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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생존이다. 당연하고 지당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엄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밥이 생존이라고 여기는 대신 밥이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고픔 앞에서 모두 배고프니 그런 엄살 부리지 말라고 했던 적은 없던가. 시나리오작가이자 장편영화 감독을 꿈꿨던 최고은씨의 죽음을 둘러싼 말들이 많다. 사인을 놓고 독설과 비난이 오간다. 사실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일까.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누군가는 고인의 죽음이 가리키는 밥의 의미를 찾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밥의 온기로 고인의 삶을 가려서는 안된다고 침묵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죽음 앞에서 사실과 진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허망하고 무용할 뿐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묻기로 한다.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 않는, 뻔뻔한 질문을 다시 꺼낸다. 2007년 여름, 영화계는 밥을 나눠 먹는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약속한 적이 있다. 영화인들이 약속한 그 시기는 모두 배고프다고 아우성친 시점이기도 했다.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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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들, <블랙 스완>에 대해 입을 열다
“혜민이가 힐을 신고 오면 어떻게 하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좀 걱정이 되나 보다. <지젤> 연습 때문에 치장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와!’ <돈키호테> 연습을 끝내고 인터뷰 장소인 국립발레단으로 서둘러 온 황혜민을 보자 김지영이 탄성을 지른다. 황혜민도 김지영처럼 부츠를 신었다. ‘편하게 입고 오시라’는 게 양쪽에 전달한 주문의 전부였지만, 두 사람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위아래 의상까지 맞춰 입었다. 그리고 이어진 백조들의 수다. 국내 개봉하기도 전에 해외에서 일찌감치 <블랙 스완>을 봤다는 두 무용수는 백조와 흑조의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입을 풀었다.
#<블랙 스완>에 대한 발레리나들의 반응은 극단으로 나뉜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질리언 머피는 <LA타임스>에서 “영리하게 계획된,
“노이로제 하나씩은 갖고 있지…” 두 얼굴을 가진 무대의 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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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기로 시작됐나.
=오리지널 <백조의 호수>는 고딕풍의 이야기다. 백조로 변하는 여인에 관한. 일찍부터 나는 이게 늑대인간 종류의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늑대인간 영화를 백조인간 영화로 재발명하는 아이디어에 늘 끌렸다. 또한 발레라는 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그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에도 깊은 흥미를 느껴왔다. 내 여동생도 어린 시절엔 무용수였다.
-언제 시나리오를 접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던 중이었다. 발레극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갔다. 그전까지는 발레를 보러 간 적이 없다. 그런데 백조와 흑조를 같은 무용수가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자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거야말로 발레 세계의 ‘분신’이었던 거다. 그래 이런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에 내게 이 영화의 초고가 들어왔다. <레퀴엠>의 편집을 하고 있던
늑대인간 영화를 백조인간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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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애로노프스키는 오래전부터 <블랙 스완>의 연출을 꿈꿔왔다. 마침내 이 영화를 구상한 지 십수년이 흐른 다음 영화는 완성됐고 묘한 매력의 애로노프스키식 발레영화 한편이 우리 앞에 왔다. 당신의 예상대로 애로노프스키의 발레영화는 아름답거나 지고지순하기보다 현란하고 충동적이다. <블랙 스완>은 과연 어떤 영화일까, 그 전모를 알아본다. 한편,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씨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씨를 초대하여, <블랙 스완>을 본 발레리나들의 흥미 만점 발레 수다도 마련했다.
<블랙 스완>을 연출한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오랫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고 떠돌았던 프로젝트 <울버린>의 연출을 맡기로 했다는 사실이 얼마 전 알려졌다. 동시에 <울버린> 이후의 그의 연출작으로 공표된 프로젝트는 한 기계기술자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티타늄으로 대체하여 기계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머신 맨>이다. 할리우드에서
혹독하리니, 불안도 고뇌도 카오스의 완성을 향한 어떤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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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의 전화는 수도 없이 울렸다. “한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지인들이 ‘아내가 현빈을 좋아한다’며 시사회 표를 구해달라고 하더라. <가족의 탄생>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웃음)” 지금은 웃고 있지만, <만추>가 그리 쉬운 프로젝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무게, 외국의 배우와 함께한 해외 로케이션 등 <만추>는 부딪혀야 할 벽이 많은 영화였다. 그와 함께 고민의 과정을 더듬어보았다.
- 어떻게 제안받은 영화였나.
= 그냥 전화가 왔었다. (웃음) 글로벌한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원래 <그녀가 사라졌다>란 멜로영화를 3년 넘게 준비했었다. 내가 사랑 이야기를 못하는구나 싶었는데, <만추>는 정해진 틀거리가 있기 때문에 조금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 그래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
<만추>에서 당신의 마음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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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마지막 이야기가 겨울의 마지막에 찾아왔다.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만추>는 그의 첫 멜로영화다. 이만희 감독의 원작을 시애틀이란 공간, 현빈과 탕웨이란 배우에게 이식한 <만추>는 섬세하게 조율된 대사와 연기로 짜여진 전작과 달리 그들이 놓인 도시와 그들의 얼굴을 숨죽여 바라보는 영화로 탄생했다. 한편, 그동안 김태용 감독이 장·단편을 통해 전해온 화해와 소통의 기적에 대한 영화라는 점 또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리메이크영화로서,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서 <만추>가 지닌 영화적 매력을 살펴봤다. 김태용 감독에게 직접 듣는 연출의 변도 함께 전한다.
겨울이 온다. 가을은 가고 있다.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중국계 미국인 여성 애나(탕웨이)가 7년 만에 나온 휴가는 하필 이때다. 그녀가 가야 하는 곳은 또 하필 비와 안개로 뒤덮인 도시 시애틀이다. 사실 애나는 휴가를 고대하지 않았다. 교도소 밖 세상에 대한 거부감은 그녀의 몸이 먼저 알고
느린 호흡으로… 죽어 있던 시간을 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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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본의 극장 흥행수익은 2200억엔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활황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건 입장료가 비교적 높은 3D영화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본은 최근 수년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외화를 앞서며 ‘일본영화 부활’이라 말해왔지만 TV드라마나 인기 만화에서 출발한 안전한 기획이 넘치는 내실은 결코 호조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난치병의 멜로드라마, 달콤한 로맨스, 뜨거운 우정, 게임의 오락성과 스릴을 내세운 모험극 등. 본래 방송국이 출자한 영화들은 ‘긍정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감동’을 제공하는 것이 많은데, 그 주축이 되는 영화사에서 이와는 정반대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필두에는 영화사 도호가 제작한 <고백>과 <악인>이 있다. <고백>은 흥행수익 39억엔, <악인>은 19억엔을 기록해 연말연시 각종 영화상에서도 중심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송국과 손잡고 탄탄한 히트작을 만들어온 도
현실 속 ‘악’의 리얼리티로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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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백>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A. 오늘날 일본 오락영화의 주류는 ‘웃기고, 울리고, 해피엔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흐름에 위화감이 있었다. 인생의 훌륭함만을 그리는 게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만난 소설이 <고백>이다. 끝도 없이 어둡고, 무겁고, 인간의 잔혹성을 그려 조금의 구출도 없이 끝난다. 이 세계의 불안감과 악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소설을 읽고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걸로 이 이야기에 대한 나의 답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어두운 이야기에 도호 내부에서 반발은 없었나.
A. 꽤 많은 장애가 있었다. 특히 가장 최악의 순간에 영화가 끝난다는 점이 많은 반발을 샀다. 도호의 메이저 영화로서는 확실히 모험이었지만 관객에게는 ‘새로운 오락’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Q. <고백>의 흥행 비결은 뭐라 생각하나.
A. 관객의 첫 반응은 ‘어떻게 리액션해야 할지 곤란하다
<살인의 추억>이 제작 동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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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를 추궁당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종업식 날, 중학교 선생 모리구치 유코(마쓰 다카코)는 언제나처럼 학생들에게 우유를 나눠준 다음 생기없는 목소리로 기나긴 고백을 시작한다. 그녀는 싱글맘이었고, 약혼자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와 헤어진 채 홀로 아이를 낳았다. 얼마 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던 어린 딸 마나미가 학교 수영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단순한 사고사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유코는 우연한 기회에 이것이 계획된 살인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 이 반 학생 중 마나미를 살해한 진범이 있음을 밝힌다. 그녀는 그들이 왜, 어떻게 마나미를 죽였는지 다 알고 있다. 다만 14살 이하 범죄자는 소년법에 의거해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은 채 ‘갱생’의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에, 경찰에 알리기보단 그녀 스스로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유코의 첫 번째 고백은 러닝타임 중 무려 30분을 차지하며 끝나고, 이
현대사회에서 길어올린 생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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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고백>이었다. 2010년 6월5일 일본 전국 266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고백>은 개봉 주말 이틀 만에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수익 2억6천만엔을 벌어들였다. 물론 박스오피스 1위. 3D영화의 호조로 외화가 강세였던 지난해 일본극장가에서 자국 극영화의 박스오피스 1위는 2009년 10월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僕の初恋をキミに捧ぐ)> 이후 8개월만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다소 잔인한 화면으로 국내의 15세 이상 관람가인 R-15 등급을 받았지만 <고백>은 소설의 주 독자층이었던 40대 여성은 물론 여고생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최종 39억엔이 넘는 흥행수익을 거뒀다. 미나토 카나에의 동명소설을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지마 테츠야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10년 일본 극장가의 최대 화제작이 됐다.
하지만 <고
‘이벤트 무비’ 일색 일본 극장가에 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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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본영화가 꿈틀댔다. 2000년 이후 방송국 중심의 오락영화로 점철됐던 일본 대중영화가 새로운 싹을 틔운 것이다. 지난해 6월5일 개봉한 <고백>과 9월11일 개봉작 <악인>은 지금까지 일본 박스오피스를 장식한 영화들과 정반대의 화법으로 승부한다. <고백>은 살인사건을 수많은 내레이션으로 조각내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고, <악인>은 어두운 톤의 이야기에서 악의 본질을 들춰낸다. 그리고 두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일본의 대중은 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일본의 대중영화가 새로운 관객을 창출하고 있는 걸까. 2010년 한해 일본영화가 보인 변화의 가능성을 전망해 보았다. 더불어 지난해 최대 화제작 <고백>을 살펴봤다. 두 영화를 기획한 가와무라 겡키 프로듀서와의 서면 인터뷰, 일본의 저널리스트 후카쓰 준코의 현지 전망도 함께 싣는다.
新日本映畵, 열도를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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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26일, 개구리소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20년 뒤인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이 사라졌다. 날짜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만 미스터리의 성격상 두 사건은 닮아 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발견된 유해(잔해)는 그간의 행적과 사라진 이유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담고 있지 않았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격침인지 좌초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듯이, 개구리소년들의 죽음 또한 타살인지 아닌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전체가 빠져버린 거대한 구멍이었다. 개구리소년 사건을 영화화한 <아이들…> 또한 천안함 사건의 미스터리를 재추적한 KBS <추적 60분>과 닮은 듯 보인다. <아이들…>은 사건에 얽힌 의문점과 등장한 가설의 진위 여부를 드러내며 주장한다. 아이들은 살해당했다. 당연히 아이들을 죽인 범인도 어딘가 살아 있다.
가설의 재료는 한권의 책,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이다. 사건 발생 5년 뒤인 지난 199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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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2004)과 <타짜>(2006)는 조연들이 벌이는 환상의 ‘빅 매치’였다. 장진 감독이 <기막힌 사내들>(1998)에서 A급 배우를 쓰지 않는 ‘무모한 실험’을 벌였을 때와는 ‘시추에이션’이 달라진 것이다. 백윤식과 김윤석을 보라. 또 송새벽을 보라. 주연이냐, 조연이냐의 문제를 꺼
내려는 게 아니다. 구미 당기는 캐릭터를 먼저 구하지 않는다면 제 발로 걸어들어온 재능도 소진될 수밖에 없다. 2011년의 뉴 페이스 찾기는 배우 구하기가 아니라 캐릭터 구하기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빨’ 로 죽여주는 사나이
박철민篇
10s 196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깡패학교’라 소문난 고등학교에 ‘뺑뺑이’로 배정됐다. 한대라도 덜맞으려고 격투기를 배웠다.
20s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시절. 연극 동아리 방에서 죽치고 살았다. 배고프면 교정의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낚았다. 밤에는 ‘후레슈’로 어슬렁거리는 비둘기를 혼절시켜 잡아먹었다.
[조연열전] 200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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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내긴 줄 알았는데 붙박이었다. 자존심 다칠까봐 영화를 흠칫거리던 선배들과 달리 이시기 조연배우들은 영화로 ‘목표’를 수정했다. 연극이냐, 영화냐의 양자택일. 그들은 결국연극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화’를 선택했다 .‘한국영화’가 대중의 관심 키워드로 급부상하면서 조연또한 흔한 ‘언저리’ 존재가 아니었다. 송강호, 황정민, 정재영 등과 같이 조연에서 시작해 주연으로 자리한 경우도 많아졌다. 조폭코미디 혹은 범죄물이 흥행몰이를 계속하면서 시리즈물이 양산됐고, 개성파 조연들의 몸값은 불과 몇년만에 배 이상 뛰었다. 활황의 파고를 타고 제작편수까지 늘자 조연급 배우들을 주인공 삼은 대담한 영화도 쏟아졌다.
배우행 완행열차를 타다
임원희篇
10s 1970년 서울 출생. 주말 밤 10시가 되면 아버지는 잠에 곯아떨어진 초등학생 아들을 말없이 흔들었다. TV 안에 게리 쿠퍼의 무표정(<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과 장 가뱅의 주름(<고양이>)이 있었다. 신일고 연극
[조연열전] 1999~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