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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던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암탉 ‘잎싹’의 울음은 놀랍게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명필름의 프로덕션 노하우, 오돌또기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제작 노하우가 대중과의 만남이라는 목표로 수렴된 결과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부화하기까지 꼬박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제시한 새로운 지점을 살펴보고,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오성윤 감독에게 작품의 제작과정을 들어보았다.
엄마가 운다. 엄마가 아니어도 운다. 그러니 아이들도 따라 운다. 너도나도 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준 감동의 크기는 컸다. 개봉 전 가진 시사회 뒤 극장을 나서며 한 엄마 관객이 말한다. “애들 보여주러 왔다가 내가 울고 나가네.” 오열을 했다는 동료 기자가 거든다. “난 엄마와 동물에 약한데 이건 동물 엄마 이야기잖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
감동의 눈높이를 사려깊게 맞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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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여행지로 각인하는 건 쉽지 않다. 야시장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부러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를 등지고 찾을 정도로 특별한 인상을 준다면 그건 순전히 거짓일 테다. 대만에 대한 내 이미지는 그러니 온전히 허우샤오시엔 영화에 빚을 지고 있었다. <동동의 여름방학>에 나오는 80년대 유원지를 꼭 빼닮은 버드나무 아래의 평상. <연연풍진>의 잿빛 탄광촌의 퇴색된 철길. 어느 하나 현재와 맞닿은 풍경은 아니다. 대만의 곳곳은 스크린을 벗어나 마치 기억을 지배하는 과거의 거리처럼 인식됐다. 대만을 직접 맞딱드리겠다는 결심은 아주 이후에나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 <비정성시>를 다시 보는데, 그곳의 현재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일전에 허우샤오시엔의 눈으로 불리던 촬영감독 마크 리 핑빙을 인터뷰할 때 그가 “감독님이 항상 촬영 장소에 새벽녘에 도착해 그곳에서 느낀 감흥들로 ‘즉석콘티’를 만드는 바람에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던 말도 떠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자주 보게 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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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전투를 보다 피라미드의 안부가 궁금했다. 중국과 프랑스를 지나 이집트에 상륙한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로봇군단은 세계 7대 미스터리야 어찌되든 뛰고 날고 부수고 던지는 육탄전을 벌였다. CG와 합성이 만들어낸 신천지였겠지만 거대한 디셉티콘이 피라미드의 능선을 밟기 시작했을 땐 눈이 조금씩 바스러지는 돌무덤을 쫓아갔다. 로봇의 기원전까지 거슬러 탐하는 마이클 베이의 거대한 3D 세계에서 수천년 문명은 그저 로봇의 놀이터가 됐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그리고 사막.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그린 이집트는 지구의 역사가 펼쳐지는 광활한 무대였지만 카이로 공항에서 마주하는 이집트는 의외로 작고 복잡한 길이 매력적인 곳이다. 사방이 모래뿐인 기자 지구도 돌과 모래가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길이 신비롭다. 타고 온 차에서 얼른 내려 걷게 된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낙타지기, 스핑크스 앞 레스토랑을 맴돌며 관광엽서를 파는 꼬마 등 삶의 흔적과도 만난다. 모랫
피라미드 뒤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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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TGV를 타고 네 시간여, 툴롱이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차를 렌트해 40분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봄레미모자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펼쳐진다. 해마다 2월이면 샛노란 솜털 모양의 꽃으로 홍수를 이루는 곳. 그러다 봄이 되면 700여종의 꽃들이 온 거리와 건물을 뒤덮어 꽃을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다는 그림 같은 마을. 영화의 도시 칸에서 멀지 않은 그곳이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듯한 곳이다. 하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봄레미모자와 맞닿은 해안가로 달려가 부둣가에 정박되어 있는 작은 페리에 몸을 싣는다. 배가 푸른 물살을 가르며 남쪽을 향해 달려나간 지 이십분 남짓, 꿈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신비로운 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그랑 블루>의 촬영지였다는 포트 크로 섬은 프랑스 남부 해안인 코트 다쥐르 남단에 박혀 있는 금의 제도 중 하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물속에 머리를 박고 등만 밖으로 낸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안을 파고들
마치 한 마리 돌고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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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영화 같은 순간이 있다. 물론 영화도 장르에 따라 다르다. “홍상수 영화 같은 장면”이 있는가 하면 “데이비드 린치 영화 같은 장면”도 있게 마련. 그 모든 다양한 장면들을 아울러, 우리는 “영화 같다”는 한마디로 퉁친다. 삶이지만 흔연한 삶과는 뭔가 다른 순간을 일컫기에 그만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겠지. 내가 삶에서 문득 분리되는 느낌. 내가 있는 곳을 떠난 내가 지금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느낌. 내 위에 1cm쯤 떠 있는 나. 삶은 한편의 영화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브루클린 다리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산책하듯 걸으면 한 시간쯤 걸리는 그곳이, 내게는 한편의 영화 같았다. 잔잔한 로드무비 같았다. 발을 디뎠을 때 환하던 사위는 걸으면서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브루클린 다리 상영시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마지막으로 다리에서 발을 떼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해가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로 지는 순간의 딱 일분을 나는 캠코더에 담아놓았다. 일분이
이곳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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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정확한 시간표 아래 한번도 정해진 트랙을 벗어난 적 없는 독일 기차 같은 삶을. 그러나 아내가 죽고 그녀의 흔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자는 통렬하게 깨닫는다. 기계적 순환 속에 한번도 정차해 살핀 적 없는 아내를 둘러싼 진짜 풍경을. 부토 댄서가 되고 싶은 꿈을 누르고 독일 바닷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쉰 그 여자의 진짜 꿈을. 결국 뒤늦은 탈선을 감행한 이 낡은 독일 기차가 향하는 곳은 바로 일본의 ‘후지산’이다. 남자는 후지산 아래 호수에서 생의 마지막 춤을 춘다. 어느덧 떠난 아내의 영혼도 조용히 남자의 손을 잡는다.
도리스 되리 감독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에 부치는 독일어로 쓰여진 연서다. 그 러브레터를 읽고 나는 또 얼마나 울었던가. 2009년 봄. 일견 평온해 보였지만 결코 평온할 수 없었던 삶, 좌초 직전의 나는 그렇게 이 영화를 만났고 눈물을 닦은 뒤 당장 도쿄행 비행기 표를 예
거짓말처럼 한결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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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베를린은 익숙했다. 베를린영화제로 출장을 갈 때마다 나는 동구권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액션영화를 머릿속에 그렸다. 겨울의 베를린은 춥고 을씨년스럽다. 지하철역에서는 제이슨 본이 튀어나오고, 작은 공원에서는 한나와 마리사 위글러가 총을 들고 서로를 쫓을 것 같은 도시다(실제로 두 영화는 베를린을 결정적인 무대로 활용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외신기자클럽’에 기고해 온 평론가 데릭 엘리가 말했다. “여름의 베를린은 완전히 다른 도시야. 완전히.” 뭐가 그렇게 다르려고? 그러다가 안젤리나 졸리와 톰 크루즈가 베를린에 집을 샀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여름의 베를린으로 향한 건 오로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궁금증이 많은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도 돈이 많이 드는 법이다.
여름의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해답을 찾았다. 베를린은 괴상한 도시다. 원래 이 도시는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서베를린은 동독의 한가운데에 섬처럼 박혀 있었고, 동베를린은 담 너머 자본주의 쌍둥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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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남쪽의 남반구에서도 많이 남쪽에 있는 ‘모레노’라는 이름의 빙하를 둘러본 뒤, 이제 슬슬 위로 올라갈까 싶어 작은 버스터미널로 갔을 때, 구석 매표창구에 ‘RUTA40’이라고 적힌 A4용지가 나부끼는 것을 발견한 건 라식수술로 확보한 2.0의 시력 덕분이었다. 세상에, 루타40이라면 바로 그(!)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렸다는 길 아니던가! 나는 곧바로 한때 꿈속의 연인이었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길을 달리던 장면을 떠올렸고, ‘30 HOUR Non Stop’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지 순례객이나 된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타고 말았다. 버스에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기대감을 가지고 표를 끊었을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눈을 빛내며 앉아 있었다. 혁명보다는 낭만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신화적 존재인 건 틀림없는 모양이다.
과연 루타40은 험했다. 움푹움푹 패긴 했지만 그래도 아스팔트가 깔려 있던 도로는 잠깐,
체 게바라, 그 깨달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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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할 애니메이션 <리오>는 앵무새가 주인공이다. 앵무새의 이름이 ‘리오’냐고? 아니다. 그의 이름은 ‘블루’다. ‘리오’는 영화의 무대가 된 브라질의 미항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따온 것이다. 도시의 이름을 제목으로 만든 이유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리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한 리우데자네이루의 전경과 골목과 해변을 끝없이 3D로 스크린에 재현한다. 3D 안경을 쓴 채 스크린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는 종종 삶의 대리 체험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여행의 대리 체험이기도 하다. 우리는 로봇들이 정신없이 뒹구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보면서도 이집트 여행을 꿈꾸고, 제이슨 본과 리암 니슨의 달음박질을 따라 베를린의 광장을 내달리고 싶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젊은 체 게바라가 내달렸던 루타40의 길을 소망한다. 여기 여행작가와 여행잡지 기자를 포함해 여행 좀 해본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일곱개의 영화 속
영화 속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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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과는 어떤 인연인가.
=윤제균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알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해운대>의 김휘 작가, JK필름의 길영민 이사인데 그중 김휘 작가와 과거 단편 <장마>(1996)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어울려 친한 형들이 됐다. 사실 내가 <뚝방전설> 이후 JK필름의 전신인 두사부필름에서 작업할 거라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무슨 그런 쌈마이 영화사로 가냐” 하는 얘기도 했었다. (웃음) 하지만 어차피 영화란 공동작업이니까 ‘무조건 사람만 보고 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딱히 흔들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JK필름에서 영화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JK필름하고 하게 됐어?” “나도 좀 소개시켜줘” 그런다. (웃음)
-<퀵>은 믿기 힘든 도심 촬영들이 많다.
=주무대는 도로 그 자체인데 촬영 허가가 진짜 힘들다. 제작부가 정말 대단했다. 무려 7개 기관과 접촉해서 명동을 섭외했고, 수원 영
아날로그 냄새 나는 액션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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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09년 1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한국영화 역대흥행 4위 <해운대>의 ‘젊은 피’가 뭉쳤다는 점이다. <해운대>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이민기와 강예원은 이제 오토바이 한대 위에서 거의 한몸으로 움직이고, <해운대>에서 사사건건 이상한 일에만 얽히던 김인권이 이번에도 악전고투를 거듭한다. <해운대>의 신화를 일군 윤제균 감독이 제작자 겸 각색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둘의 연관성을 되짚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퀵>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수 오락영화다. 아니, 너무 억지를 부려서 신선한 액션코미디영화이기도 하다. <뚝방전설> 이후 전혀 다른 컨셉과 스타일의 <퀵>으로 돌아온 조범구 감독을 만났다.
<퀵>은 ‘한국판 <스피드> 혹은 <택시>’다. 시속 50마일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하는 <스피드
달리고 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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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부터 <의형제>를 거쳐 <고지전>까지 쉼없이 왔다. 이번 영화를 끝내고 하고 싶은 건 뭐였나.
=당분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여행도 다니면서 정리를 해야겠다. 예전에 <의형제>를 끝내고 1주일 동안 중국을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추울 때 가서 감기만 걸려 왔다. (웃음) 올해는 아예 다음 작품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박상연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함께 각색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
=원래 시나리오는 좀 길었고, 더 처절했다. 앞부분의 판문점 장면은 각색과정에서 추가한 부분이다. 당시 전쟁 상황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려 했다. 그들이 왜 싸우는 건지, 그들의 전쟁이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야 할 것 같더라. 촬영하는 동안 넣은 부분도 있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이랑 싸우는 거야”란 대사가 그렇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전쟁을 바라본 태도가 그거였다. 악어중대의 과거도 그런
인물은 따뜻하게, 죽음은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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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만큼 말 많은 소재가 또 있을까. 영웅주의로 그리면 반공으로, 영웅주의를 지우면 좌파로, 이도 저도 아니면 역사에 대한 회피로 비난받는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 또한 이러한 형편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11일 공개된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감정의 소비없이 전쟁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등장했다. <고지전>의 영화적인 흥미와 전쟁영화로서의 성취를 살펴보았고. 세 번째 작품을 끝낸 뒤 숨 고르기 중인 장훈 감독을 만났다.
총에 맞은 병사가 새처럼 파닥거린다. 아직 17살의 앳된 소년이다. 미성의 노래로 동료 병사들을 위로해 귀여움을 받던 그다. 하지만 전우라 부름직한 그들은 소년의 시체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전진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약 2년6개월 뒤인 1953년 1월, <고지전>의 이야기는 병사들이 이미 전쟁의 생과 사에 지독히 길들여진 때부터 시작
전쟁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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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江汀). 강 강자에 물가 정자를 쓰는 이름답게 제주도 강정마을은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물이 풍족하게 나오는 작은 어촌이다. 아침저녁으로 피는 안개는 검은 용암바위와 함께 작은 마을에 운치를 더해주고 용암바위 사이에는 멸종위기인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운이 좋으면 강정 앞바다에서 돌고래가 헤엄 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개발 광풍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묻지 않은 아름다운 공간인데, 어쩌면 이 공간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 한켠과 역사 속에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해군기지가 이곳에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하동하·경순·홍형숙·김태일·최진성·정윤석·권효·양동규 등 다큐멘터리 감독 8명이 모인 것도 강정마을의 아름다움과 위기에 처한 그 아름다움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100일 동안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100일 동안 만드는 <잼(JAM
지켜주고 싶어 이토록 아름다운 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