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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높이 내걸고 열이틀 동안의 숨찬 일정을 몰아붙였던 제52회 베를린영화제가 2월17일 붉은 막을 내렸다. 주요하게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가족의 붕괴와 재건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돋보였던 이번 영화제의 수상결과와 주요 작품들을 돌아본다. 또 문제작은 드물었지만 여느 해 못지않게 시끌벅적했던 베를린영화제를 총정리한다. 편집자● 수 상 결 과 ●금곰상<블러디 선데이> (영국·아일랜드, 폴 그린그래스 감독)올 베를린영화제가 9·11 테러에 대한 입장으로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 수십년간 가해온 테러의 근원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금곰상을 받은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생생한 영상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북아일랜드 주민뿐 아니라, 가해자인 영국군의 증언도 수용해 ‘화해’의 새 세기에 걸맞은 모양새까지 갖췄다.<
제52회 베를린영화제 수상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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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막판에 번개가 치다.”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의 반응처럼, 지난 2월17일, 12일간의 일정을 마감한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금곰상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두 작품에 돌아갔다. 아무리 영화제의 수상결과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게 마련이라지만,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영국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가 베를리날레 최고의 영예를 거머쥘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특히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가 금곰의 새 주인이 된 것은 가히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를린을 포함해 칸, 베니스 등 3대 메이저 세계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이 최고상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수상결과에 대해 “애니메이션에 상을 주기로 한 것은 용기있는 결정”이라는 칭찬도 있었지만, “무한히 성장해나갈 아시아영화에 대한 배려”라는 ‘정치적’ 해석도 존재했다. 한편 “외국의 영화상이 일
제52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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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으로 간 <나쁜 남자><나쁜 남자>의 상영 다음날, 이승재 프로듀서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다. 매일같이 전날 상영작의 평가를 별점으로 보여줬던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에서 이 영화에 마이너스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이같은 극단적 반응은 수상권에 진입하는 데 결격사유로 작용할 수 있었기에 그는 아예 마음을 비운 듯했다.사실 이 영화에 대한 거부반응은 2월15일 기자시사회가 끝난 직후 어느 정도 감지됐던 바다. 프리랜서 평론가인 올리버 푸기니에는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성도착증적 관계다”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기자회견장으로도 이어졌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말을 꺼낸 동구권의 한 기자는 “유럽인으로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폭력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기쁨보다는 폭력 같은 것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질문했다. 또 한 독일 기자는 “이 영화는 폭력을 좋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에서도 재연된 <나쁜 남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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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곰상 수상작품 감독 인터뷰 11972년의 어느날 북아일랜드 데리라는 지방에서 일어난 시민권 요구 시위는 진압에 나선 잉글랜드군의 무차별 발포로 14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다수의 희생을 낳았다. 이 사건은 북아일랜드에 대한 잉글랜드의 부당한 정치·사회·종교적 탄압을 고발했을뿐더러 수많은 북아일랜드 청년을 IRA에 가입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블러디 선데이>는 시위 전날과 당일의 풍경을 각기 다른 입장의 4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묘사한다. <CNN> 뉴스 보도가 아닌가 할 정도로 생생한 표현을 한 것에 대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 영화를 열린 텍스트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배우들도 긴장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 가능하면 실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비전문 배우를 대거 기용했다. 진압군 역할로 실제 공수부대원 출신 병사를, 마을 주민 역할도 실제 주민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다큐멘터리적 화면이 돋보이는데, 실제 다큐멘터리 필름을 사용했나
<블러디 선데이>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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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구축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무명 시절, 그를 한 프로 레슬링 경기장으로 안내한 프로모터가 “지금 나오는 선수가 모두가 싫어하는 악당”이라고 소개하자, 알리가 “그렇지만 저 악당을 보기 위해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까”라고 되받아쳤다는 일화가 있다. 말하자면, 알리는 언론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유망주 권투 선수는 한둘이 아니다. 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리스트라는 훈장은 필요조건 혹은 충분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알리는 KO라운드를 예고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예언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켄터키 청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마침내 데뷔 4년 만에 세계 타이틀전. 상대는 살인혐의로 복역중 교도소 복싱으로 출발, 정상까지 진격한 소니 리스튼. 35승(25KO)1패의 챔피언과 만난 19승(15KO)
무하마드 알리는 어떻게 세상과 싸웠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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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곰상 수상작품 감독 인터뷰 2베를린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자회견은 베를린에서 시상식이 열린 지 이틀 뒤인 2월19일 도쿄에서 열렸다. 미야자키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 지난해 7월20일 일본에서 개봉한 <센과 치히로…>는 11월10일에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을 앞지른 뒤, 2월17일 현재 전국 2269만2104명을 동원하고 있다. 흥행수입도 290억엔을 넘었다.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제국호텔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센과 치히로…>는 너무 일본적이고 마지막 부분이 난해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유럽에선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받을 수 있어 매우 기뻤다”고 베를린 현지의 반응을 보고했다. 곧이어 베를린에서 대신 상을 받았던 스튜디오 지브리의 해외사업국장 스티븐 아파트로부터 금곰상을 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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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편의 영화가 한데 모여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자랑하는 영화제에서 옥석을 가려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거나 예술적 발자취를 깊이 남길 만한 작품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영화들이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거나 예술적 가치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5편이 여타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단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좀더 폭넓은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뿐이다.삶은 쉽게 바뀌지 않아<월요일 아침>감독 오타르 요셀리아니 출연 자크 비두, 아리고 모조 제작국 프랑스“나는 말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다 해도, 작가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말로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언어다. 나의 혀는 내가 말하려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만큼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올해 베를린에서 최우수 감독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그루지야 출신 오타르 요셀리아니 감독은 자신의 영화관에 대해
베를린에서 발견한 보석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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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지르기장거리 비행 도중에는 때때로 기내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열심히 날아가는 비행기의 현 위치를 표시해준다. 서해 상공으로부터 중국 대륙과 시베리아를 거쳐 우랄산맥을 넘고 유럽 각국의 국경선을 횡단하는 비행기의 움직임은, 베를린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단지 국경뿐만 아니라 여러 겹의 사회문화적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여정임을 드러내는 하나의 은유로 보인다.전혀 새로운 관계망 속으로 뚫고 들어가 영화의 에너지를 수신하고 나의 반응을 송신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형식과 내용이 평소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교신의 과정에는 부득이하게 낯섦과 오해라는 잡음도 끼어들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오독의 자유, 차이에 대한 너그러움을 한껏 선물하는 것은 영화제의 미덕이기도 하다. 올해의 베를린영화제 또한 “영화를 통해서 타자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그러나 공항을 드나드는 이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관점을 제도화하고 있는 검문검색은, 국경을 넘어 조우한 사람들 사
영화평론가 김소희의 베를린의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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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복싱영웅을 연기해달라는 주문에 윌 스미스는 단호히 대답했다. “No”라고.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 배리 소넨필드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의 출연제의를 거절했을 때 윌 스미스는 “난 솔직히 알리 역을 맡을 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알리> 촬영현장에서 가진 와의 인터뷰에서 윌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대본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대본에 담긴 깊이있는 접근이 나를 더 겁먹게 만들었다.” 하지만 윌 스미스의 문을 두드리는 연출자는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마이클 만의 노크에 응답을 했다. “마이클 만은 내게 세상을 보는 전사의 관점을 가르쳐줬다. 그것은 내 육신을 극한 상황으로 끌어올려 내 정신과 영혼을 고양시켜주었다.” 알리가 되기 위해 윌 스미스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복싱을 배우는 것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아침식사가 끝나면 체육관에서 몸을 만들고 권투기술을 배웠다. 점심이 끝나면 이슬람교에 대한 공부를 했고 알리 식으
<알리> 주연배우 윌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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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원씨와 남진아씨는 오랫동안 한 팀으로 손발을 맞춰온 선후배이자 27개월된 아들을 사이에 둔 4년차 부부. 감독과 배우, 제작자, 홍보담당자, 스탭 등 범영화계에서 일과 생활을 나누는 부부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이들처럼 문자 그대로 같은 일에 몸담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30kg이 넘는 조명기를 들고 뛰는 조명 일이 워낙 물리적인 ‘힘과 체력’을 요하는 터라 오랫동안 여성 인력에 대한 벽이 높았던 사정을 감안하면, 여간해서 보기 힘든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같은 현장에서 서로 볼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대단한 희소식이었다. 남진아씨로서는 “계집애가 무슨 조명이냐, 분장이나 해라”던 일각의 시선을 버텨내고 바라던 조명감독에 첫발을 디디면서 늘 좋은 후원자였던 남편, 같은 꿈을 꾸는 여자후배들을 볼 면목이 생겼고, 최성원씨로서는 같은 입장에서 일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끊임없는 자극을 주고받을 든든한 동료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두게 된 셈이니 말
조명기를 든 부부 최성원. 남진아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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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은 헤어졌다, 현장에서 제작자가 조명협회를 의식해 비회원을 잘 쓰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97년에만 <오디션> <미스터 콘돔> 등 3편을 했으니 두 사람의 운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98년 <남자 이야기>를 찍으면서 결혼하고, <퇴마록>을 끝으로 남진아씨는 최성원씨와 “헤어졌다”. “더이상 배울 게 없다고 그러더라.” “조명 퍼스트 초반, 조명에 대해 좀 알 것 같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지, 뭐.” 농담으로 돌아보지만, 막내 시절부터 최고의 선배이자 남편인 최성원씨가 남진아씨에게는 늘 든든한 후광인 동시에 부담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랫동안의 촬영장 동거를 청산한 것도, 최성원 감독의 스타일에 너무 익숙하다는 것 외에 입봉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남편 덕본다는 말을 듣기 싫은 자존심 탓이 크다. 최성원씨가 98년의 <짱>에서 99년의 <간첩 리철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거짓말
조명기를 든 부부 최성원. 남진아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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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가려는 친구에게, 친구는 오히려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남이라면 쉽게 건넬 부탁이 친구 사이엔 오히려 어색해지고, 쿨하게 오갈 수 있는 충고도 혹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흔한 것이 친구이고 우정이라지만 <버스, 정류장>을 통해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는 제2의 관계를 맺어야 했던 친구, 심재명 대표와 이미연 감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고 또 궁금하다. 동덕여대 국어국문과 첫 미팅에서 인연을 맺은 뒤 20년 동안 침식과 퇴적 혹은 융기를 거친 우정의 단면은 그대로 촘촘히 균일한 것이었으나, 한편의 영화를 기획하고 찍고 개봉을 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이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미팅으로 만나 고고장에서 굳은 우정
심재명(이하 심) |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가 궁금하시다는데?
이미연(이하 이) | 우리요? 대학동기인데요. 뭐 그렇다고 우아하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만난 건 아니고.
심 | 사실은 1학년 들어가고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과 심재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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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명아, 저 감독 잘할까, 의심하지 않았니?"
이미연이 친구 심재명에게
Q | 재명아, 내가 기억하는 한 너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아.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졸업하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했잖아. 돈도 수억 벌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은 부자도 아닌데 나는 한번도 아르바이트한 적이 없었잖아. 쟤는 별로 못사는 집 딸 같아보이지도 않는데 왜 저러나, 늘 궁금했어. 몇시에는 아르바이트 몇시에는 영화보고…. 너의 그 빈틈없이 짱짱한 일과, 숨 안 막혔냐? 그리고 그 급한 성격. 네 성격이 얼마나 급한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하는 말이지만, 대학교 때 분식집에 가면 너는 비빔밥이나 짜장면 절대로 끝까지 다 안 비벼서 먹었잖아. 한두번 휘휘 젓고 후닥닥 먹고나서 “가자 미연아” 하면 나는 그때까지 짜장면 비비고 있고…. (웃음) 초반에는 아, 내가 너무 늦게 먹는 거구나 맞췄는데 나중엔 포기했어. 극동스크린 다닐 때 했던 말도 기억나냐? 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과 심재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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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서 꼴통짓 못하겠더라고요”
감독 이미연이 제작자 심재명에게
심재명 대표님. <버스, 정류장> 찍으면서 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 이건 거꾸로 똑같이 당하는 거다, 라고. 전에 <조용한 가족> <반칙왕> 프로듀서를 하면서 김지운 감독과 겪었던 마음고생이 그대로 오더라고.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해결될 수 없는 미묘한 관계.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는 입장을 떠나 김 감독이랑 나랑은 정말 친한 친구잖아. 그래서 그땐 영화는 둘째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우정만은 깨지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아닌 다짐이 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김지운 감독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직접적으로 할말도 돌려서 하고 필터를 거쳐서 나오고 그랬지. 그러니까 싸움이 날 만한 일도 싸움이 안 되는 거지.
심 대표도 그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가 또 그런 말 대놓고 하는 성격들도 아니니까. 특히 명필름과 그간 감독들의 관계형성이 어떻다는 걸 알고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과 심재명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