‘착한’ 단어일수록 오염되기 쉽다. ‘우리’와 ‘가족’이라는 단어도 이에 속한다. 공동체의 끈끈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때론 그 이름 아래 착취를 정당화하거나, 명백히 존재하는 차별을 손쉽게 가리는 데 이용된다. 탈북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가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을 때도 그 속뜻은 의심받기 쉽다. 이 말은 그들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공고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또는 ‘장애우’라는 단어가 지닌 모순이 그렇듯, 그 단어 자체가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대상으로, 다른 누군가는 불편한 주체의 위치로 미리 위계 짓는 것은 아닌가. 이런 우려와는 달리 <우리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 이야기다.
탈북 청소년이 한집에 모여 산다. 그들의 구심점이 되어준 이는 평범한 남한 노총각 김태훈씨다. 2005년부터 북한 이탈주민들의 보호시설 하나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태훈씨는 그곳에서 탈
탈북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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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공주 만화들이 중산층 보수주의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기여한다면 드림웍스의 왕족 만화들은 아동 교육물에 대한 강남 좌파적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데 효과 만점이다.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도 후자를 충족시키기 위한 많은 ‘정치적 올바름’을 구현하고 있다. 일단 주인공 히컵은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바이킹 혈통이며, 부족장이지만 단순히 혈통을 근거로 한 권력 이양에 회의를 품고 있다. 무엇보다 본인의 신체적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적성과 능력 개발을 통해 그것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매우 모범적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1편에서는 ‘드래곤’이라는 타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던 바이킹족들이 히컵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소통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2편에서는 히컵이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부족장으로서 자질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2편에서 히컵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난다.
훨씬 더 화려하고 강력해진 드래곤들의 라인업 <드래곤 길들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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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출현한 <혹성탈출> 시리즈는 미래 사회에서는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충격적인 상상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더불어 특수분장 역시 당시로서는 손꼽히는 수준의 성취를 자랑했는데, 더 그럴듯한 유인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은 그로부터 몇 십년을 거치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에 이르자 할리우드는 특수분장이 아닌 모션 캡처 액션과 CG의 결합으로 완벽한 유인원의 모습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로 인류가 거의 멸망하고 소수만이 살아남은 시점에서 시작된다.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숲에서 그들의 세상을 만들었다.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10년간 인간과 유인원은 서로 다른 공간에 머물며 마주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유인원들은 인간이 멸종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그 평화가 깨진 것은 도시의 비상전력이
인간과 유인원의 전쟁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