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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프랑스/필립 가렐/1996년/87분/35mm현대 프랑스영화에서 가장 엄격한 영화미학을 추구하는 감독 중 한명으로, ‘제2의 고다르’라고도 불리는 필립 가렐의 24번째 작품. 중산층삶을 영위하던 중년의 화가가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고 아내와 헤어진 뒤 자신도 젊은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아이들을 책임지지않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어릴 적 헤어졌던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필립 가렐의 영화 중에서 덜 엄격하고좀더 자연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최수임 sooeem@hani.co.kr그밖의 섹션별 상영작들토마토를 아시나요?■ 특별초청영국 런던의 디자인그룹 ‘토마토’가 만든 디지털단편들과 2002 로테르담영화제의 뮤직비디오섹션 ‘멈춤: 뮤직비디오문화잡기’ 부문 상영작들이 초청되었다. 토마토는 <트레인스포팅> <비치> 등의 타이틀 화면을 만들고 MTV, 소니, 나이키, 아디다스,
프로듀서의 영화 부문 - 파올로 브랑코 회고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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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한다는 건 결국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영화의 키가 부쩍 자란 것도 젊고 새로운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대거 충무로에 진입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친 데 힘입은 것이다. 어디 감독과 프로듀서뿐이랴.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각 분야 스탭들의 면면 또한 어느새 푸르르고 싱싱해졌다. 그중에서도 촬영쪽의 변화는 실로 놀랍다. ‘혁명적’이라는 과격한 수사를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선 팍팍하기 짝이 없던 도제시스템이 무너졌다. 제3조수, 흔히 쓰는 말로 ‘써드’에서 ‘쎄칸’까지 3∼4년, ‘쎄칸’에서 ‘훠스트’까지 또 그만큼, 그리고 촬영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다시 몇년이 걸렸던 이 시스템이 허물어지면서 조수 기간은 짧아졌고, 아예 조수생활 없이 곧바로 카메라를 잡는 촬영감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새로운 촬영감독들은 ‘오야지’들에게서만 촬영을 배운 게 아니라, 정규교육기관과 유학 생활을 통해, 그리고 단편영화와 CF, 뮤직비디오 작업을 통해
김우형, 황기석, 최영환- 차세대 촬영감독 트로이카의 충무로 변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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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감독을 모시는 택시운전사 “예술은 기술적인 숙련에서 비롯된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대부> 1, 2편, <애니홀> 등을 촬영한 미국의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잠언은 김우형(33) 촬영감독에게서 이렇게 해석된다. “촬영감독은 영화감독이라는 손님을 태우는 택시기사 같은 존재다. 택시기사의 임무는 손님을 최단시간 안에 원하는 곳까지 안전히 모시는 것 아닌가.”카메라라는 택시를 모는 김우형 감독이 5년 동안 4편의 장편영화와 2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모신 ‘손님’은 모두 4명. 이상할 건 없다. 단골손님이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는 바로 장선우 감독이다. 그와 장 감독과의 인연은 꽤 질긴 편이다. 런던에서 촬영 공부를 마친 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로자를 위하여>에서 함께 일했던 김봉훈 감독으로부터 <나쁜 영화>의 촬영부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는 연락을 받은
<나쁜 영화> <거짓말> <해피엔드>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김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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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탈스런 애첩 이런 말이 있다. “감독이 남편이라면 촬영감독은 아내다.” 그러나 황기석 촬영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감독이 남편이라면 촬영감독은 굉장히 까탈스러운 애첩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있지만 완전히 귀속되지 않은, 작은 사랑채라 할지라도 분명 그만의 영역을 가진 존재. 부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하고 인내하고 희생해야 할 것들에 끊임없이 발언하고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서른셋치고는 말 안 듣는 일곱살배기처럼 귀여운 인상의 황기석 감독이지만 한번이라도 그와 작업했던 사람들에게선 “직설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똑같은 답변이 마치 사전에 짠 것처럼 튀어나온다. 그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순간부터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나 아이디어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물론 설명을 통해 대략적인 느낌이 오는 경우에도 감독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찍을 건지 계속해서 물어보고 귀찮게 한다. 그의 머릿속에 막연하게 떠돌던 이미지들과 내가 담아내는 그림의 간극을 좁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억수탕> <친구> <와니와 준하>의 황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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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 출연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박하사탕> 때부터 제작자인 이스트필름 명계남 대표도 출연시켜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아시스>에 류승완 감독이 출연한 것은 의외다. 주인공 홍종두(설경구)의 동생 종세 역을 맡아 세번, 그것도 제법 길게 나오면서 대사도 많이 하니까 카메오가 아닌 조연이다. 류승완 감독의 출연 목적 중에는 이창동의 연출 비법을 훔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가 총 10회 촬영 동안 현장에 나와, 열심히 훔쳐본 이창동은 어떤 감독, 어떤 사람일까. 류감독의 말을 받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이창동 감독과의 인연 99년 25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내 단편영화 <현대인>이 상받을 때 이창동 감독님이 심사위원장이셨다(이하 존칭 생략). 얼마 뒤 서울극장에서 먼발치에서 봤을 때 “아, 거장의 이미지가 저런 거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수년 동안 안 바뀌는 헤어스타일, 그 히틀러 가르마! 느린 걸음, 사람
<오아시스>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이 훔쳐본 감독 이창동,인간 이창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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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액션이! 이런 예술이!부산경찰서에서 종두 형 종일이 종두를 때리는 장면을 찍을 차례였다. 액션하면 내가 한 가닥 한답시고 종일이 이렇게 치면 종두는 이렇게 어깨를 내밀고… 자, 빨리 찍고 집에 가자, 배우들끼리 그러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액션이 아니라 감정을 얘기하는 거였다. “자기 감정으로 표현해라.” 그가 직접 시연을 하는데, 정말로 설경구를 때렸다. 나는 놀라서 억! 하는데 경구 형은 담담했다. “원래 변태야.” 그때 현장 분위기는 약물 복용한 뒤 감정이 순식간에 터지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이 감독의 눈빛이 돌변했고, 그 공격적인 감정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 현장을 뒤덮었다. 그는 또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액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정두홍과 함께 찍으면서 많이 놀라고 많이 배웠는데, 이것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다음 신에서 이 감독과 설경구가 언쟁이 붙었다. 경구 형이 역할을 못 받아들이고 감독과 충돌했다. 설경
<오아시스>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이 훔쳐본 감독 이창동,인간 이창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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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야지’ 아님, ‘삐돌이’ 아님 “형, 감독님이 차 지나가는 거 하나 더 찍자고 하시는데요.” 최영환(31) 촬영감독은 현장에서 ‘형’이라 불린다. 에피소드 하나. 지난해 겨울, <피도 눈물도 없이>의 수색 촬영 때였다. 감독과 배우들, 모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복기하고 있고, 그는 팔짱낀 채 그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만은 몸상태가 좋지 않은 터라 막내를 불렀다. “내 의자는 어딨냐?” “형, 있잖아요. 짐이 많아서 그냥 제작사에 놔두고 왔는데요… 쩝.” 심하게 말하면, 그는 촬영현장에서 ‘기사님’ 대접을 못 받는다. 하지만 스탭들 모두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 스탭들 대부분 그가 현장에서 좀처럼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오야지는 아니다. 조금 무거운 책임을 진 팀원일 뿐이다.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 최영환 촬영감독은 소문에 시
<고양이를 부탁해> <피도 눈물도 없이>의 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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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5일 마릴린 먼로는 술과 수면제와 외로움에 취해 침실에서 삶을 마감했다. 100만달러 남짓한 부동산과 채 고치지 못한 유언장, 전남편 아서 밀러가 쓴 책들과 좋아하는 베토벤의 레코드가 그녀 뒤에 남았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사진을 찍어주면 어린애처럼 행복해하지만, 일할 때는 겁에 질렸다”고 회상했던 상처 많은 배우 마릴린 먼로. 그녀는 너무 젊어서 죽는다면 삶을 완성하지도, 그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거라며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녀가 완성하지 못한 삶은 위대한 배우라고 칭송받았던 그 누구보다도 오래 남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흘러다니고 있다. 올해 사망 40주년이 되는 먼로는 아직도 너무나 유명해 결코 쉴 수가 없는 것이다.편집자 이재현/ 문화평론가 21세기 넘어서까지 살아남은 말론 브랜도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추악하다. 망가져 있는 그들의 육체를 영화나 해외토픽의 가십난에서 보는 것은 목욕탕 대형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의 무너져가는 육체를 연민과 체념의
마릴린 먼로 사망 40주년,먼로는 시대를 어떻게 반영했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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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와 와이드 스크린이 제조한 스타먼로가 영화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그 시기에 할리우드는 컬러와 와이드스크린이라는 기술적 혁신으로 TV에 대항하려 했다. 이미 1947년에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TV는 1948년에 100만 세트가 보급되고 1960년에는 전 가구의 90%가 TV 수상기를 갖게 된다. 늙고 지쳐 보이는 직업 정치인 닉슨이 젊고 지적인 케네디를 당할 수 없었던 것도 다 TV 토론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먼로는 바로 이 시기에 스타덤에 올랐다. 먼로의 시대에는 아직 베트남 전쟁도, 뉴 레프트도, 히피도, 대중적인 우먼 리브(여성해방)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운동의 성과를 10년이나 후퇴시켰다고 마돈나가 비난받게 되는 것은 먼 훗날의 얘기다. 먼로가 살았던 미국의 당대는 그 이후인 60년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번영기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땃벌레니 백골단이 하는 우익 깡패 집단이 국회의 해산을 요구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먼로의 죽음에 못지
마릴린 먼로 사망 40주년,먼로는 시대를 어떻게 반영했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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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타이, 홍콩, 세 나라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쓰리>가 8월23일 개봉을 앞두고 8월7일 기자시사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의 김지운, 타이의 논지 니미부트르, 홍콩의 진가신 세 감독이 만든 30분 남짓한 단편 세 작품을 묶은 <쓰리>는 1999년 진가신과 논지 니미부트르, 두 감독의 만남에서 시작해 3년 만에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공포’라는 키워드로 만든 이들 세편의 괴담은 3주 전 타이에서 개봉해 같은 시기 간판을 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누르며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3년간 홍콩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인 <소림축구>가 타이에서 40개관에서 개봉, 2100만바트(약 6억원)를 벌어들인 반면 <쓰리>는 150개 극장에서 오픈, 3일 만에 흥행수입 3200만바트(약 9억원)를 기록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해 3개국 합작의 피날레까지 지휘한 진가신 감독의 의도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아시아 3국 합작 옴니버스 영화 <쓰리> 감독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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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는 단 한번도 지난해처럼 행복한 생일을 지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먼로는 살아서 맞은 마지막 생일을 중간에 해고된 영화 <Something’s God to Give> 촬영현장에서 보냈고, 그 두달 뒤 몸 속에 수면제를 가득 담은 채 죽었다.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느라 딸을 책임질 수 없었던 어머니도, 허물없이 마음을 기대게 될 정도로 오랜 시간 함께 살아주지 않았던 남편들도, 그녀에게 사랑만 담긴 생일상을 차려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살아 있었으면 일흔다섯 번째 생일이었을 2001년, 미국인들은 그들의 50년대를 위로했던 먼로에게 서른여섯해 동안의 얼룩을 말끔히 지울 만한 선물을 준비했다. 먼로의 첫 전속영화사였던 이십세기 폭스는 그녀가 남긴 영화와 노래를 컬렉션으로 만들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첫 번째 책 속 브로마이드 모델로 그녀를 택했던 <플레이보이>는 ‘플레이걸’들을 모아 영화 속 먼로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21세기 금발 미인들이 보내는 변함없
마릴린 먼로가 지상에서 보낸 서른여섯 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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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고 청결한 거실. 그러나 방 안에 괸 공기는 소리없이 흐느낀다. 모로 누워 잠든 남자의 목을 조르듯 느리게 기어가는 트래킹 숏으로 삐거덕 문을 여는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는 어느 아내와 남편이 경험하는 몹시 피곤한 하루의 기록. 신도시의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민 성민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다니나, 그녀가 실종되기 전후의 기억이 희미하다. 한편 인적 드문 신도시 길목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성민의 아내는 지갑 속 세탁전표 하나를 단서로 온 길을 되짚어간다.“상업적 지향이 없는 프로젝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른 두 감독이 찍은 걸 보니 나 혼자 잘못 안 거 아닌가 싶더라구요.” 짐짓 난감한 척하는 김지운 감독에게, <쓰리>는 장편영화의 흥행 부담을 살며시 벗어두고, 호러 장르의 공법을 진지하게 시험한 실험실이자 놀이터였다. 첫 번째 장편 호러를 구상하고 있던 2000년 <쓰리>의 트리오에 가담할 것을 제안받은 김지
첫 번째 이야기 <메모리즈> 감독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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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라>로 널리 알려진 타이감독 논지 니미부트르의 <휠>(Wheel)은 타이판 <전설의 고향>이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 과거의 타이, 인형극의 장인 타오는 온몸이 마비되는 병을 앓으며 인형의 저주를 떠올린다. 인형을 버리러 나간 아내와 아들은 물에 빠져죽고 타오는 불에 타죽는다. 타오의 인형은 동생의 손에 넘어가지만 인형의 저주는 그치지 않는다. 김지운, 진가신의 영화와 색조부터 확연히 다른 <휠>은 공포로 순식간에 오감을 사로잡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의 관심은 고답적인 느낌이 들 만큼 교훈적이다. 욕망이 불러온 화(禍)는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잔다라>를 본 관객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빗나간 욕정을 혐오하던 잔다라가 아버지가 앉았던 오욕의 의자에 앉아 치욕에 온몸을 떨었던 것처럼 <휠>의 인물들은 재앙을 불러올 물욕에 번번이 눈이 먼다. <잔다라>가 매
두 번째 이야기 <휠>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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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듯 스쳐 지나며 세월의 먼길을 돌아 마주하는 남녀의 인연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손길로 빚은 공포는 어떤 빛깔일까. <금지옥엽> 1, 2편과 <첨밀밀> <러브레터> 등 멜로드라마의 고운 감수성으로 알려진 진가신 감독이 공포를 키워드로 불러낸 <고잉 홈>은 결코 노골적인 공포영화가 아니다. 다들 떠나갈 뿐 더이상 입주해 오지 않는 황량한 아파트, 어두운 복도에 텅 빈 집집의 문짝들만 이따금 삐걱대는 폐허 같은 공간에서 신경이 곤두서는 불안을 감지할 순 있겠지만. 그 아파트에 이사온 며칠 뒤 사라져버린 아들의 행방을 쫓던 경찰 천은, 거의 유일한 이웃으로 세상과 담쌓은 채 병든 아내만 돌보며 산다는 한의사 위를 의심한다. 하지만 위의 집에 잠입한 천이 발견하는 것은 아들의 흔적이 아니라, 죽은 아내가 되살아나리란 믿음으로 3년간 정성껏 시체를 보살펴온 남자의 기이한 집착이다. 언뜻 공포스러울 법도 한 설정이지만, 매일같이 시체를 한약재로 씻기
세 번째 이야기 <고잉 홈>의 진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