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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파치노가 여러 영화에서 거듭 확인시킨 것도 이런 도덕적 갈등과 시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다. 아직 범죄세계를 모르는 앳된 청년 마이클, 그는 가족을 버리는 편이 옳았다.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형이 죽었더라도 눈 딱 감고 뉴욕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러지 못했다.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부상당한 아버지의 병실을 찾는 장면에서 마이클은 세상을 알아버린다. 아버지에게 총을 쏜 자들과 경찰이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그를 범죄의 땅에 머물게 만든다. 그는 권력뿐 아니라 정의도 총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이클이 화장실 물통에 들어 있는 권총을 꺼내들고 나오면서 마피아의 길에 발을 디딘 것처럼 당시 32살이었던 알 파치노의 미래도 그때 정해졌는지 모른다.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로 시작해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칼리토>의 칼리토 브리간테, <도니 브래스코&
할리우드 최고의 메소드 배우 알 파치노와 <인썸니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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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알 파치노와 함께 <형사 서피코>와 <뜨거운 오후>를 찍은 감독 시드니 루멧은 “알 파치노는 자기 연기의 진실성에 완전히 빠져 있기 때문에 일종의 척도가 된다. 감독을 포함해 촬영장의 모든 사람들의 진실성에 관한 척도다”라고 말했다. <형사 서피코>를 찍을 때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트럭 운전사를 체포하려 했다는 일화는 알 파치노가 메소드 연기자들의 전통에 충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비교적 최근 <애니 기븐 선데이>를 찍은 올리버 스톤 역시 시드니 루멧과 비슷한 말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일종의 필터다. 알 파치노는 자신의 연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 자기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알려줄 수 없다 해도,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알려줄 수 있다.” 한마디로 알 파치노의 연기는 자로 잰 듯 정확하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이 원하는 감정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전달하는 그 능력이야말로 80년대 알코올중독과
할리우드 최고의 메소드 배우 알 파치노와 <인썸니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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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부터 <거짓말>을 거쳐, 충무로 검열사 40년 동안 새어나온 한숨과 신음은 헤아릴 수 없다. 무엇보다 1990년 이후 심의 기록조차 폐기되고 사라진 마당에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이, 어떤 이유로 잘려나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상상력과 현실을 담았던 필름은 소실됐고, 그 쓰디쓴 기억을 복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떤 이는 아무도 모르게 망자가 됐고, 어떤 이는 일부러 망각했다. 100여편 넘게 찍었다는 노(老)감독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영화의 역사는 곧 검열의 역사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혹자는 검열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8월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죽어도 좋아> 재심의 결과를 점치면서 <씨네21>은 사라진 기억을 불러오진 못해도, 남은 기억의 잔해를 곱씹을 필요는 있다고 느꼈다. 서슬퍼런 검열이 예방치료였는지, 과실치사였는지 아
1960∼2002 되짚어보는 충무로 검열의 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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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시나리오를 쓴 게 200여편쯤 돼. 뭐가 어떻게 잘렸는지는 기억 못하지. 그냥 통과된 거는 거의 없었으니까. ‘반려’ 아니면 ‘개작’ 아니면 ‘부분수정’ 중 하나였어. 폭력이 많다, 야하다 뭐 그러는데 사실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당시에는 중앙정보부 직원이 상주하면서 검열관들에게 일일이 입김을 넣었다고. 저거 잘라라 하고. 그러니까 더 복장이 터지는 거지. 그 사람 한마디에 시나리오를 새로 고쳐야 하게 되면 촬영이고 뭐고 모든 게 올 스톱이었으니, 원.”(윤삼육·시나리오 작가)1970년한국사회학대회 연구 결과, 아내우위형 가정이 남편우위형 가정보다 경제적 성취도, 성적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조사. ‘슈퍼우먼’과 ‘여성상위시대’가 한해 가장 널리 퍼진 유행어. 장발족 일제 단속. 최고 하루에 400명 이상 적발된 적도 있음. 외국인 장발족에겐 입국불허 방침이 내려짐.1년 동안 제작된 한국영화는 모두 189편. 이중 ‘여인’(30편), ‘팔도
1960∼2002 되짚어보는 충무로 검열의 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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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공륜 위원장이 무슨 시인인가 그랬다고. 그런데 내 영화 <헬로우 임꺽정>을 20분 이상 잘라낸 거야. 그게 엔딩까지 가는 설정인데 그걸 통째로 들어내니까 무슨 이야기가 되겠어. 오죽 억울했으면, 공륜 사무실 앞에서 위원장 나오길 기다리다가 쌍소리 해가면서 따졌다고. 심지어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어. 그러다 서울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할 날이 됐는데, 너무 갑갑한 거야. 그래서 NG 컷을 가져다 붙였지.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근데 다음날 공륜 직원들한테 걸려서 서로 멱살잡이하는 걸로 그냥 그렇게 끝났지.”(박철수 감독)
1981년
팀스피리트 훈련 시작. 제5공화국 출범. 대통령 친인척 사기행각으로 구속. 서울올림픽 유치. 야간통행금지 해제.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창립.
정권이 바뀌었으나, 검열은 여전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 속출하고, 검열을 피하기 위한 편법들을 고안하기에 바빴다. 문화공보부와 공륜의 단골 손님이었던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카수 영애&
1960∼2002 되짚어보는 충무로 검열의 역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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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건 영화가 관객과 만나서 논쟁을 던지길 바라는 거다. 원래 논쟁을 던지는 스타일로 영화를 해왔고, 앞으론 반성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거짓말>은 논쟁의 깊이나 크기에서 성공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왜 논쟁을 막나. 논쟁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라 논쟁을 막는 게 위험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하기야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든다. 변하길 바라면서.”(장선우, 감독 <씨네21> 225호)
1990년
3당통합.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집회 개최. 정부, 활개치는 흉악범 소탕을 위해 폭력범죄와의 전쟁 선포. 한국영화 감독위원회, ‘당국의 영화탄압정책에 즈음하여’라는 성명을 발표해서, 공연윤리위원회 철폐. 민간자율심의기구 구성 주장.
<장군의 아들>의 기록적인 흥행에 힘입어서일까. 명백한 검열기구였던 공륜에 대한 영화인들의 철폐 주장이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해다. 이에 공륜 역시 가위질을 자
1960∼2002 되짚어보는 충무로 검열의 역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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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방심하던 사이, 미니시리즈 한편이 조용하게 시작했다. ‘시한부생명, 소매치기, 결손가정, 삼각관계, 졸부집 딸과 가난한 청년’. 낡은 설정임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시작한 이 드라마는 그러나, 첫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복잡한 가족사들이 얽혀 있을지언정 질척거리지 않고 꼬여 있는 애정관계에서도 괜히 심각한 척 폼을 잡지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보란 듯이 그 낡음이 새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을 증명하더니 급기야 “뜯어내면 심장마비로 죽어버릴 만큼 너무나 심장에 깊이 박혀”버렸다.
9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은 변했으나 드라마는 단순히 “짱냐, 캡숑, 열나” 등의 말투만을 옮겨오는 데 그쳤을 뿐, 변화된 청춘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낸 적이 없다. 하지만 <네멋대로 해라>는 그들의 대화법,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세계관을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도 소화되지 않고 있었던 새로운 시대의 청년문화를
<네 멋대로 해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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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패배자,그런데 세상은 우리 삶을 혁명이라 하네
그래 죽여주지. 드라마는 그렇게 시작한다. 소매치기 전과 2범, 세상의 떨거지 고복수는 감방생활을 끝내고 나오자 뇌종양임을 선고받는다. 넌 패배자야, 죽어. 세상은 고복수에게 너무도 당연한 듯 죽음을 예고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남자에게 새 연인을 선사하고, 오랜 연인을 배신하라 부추기며, 결국 아비를 죽음으로 내몬다. 비정한 드라마다. 설정은 눈씻고 찾아봐도 어느 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불치병, 복잡한 가정환경, 장애를 극복하는 사랑, 삼각관계 애정구도 등 대중드라마라면 응당 지녀야 할 ‘미덕’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으로 쾌락을 삼는다.
방영 첫주부터 밝혀진 복수의 죽음은 드라마 전체를 무겁게 짓누를 거라 예상하지만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늘 이런 식이다. 잔뜩 긴장하고 들어야 할 사랑고백이나, 불치병 선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어버리고 만다. 복수 역시 세
<네 멋대로 해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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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처럼 엉뚱한 한편 전경만큼 진지한 박성수 감독은 다수의 베스트극장을 거쳐 <햇빛속으로> <맛있는 청혼> 등을 연출했다. 수색의 폐공장터. 복수가 탄 오토바이가 유리창을 향해 날아가는 고난도의 액션신을 찍는 가운데 이루어진 이날 인터뷰는 ‘컷’과 ‘스탠바이’를 신호음 삼아 끊이는 듯 이어졌다.
-처음 아이디어는 감독으로부터 나온 걸로 안다.
=몇 가지 경험과 생각들이 섞여서 나온 거다. 한번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혼자 있을 땐 웃는 연습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비슷한 때 스물몇살에 루게릭병을 통지받고 환갑이 넘도록 살아 있는 스티븐 호킹이 “시한부 통고를 받고도 그렇게 슬프거나 괴롭지 않았다. 그저 그간 인생을 낭비했다는 후회가 들었다”고 했다. 또 지난 2월에 베니스에 다녀왔는데 그 말로만 듣던 수상도시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여기도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은 참 불행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든 기억들
<네 멋대로 해라> [3] - 박성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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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 친구들, 오늘은 뭐하고 지냈나, 싸우진 않았나, 아프진 않았나, 궁금함에 오늘도 TV 앞에 앉는다. <네 멋대로 해라>에는 영웅이 없다. 대신 친구와 동생, 그리고 이웃이 있다. 복수와 전경과 미래의 안부가 궁금하고 한 기자, 전강, 복수 아버지, 꼬붕이, 양찬석, 우찬석 심지어 정달이의 근황까지 궁금한 것이다. 이는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와 PD의 몫도 크겠지만 33%는 역할들을 완전히 체화시킨 배우들의 몫이다. 양동근과 복수가, 이나영과 전경이, 공효진과 미래가, 다른 독립된 인물이라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의 동물적이면서 본능에 가까운 메소드 연기는 드라마를 살린 1등 공신이다. 하여 이 세 배우와 드라마 속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잊을 수 없는 대사를 모았다.
송미래
“니가 뭐하러 소매치길 좋아하냐? 니가 나 같은 년도 아닌데, 뭐하러 걜 좋아하냐? 걔가 잘났냐? 너같이
<네 멋대로 해라> [4] - 캐릭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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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문을 열고 그가 성큼성큼 들어와 마른손을 내민다. 다문 입에 꾸벅 건네는 허리인사나 악수를 청하는 폼이 꼭 전경 같구나, 생각한다. 불쏘시개같이 가는 담배가 재떨이에 쌓여가고 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자 이 사람, 미래 같군,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들이 똘아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복수 같기도 하다. 아직 4회 분량이나 대본을 써야 하는 그는 처음에, 방송이 끝난 다음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거절했고, 몇 주간 전화 끝에 “한 시간, 아니 두 시간만 뺏을게요” 라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믿어주었다. 그때까지는 그 두 시간이 3일간의 동행으로 이어질지 미처 알지 못했다.
“감독과 작가가 같은 박동수로 호흡하는 것 같아요.”
“이데올로기와 정서, 둘 다 통했으니까요.”
인정옥 작가가 박성수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박성수 감독이 스티븐 호킹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불치병에 걸린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했을 때 그의 머리속엔 이미 고
<네 멋대로 해라> [5] - 작가 인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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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짜증나게 사랑스런 드라마다, 쿠쿡∼
민동현/ 영화감독·<지우개 따먹기> <외계로부터의 제19호 계획>
이상타. 좀체 이상타.나란 사람은 말이다. 정말 TV드라마를 안 본다. 아니 정확히 TV를 잘 안 본다. TV가 재미없다거나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가뜩이나 집안에서 비생산적 다소비적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라 빈둥거리면서 TV 앞에 죽치고 있기가 영 화면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근데 요즘 일주일 내내 난 TV를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거기다 수요일, 목요일에는 어떠한 저녁 약속도 잡지 않는다(뭐 사실 약속도 그리 많진 않지만…). 내가 그토록 TV 앞에서 움직이질 못하는 것. 그건 바로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 때문이다. 정말 우연히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본 첫회를 시작으로 지금의 16회까지 한회도 빼놓지 않고. 한회당 평균 3회 정도의 반복시청률을 기록하며 열심히 보고 있다. 수요일날 저녁에 본회를 보고나서 바로 다음달 아침이나 오후에
<네 멋대로 해라> [6] - 민동현 · 성기완 · 김정영의 시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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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극장가의 가을 시즌 개막일은 추석연휴 직전인 9월13일이 될 전망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가문의 영광> <연애소설> <보스상륙작전> <마법의 성> 등 한국영화 개봉작만 5편인데다 <로드 투 퍼디션> <레인 오브 파이어> <작별> 등 외화 3편이 함께 개봉한다. 9월13일부터 극장가는 본격적인 가을 흥행전을 시작할 것이다. 11월까지 개봉예정인 영화들은 한국영화만 줄잡아 30편, 외화를 합치면 80편에 달한다. 여름 동안 블록버스터의 위세에 눌렸던 아기자기한 영화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상대적으로 직배영화에 밀렸던 한국영화도 어깨를 펴는 시기다. 올해 가을엔 어떤 영화들이 찾아올까? 가을영화 80여편을 미리 살펴본다.편집자----------------가을영화 리스트 업9월 6일<이 투 마마>9월 13일<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가문의 영광><연애소설&g
가을을 기다리는 가을영화 80여편 올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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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사감독 김상진 출연 설경구, 차승원, 송윤아 제작 감독의 집 배급 시네마서비스 개봉 10월 중순컨셉┃우리의 탈주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 왜냐고? 쪽팔리니까.온 스테이지┃<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에 이은 김상진-박정우키스톤 콤비의 세 번째 작품. “‘쌈마이 코미디’의 완결판이 될 것”이라는, 김상진 감독의 호언을 거들기 위해 설경구, 차승원이가세했다. 이들이 각각 맡은 재필과 무석은 광복절 사면대상에 포함된 줄 모르고 탈옥을 감행하는, 억수로 운없고 지지리도 복없는인생들. 그러나 상부에 탈옥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교도소 보안과장의 지침에 따라, 재필과 무석은 경찰에 노출될 때마다교도관과 죄수로 이뤄진 2인조 특별경호팀(?)의 보호까지 받는다. 너무 일찍 담을 넘은 두 죄수가 교도소로 무사히 귀환할 수있을지의 여부가 스토리 라인의 초점. 시소를 타듯 사사건건 이견을 보이는 재필과 무석의 언밸런스가 뜻하지 않은 사건을 불러와긴장을 더한다. 전
가을영화 80여편 올가이드-한국영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