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주 전, 뉴욕의 아파트에서 아카데미 시상단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다. 내 오스카를 돌려받으려고 전화했나보다 했는데, (그걸 맡긴) 전당포도 망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니 내 영화들이 후보에 오르지 않아서 사과하려는 건지도, 전에 맨해튼 5번가에서 일할 때 한 노숙자가 점심을 사겠냐기에 50센트를 준 걸 알고 진 허숄트 박애상을 주려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중략) 뉴욕에서 찍은 영화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기에, 나보다 잘하는 다른 감독들이 50여명은 되니 마틴 스코시즈나 스파이크 리나 마이크 니콜스를 부르라고 했다. 그들은 다 바빠서 안 된다고 그래서 왔다.-우디 앨런 뉴욕에 대한 헌사를 위해 오스카에 처음 등장하면서동정은 원치 않는다. 우선, 아무것도 못 받았던 수년간 창피당할 기회를 너무나 많이 줬던 음악분과에 감사하고 싶다. (중략) 여기에 걸어나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제니퍼 로페즈)이 주는 상을 받다니, 천국에 가보진 않았지만 이런 기분에 가깝지 않을까.-랜디 뉴먼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장의 코멘트들
-
김지운: 여담이지만 <복수…>에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 녹음하려고 1시간 반 차 타고 양수리 가서 2분 녹음하고 다시 1시간 반 차 타고 집에 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음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정말로 이상하다>의 주제곡 <정말로 이상하다>입니다.”라는 말 녹음하겠다고.박찬욱: (미안한 듯) 믹싱할 때는 들리게 했는데 극장이 이상해서 그래.김지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연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영화에서는 표현된 적 없는 인물의 기이한 행태가 기주봉 선배를 비롯한 76극단 멤버들의 조연을 중심으로 많이 보인다. <어둠의 자식들> 끝내고 영화를 안 했던 기주봉 형을 <조용한 가족>에 불렀는데 처음부터 다른 배우와 달랐다. 세트장에 나타나자마자 “내가 나그네 입장에서 저 밑에서부터 그냥 올라와봤어.” 하는데, 예전 76극단 선배들과 의사소통하던 특이한 방식이 되살아나면서, 이런 형한테 내가 연기주문을 한다는 것이 무참했
제 3장 그 배우, 더 이상하다
-
김지운: 영화에서 결정적인 모티브로 작용하는 누나와 보배의 죽음이 너무 느닷없이 개연성 없이 들이닥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박찬욱: 누나의 죽음은 느닷없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개연성은 잠깐 생각해보면 납득할 정도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다 묘사할 수는 없으니까. 누나는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격이라기보다는 기계장치 같은 존재, 던져진 인물이다.김지운: 신하균이 누나를 닦아주는 장면은 경험이 있나?박찬욱: (흠칫 놀라며) 경험? 그런 것은 없고 근친상간의 뉘앙스를 의도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변태엽기영화가 될 거라 안 그런 척하려고 했다. 신하균이 몸을 닦는 연기를 할 때 나의 주문은 “더 깊숙이 닦아라”였다. 신하균이 클로즈업에서 목욕탕 때밀이처럼 수건을 탕탕 치며 웃는데 약간 음탕한 표정이 잘 살아 마음에 들었다.김지운: 그 밖에도 섹슈얼리티를 의도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나?박찬욱: 송강호가 전기고문을 하며 배두나의 귀에 침을 바르는 장면이 상징적인
제 4장 리얼리즘, 그것도 이상하다
-
1920년 뉴욕의 유대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노르마 바르즈만 여사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남편 벤 바르즈만과 함께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 소용돌이를 몸소 겪은 이제 몇 남지 않은 역사의 증인이다. 81살의 할머니는 조금도 피곤함을 내보이지 않은 채 파란만장했던 경험을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올 봄에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에도 실릴 거라는 정보와 함께.할리우드에는 언제 들어갔는가.1941년 대학을 졸업한 뒤 시나리오 수업을 받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할리우드는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던 조카 헨리 미어스를 통해 가까워졌다. 공산당원이었던 조카는 할리우드의 노조를 설립한 사람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그를 따라 할리우드 어딘가에서 상영하는 소련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거기엔 350명에 가까운 할리우드의 진보주의자들이 다 와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언니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노르마 바르즈만 인터뷰
-
-
“그리고 오스카상 수상자는…”(and the Oscar goes to…)이란 프롤로그에 쉼표가 따라붙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후보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상을 받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누구나 얘기하지만, 후보에 올랐는데 상을 마다할 후보가 또 있을까.여기 유력한 후보였지만 아쉽게도 아카데미와 연이 닿지 않은 이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또 뺐기다니...리들리 스콧과 피터 잭슨< 리들리 스콧은 올해도 웃지 못했다. 1992년의 <델마와 루이스>, 지난해의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3번째 감독상 후보 지명. <글래디에이터>가 5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동안 수상자들의 경의어린 소감에 거듭 거명됐지만, 정작 감독상에 호명되지 못했던 지난해의 악몽을 과연 떨칠 수 있을까. 지난해 오스카에서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감독상을 빼앗긴 뒤 작품상을 받고도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던 스콧은, 올해 시상식 카메라에도 몇 차례 건조한 표정으로 담겼다. 기대도 실망도 않겠다는 듯
오스카의 불행아 톱 5
-
처음 그의 자전거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년 전, 외화가 느지막이 수입되던 시절의 한국 관객에게는 꼭 18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10살 소년 엘리엇은 서른의 청년이 됐고, 흥행성 약하다는 이유로 콜럼비아 영화사로부터 <E.T.> 기획을 퇴짜맞았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공동대표가 됐다. 20년이 지나고 재회한 영화 <E.T.>는 예전 그대로이면서 또한 다르다. 요즘 10대 관객의 입맛에도 달라붙는 일급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E.T.>는 여전하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완결되는 모멘트가 셀룰로이드 표면이 아닌 관객의 지각 속에 있다는 믿음을 가진 관객에게 <E.T.>는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감정의 박동을 전해온다. 하늘을 나는 희열과 이별에 눈물 흘렸던 소년·소녀들은 이제, 상실감의 그늘이 드리운 가정의 어린 남매 사이에 피어나는 묘한 긴장과 위로, 엄마의 외로움을 읽어낼 것이다. 정확한 연출 리듬에 감탄하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1)
-
김지운: 하나의 공간에 신하균의 죽은 누나가 묻히고 송강호의 딸이 죽고 결국 그 자리에서 신하균도 송강호도 죽는다. 그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나.박찬욱: 그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반대의 지점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김지운: 그런데 문제의 강변은 극중 인물의 비밀이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오픈된 장소다.박찬욱: 대낮의 야외공간, 적나라하고 가혹한 일광이 꼭 필요했다.김지운: 어려서 산과 계곡을 많이 쏘다녔는데 은폐돼 있고 비밀스럽고 음습한 공간에서 어두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탁 터진 공간에서 오히려 다 벗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툭 터진 장소에 사람을 끌고와 죽이는 것이 어둠 속의 살인보다 훨씬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욕망의 발현이랄까.박찬욱: 영화 속 죽음의 강가는 한국의 소박하고 평범한 산하이며 신하균 남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 자연에는 어머니 품 같고 어쩌고 하는 상투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것
제 5장 이상해서 좋다
-
★ 숫자로 보는 성공 스필버그, 하룻밤에 백만장자? 요사이 기준으로 보면 주연배우 개런티에도 못 미치는 1010만달러를 들여 제작된 <E.T.>는 <조스> <미지와의 조우>에 이어 3번째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갈아치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다. <버라이어티> 통계에 따르면 재개봉 전까지 <E.T.>의 북미 박스오피스 수입은 4억달러로 <타이타닉> <스타워즈>(재개봉 포함),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협>에 이어 역대 4위이며 세계적으로는 7억48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가능한 한 많은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현대적 배급전략이 이미 도입됐던 1982년이지만, <E.T.>의 흥행 추이는 첫 주말에 결판을 내는 90년대 오락영화들의 박스오피스 곡선과는 판이해서, 개봉 첫주에 2200만 달러(이하 단위 생략), 2주차에 2200만, 3주 2600만, 4주 2400만, 5주 2300만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2)
-
지난 1998년 오스카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공로상을 수상한 스탠리 도넌 감독이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한 대목을 재연, 노래와 탭댄스를 펼쳐보인 무대였다.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마련한 자리?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은 비를 타고>가 52년 당시 오스카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오스카 주최쪽은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늦게나마 사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야, 미안해. 내 늦은 사과를 받아줘”라고.어떤 깊은 뜻이 있었든, 취향과 노선의 문제였든,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얻고도 오스카에서 외면당한 비운의 영화(인) 리스트도 영화제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레베카> <이창> <싸이코> 등으로 5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늘 후보에 그치는 등 오스카와 최악의 궁합을 보여온 영화인 중 하나. 오스카는 늘 들러리로 만족해야 했던 히
역대 아카데미 탈락작품
-
예전에 한 술자리에서 내가 스필버그를 존경한다는 것에 대해서 발끈하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내게 대체 스필버그 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고, 난 당차게도 <E.T.>에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노라고 대꾸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그뒤로 나는 그분의 가열찬 비웃음의 융단폭격을 받아내야 했지만, 지금도 이전의 그 생각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솔직히 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항상 15페이지 이상 발전시킨 적이 없었으며, 웬만한 영화과 학생들은 필독하고도 남았을 <영화의 이해> 같은 영화이론서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는 나도 안다. 그래서 요즘 반성중이며 열심히 독서하고자 노력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다.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들은 어떻게 보면 본능적인 작업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 같다. 어린
민동현 감독의 첫사랑에 바치는 헌사
-
“이런 영화를 갈구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내심 불안했다. 그러나 영화제가 시작된 뒤에 관객들은 이미 볼 준비가 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997년 서울여성영화제가 처음으로 그 꾸러미를 풀던 날,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단상 위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는 행사가 아니라 운동이었다. 여성운동은 처음으로 영화를 끌어안았고, 영화는 처음으로 여성운동을 끌어안았다. 반향은 컸다. 영화제는 그 사이 존폐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한해 걸러 한번씩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올해부터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성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운동’은 그래서 이제 더이상 생경하지 않다.제4회 서울여성영화제가 오는 4월4일부터 12일까지 9일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7개 부문에 걸쳐 21개국의 80여편을 소개할 예정.7개 부문 프로그램의 색깔은 크게 세
전복의 매혹, 신나게 즐기자!
-
여성은 귀엽고 온순하고 참해야 하는가. 낡은 여성성에 대한 도발 그리고 전복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돼야 한다.제비꽃 향기: 아무도 믿지 않는다 Violet Perfume:Nobody Hears You 감독 매리스 시스타치 . 멕시코 . 2001년 . 9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개막작)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주체로서 인정도 보호도 받기 어려운 위치다. 특히 성폭력과 매춘은 이들이 접하게 되는 새로운 문제.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취약한 위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난한 아이들이라면 성폭력을 당해도 더욱 무시당하기 일쑤다. 멕시코시티에서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강간을 다룬 이 작품은 성폭력의 문제를 계급적 차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15살 중학생 소녀 제시카는 씩씩한 톰보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반항적이기도 하다. 제시카는 의붓오빠의 농간으로 강간을 당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새로운 물결·한국영화회고전·딥 포커스 부문
-
아남 Anam감독 뷰켓 알라쿠스 . 독일 . 2001년 . 86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독일에서 청소부로 살아가는 터키여성 아남은 아들이 마약에 빠져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남은 아들을 찾아내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한다. 전통을 고수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의 추락과 그 극복과정을 통해 여성의 힘과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나만의 스타가 되어줘 Be My Star 감독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 오스트리아,독일 . 2001년 . 65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에 대한 혼란을 잘 포착해낸 영화. 열네살 소녀가 동네의 스타인 동갑내기 소년과 연애를 시작하는데, 이들은 밤마다 부모의 눈을 피해 부부놀이를 한다. 10대들의 눈에 비친 부부의 성과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축복 Blessed 감독 다카시 토시꼬 . 일본 . 2001년 . 78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감독의 애인인 스트립댄서 사쿠라의 시점으로 전개한 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그외 영화들
-
영화왕국 발리우드의 그늘에서 피어난 인도여성독립영화들과 아시아 각지 여성들의 자기 보고서 역할을 한 단편영화들.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2중의 굴레를 쓴 여성감독들은 올곧은 현실인식과 정직한 자기 응시를 통해 다시 '태양'이 되기를 꿈꾼다. 소외된 자들의 벅찬 날갯짓. 여성영화의 힘에 주목할 일이다.봄베이 유너크 Bombay Eunuch 감독 알렉산드라 시바,미셸 구곱스키 . 인도 .2001년 . 71분 . 다큐멘터리 . 아시아특별전 우르두어로 “중요한 사람들”을 뜻하는 히즈라는 오랫동안 고대 인도와 파키스탄의 궁정에서 일하는 내시(거세남)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힌두교적 전통으로부터 신비스런 분위기를 풍기며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던 히즈라는, 그러나 식민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몰락한다. 영국인 식민통치자들은 그들의 문화를 탈신비화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성스러움을 도착이라는 새로운 근대적 병명으로 대체한 것이다.오늘날 세속적인 인도 카스트의 상류층은 히즈라를 경멸 어린 시선으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 - 아시아 특별전·단편경선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