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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J.R.R. 톨킨은 자신의 소설을 3부작으로 나누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출판업자의 설득 때문에 마지못해 기나긴 이야기를 <반지원정대> <두개의 탑> <왕의 귀환> 세편으로 갈랐지만, 중간계의 한 고비 한 고비를 상징하는 듯한 이 제목들은 고스란히 스크린에 살아나 불가능할 것 같았던 현실이 됐다. <두개의 탑>에 이어지는 <왕의 귀환>은 아라곤의 선조가 세운 왕국 곤도르로 달려간 반지원정대가 반지의 악령 나즈굴과 대결하는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 모르도르의 중심에 다가설수록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절대반지가 소멸되기까지 프로도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치열한 투쟁의 이야기다. 그러나 절대반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은 두 번째 이야기 <두개의 탑>. “포스트 프로덕션은 없다. 이 영화는 디지털 작업 역시 창조의 일부이므로”라고 말하는 제작진의 성과물을 기다릴 뿐이다.글 김현정 para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궁금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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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앤디 서키스): 강물 깊숙이 가라앉았던 절대반지를 다시 발견한 인물. 스메아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횐彭비슷한 어느 종족’ 족장의 손자였지만, 반지의 힘에 사로잡혀 안개산맥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든 뒤부터는 물고기를 산채로 잡아먹으면서 달빛조차 견디지 못하는 괴물이 된다. 1편에 잠시 비쳤지만 ‘본격출연’은 이번에 한다. 골룸은 반지를 건져낸 캇만살해했다는 죄의식을 덮기 위해 스스로에게 그 반지가 자신의 생일선물이었다고 강변한다. 골룸이 반지를 ‘생일선물’ 혹은 ‘나의 보배’라고 부릿것은 그 때문이다. 동굴에서 우연히 만난 빌보에게 반지를 빼앗긴 골룸은 세상으로 나와 반지를 첸헤매며, 결국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악(惡)의 의미도 모릿채 반지에 얽매인 골룸은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골룸이라는 이름은 그가 항상 ‘골록골록’하는 소리를 내는 데서 나온 것이다.에오윈(미란다 오토): ‘백색의 왕녀’라고 불리는 로한 왕국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궁금하다 - 새로 나온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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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꿈의 인큐베이터에서 배양돼온 <원더풀 데이즈>가 살짝 뚜껑을 열어 보였다. <원더풀 데이즈>는 실제작기간 4년,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로 꾸준히 관심을 모아왔던 애니메이션의 기대주. 지난 10월15일, <원더풀 데이즈>의 제작사 틴하우스는 경기도 남양주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 내 ‘영상 미니어처 체험 전시관’의 개관과 함께 작품 발표회 및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계원조형예술대학을 비롯한 대학 애니메이션 관련학과 학생 00여명과 애니메이션 및 언론 관계자 등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는, <원더풀 데이즈>에 사용된 미니어처로 꾸민 전시관과 작품의 하이라이트 편집본이 공개됐다.다양한 매체에서 수차례 소개되면서 입소문은 무성했지만, <원더풀 데이즈>가 일부나마 실체를 드러낸 것은 오랜만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환경이 파괴된 2142년의 지구, 인류의 유일한 생존 공간
`꿈의 프로젝트` <원더풀 데이즈> 하이라이트 편집본 지상관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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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애니메이션 및 실사영화에서 널리 통용됐던 기법들이지만,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이처럼 다채로운 기법을 활용한 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다. 평면적인 그림의 느낌이 나는 셀, 실사에 가까운 미니어처 촬영과 컴퓨터그래픽 등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상충하기 쉽다는 게 그 하나의 이유. 더구나 그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촬영과 합성 과정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디지털 합성 작업을 염두에 두고 소니와 루카스필름 등이 공동 개발한 최신 디지털카메라 소니 HDW-F900, 가까운 사물을 먼 배경과 함께 왜곡없이 담을 수 있어서 미니어처를 좀더 실사처럼 보이게 한다는 파나비전의 프레지어 렌즈를 동원하는 데 고가의 투자를 감수했다. 하루 대여료가 250만원을 호가한다는, 그래서 한 스탭의 표현을 빌리면 “내 한달 사용료보다 비싸다”는 합성 시스템 인페르노 등 첨단장비의 사용이 제작비를 올리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신기술이라는 게
`꿈의 프로젝트` <원더풀 데이즈> 하이라이트 편집본 지상관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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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보기 필름 20분, 실감나네전시관을 돌아본 뒤 에서 상영된 2개의 편집본에서, 그 궁금증의 일부는 해소할 수 있었다. 필름 버전은 3분50초짜리로 짤막하지만, HD프로젝터로 상영된 버전은 20여분으로 지금껏 선보였던 3분, 7분 남짓한 데모들에 비해 꽤 길다. 몇개 시퀀스를 이어붙이고, 사운드 효과도 거의 없이 원일 음악감독의 음악 샘플링과 유지태, 우희진, 정준호 등이 선녹음했던 목소리 일부를 입힌 미완성본이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대략적인 모양새가 어떨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를테면 유전지역이 폭파될 때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위로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구조물의 육중함, 폐선들 사이를 잇는 공중 다리들이 겹겹이 교차하면서 원경의 깊이와 함께 황량하고 암울한 공기를 살린 배무덤 등은 미니어처 촬영으로 한층 실감나게 표현됐다.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빚은 유기체 생명도시 에코반의 내·외부 디자인, 실사로 촬영한 영상에 디지털로 어둠과 색을 덧입힌 하늘 위를 유영하는 3
`꿈의 프로젝트` <원더풀 데이즈> 하이라이트 편집본 지상관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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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이 <아리랑>이란 영화는 과거의 조선의 영화를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이 돈 없고는 살 수 없고 한숨 많은 이 땅 위에서 슬피 대공(大空)을 울리어 그 무엇을 광호(狂呼)하는 한개의 거상이다 ”「라디오, 스포츠, 키네마」, 승일, <별건곤> 1926년 1월호나운규의 <아리랑>은 일대 ‘사건’이었다. 단성사 앞에 장사진을 친 조선 인민들의 울분은 일제 기마병들의 말발굽 위세에도 꿈쩍 안 했다. 행렬은 더욱 늘어났고, 끊이질 않았으며, 그러는 동안 <아리랑>은 단성사가 아닌 전국 방방곡곡 수천개의 고개를 넘었다. 미치광이의 목을 빌려 <아리랑>을 불러젖혔던 나운규. 그는 지금껏 투사였다. 대한제국 대신 조선을, 한성 대신 게이조를 이식당한 이 땅의 비극 안에서, 그는 언제나 투사여야만 했다. 동시에, 잊고 있었다. 활동사진이 아니라, 본연의 영화가 생체적으로 지니고 있던 운동성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이가 바로 그였다는 사
탄생 100주년 맞은 <아리랑>의 나운규,서른여섯해 삶과 영화세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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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열혈청년의 데뷔작반항적인 성격에다 일찌감치 연애질에 빠져 학교를 쫓겨나다시피 했던 어떤 소년이 고향인 함경도 회령을 떠나 만주로, 러시아로 흘러다니다가 다시 조선으로 슬며시 숨어든 때가 대략 이 무렵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일찍 깨우쳤던 청년을 사로잡은 것은 영화였다. 형 나시규의 이름으로 대리 등록한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밤낮으로 노트 한권 들고 극장에 들어가 메모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독립운동 전력이 들통나 2년간 옥살이를 했고, 1924년에 조선 최초의 영화제작사가 부산에 생겼단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부산으로 달려갔다. 거물 나운규가 <운영전>이라는 영화에서 가마를 들쳐멘 단역의 모습으로 우리 영화에 등장하기까지의 사연이 대략 이러했다.1902년생, 그러니까 당시 스물네살이던 한 청년이 자신의 데뷔작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기 전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극영화는 단 한편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말해야
탄생 100주년 맞은 <아리랑>의 나운규,서른여섯해 삶과 영화세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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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순종 아니 혼종!나운규는 <아리랑>이 “외국영화를 흉내낸” 것이라고 말했다. 1936년에 쓰여진 글이라서 자기 작품에 대해 성찰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된 시점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글로부터 강하게 감지되는 맥락은 당시에 쏟아져들어온 새로운 종류의 서양영화들이 관객의 취향을 바꾸었고 이에 따라 나운규 또한 관객의 새로운 취향을 의식하면서 영화를 구상하고 만들어나갔다는 점이다. <아리랑>이 매력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족의 현실을 고발하는, 비장하고 장엄한 리얼리즘 양식뿐만 아니라 “빠른 액션, 우스운 코미디, 쓰라린 감정을 고루 건드리는” 작품이라는 점, 즉 ‘대작 양화(洋畵)’에 상응하는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이다.<아리랑>에 대한 모든 평문들이 절대로 빠뜨리지 않는 이른바 ‘심리적 몽타주’에 관해서도 해석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아리랑>이 예술영화로 받아들여진 가장 큰
탄생 100주년 맞은 <아리랑>의 나운규,서른여섯해 삶과 영화세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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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오몽녀>, 하나의 정점!나운규는 인간적으로도 곡절이 많은 사람이다. 바구니로 긁어 담을 만큼 돈을 벌 때조차 동료나 가족에 대해서 무책임한 행각을 일삼아 죽마고우인 윤봉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때로는 비굴한 모습을 암시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나운규는 10여년에 걸친 영화활동에 획을 그을 만한 전혀 새로운 작품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1937년,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에 나운규는 심혈을 기울여 <황무지>를 준비했다. 1936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부전고원을 무대로 촬영하기 위해 현지 헌팅을 비롯한 촬영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나운규의 건강 이 이미 로케이션 촬영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와 친구들이 <황무지> 촬영을 극력 만류했다. 이에 따라 나운규는 <황무지>를 중단하고 <오몽녀>를 각색하여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현재 남아 있는 <황무지> 시나
탄생 100주년 맞은 <아리랑>의 나운규,서른여섯해 삶과 영화세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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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풍년가>를 부르며 춤추는 장면인데 초라하게 찍긴 싫었어. 고집피웠지. 하루에 1원씩 준답시고 800명을 모았어. 근데 통솔이 돼야지. 오전에 집합해도 의상이 튀는 사람들 골라내려면 반나절이 후딱 가는데. 어찌해서 군중을 십여대(隊)로 나눈 다음 한숨 돌리는데 불현듯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는 거야. 춤추려면 머쓱할 것 아닌가. 그래서 술과 술국을 돌렸어. 그게 화근이 될 줄 알았나. 공술인데 한잔 걸치고 물러날 사람이 있었겠어. 누군 코골고 자고, 어디는 주먹다짐이 오가고 난장판이 됐지.”약조를 받아내기까진 그닥 어렵지 않았다. 선생도 적적했으리라. 생자(生者)와 면한 지도 벌써 육십년이 훌쩍 지나지 않았나. 뵈올 수 있냐는 간청을 올렸을 때 선생이 종로통 옆골목에서 선술 팔던 ‘납작집’에서 보자고 흔쾌히 기별을 준 것만 봐도 그랬다. 더구나 그곳이 어떤 곳인가. 음주를 즐겨하지 않는 그이지만, 활동사진 박는답시고 어울려 나섰던 친우들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 아닌
나운규 감독 가상인터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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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800여명의 엑스트라를 모았던 것도 스펙터클을 제공하겠다는 판단이었나요.= 그렇지. 농민들이 <풍년가>를 부르며 춤추는 장면인데 초라하게 찍긴 싫었어. 고집피웠지. 하루에 1원씩 준답시고 800명을 모았어. 근데 통솔이 돼야지. 오전에 집합해도 의상이 튀는 사람들 골라내려면 반나절이 후딱 가는데. 어찌해서 군중을 십여대(隊)로 나눈 다음 한숨 돌리는데 불현듯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는 거야. 춤추려면 머쓱할 것 아닌가. 그래서 술과 술국을 돌렸어. 그게 화근이 될 줄 알았나. 공술인데 한잔 걸치고 물러날 사람이 있었겠어. 누군 코골고 자고, 어디는 주먹다짐이 오가고 난장판이 됐지. 그때 이명우군이 국솥에다 모래를 뿌리기까지 했는데도 그치질 않더구만. 해는 벌써 기우는데 난 나대로 목이 쉬고 가슴이 미어지고. 느지막이 자동차 타고 왔던 전주(錢主)는 그 광경을 보고 발을 구르지. 찍지 못하면 하루 1천원을 고스란히 날려야 하니까. 그러던 참에 참다못한 단성사 사람들이 중
나운규 감독 가상인터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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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는 없으셨는지요. 특히 배우로서 선생의 용모가 적격은 아니었다는 평가는 꽤 많은데요.= 동무 하나가 그러드만. 거울을 연인 삼았냐고. 밥먹을 때도 거울과 마주앉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맨 먼저 방 안을 두리번거린 뒤 거울을 정면하여 앉는 버릇이 있었다네. 내가 내 얼굴 모르겠나.(웃음) 괴벽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겠지. 각선은 꾸부정하고, 키는 5척이 안 될 만큼 작고, 목소리 또한 깔깔했고, 거기다 호흡은 씩씩거리기 일쑤였고.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표독스런 인물의 형상이니. 스마트한 선남형이나 노블한 신사형하곤 거리가 멀었지. <해의 비곡>이 제작될 당시 배우를 지망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경손 감독이 앞으로 악역할 사람이 없으면 정말 곤란할 것이라고 일본인 제작자를 설득해서 겨우 통과시켰다고 하더만. 내 영화에선 평범한 사람보단 미치광이가 주인공으로 나오잖아. 그거, 내가 주연하려고 그런 거야.(웃음)<벙어리 삼룡>에선 커다란 화염이 등장해야
나운규 감독 가상인터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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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영화제라는 이름은 아직도 생소하다. 지난해 12월 초 광주국제영상축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열렸을 때 사전홍보도 잘 안 됐고, 행사운영에도 많은 차질이 있었다. 상영작 60편 남짓의 소규모 행사에 전체 관객 수도 8천명 남짓했다. 그러나 영화제를 찾았던 이들에게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작고 알찬 영화제’의 기억을 또렷이 남겼다. 거기엔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영화들, 새로운 감독과 경향을 알게 해주는 영화들이 가득했다.올해는 기간을 조금 앞당겨 10월25일부터 11월1일까지, 명칭을 광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양형일 조선대 총장)로 바꿔 2회 행사를 연다. ‘영상축제’에서 ‘영화제’로 이름을 바꾼 데에는 나름의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 예산이 3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었고, 프로그래머 시스템을 도입해 서울시네마테크 대표이기도 한 임재철 프로그래머가 전체 상영작 60여편을 일관된 기획 취지 아래 선정했다.올해 프로그램도 ‘작고 알찬 영화제’의 명맥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보
제2회 광주국제영화제,10월 25일-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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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La Cienaga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 ┃ 출연 메르세데스 모란, 그라시엘라 보르헤스 ┃ 2001년 ┃ 아르헨티나 ┃ 103분찌는 듯한 여름을 맞아 도시에 사는 탈리네 식구들은 교외에 있는 탈리의 사촌 메차의 집으로 놀러온다. 각각 네명의 자녀를 둔 이 두 가족은 여느 가정 못지않게 속사정이 번잡하다. 메차의 집안은 몰락해 풀장의 물이 썩어가지만, 메차는 부르주아 조상의 습성이 남아 하녀에 대한 불만을 남발한다. 딸은 하녀와 사랑하는 사이이고, 남편의 정부는 아들과도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암시된다. 탈리의 가정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두서없기는 마찬가지다. 두 가족 구성원 각자가 겪는 며칠 동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이렇다할 인과관계가 없다. 불균질하면서도 사실적인 디테일들을 엮어 그곳 중산층 가정의 내면을 서늘하게 중계하는 어법이 독특하다. 단편과 TV시리즈를 만들었던 루크레시아 마르텔(36)의 장편 데뷔작으로 98년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일본과 프랑스
영시네마:주목할 만한 신예감독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