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날이 더 바빠!크리스마스 휴일에도 그는 쉬지 않는다. 촬영은 없지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 신인배우들의 입성을 위해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일정을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취재원들이 대부분 경쟁 업체에 있는 동료들인 탓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지만 배우들의 든든한 지렛대 역할을 하려면 필수적인 일이라고.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매니저 야 이눔아, 대학 보내놨더니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박충민(27)씨의 갑작스런 상경 선언에 부모는 가슴을 쳤다. 갖은 협박과 회유가 연일 이어졌다. 그렇다고 박씨가 서울행을 포기할 리 없었다. 정보통신학과 졸업을 앞둔 99년 가을의 일이었다. 부모 입장에선 돌출행동이었겠지만, 유년 시절부터서 몰래 쌓아온 스타에 대한 선망은 당시 그를 주저없이 매니저의 길로 들어서게끔 만들었다. 상경한 뒤 곧바로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간 매니지먼트사에서, 그에
영화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숨은 일꾼들 [2]
-
원스톱 서비스,논스톱 서비스‘원스톱 서비스’. 그가 내건 모토다. 홍보 전단 및 포스터의 경우 그는 직접 들고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가져간다. 영화사가 해야 할 심의업무까지 대행해주고 있는 것이다. 거래처 확보를 위해서라면 이만한 서비스는 기본이다. 또 계약한 작품이라면 일정이 촉박하다고 하더라도 기한을 지켜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이 그만의 신뢰충전 비결이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대선 특수를 맛보지 못해서일까. 인터넷과 방송의 위력에 밀린 인쇄소의 연말 표정은 대부분 울상이다. 그러나 기획사 다보INC와 거래하는 곳만은 예외다. 시나리오, 콘티, 포스터, 전단 등 영화쪽 인쇄물을 송두리째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을 시작으로 40여편의 영화 관련 인쇄물을 찍어내느라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다니. 1년차인 임동식(28)씨 또한 호된 수습기간 덕분에 복잡한 전체 공정을 눈으로 익히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영화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숨은 일꾼들 [3]
-
“우리 ‘근’감독님이요… 왜 근감독이냐구요 아니, 평생 ‘조’감독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껏 사이좋다는 배우와 감독을 많이 봐왔지만 이들은 단연 최고의 커플이었다. <품행제로>의 ‘문덕고 캡짱’ 류승범(23)이 청한 조근식(35) 감독과의 대화. 그 길다면 긴 3시간의 인터뷰가 거의 30분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짧게 느껴졌던 것은 시종일관 터지는 웃음과 함께 그뒤에 찰싹 붙어 있는 뭉클한 이야기 덕분이었다. <명랑만화와 권법소년>이란 시나리오로 처음 만난 것도 벌써 3년 전. 승범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과 결국 나 아니면 안 되는구나, 는 깨달음을 거친 감독과 배우는 이내 귀찮게 따지고 넘어가는 배우와 끈질기게 뽑아내는 감독으로 서로를 학대()하는 모드에 들어갔고 기꺼이 그 괴롭힘을 즐겼다. 그리고 수만 가지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생기나는 현장을 통과해 2002년말 질척거리지 않으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쿨한 코미디영화 한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이
까다로운 배우 류승범, 자상한 감독 조근식을 추궁하다 [1]
-
조근식 | 승범이가 초반에 우리 영화가 너무 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코미디로 가려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이 장르화되고 양식화된 코미디의 과장이 아니라고 설명했죠.
류승범 | 물론 감독 입장에서 윽박지르고 명령할 수도 있었지만 안 했다고 말하신 것처럼, 배우 역시 그냥 시키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마 촬영 초반에는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나 잘난 줄 안 거지. 그래도 뭔가를 충돌해서라도 맞춰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저사람 마음에 안 드는데 내 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옳은 건가. 어떻게든 맞춰서 꼭 정답은 아니지만 합일점을 찾는 게 나은 건가. 솔직히 후자가 나한테도 솔직하고 후회가 안 남을 것 같더라고.
조근식 | 승범이하고 나하고 그런 국면이 초반에 3, 4번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어떤 스탭은 배우애가 저렇게 덤비는데 가만 놔두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나는 덤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보다
까다로운 배우 류승범, 자상한 감독 조근식을 추궁하다 [2]
-
-
류승범 | 며칠 지나고 다시 외부에서 이야기가 들어오니까 오히려 외부적인 강압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감독님 만났던 것 같아요. 모질게 단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또 서로 정답도 없는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어. 서로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는 거지. 그러다가 감독님이 편지를 한통 건네주는데, 그 편지를 읽고 이 감독님을 돕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게 나여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근식 | 마지막으로 승범이를 만나자는 생각을 했는데, 만나서 답답하고 뭐라고 이야기도 잘 못하겠고 마지막으로 연애편지 쓰듯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일년 넘게 작업하면서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들, 같이 해보고 싶은 것. 이렇게까지 해서 승범이가 안 한다고 하면 못하는 거다.
류승범 | 사실 그 캐릭터를 탐냈던 배우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께 감사한 건 끝까지 나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거예요.
동물적인 반응이 나
까다로운 배우 류승범, 자상한 감독 조근식을 추궁하다 [3]
-
조근식 |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미술감독님이 그러는거야. “나는 승범이가 너무너무 부러워. 살면서 배우가 아니면 그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던지고 토해내고 어떻게 그렇게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겠어.” 니가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대. 너무너무 부럽고 슬프고 그랬다는 거야. 결국 이 장면을 잘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 몰라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맘껏 놀다
류승범 | 아, 후반부에는 촬영 끝나가는 게 너무너무 싫고 아쉬운 거예요. 그러다보니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아진 거야. 반 감독이었죠. 내 조감독은 봉태규. 봉가랑 나랑 촬영 들어가기 전에 야, 우리 이렇게이렇게 하자 우리끼리 다 맞추고, 그러고도 의욕이 넘쳐나는 거야. 마지막에는 거의 감독님은 별다른 디렉팅 없이 우리 수위조절만 하셨어요.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 않게 그 안에서 맘대로 놀게.
조근식 | 정말, 다른 게 필요없어요. 조금만 올
까다로운 배우 류승범, 자상한 감독 조근식을 추궁하다 [4]
-
2003년, 한국영화는 다시 춘추전국시대다. 최근 몇년간 급변한 영화시장이 알려준 “불변의 흥행공식은 없다”는 교훈 탓이다. 제작비 50억원을 훌쩍 넘는 블록버스터들이 연달아 실패하고 <집으로…> <폰> <몽정기> <색즉시공> 등 적은 예산의 영화들이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둔 지난해는 2003년을 더더욱 예측불허로 만들고 있다. 바야흐로 하나의 유행이나 일관된 흐름으로 정리할 수 없는,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춘추전국의 혼란 속에도 중량감이 느껴지는 발걸음은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강우석, 강제규 두 감독의 신작. 충무로 상업영화의 쌍두마차인 그들은 각각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흥행감독의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설경구의 캐스팅이 확정된 <실미도>는 3월에 첫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며 장동건, 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3년 초강력 기대작 프로젝트 엿보기
-
오래 전 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 감독은 일본만화 <올드 보이>가 재밌어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올드 보이>를 재밌게 읽었다. 얼마 지나 박 감독이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를 영화로 만들려고 알아봤더니, 며칠 전에 봉 감독이 판권을 사갔간다(<날 보러와요>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다). “이럴 수가!” 조금 더 지나 박 감독에게 <올드 보이>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복수는 나의 것>을 마친 뒤였다. “복수할 기회다!”멀쩡한 20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딘지 모를 건물 한구석의 4평 남짓한 밀실에 갇힌다. 조직폭력배가 의뢰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사람을 잡아다 가둬놓고 징역살이를 시키는 것이다. 남자는 의뢰인이 누군지, 왜 그러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게 10년을 갇혀 있다가 마취된 상태에서 공원에 버려진다.‘출소’한 남자는 복수를 다짐하며 의뢰인
박찬욱의 <올드 보이>
-
작금의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는 단지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가리키진 않는다. 영어는 동아시아 변방에 사는 보통 사람에게도 생존을 위한 구명대요, 교양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이며, 지위를 업그레이드하는 연료로 받아들여진다. 스물 몇해를 사는 동안 단 한번도 영어가 자신의 삶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 없던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 영주 또한 이 영어의 ‘광풍’을 피해갈 수 없다. 동장님의 ‘세계화 시대의 공무원론’에 이끌려 억지로 영어학원에 등록한 영주는 영어에 관심도, 실력도 없는 탓에 학원생활이 괴롭다. 그러던 그녀에게 서광이 비치니, 난생처음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남성 문수를 만난 것. 천성이 바람둥이인 문수의 의례적 행동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한 영주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영어에 매진한다. 영어를 매개로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로맨틱코미디로 담는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영어 콤플렉스를 통렬하게 부수려는” 김성수 감독의 바람을 담고 있다. “언어나
김성수의 <영어 완전정복>
-
‘똥개’는 족보가 없는 개다. 예전엔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였고 특별히 영리하거나 멋있거나 예쁜 개가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 정(情)이 가는 개, 똥개는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똥개>의 주인공은 똥개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모든 판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친구다. 아무 데나 침뱉고 괜히 눈을 부라리는 양아치지만 남들이 허리를 굽히는 권력이나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남자다. 곽경택 감독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사람은 곽 감독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보여줬고 <친구>를 끝내고 영화제 참석차 몬트리올에 갔다가 그 글을 읽은 곽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영화판권을 샀다. <챔피언>을 끝내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똥개>는 곽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휴먼코믹드라마”다. 누가 “똥개야”라고 부르면 주인공과 주인공이 기르는 똥개가 함께 뒤돌아보
곽경택의 <똥개>
-
“현대사회에 도인들이 살고 있다.” <마루치 아라치>는 이 하나의 전제에서 시작한다.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청소부가 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경공을 쓰고 있고 길에 앉아 운세상담을 하는 할아버지가 실은 내공의 고수라는 ‘황당한’ 상상이 <마루치 아라치>라는 현대판 무협영화를 가능케 한다. 이야기는 어리버리한 경찰 상환이 우연히 도인들의 세계에 눈뜨면서 시작된다. 늘 남에게 당하며 사는 데 익숙한 청년 상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는 여자 의진, 내공의 고수인 7명의 신선 등이 등장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펼친다. 그러니까 류승완 감독의 <마루치 아라치>는 애니메이션 <마루치 아라치>와 내용상 별 관계가 없는 영화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마루치 아라치의 어원에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산마루, 할 때 쓰는 것처럼 ‘마루’는 가장 높은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마루치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자,
류승완의 <마루치 아라치>
-
역대 최고의 주먹은 아마도 전문가들이라면 ‘잇뽄’ 김두한 등과 함께 그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시라소니’ 이성순. <조선의 주먹>은 한반도의 북쪽을 주먹으로 호령했고, 중국 만주, 상하이 등지에서 수많은 전설을 남겼던 시라소니를 그리는 영화다. 그렇다고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일대기 식으로 그려내는 건 아니다. 1936년 겨울 만주의 봉천(현재 심양)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허구적 재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싸움을 막무가내로 좋아했고 환상적인 솜씨를 가졌다는 시라소니의 캐릭터만 사실에 가깝고, 나머지 이야기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나가게 된다. 영화는 5년 전 맞붙었다가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이상대를 시라소니가 찾아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본군과 중국인들로부터 조선인 거리를 지키고 있는 듬직한 주먹 이상대는 신임 일본 치안책임자 도조의 위협에 맞서고 있던 형편으로 시라소니의 갑작스런 도전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런 와중에 도조 또한 천하의
김태균 감독의 <조선의 주먹>
-
사이버펑크 2차 대전 발발!래리 & 앤디 워쇼스키의 <매트릭스2 리로디드>(Matrix Reloaded) + <매트릭스3 레볼루션>(Matrix Revolutions)난데없이 튀어나와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입 5억2천만달러를 올리고 DVD 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 왕관까지 내처 차지한 <매트릭스>는 1999년 최고의 깜짝 히트였다. 아니 사실 그 이상이었다. <매트릭스>는 1970년대 이래 심미안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던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다층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신무기까지 보탰다. 워쇼스키 형제는 2001년 3월부터 2002년 7월까지 캘리포니아와 시드니 폭스 스튜디오에서, 본래 그들이 3부작으로 구상한 인간 대 기계의 사이버펑크 전쟁 서사시 2편과 3편을 찍었고 워너는 도합 3억달러를 쏟아넣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제작자 조엘 슈마허는 2편 <매트릭스2 리로디드&g
2003년 최강 프로젝트 해외영화 12편 (1)
-
터미네이터, 세 번째 귀환조너선 모스토의 <터미네이터3: 기계들의 반란> (Terminator3: Rise of Machines)용광로 속에서 그의 뼈대가 녹아 사라지는 순간에도 감히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은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돌아온다”는 것은 그의 입버릇이었으니까. 터미네이터의 세 번째 귀환은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2002년 4월 제작에 돌입해 9월 촬영을 마친 <터미네이터3>는 50대 중반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다시 T800의 이름으로 소환해 2003년 여름 시즌 제패의 출사표를 던졌다. “오사마 빈 라덴의 집 전화번호만큼 알아내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돌 만큼 의 보안은 철통 같지만 이야기의 구조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3편의 시계는 <터미네이터2>로부터 10년 뒤.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성장한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2029년을 지배하는 기계들은 다시 암살자를 보내고 인간 레지스탕스는 사이보그 T800을 보호자로 파견
2003년 최강 프로젝트 해외영화 12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