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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 촬영 중> Silence… We’re rolling감독 유세프 샤인 ┃ 출연 라티파, 아메드 베디르 ┃ 2001년 ┃ 이집트 ┃ 102분중년의 여배우 말락은 제작자, 감독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스타다. 그러나 가정은 말썽으로 가득하다. 남편이 떠나버린 뒤 말락은 젊고 잘생긴 청년 나메이에게 반해 그를 자신의 상대역으로 뽑는다. 감독은 연기도, 노래도 잘 안 되는 나메이를 꺼리지만 불가항력이다. 나메이는 한술 더 떠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이 빛나도록, 연출과 시나리오까지 간섭하고 영화촬영은 엉망진창이 돼간다. 말락의 딸까지 끼어들어, 나메이를 둘러싼 삼각관계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의 대소동을 통해 나메이의 정체가 탄로난다. 할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케하는 연출에, 연극적 구성을 섞어 교훈적인 결말을 끌어내는 모습이 다분히 예스러우면서도 정겹다. 영화와 영화연출에 대한 풍자도 유쾌하다. 올해 76살인 유세프 샤인은 40여편을 연출해온 이집트의 간판 감독으로 97년 칸
월드 시네마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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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영화는 저급하거나 지루하고 식상하다는 편견은 이미 오래 전에 깨졌다. 한 명의 거장이나 모든 규칙을 뛰어넘는 위대한 걸작 하나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 71년 시작된 닛카쓰 로망 포르노는 ‘에로’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성을 중심에 놓고 인간과 사회, 역사와 우주까지 신랄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로망 포르노는 수많은 거장과 걸작을 탄생시켰다. 구마시로 다쓰미, 다나카 노보루 등 성애영화의 거장들이 탄생했고 모리타 요시미쓰, 나카하라 준, 히가시 요이치 등 80년대 일본영화의 뉴 웨이브를 이끈 젊은 감독들은 로망 포르노로 영화를 시작했다.TV의 등장으로 휘청하던 일본의 메이저 스튜디오 닛카쓰는 70년대 들어 도산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닛카쓰는 전속이던 유명 감독과 배우들을 거의 포기하고, 영화 제작도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 닛카쓰는 돌파구를 ‘에로’영화에서 찾았다. 60년대에 성행했던 싸구려 핑크영화보다는 3, 4배의 제작비를 들이고, 닛카쓰의 우수한 스탭과 촬영기
닛카쓰 로망 포르노-70·80년대 일본 고품격 에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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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부터 클로드 샤브롤의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범죄를 소재로 한 프랑스영화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갱스터-필름누아르로 이어지는 직접적 혈연전통을 보여주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의 범죄영화들은 서로 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다. 시적 리얼리즘 경향의 영화들이 사회 문제를 정서적인 어조로 지적하고 있다면, 전후의 영화들은 미국 대중문화와 이중주로 새로운 영화적 형식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누벨바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그 흐름은 클로드 샤브롤의 스릴러영화 형식까지 이어진다. 프랑스 범죄영화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 장 가뱅과 알랭 들롱의 대중적 이미지를 이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망향> Pepe le moko감독 줄리앙 뒤비비에 ┃ 출연 장 가뱅, 밀레이유 발렝 ┃ 프랑스 ┃ 1937년 ┃ 93분<무도회의 수첩> <나의 청춘 마리안느> 등으로 시적 리얼리즘을 주도했던 줄리앙 뒤비비에의 이색
프랑스 범죄영화 특별전- 시적 리얼리즘부터 클로드 샤브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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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최근 작업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시네마 얼론>이란 책에서 이 책의 편집자인 마이클 템플과 제임스 S. 윌리엄스는 고다르의 프로젝트는 항상 신선한 주제와 형식을 찾고 있다며 그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고다르는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영화계의 가장 총명한 기대주들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까지도 열정적으로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그를 보건대 분명 이건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는 누벨바그, 아니면 여기서 조금 더 시기를 확장해봤자 60년대에 속하는 과거의 인물로 여겨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국내의 경우에 이건 고다르의 최근 영화와 사고들이 거의 소개도 되지도 않은 채(물론 60년대 영화의 경우에도 별 차이는 없지만) 영화사 책 속에만 담겨 있는 화석화한 어떤 것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마스터 디렉터’ 섹션은, 현재까지 40여년을 오로지 영화에만 몰두해온 이 ‘현재의 대가’가 80년대 이후에 내놓은 중요작 4편을 모았다
마스터 디렉터 부문- 장 뤽 고다르 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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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 <로드무비>는 작품적 성취에 관한 논의를 별도로 하더라도, 그 용기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한 영화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질시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동성애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동성간 성행위를 적나라한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만만치 않은 의미를 획득한다.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숫자에 비해 사회적 논의가 턱없이 빈약한 한국사회에서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활발하고 진지한 대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동성애 담론에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고, 전주영화제와 퀴어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뛰었던, 그리고 현재도 뛰고 있는 영화평론가 서동진씨가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을 만났다.편집자서동진감독님, 오랜만이네요.김인식그렇군요. 3년 정도 됐나요.(그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던 김인식 감독은 서동진을 찾아가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서동진사실 이
<로드무비>를 보는 김인식,서동진의 두 시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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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그런 말을 할 수 있겠죠. 동성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세상에 던질 때 꼭 섹스여야 했냐는 등의. 저는 가장 다이렉트한 것을 택했어요. 가족에서 차별받고 직장, 사회에서 차별받고 뭐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데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파워와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섹스신을 처음에 넣어 문제제기한 거죠. 또 하나가 있다면,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겁니다. 관객에게 ‘내 영화 장난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죠.서동진그러면 일주라는 여성 캐릭터에 관한 건데요. 게이영화에서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게 애정의 삼각관계입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서로 원치 않는 관계에 관여하게 되었을 때, 한 여성이 등장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중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객은 이 관계를 해석해주는 유력한 목소리를 그녀를 통해 듣게 됩니다. 감독들은 대개 이 삼각관계에서 여성의 언어를 통해서 동성애와 이성애의 편견에
<로드무비>를 보는 김인식,서동진의 두 시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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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일단 저는 노동현장이 동성애 남성간의 유대공간이라는 인식은 하진 않았었고요. 실제로 제가 표현하려는 것은 권력관계였죠. 동성애자인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석원이 대식을 따라다니는. 대식의 손에서 벗어나면 생존경쟁에서 죽어버리고 말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끌려다니는 그런 권력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노동현장을 좀 많이 넣었던 거죠.서동진<로드무비>는 말 그대로 로드무비이기도 합니다. 흔히 로드무비라 할 때, 길은 주인공의 내면을 은유하곤 합니다. 배회하거나 방랑하는 자의 내면과 공간, 즉 길이 일치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길은 내면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 속의 길은 가끔 멈춰서거든요. 가끔 멈춰서 어마어마하게 숭고한 자연을 보여준다거나 하잖아요.김인식이건 우답일 수도 있는데, 길을 항상 움직이면서 보여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로드무비>에서 길이라는 존재가 내면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로드무비>를 보는 김인식,서동진의 두 시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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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프리츠 랑 오딧세이-프리츠 랑 회고전’(문화학교 서울, 주한독일문화원 공동주최)이 10월18일부터 10월2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이 영화제는 지난 2001년 2월 베를린에서 시작해, 뉴욕, 파리를 돌며 열렸던 프리츠 랑 회고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행사다.프리츠 랑은 <메트로폴리스> <마부제 박사> 등을 만든 두말할 것 없는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다. 나치를 피해 망명한 미국에서 만든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등으로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에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13편이 상영되는데, 디지털로 복원해 새로 태어난 <메트로폴리스>를 비롯하여, 프리츠 랑의 세계를 진하게 드러내는 신비로운 영화 <마부제 박사>와 <달의 여인> 등이 역시 복원된 프린트로 한국 관객 앞에 선보인다.편집자히틀러가 막 정권을 잡은 1933년 독일. 괴벨스의 호출을 받은 프리츠 랑은 그의 관저로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 회고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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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당대의 시대적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전통 속에 놓여 있는 랑은, 그러나 특정한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단순화된 강조와 왜곡을 특징으로 하는 표현주의적 요소들과 더불어 과학적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사실성,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시적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은 어떤 일관된 발전단계를 보여주거나 작품의 제작순서에 따라 차례로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메트로폴리스>에서는 미래 거대도시의 모습과 암울한 지하세계의 모습에서 표현주의적 요소들이 발견되지만, 바로 뒤에 만들어진 <달의 여인>에서는 소재의 판타지적 특성과는 달리 철저한 사실주의가 추구됐다. 그런가 하면 연쇄살인자의 추적을 다룬 <엠>에서는 다시금 어두운 조명과 극단적 대조 그리고 그림자의 극적 사용과 같은 표현주의적 요소들이 두려움과 긴장감을 배가시킨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 회고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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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Der Mu de Tod/1921년/ 82분/ 독일결혼을 앞둔 처녀가 갑자기 죽은 약혼자를 구하기 위해 저승세계를 찾아가고, 저승사자가 세 사람의 생명이 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약혼자를 돌려주겠다고 제안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6연으로 된 독일 민요’라는 부제대로, 현실 재현보다는 환상의 시각적 구현에 영화의 본질이 있다고 믿던 당시 독일영화가 단골소재로 삼던 민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이야기구조인,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틀처럼 감싸고 있는 ‘틀구조’(Rahmenhandlung)와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에서 영향을 받은 옴니버스 형식을 결합해 이야기구조가 독특하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숙명적 결정론이라는 랑의 핵심주제를 알레고리적 영상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랑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마부제 박사> Dr. Mabuse/2001년 복원판/1922년/127분(1부),92분(2부)/독일노베
프리츠 상영작 13편 미리 보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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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여인> Frau im Mond/ 2001년 복원판/ 1929년/ 168분/ 독일달에 있는 금을 차지하려는 부자들의 음모로 달 탐사를 꿈꾸는 미치광이 과학자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로켓을 타고 달에 가는 이야기. <메트로폴리스>를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에 대한 물음을 던졌던 랑이 다음 시도로 달 탐사를 다룬 작품. 준비과정에서 저명한 로켓 공학자와 달 연구가의 자문과 고증을 거쳤으며, 달 표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기차 30량 분량의 바다 모래를 옮겨왔고, 젖은 모래를 말리기 위해 일일이 불을 때며 촬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랑의 완벽주의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SF의 고전이며 로켓 발사시 호명되는 카운트다운의 유래가 된 영화.<엠> M/ 1931년/ 117분/ 독일당시 독일 대중지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던 연쇄살인범의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랑의 첫 번째 유성영화. ‘아이들을 조심시키라’는 단순한 메시지와는 달리 새로이
프리츠 상영작 13편 미리 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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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You and Me/ 1938년/ 94분/ 미국집행유예로 감옥에서 나온 뒤 백화점 점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헬렌은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만나 사랑하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남남인 척한다. 전작 <분노> <한번 뿐인 삶>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랑은 여기에 코미디와 뮤지컬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경쾌한 분위기의 복합장르를 시도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의 음악을 담당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쿠르트 바일이 음악을 담당하는 등 야심찬 기획이었지만 복합장르에 익숙지 않았던 당시 미국의 비평과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Hangmen Also Die/ 1943년/ 134분/ 미국체코를 점령한 나치의 악명 높은 사령관 하이드리히 암살사건과 이에 대한 독일의 대량 보복학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작인 <인간 사냥>(Man Hunt), <공포
프리츠 상영작 13편 미리 보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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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희생의 유혹을 알고 있었다. 체코인들의 적이었던 독일인들과 러시아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민족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영광, 그들의 중요성, 그들의 보편적인 사명에 열광한다. 체코인들이 조국을 사랑했던 것은 조국이 영광스러워서가 아니라 작고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커다란 연민이다.”- 밀란 쿤데라 <향수> 중비행기는 파리 드골공항을 떠나 프라하 루즈네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쿤데라가 최근작 <향수>에서 율리시스의 그것에 빗대어 ‘위대한 귀환’이라고 일컬었던, 20년 전 조국 체코를 등지고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레나의 귀환과 동일한 루트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스메타나가 찬미했던 그의 조국은, 그러나 소외된 이방인들의 고독을 양분삼아 살찌워진 곳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 증오도 연민도 컸던 사람들. 체코에
한석규 3년 만의 신작 <이중간첩> 프라하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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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서른을 넘긴 신인 감독은 스물여섯명의 기자들로부터 난생처음 당하는 집단 인터뷰에 짐짓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고 천천히 대답을 이어가는 김현정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14기 출신으로 단편 <고수부지의 개자식들>을 비롯 <공공의 적>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처음엔 거대할 만큼 건장한 몸집과는 쉽게 매치되지 않게 다소 여성적으로 들리던 이름이, 꼼꼼하고 섬세한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꽤나 적절한 작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무대는 베를린인데 프라하에서 찍는 이유는.→ 베를린의 체크 포인트 찰리는 이미 관광지화됐다. 그러나 프라하는 건축의 양식이나 도로의 생김새가 베를린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고, 영화촬영의 인프라가 좋은 편이다. 미술, 의상, 소품 담당자들이 80년대 카페 여종업원의 의상까지 완벽히 재현해주었다.데뷔작인데 꽤 대작이다.→ 솔직히 정신이 없다. 대작이다 뭐다 생각할 겨를없이 그저 열심히 찍고 있다.한석규라는 배우가 부담스
<이중간첩> 현장을 가다 - 김현정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