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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쉽게 찾아지는 것이라면 ‘대안의 영화’라는 말이 구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로 3회를 맞기까지 전주국제영화제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가 않았다. 2년 전 영화제가 출범할 때 “이미 부산과 부천에 국제영화제가 있는데 왜 또 만드느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지난해에는 영화제 직전에 프로그래머가 바뀌는 악재가 닥쳤다. 그럼에도 애초에 내걸었던 ‘대안의 영화’라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서 차분히 성과를 쌓아왔지만, 올해에도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영미권 영화의 수급이 배급사들의 이윤 논리에 막혔고, 개막작으로 마땅한 한국영화를 찾기도 힘들었다. 칸영화제와 기간이 가까운 탓에, 미리 점찍었던 남미의 수작 몇편을 칸에 뺏기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구해온 250여편의 영화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독의 작품은 많지 않지만, 프로그램 하나하나엔 땀냄새가 배어 있다.오는 4월26일부터 5월2일까지 7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 우선 눈에 띄는 건, 이 영화제가 첫회부터 강조해
2002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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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타고 로마를 돌아다니며 <나의 일기>를 찍은 좌파 감독 난니 모레티는 문득,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살해된 장소를 찾는다. 그가 평생을 따라다닌 수난의 정점을 마주했던 그곳에는 이제 하얀 햇살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시인이고 영화감독이었으며 고집센 좌파였던 파졸리니가 죽은 그곳에서, 모레티는 20여년 전엔 선명했을 어떤 흔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도 그 흔적은 파졸리니가 살아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미친 듯이 되살아날 것이다.파졸리니는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보병대위였던 그의 아버지는 오랜 귀족혈통을 자부했지만, 어머니는 농민의 딸에서 학교 교사까지 어렵게 올라간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맏아들은 그중에서도 어머니를 사랑했고, 어머니가 뿌리를 두고 있는 농촌 문화를 경애하게 됐다. 세살 때 이미 소년들의 다리에서 관능을 발견한 파졸리니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됐으나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레지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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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크리스틴 버천은 아직 자신이 싫어할 만큼 이상한 프로젝트를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틴 버천(1962∼)에 대한 기사의 첫 문장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데슨 호는 이렇게 표현했다. 96년 8월, 버천이 제작한 <스톤월>의 개봉을 앞둔 때였다. 얼핏 들으면 악담 같지만, 1∼2년에 한번쯤은 미국영화계에 논쟁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독립영화를 선보이곤 하는 버천에게는 해로울 것 없는 수사다.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토드 헤인즈의 91년작 <포이즌>부터 <졸도> <고 피시> <세이프> <스톤월> <키즈>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 등등 실제 버천이 손댄 영화들은 주류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시선과 돌파력을 지녀왔으니 말이다.이는 때로 원인 모를 질환에 시달리는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인 <세이프>에서처럼 안정된 이성애 문화가 실은 질병 못지않은
크리스틴 버천 회고전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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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녀석들 Bad Company감독 후루마야 도모유키. 일본 2001년일본에서 학원폭력이 사회문제가 돼 군대식 통제시스템을 학교에 도입했던 80년대 초반의 한 시골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자기 생활보고서를 쓰게 하고, 그것을 기초로 모든 학생을 모범생과 낙오자로 나눠 교실 게시판에 명패를 붙인다. ‘정직함’을 강요하며 학생들의 인격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학교에서, 자기 인격과 판단을 소중히 여기는 주인공 사다토모와 그를 따르는 친구들은 담임교사의 표적이 된다. 80년대 중반 고등학생이었던 후루마야 감독은 탁 트인 시골 풍경과 억압적인 학교 환경을 대조적으로 배치하면서 성장의 그늘과 고통을 그들의 편에 서서 차분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그를 통해 전근대적 질서로 퇴행하려는 기성사회의 욕구가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넌즈시 말한다. 그게 호소력이 크다.안양의 고아 The Orphan of Anyang감독 왕차오. 중국 2001년중국 근대화
아시아 독립영화포럼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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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연구역 Smokers only감독 베로니카 첸. 아르헨티나 2001년이 영화로 데뷔한 여감독 베로니카 첸이 보여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밤 풍경의 네온 지도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말처럼 “촉수를 어지럽게 내뻗은 거대한 문어” 같다. 그 문어발 사이에 갇힌 이 젊은이들의 절망은 또 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여주인공은 카페에서 연주하는 무명 록밴드의 보컬리스트이지만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그를 교체하려 한다. 거리에서 우연히 남창을 만났다가 그와 사귀고, 그의 세계에 다가서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는 현실에 안주한 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남창의 시선을 빌려 욕망의 소비에 허기진 도시의 밤 거리 풍경을 현란하면서도 공허하게 잡아낸다. 미래는 물론, 향수할 과거조차 없어 보이는 남미 청춘의 우울한 초상화이다.개 같은 나날 Dog Days감독 울리히 사이들. 오스트리아 2001년울리히 사이들은 다큐멘터리 <상실시대>(92년), <애니멀 러브>(95년)
현재의 영화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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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세르베 회고전벨기에 출신의 라울 세르베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다. 1960년 <항구의 불빛>으로 데뷔한 이래 14편에 이르도록, 그의 애니메이션은 현대 문명에서 파생된 억압과 부조리에 대한 우화이자 셀과 종이, 연필과 잉크, 실사영상, 컴퓨터그래픽 등 갖가지 재료를 자유롭게 휘두른 상상화였다. 다섯살 때 이미 아버지의 소장 필름을 뒤적이며 애니메이션의 마술을 궁금해했다는 그가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 것은, 겐트의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와 영화를 수학한 뒤다. <항구의 불빛>, 거리 악사의 쓸쓸한 삶을 그린 <잘못된 음표> 등 초기작이 낭만주의적인 여운을 지녔다면, 65년작 <크로모포비아>부터는 풍자의 날이 예리해졌다.모습도, 움직임도 천편일률적인 회색 군대에 모든 색깔과 다양성을 박탈당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를 회복해가는 싸움의 과정을 만화적으로 그린 <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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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흐름오늘, 여기, 우리는...‘한국영화의 흐름’에서는 한국영화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기성감독과 신인감독의 영화를 모았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주목받았던 남기웅 감독의 신작 <우렁각시>가 전주에서 첫선을 보인다. 불법 총기제조장인 ‘뒷거래철공소’ 직원 건태가 어느 날 우렁이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독을 얻고 우렁각시를 만난다. <대학로…>에서 액션과 누아르의 형식을 마구 뒤섞었던 남기웅 감독은 이번엔 괴수영화 등 B급영화 스타일을 엮어 ‘디지털 동화’를 만들었다.‘일흔이 넘은 노인의 사랑’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는 실제 주인공이 출연해 노년의 사랑과 섹스를 낱낱이 재연한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그들을 지켜본다. <아미그달라>(이충직, 이현승, 김의석, 한상준, 김명화 감독)는 ‘기억’을 주제로 만든 5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 주간, 한국영화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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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 전쟁의 유령‘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 전쟁의 유령’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전쟁 관련 영화 6편을 소개한다.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976년 미국에서 발견된 다큐멘터리 <싸우는 군인들>(Fighting Soldiers, 일본, 1939)은 특히 눈길을 끈다. 일본 다큐멘터리의 원조격이자 평단에서 반전작가로 이름높은 가메이 후미오의 작품으로, 1939년 전쟁시기에 만들어져 직접적인 전쟁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전쟁의 공포를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가메이 후미오의 또 다른 다큐 <일본의 비극>(A Japanese Tragedy, 1946)은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의 침략사를 뉴스릴을 사용해 설명하면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외국시장을 얻기 위함이었음을 고발한다.<잊혀진 군대>와 <그 눈물 다시 한번>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일본의 참회록’이다.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어린이 영화궁전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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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얘기다. 영화로 세상을 배우고 영화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할리우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에서 누구와 찍든, 그 자체로 험하고 지난한 작업이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이들과 손발을 맞추는 일이 고통스런 투쟁을 수반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충무로에서 <축제> <장밋빛 인생>의 시나리오를 썼던 육상효 감독은 미국 유학의 길에서 첫 영화 <아이언 팜>의 열쇠를 쥐었다. 그리고 글쟁이 특유의 예민한 촉수로 체험한 할리우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할리우드 키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대신 그는 이런 얘길 들려준다. 환상을 접고, 현실을 만나자. 영화를 만드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외로운 싸움일지니. 편집자 주1999년 10월수업을 곱씹으며, 모욕을 되씹으며지난밤을 꼬박 새우다.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다. 25장짜리 트리트먼트를, 그
<아이언 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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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감독 ‘쌩 효 육’사무실에 입주했다. 한평도 안 되는 아주 비좁은 사무실을 감독방이라고. 내 표정을 보고 미국 프로듀서가 그래도 창 밖으로 보이는 게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라고 너스레를 떨고 나간다. 그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본다. 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에서 태어났다. 요즘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가 돼서 갑자기 고향이 유명해졌단다. 그래 여기가 할리우드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 육상효 많이 컸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바로 건너 보이지 않는가. 난 내 방에서 그 스튜디오를 건너다 본다. 이기성 조감독이 와서 멋지게 만들어진 사무실 팻말을 자랑한다. 아이언 팜, 감독 쌩 효 육.널 상처주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는다스토리보드 영의 그림 그리는 속도가 오늘은 유난히 느리다. 말은 안 하지만 내 컷 아이디어를 맘에 안 들어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거다. 봉황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아랴. 구조와 캐릭터. 이게 이 코미디의 두축이다.
2001.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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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충남 금산에서 왔소”이틀째의 자동차 신 촬영이다. 오늘은 앵글을 위해 숏메이커라는 이동형 크레인도 왔다. 트럭 위에 탐재된 숏메이커가 썩 멋지다. 코리아타운의 한 중심 올림픽 대로를 달리면서 촬영을 한다. 한국 선술집에서 나오는 한 취객이 영화 촬영 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면서 “재키챈!” 하고 외치다가 차 안에 차인표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 진짜 차인표다!” 하고 외친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앞뒤에서 우리를 호위한다. 무섭기만 하던 미국 경찰이 나를 호휘하는 것 같아 기분좋다. 신호대기를 하는데, 옆차의 미국 사람들이 신기한 듯 본다. 그들을 아주 늠름한 표정으로 본다. “그래, 내가 바로 한국 충남 금산 출신의 육상효다.”2001년 12월촬영은 싸움이다촬영 12일째 배우들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간다. 차인표의 피부가 부쩍 거칠어졌다. 얼굴도 눈에 띄게 빠졌다. 배우도 힘든 직업이다. 차인표는 촬영기간 내내 쉬는 날이
2001. 11 ~ 200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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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반전이다. 1980년대의 침체를 <플레이어>(1992)로 보기 좋게 역전시켰던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장 르누아르의 시선으로 추리한 앙상블 미스터리 <고스포드 파크>로 근작 <진저브레드 맨>과 <닥터 T>가 남긴 미진한 뒷맛을 후련하게 일소했다. <고스포드 파크>에서도 인간 군상들의 쇼는 알트먼 영화에서 늘 그렇듯이 난장판으로 끝나고, 그 아수라장을 빚어나가는 솜씨는 경이롭다.유사시 연출을 대행할 감독을 두고 메가폰을 잡는 77살의 나이에도 인간 일반과 주류 할리우드를 향한 독설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지금도 차기작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 최근 본 할리우드영화를 묻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대답하는 이 오만하고 냉정한 노장의 스테이지 뒤쪽을 영화평론가 유운성이 들여다보았다. 편집자1990년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망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구로자와 아키라와
<고스포드 파크>, 혹은 인간 난장의 오만한 지휘자 로버트 알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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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트먼의 명성을 확고히 한 영화는 블랙코미디 <매쉬>(1970)이다. 이후 알트먼 영화가 세련된 복합성을 지닌 작품으로 변화하는 것은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트의 참여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졌다. 지그몬트는 <맥케이브와 밀러부인>(1971), <이미지>(1972) 그리고 <기나긴 이별>(1973)에서 알트먼과 함께 작업했다. 그는 당시 막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하던 새로운 감독들과 많은 작업을 같이 했는데, 그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슈가랜드 특급>(1974), <미지와의 조우>(1977)), 마이클 치미노(<디어 헌터>(1978), <천국의 문>(1980)), 존 부어맨(<서바이벌 게임>(1972)) 등이 포함되어 있다.70년대 이루어진 장르영화의 쇄신에 지그몬트의 유려한 영상이 큰 몫을 담당했음을 주목해둘 필요가 있다. 마이클 치미노의 대작 서부극 <천국의 문> 작업 당시, 지
로버트 알트먼의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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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 떨어져 뒷짐만 지고 서 있는다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힘들다. 꺼슬한 손, 굽은 허리, 할머니의 느릿한 몸짓은 때묻은 유년의 문지방 안으로 어느새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 우리는 한때 상우였던 자신을 본다. 김치를 찢어 밥 위에 얹어주는 할머니에게 입을 삐죽이며 앙탈하고, 마른 가슴팍을 끝내 밀쳐내던 못된 아이를. 이 영화를 흐뭇한 추억에 젖어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넘치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고 함부로 대했던 죄책감과 되갚을 길 없는 쓸쓸함 때문일 것이며, 극장 문을 나와서도 ‘내 할머니·외할머니’께로 향한 길은 각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결국 응석을 그치는 손주가 밤새 써서 건네는 크레용 편지처럼,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는 이정향 감독의 헌사처럼, 여기 <집으로…>를 본 평론가, 작가들이 보내온 글은 그 꼬불꼬불한 마음의 길을 타박타박 따라가며 쓴 엽서다. 편집자학식높고 교양있는
`액자` 속의 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