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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이야기> 1997고구마의 영화데뷔작. 음악 때문에 여균동 감독을 만났다가 여관 종업원 역에 전격 캐스팅됐다. 여관방에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촬영을 해 그걸 깡패에게 ‘바치는’ 동시에, 문성근이 분한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는, 중요한 조역. 몰카 비디오를 처음 찍은 후 하는 대사 “이제 어떻게 살지 필이 와요, 필이”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구마의 첫 영화이자 고구마 출연작 중 백미. 고구마는 극중 전혜진이 클럽에서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를 작곡, 음악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998<죽이는 이야기>를 끝내고 얼마 안 있어 순전히 ‘배우’로 캐스팅된 영화.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잘 되고, 영화가 처음인 나를 배려 많이 해 주는” 행복한 작업이었던 <죽이는 이야기>와 달리, 이 영화는 “하고 나서 후회”를 하고 만다. “영화판을 제가 잘 몰라요. 사실 지금도. 무슨 영화를 해야 하고 말아야 하는지
고구마의 영화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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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는 모험처럼 보인다. 이창동 같은 냉정한 리얼리스트가 멜로판타지를 시도한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주인공 남녀는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너무 전형적인 약자들이다. 전과자는 범법행위를 무기삼아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종두는 어딘가 모자랄 뿐 남을 해칠 만큼 악하지 못하다. 주인공들은 ‘선’으로, 사회는 ‘악’으로 고정돼 평행선을 달리면서 주인공들은 자꾸 벼랑으로 몰릴 것 같다. 이렇게 도식화됐을 때 이분법이 굳어지고, 인간을 읽을 새로운 단서나 아이러니는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다.지난해 11월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이야기’라는 힌트만 주고 촬영에 들어간 지 5개월이 흐른 지난 4월3일 제작진은 처음으로 촬영현장을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를 접했을 때, 우려했던 그 도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창동 감독은 어떤 생각 아래 어떤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사회, 그리고 우리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촬영현장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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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두(설경구)는 전과 3범이다. 폭행, 강간미수에 사람을 치어죽이고 뺑소니쳤다. 뺑소니로 2년 반을 복역하고 집에 왔더니 가족들이 이사가고 없다. 29살에 별을 세개나 단 종두도 한심하지만, 감옥간 그에게 이사간 사실도 알리지 않고 출소일조차 모르는 가족들도 무심하다. 힘들게 집에 온 뒤에도 엄마, 형, 형수 등 종두의 가족은 그를 반기지 않는다. 골칫덩어리로 여길 뿐이다. 출소한 뒤 마땅한 일 없이 어슬렁대던 종두는 뺑소니칠 때 죽었던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피해자의 딸이자 뇌성마비 장애인인 한공주(문소리)를 만난다. 가족들에게 냉대받기는 공주도 마찬가지다. 공주의 오빠 내외는 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배당되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막상 공주는 전에 살던 낡은 아파트에 혼자 버려놓고 갔다. 옆집 아줌마에게 공주의 밥값으로 월 20만원을 주면서, 새 아파트에 장애인 입주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원이 나올 때만 공주를 그곳에 데려다 놓는다.<오아시스>의 줄거리는 두개의
<오아시스>는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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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든다는 건 때로 생명을 거는 일이다.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에겐 그렇다. 이란 현대사의 그늘을 증언한 작품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녀에게 영화 만들기란, 생사를 건 투쟁이다. 그 엄중한 진실을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4월5일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를 만나는 일은 설레고 두려운 일이다. 편집자우리의 영화 동지 타흐미네 밀라니가 이란 정부에 의해 체포됐다는 소식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영화감독에게 이런 폭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란에서도 전례 없던 일이다. 우리는 밀라니 감독을 지지하고 그와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영화인들의 연대선언문).지난 가을, 인터넷에 연대선언문이라는 것이 떠돌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구명운동에는 모두 1500명의 영화인이 서명을 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시스,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리 안, 마이크 리, 페이 더너웨이, 스파이크 리, 두산 마
카메라를 든 이란의 여성전사,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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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일하려면 스스로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2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성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다. 이란에는 10명 정도의 여성감독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500명은 남성감독들이다.” 지난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란의 여성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이란에서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여성을 전통의 상징으로 여겨 현대 문명에서 소외시키는 이 문화권에서 영화를 찍는 여성들이 그런 굴레에 갇힌 자신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이란에서 활동중인 여성감독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은, 타흐미네 밀라니를 빼면, 마흐말바프가의 사람들이다. 그 중 하나가 언급한 마르지예 메쉬키니로,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아내다. 그의 작품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여자의 생애’를 보여주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아
이란의 여성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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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 터울의 두 감독, 박찬욱과 김지운은 어딘지 닮았다. 체내에 흐르는 영화광의 피가 잡아당겨서 그런지 시사회나 회고전을 비롯해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서 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이 “우정의 가교”였다고 말하는 두 감독은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로 21세기 첫해의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영화세계가 겹치는 교집합은 그간 만든 영화보다 그간 본 영화쪽에 훨씬 폭넓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두 감독이 만나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근사할 것이라는 발상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진정 서로의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해줄 수 있는 두 감독의 이야기는 엿듣는 즐거움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해보였다. 김지운은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나라면 두려워서 코미디로 피해가는 부분을 과감히 치고나간 영화”라며 박찬욱을 “늘 나보다 한두발
제 1장 그 감독,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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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일본 최고의 화제작 <배틀로얄>이 4월5일 무삭제로 개봉한다. 폭력성 논쟁을 낳으며 빅히트를 기록한 이 영화는 지난해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지만 일본영화 수입제한규정 때문에 한동안 국내 관객과 만나기 어려웠다. 산세바스찬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개봉요건을 갖춰 곧 극장에 걸리는 <배틀로얄>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고 야쿠자영화의 대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망해본다. <씨네21> 통신원 사토 유가 직접 진행한 감독인터뷰까지 <배틀로얄>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았다. 편집자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총격전을 본 적 있는가?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울려퍼지는 학살극을 상상해보았는가? 지난해 봄 화창하게 개인 어느 날, “좋아하는 애 있니?”라고 묻던 친구가 눈앞에서 목이 잘려 쓰러져도 반항할 수 없었던, 겁먹은 소년의 창백한 눈동자를 들여다본
<배틀로얄>, 그 폭력과 피와 결핍의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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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필름누아르의 고전이자 원형으로 꼽히는 <말타의 매>를 만든 감독. 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동료영화인들이 줄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상황을 보다 못한 그는 캐서린 햅번, 제임스 캐그니 등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끔찍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미국을 떠났다. 험프리 보가트할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배우. 그가 없었다면 필름누아르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가 구축한 탐정의 이미지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존 휴스턴이 이끄는 국회 앞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출연작 <케인호의 반란>을 연출했던 에드워드 드미트릭처럼 애초의 태도를 바꾸었다. 조사위원회에서 그는 `공산당에 가까운 사람과는 앞으로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엘리야 카잔<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사회를 리얼하게 해부한 `사회파 감독`의 대표주자. 1999년 카잔은 논란 속에 아카데미 공로상
매카시즘 시대의 영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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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배틀로얄>의 화면을 보며 아름답다는 착각을 하는 건 분명 42명의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녀, 미소년들 때문이다. 냉혹한 세상과 교육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간담이 서늘해질 무렵 “사실… 나, 너 좋아했잖어” 같은 안타까운 고백을 남기고 죽어가는 소년, 소녀들의 사정을 듣고 있자면 마음 한켠이 싸해진다. <배틀로얄>은 아이돌 스타의 요람으로 시바사키 코우 같은 많은 아이돌 스타들을 배출해냈고 42명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따라하는 <배틀로얄> 코스프레는 큰 인기를 얻었다.남자 15번 나나하라 슈야 역 . 후지와라 타츠야 . 1982년생<배틀로얄>에서 여학생들의 흠모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슈야 역의 후지와라 타츠야는 TV광고나 드라마를 통해 성장한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연극계가 배출해낸 신성이다. 1997년 연극 <신도쿠마루>의 주연을 뽑는 오디션으로 데뷔하여 같은 해 10월 영국 런던공연에서 현지 신문과 매스컴의 극
<배틀로얄>의 아이돌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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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자면 현실적 소재,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점에서 영화의 장단점이 동시에 나온 것 같다. 그런 부정합이 박 감독이 원한 아우라였던 것도 같고. 이질적인 소재와 형식이 빚는 충돌 때문에 한번에 소화하기 힘들었다. 마틴 스코시즈는 미국 내 계급대결 구도와 베트남전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 <택시 드라이버>를 몽환적으로 풀어서 잊지 못할 영화로 만들었는데, <복수는 나의 것> 역시 그런 종류의 강렬함이 있다. 이런 소재를 현실적 시각으로 풀 때 더 섬뜩할까, 스코시즈나 린치처럼 부조리한 악몽으로 풀었을 때 더 섬뜩할 것인가. 대중적으로는 전자가 답일 테고 소수 마니아는 후자에 열광할 것 같은데 <복수…>의 개봉결과가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복수…>를 박 감독의 상업적인 실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박찬욱: 개봉을 앞두고 불안, 초조, 긴
제 2장 그 영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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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이나 걸렸다. 시간을 좀더 줘야 된다.” 울음을 삼키느라 목이 멘 할리 베리의 목소리에, 장내는 사뭇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미국 L.A. 현지시각 3월24일 저녁,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할리우드&하이랜드 컴플렉스의 코닥시어터. 단골 행사장이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을 떠나 42년 만에 아카데미가 시작된 ‘할리우드’ 거리로 돌아와 마련한 새 거처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아카데미 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사형수 남편을 잃고 백인 간수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을 통해 흑백문제의 깊은 골을 들여다보는 <몬스터스 볼>로 트로피를 거머쥔 할리 베리.“오, 마이 갓!”만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던 베리는, 역대 수상자 가운데 가장 긴 소감을 토해냈다. “도로시 댄드리지, 리나 혼, 다이앤 캐롤, 그리고 내 뒤의 제이다 핀켓, 안젤라 바셋, 비비카 폭스 같은 여성을 위한 순간이다. 이제는 이름 없고, 얼
제74회 아카데미 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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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해외에서 지명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적도 없고 유럽이나 미국의 비평가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거나 논쟁의 대상이 된 적도 거의 없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 그 다음 세대의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 기타노 다케시 등 일본영화의 거장들을 나열해보면 후카사쿠 긴지의 이름이 들어갈 곳을 쉽게 찾을 수 없다. 회고전이 열린 것도 기껏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미이케 다카시나 구로사와 기요시에게도 주어진 영광이라면, 전후 일본영화사의 산증인 후카사쿠 긴지에게는 너무 늦은 회고전이다.흥행과 비평 모두 만족스럽게, 꾸준하게후카사쿠 긴지의 나이는 71살. 지금도 여전히 영화감독으로 ‘활동’중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도 요즘 신작을 내고 있지만, 후카사쿠 긴지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후카사쿠 긴지는 자의든 타의든 조
폭력미학의 거장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 감독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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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영화제가 열리는 할리우드의 3월은 `축제의 달`이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영화인들은 함께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점검해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사색 속에는 이들은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상처, 혹은 오점과 마주친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몇 년 전 엘리야 카잔이 공로상을 수상할 때 아카데미 수상식장 청중의 반응은 이 사건이 여전히 `현존`함을 반증했는데, 곧 절반 정도의 참석자들이 대원로 선배의 수상을 싸늘하게 외면했던 것이다.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은 다방면으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지난 3월24일 아카데미영화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할리우드의 빨갱이와 블랙리스트: 영화산업에서 정치적 투쟁>이라는 전시회의 열어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사진, 오디오, 비디오 자료와 영화클립, 기록화면 등을 공개했다. `정치적 이념과 이력이 영화인 개인의 일생을 좌우한 당시 미국사회의 배경과 그 영향을 후세대도 기억해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반세기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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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 오후 <배틀로얄>의 제작사 도에이 사무실에서 70세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그의 아들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후카사쿠 겐타도 함께 했다. 우선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 <배틀로얄>에 대한 궁금증을 후카사쿠 감독으로부터 듣고 싶었다.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후카사쿠 긴지(이하 긴지) 70년대까지 내가 했던 일은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 같은 야쿠자영화였다. 이처럼 폭력이 주축을 이루는 작품들이 평판을 얻었지만, 일본영화가 점점 더 폭력과 에로티시즘이라는 두개의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상황에서 내 영화도 그중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80년대에는 여성 관객이 많아져서인지 그런 영화의 기획을 실현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80년대나 90년대에는 액션영화를 2편이나 3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조감독 일을 하고 있던 아들이 소설 <배틀로얄>을 들
후카사쿠 긴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