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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최근의 북중미 영화들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간 듯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극영화들은 다양한 영화적 실험을 추구하는 대신 탄탄한 이야기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특히 공포나 액션 등 장르영화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한뼘씩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일기
<엄마는 미용실에 계세요> Mommy Is at the Hairdresser’s
레아 폴/캐나다/2008년/99분/컬러/ 월드시네마
제목만 보고 영화의 배경이 미용실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캐나다의 대표적 여성 감독 레아 폴의 <엄마는 미용실에 계세요>는 1960년대 캐나다 퀘벡의 조용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스위스가 고향인 감독은 꾸미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고 그 속에서 힘겨운 여름의 한때를 보내는 엘리스와 그녀의 가족
[PIFF2008] 북중미영화: 인디 정신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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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월드시네마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 지정학적 특징.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보고 싶다면 프랑스를 다시 주목하라. 이탈리아 영화들은 새로운 르네상스에 돌입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영화들은 의외의 놀라움을 안겨준다. 아래의 추천작 리스트에서 거장의 이름들은 최대한 숙청했다. 다르덴의 영화? 굳이 권하지 않아도 모두가 보러갈게 틀림없지 않은가. 올해 베니스 출품작들은 같은 호 베니스 결산 기획을 참조하시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기막힌 혼합
신의 사무실 God’s Office
클레르 시몽 | 프랑스, 벨기에 | 2008년 | 122분 | 월드시네마
더 클래스 The Class
로랑 캉테 | 프랑스 | 2008년 | 120분 | 오픈시네마
지금 유럽 예술영화의 새로운 실험을 확인하고 싶다면 두편의 프랑스영화, 클레르 시몽의 <신의 사무실>과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를 보는 것이 좋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회적인 문제를 스크린에서 탐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PIFF2008] 유럽영화: 프랑스의 미학적 실험을 다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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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동남아시아의 작품은 여전히 사회변화의 흐름과 사람들의 척박한 생활을 관찰한다. 또한 동물의 생활부터 비에 대한 감상을 담는 등 다양한 주제로 가득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의 상영작들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이 화장터에 간 까닭
화장터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Pyre
감독 라제쉬 잘라 | 인도 | 2008년 | 74분 |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제3세계의 아이들은 다큐멘터리의 보고가 됐다. 끼니를 잇고자 일터로 나선 이 아이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굳이 많은 설명과 연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화장터의 아이들> 또한 감독의 시선보다 소재가 가진 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다큐멘터리다.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에 사는 아이들에게 남의 죽음은 자신의 밥줄이다. 영화는 시체들의 수의를 벗겨 장의사에게 되팔면서 생계를 잇는 7명의 아이들과 대화한다. 5살 때부터 일을
[PIFF2008] 다큐멘터리영화: 세상은 오늘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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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이 좋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누도 잇신 등을 비롯한 친숙한 감독들의 영화가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족, 죽음, 출산 등의 소재에서 의미를 공유하는 태도가 흥미롭다. 놀랍기보다는 수긍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삶의 기운을 찾아가는 불안한 가족의 1박2일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일본 | 2008년 | 114분 | 컬러 | 아시아영화의 창
온 가족이 모였다. 이 자리가 따뜻한 화합이 아닌 팽팽한 긴장의 공간이 되리라는 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무렇지 않게 터져나와 부모, 형제의 가슴에 꽂히게 마련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이 불안한 모임의 1박2일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날은 이 집 장남의 제삿날이고, 그의 죽음은 이 가족에게 공공연한 금기다. 뭔 일이 나도 날 판국. 영화는 엄마와 딸의 수다로 시작한다. 남편과 이웃 등을 소재로 한 이들의 방담은 여느 집에서
[PIFF2008] 일본영화: 일상의 풍경을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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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남아시아 지역의 영화들은 ‘개인’보다 ‘사회’에 주목한다.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지리적, 역사적 특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지역 영화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종교, 민족, 세대, 정치적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영화와 (발리우드가 아닌) 인도의 사실주의영화가 눈에 띈다.
정면에 서서 당당하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힘
서비스 Service
브리얀테 멘도사 | 필리핀, 프랑스 | 2008년 | 94분 | 아시아영화의 창
마닐라 시내에 있는 도산 직전의 낡은 성인영화 동시상영관. 이곳의 하루는 꽤 고단하다. 극장의 여주인 네이다는 아들 조나스의 학교 준비에서부터 극장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할머니의 푸념, 아버지의 법정 변호사의 비용, 자신을 희롱하는 극장 벽의 성적 낙서, 극장 직원들간의 싸움까지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카메라는 일관된 움직임으로 극장의 긴 하루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가령, 카메라의 움직임은 네이다를 따라가다가도 극장 직원들이
[PIFF2008] 미지의 아시아영화: 필리핀과 카자흐스탄 영화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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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화권 영화들은 신구의 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홍콩의 두기봉과 중국의 장위안, 그리고 대만의 장초치 등 기존 주목받던 중견감독들의 신작은 변화에 목말라 있고 홍콩의 팡호청을 비롯해 올해 단숨에 등장한 여러 대만 신인감독들은 선배들의 영화와는 전혀 색다른 감성으로 사회를 향해 미시적인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이처럼 중화권에서 중견과 신인의 영화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분출한 해는 드물었다. 더불어 카자흐스탄과 필리핀의 영화는 당당한 발견의 목록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 소매치기 대가들의 뮤지컬
참새 Sparrow
두기봉 | 홍콩 | 2008년 | 86분 | 35mm | 아시아영화의 창
천변만화하는 두기봉의 세공술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걸작. <흑사회> 연작 혹은 <익사일>처럼 그의 장기인 총알발레를 펼치는 영화는 아니지만, 마치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혹은 그가 누아르영화를 만드는 가운데 종종 위가휘와 공동으로 연출했던 코미디영화를 보는 듯 시종
[PIFF2008] 중화권과 동남아영화: 거장과 신예들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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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부터 또다시 축제의 막이 오른다. 국내 최대,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얘기를 넘어 또 작품 편수와 참가국 수는 늘었다. 여전히 신선한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는 아시아영화들과 유럽, 북미 지역 영화들의 각개 약진은 물론 카자흐스탄과 필리핀 등 미지의 발견이 눈에 띈다. 올해는 특정한 테마와 장르로 헤쳐 모으는 분류법보다 지역별로 돌출된 작가들의 행보가 더 흥미로웠다. 여기 <씨네21> 편집부가 엄선에 엄선을 거듭한 35편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PIFF2008] Go Go 2008 P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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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은 드본셔의 공작부인이자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며, 뛰어난 화술과 사교성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조지아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키라 나이틀리와 레이프 파인즈가 공작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영화는 조지아나(키라 나이틀리)가 듀크(레이프 파인즈)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뜻을 고분고분 따르며 시작된다. 하지만 조지아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혼과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절망은 듀크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베스(헤일리 애트웰)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뒤 점점 깊어간다. 한편, 남편의 무관심과 냉정함에 지친 조지아나는 자신을 짝사랑했던 찰스 그레이(도미닉 쿠퍼)를 만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공작부인…>에 대해 영국 언론들은 “<오만과 편견>처럼 로맨스로 가득 차 있거나, 강렬한 비극이 가슴을 내리치는 <어톤먼트>와 비교해볼 때 가장 잘 만들어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18세기 영국 사교계의 여왕이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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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관심사병에 악영향
<헤이 웨잇> 제이슨 지음/ 새만화책 펴냄 <자살 토끼> 앤디 라일리 지음/ 거름 펴냄
<헤이 웨잇>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북유럽 만화다. 북유럽은 우리의 우방으로도 보이지만, 사회 민주주의라는 이상한 좌파적 이념에 물들어 있는 곳이다. 이 만화는 한 청년이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큰 변화를 겪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견 서정적인 작품으로 보이지만, 그 담담한 듯 세세한 묘사가 인생의 슬픔을 극한으로 드러내게 된다.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관심사병들이 읽었을 때 자살 충동이나 인생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게 될 수 있으니 요주의해야 한다.
<자살 토끼> <돌아온 자살토끼> 라는 작품은 사병들의 애인들이 장난 삼아 선물로 주기에 좋은 책이다. 이 작품은 별다른 대사 없이 무표정한 토끼가 여러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토끼는 토스터 기계 속에 들어가고
<씨네21>이 뽑은 불온아이템 [3] 만화 리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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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순진한 중산층에게 강추!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을 보고 이상했던 것 하나. 진중권, 홍세화, 박노자, 우석훈의 저작은 왜 빠져 있을까? 혹시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일부러 누락한, 고도의 “까” 전략일까.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교수가 쓴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그 목록의 몇몇 책들보다는 더 과격한 주장을 담고 있는데 말이다. “직선들의 두목, 불도저들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경제이성이 한국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뒷받침하는 건 서울시에서 추진한 뉴타운의 경우 집이 없는 거주민들도 개발을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의 10% 정도만이 새로 만들어진 뉴타운에 입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심에서 더 먼 곳으로, 혹은 원래
<씨네21>이 뽑은 불온아이템 [2] 도서 리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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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불온한 걸 보여 줄게!
최근 화제가 됐던 ‘불온서적 리스트’는 한국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방부 관계자가 풍요로운 도서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한 특별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국방부가 내세운 ‘북한 찬양, 반정부, 반미·반자본주의’라는 기준에 썩 부합하지도 않는 23권의 도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불온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큰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야흐로 불붙은 불온 마케팅의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씨네21> 또한 음반과 만화 분야의 불온 리스트를 선정했다. 지난번 리스트에서 ‘아쉽게’ 탈락한 불온한 도서 목록 또한 추가했다. 만약 국방부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들을 불온물로 공인해준다면 문화산업은 큰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저 우울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 과거회귀의 시대를 맞아 ‘불온’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01. 지배세력의 취향만이 합법?!
≪1집≫ | 김민기 ≪멀고 먼 길≫ ≪고
<씨네21>이 뽑은 불온아이템 [1] 음반 리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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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날의 극장가는 이색적인 풍경을 준비하고 있었다. 설날영화들의 대목경쟁도 관심사였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지점은 경성이란 도시를 담은 3편의 영화가 동시에 맞붙는다는 것이었다. 참가할 선수들은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를 만드는 소동극을 그린 <라듸오 데이즈>와 전설의 보석을 둘러싸고 일본군과 독립군, 사기꾼이 활극을 벌이는 <원스 어폰 어 타임>, 그리고 조국을 뺏긴 슬픔보다 연인을 잃은 절망에 허우적대는 남자의 애달픈 방황을 그린 정지우 감독의 <모던보이>였다. 2편도 아니고 3편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은 기이했다. 어쩌다 동시에.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3편 모두 한껏 달아오른 경성트렌드의 붐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한편이 먼저 개봉할 경우, 트렌드와 맞물릴 이점들을 죄다 채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던보이>가 개봉을 연기했다. 제작진이 밝힌 사연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후반작업을 보충하겠다
<모던보이> 1930년대 경성, 모던보이의 지독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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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전편에 괴물이 너무 없다고 지적해 2편에는 많이많이 넣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축하한다. 또 한번 큰 발걸음을 내딛은 기분이 어떤가.
=또 하나의 모험을 막 끝낸 기분이다. 정해진 예산이 언제나 그렇듯이 빠듯해서 헝가리에서 촬영하고 후반 작업은 런던에서 했다.
-<판의 미로…>를 만들 때, <헬보이2>의 각본을 썼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두 영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인간의 속물성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환상세계를 다룬 점에서 비슷한 테마니까. <헬보이2>는 곳곳에 유머가 배어 있긴 하지만, 두 작품 다 기본적으로 우울한 색채를 띠고 있다. 무너져가는 사람 모양의 게이트나 죽음의 천사는 그 상징적인 이미지들이다. 자세히 보면 <판의 미로…>에서 사용했던 공기에 나부끼는 꽃가루를 <헬보이2>에서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보다 괴물이 더 좋은 모양이다.
=내가
<헬보이2: 골든 아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배우 더그 존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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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북으로 먼저 소개된 헬보이는 미국의 블루 칼라 남성의 이미지에서 따왔음을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뿔과 꼬리와 붉은 몸을 가진 블루 칼라라는 것. 크고 단단한 몸에 우락부락한 인상. 다혈질에 누가 기분 나쁜 소리라도 할라치면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주먹. 하루의 따분한 일과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양이가 잘 있나 확인한 다음 소파에 벌러덩 앉아 풋볼 채널을 보며 한손에는 캔맥주를 들고 들이켠다. 같이 사는 여자친구가 왜 짜증을 내는지 귀찮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걸리는, 몸은 크지만 여전히 유치한 모습. 전편에 이어 익숙한 헬보이의 모습이다. 반신반의하던 스튜디오를 설득해 2004년 <헬보이>를 영화화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원작을 델 토로식 판타지 세계로 매끄럽게 편입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극장과 DVD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이후 델 토로 괴물들로 가득한 좀더
붉은 악마가 돌아왔다! <헬보이2: 골든 아미> 시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