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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교습소’는 그림 같은 제목이다. 듣자마자 선명한 심상이 피어난다. 소녀들이 흰 새처럼 스커트를 퍼덕거리는 드가의 스케치도 스쳐간다. 하지만 변영주 감독은 신작 <발레 교습소>가 그런 만만한 상상에 맞아떨어지는 영화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빌리 엘리어트>를 예상하면 뒤통수를, <워터보이즈>를 생각하면 앞통수를 얻어맞는 영화”가 될 거라고 유쾌하게 예고한다.
만약 우리에게 ‘내가 어른이 된 날’이라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발레 교습소>는 그 특별한 하루에 관한 영화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잊을 수 없는 하루는, 세상에서 당한 그릇된 폭력을 처음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날일 수도 있고 담배를 처음 피운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우유부단하며 바람의 방향도 공기의 냄새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영화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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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변혁 감독의 신작은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하면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이 우선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호손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변혁의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은 김영하의 단편소설들이다.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 등 단편소설 세 작품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와 설정을 빌려 만들 예정. 이들 세편 소설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모두 불륜을 다루고 있으며 낭만적 상상 뒤에 숨어 있는 시커먼 욕망과 구차한 현실을 냉정히 고발하는 작품이다.
<사진관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살해된 사진관 주인의 아내에게 숨어 있는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아내의 외도에 상처받았던 형사는 사진관 살인사건에서도 불륜의 드라마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이 분다>는 불법 CD를 판매하는 남자가 직원으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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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시대를 맞았지만 국내에서 1년에 제작하는 영화 편수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작이 많았고 <실미도>가 <친구>의 흥행기록을 깰 것으로 보이는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입장에선 새 영화를 준비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준비과정에 들어간 감독의 땀과 정성은 정작 촬영을 시작한 뒤보다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산고’라는 표현이 과장된 게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 10편은 그런 통증을 통해 이제 막 나오려는 신생아들이다. 더러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는 재기작이기도 하고 일부는 신인감독의 패기만만한 데뷔작이기도 하며 또 어떤 영화는 데뷔작의 성공으로 인한 부담감과 싸워야 할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일 올해의 신작 10편, 각각 감독의 말을 통해 이들 영화의 전모를 들여다보자.
“호러, 아닙니다. 심리드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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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그 다음이 필요하다
자, 이제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한국영화의 2003년의 경향에 대해 패배주의적 진단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전 지구적 동시적 사유, 포스트 휴먼적 경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니, 아닌 것에 더 가깝게 쓰려고 한다. 한국영화의 경향은 분명 그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 영화사가 축적해온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펼치고 있는 관행, 장르, 양식, 그리고 사고의 진행방향과 비동시적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었다고 해서 우리가 사실은 “순수한”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피식민은 탈식민적 전화의 과정으로 틈입하지 않고서는 식민을 복제하고 재생산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것, 자신의 성취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비서구, 비헤게모니 국가로서의 “한국적”인 영화 사유란 바로 이 사슬, 이 매듭을 단절시킬 때 혹은 왜
해체에 나선 남성감독들, 장도에 오른 여성감독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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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 우주를 끌어들여 남한 현대사를 폭파하다
이제 <지구를 지켜라!>를 보자. 이 영화에서 병구(신하균)는 안드로메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인물 병구의 이러한 믿음에 처음부터 공유, 공감할 관객은 물론 아무도 없다. 병구의 가공할 고문도구, 신신 물파스 하며 그의 정신병력 경력, 심지어 병구의 젤소미나(극중 이름 순이)도 병구를 믿지 않고 떠나는 마당에야. 영화는 스릴러, 코미디, 순이 주연의 멜로드라마, 게다가 다큐멘터리풍의 장면들까지 동원해 홀로 지구수비대를 자청한 병구의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한국 근대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교육의 희생자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으로 기인한 광증으로 환원하게 한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관객이 영화적 개연성을 받아들여, 불신을 유예시킴으로써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불신의 지속이 영화를 연속하
해체에 나선 남성감독들, 장도에 오른 여성감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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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영화를 진단하는 연속기획, 이번주에는 김소영 교수가 바톤을 건네 받았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인터넷 소설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관객의 문제를 사유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네21 436호 참조)에 이어 김소영 교수는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그 집 앞> 등의 문제작들이 이룬 비상한 성취와 한계를 명료하고 유려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올드보이> - 당신의 꿈은 복제된 것이다
2003년의 경향, <올드보이>와 <지구를 지켜라!>로부터 시작하자. 코드명: 나는 네가 꾸는 꿈 혹은 너는 내가 꾸는 꿈!
<올드보이>에는 의미화 과정을 붕괴시키는 전략들이 있다. 서사적 시퀀스, 비주얼을 끊임없이 자체 훼손시켜, 방금 단단해지려고 했던 영화의 진정성, 숭고함 내지 그럴듯함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대수(최민식)가 내뱉는 문어체 말투, 때아닌 농담, 벽지와 머리모양, 감금된
해체에 나선 남성감독들, 장도에 오른 여성감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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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성 - 창작의 고통과 즐거움
2004. 1. 5 37회차 촬영장
부천에서의 촬영 마지막날. 오전 10시가 조금 넘자 배우들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본은 A4 1장짜리다. 이날도 2컷을 찍는다(여느 영화라면 하루에 10컷 정도는 찍는다). 배우들이 대본을 열심히 보기 시작하고, 감독은 연출부를 데리고 동선을 점검한다. 갑자기 배우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형, 시나리오 봤지. 오늘, 고생 좀 하겠네.”(유지태) “그러게. 이거 어떤 표정을 해야 되나.”(김태우) 그들이 말한 대목은 이런 것이다.
약수물이 가득 담겨진 보온병을 들고 내려오는 선화, 한발 뒤로 따라 내려오는 헌준. 오른손을 가슴에 대보는 헌준. 몸이 너무 오래 지속된 긴장에 저절로 이상현상을 보이는 것. 심장이 이상하게 벌럭벌럭 뛰는 거 같고, 아, 내가 참 고민 지독하게 하고 있구나, 하면서, 그런 게 이렇게 몸으로 바로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 표정. 어이없고, 피곤하고, 비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장 동행취재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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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인 한 문장
16번 찍고 정작 첫 번째 것을 택했는데.초반의 에너지는 후반으로 갈수록 흐트러진다. 좀더 완벽한 걸 기대하면서 자꾸 찍게 되는 데 어느 순간에 가면 한계에 부딪힌다. 그 순간을 넘어서면 연기자만 힘들어지고 마이너스 효과만 나올 뿐이다. 서너컷이 좋았고, 그걸 잘 활용하면 될 것 같다.
리허설도 그렇고 놀랄 정도로 꼼꼼히 챙기고 지시한다.내가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건 아니다. 예전부터 내 영화를 두고 표면이란 말을 많이 쓰던데, 표면을 좌우하는 그 밑의 어떤 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중시하는 뜻에서 표면을 중시하고 다루는 건 아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우선순위 안에서는 디테일하게 챙기지만, 어떤 부분은 놀랄 정도로 아예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감독이 모든 걸 다 통제하고 챙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 그럴 뿐이다. 내 영화가 늘 그렇지 않나? 순간순간은 리얼할지 몰라도 엮어놓으면 아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장 동행취재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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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교만에 대한 혐오, 그리고 자기연민
대폿집에서 1차 테스트 촬영이 끝났다. 친분이 있는 한 스탭이 너무 재밌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저거, 완전히 감독님이네요. 유지태씨가 하는 대사도 감독님이 하는 말씀하고 똑같아, 손짓도. 어쩌면 저렇게 닮았죠.” 이날 촬영 대본 역시 A4 2장짜리로 현장에서 감독이 바로 써서 건네준 것이다. 선화와 만난 다음날이다. 전날 밤 다들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긴가민가해서 문호의 기분이 별로 안 좋다. 문호는 삼각구도 안에서 어떤 모멸감을 느끼던 차에 돌잔치에 모여든 학생들을 우연히 만나 술자리까지 동석했다. 그는 제자들 사이에서 어떤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겠거니 했다가 그 기대감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을 겪는다. 이 순간의 문호가 딱 홍상수라는 것이다. 4분짜리 롱테이크의 각본은 이렇다.
술판이 간 지 꽤 된다. 문호와 일곱 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있다. 문호가 뭔가 게임에 걸렸다. 술을 마셔야 되고, 지금 한잔을 마시고 있다. 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장 동행취재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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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성 - 완벽하게 디렉팅 된 인공의 세계
2003. 12. 13 26회차 촬영장
처음 허용된 시간은 3분이었다. 경기도 부천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벌어진 리허설 장면을 취재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그랬다. 좁은 공간이었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첫 촬영장 공개인 만큼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영화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각 매체에 배당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의외의 장면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즉흥성을 중시한다던 홍상수 감독이 배우에게 대사의 억양, 고갯짓의 크기까지 너무나 세세하게 ‘디렉팅’하고 있었다. 유지태와 김태우가 진짜 소주와 맥주를 마시는 건 예상했던 일이지만 감독과 번갈아 대사를 되뇌일 줄은 몰랐다.
헌준(김태우)과 후배 문호(유지태)가 7년 전의 연인인 선화(성현아)를 찾아와 기다리는 참이다. 헌준이 먼저 선화와 연애를 했고, 얼마 뒤 선화를 남겨두고 도망치듯 유학을 갔다. 그뒤에 선화는 문호와 연애를 했다. 두 사람과의 연애가 끝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장 동행취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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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스러움, 인공의 세계와 딱 붙어있도다
1월10일 홍상수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5월 초 개봉예정)가 크랭크업했다. 홍상수 영화는 국내외에서 임권택 감독 버금가는 관심을 끌어당기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감독 스스로 완성품을 내놓기까지 늘 짙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 제작에 집중해야 할 에너지가 자칫 엉뚱하게 방해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홍상수 감독이 몇 차례의 촬영장 취재를 기꺼이 허용해주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의 촬영현장은 그의 영화를 쏙 빼닮았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분석은, 좀 과장스럽게 말하면,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 대한 선호와 가치 평가를 떠나서 대체로 합의되는 것이 있다. 언뜻 의미없어 보이는 사건과 배경을 의미있어 보이는 사건과 배경 속에 빼곡히 깔아놓음으로 해서 무수히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오! 수정>과 &l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장 동행취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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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싸우는 장면의 안무를 직접 했다고 들었다. 다른 사무라이영화의 검술 장면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검술장면을 위한 안무가가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모든 검술 대결신의 안무를 내 자신이 구상했다. 오기야 집에서 두 게이샤와 긴조 하수인들과의 대결신을 제외하고는. 나는 검술 대결장면들이 이전의 영화들에서 사용된 동작들의 조합들처럼 비슷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전문가들에 의해 잘 짜여진 결투장면들과는 무언가 다르게 하고 싶었다. 나는 검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결투를 싫어한다. 결국 이러한 결투장면에는 쨍그랑, 댕그랑거리는 쇳소리만 남는다. 운 좋게도, 자토이치는 보통 단칼에 일격을 가한다. 그래서 나는 정형화된 타입의 검술 대결장면을 피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하토리 역의 아사노 다다노부에게는 수년간 내가 축적해왔던 풍부한 기교를 부릴 수 있게 허락했다. 아사쿠사의 코미디 장면에서, 나는 검술신들을 많이 연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마음속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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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가 말했다.“다케시, 난 자네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계속 그렇게 만들어!”
-<자토이치>는 원작, 그것도 대단히 유명한 원작이 있는 영화다. 왜 <자토이치>를 영화화하게 되었는가.
=이 프로젝트는 기대하지도 않게 사이토 치에코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분은 20년도 더 전에 내가 아직 코미디언으로 초창기였을 무렵, 아사쿠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나의 조언자였다. 그녀는 또한 <자토이치>의 가쓰 신타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몇년 전, 그녀는 나에게 <자토이치> 후속편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 제안은 꽤 흥미롭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항상 원했지만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시대극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내가 직접 주연을 맡기 원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가 가쓰 신타로를 대신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이토 치에코는 거절의 응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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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캐릭터를 해체하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를 리메이크하면서, 기타노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에 도전한다고나 할까. 시대극의 ‘시간’을 지워버리고, 머리까지 금발로 바꿔버린다. 아니 가장 중요한 신체적 특징까지 초월해버리고, 자토이치의 사회적 존재까지도 틀어버린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차별받는 약자의 편이었고, 그런 부류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차별과 차별받는 자의 위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늘 허리가 굽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유랑하는 자유인이다. 동류의식으로, 억압자에 대해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승부를 위하여 싸운다. 근원을 따진다면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보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쓰바키 산주로와 닮았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녀석들 중에 제일 나쁜 건, 자토이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