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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직장인 K군을 베를린으로 데려다줄 비행기 티켓 가격은? 250만원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막대한 티켓값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멀리 갈 것 없다. 영화를 빌미로 전국을 유람할 수 있는 영화제 라인업만으로도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라디오헤드가 오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록페스티벌과 함께 여름을 불살라도 좋다. 지산과 슈퍼소닉, 펜타포트에 임하기 위한 사전분석을 첨부한다.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계절엔 만화도 슈퍼히어로물로 봐야 제격. 슈퍼히어로물의 원작 코믹스를 깨알같이 소개하니, 완독하려면 여름 다 갈 거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TV만 한 바캉스 대책이 없다면 올림픽 방송과 새 드라마로 포진된 방송 라인업을 펼쳐봐라. 스마트폰 안에도 바캉스는 존재한다. 어플의 신세계를 소개한다. 그래도 물리적 더위는 못 참겠다고. 뭐가 걱정인가. 여름을 현명하게 대처할 기기들이 무작위로 쏟아지고 있다. 물론 그중 <씨네21>이 직접 사용해보고 엄선한 것들을 골라보았다. 차선
마음은 언제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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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남극에 가려다가 못 가신 적이 있어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나봐요. 웬만해선 어떤 길을 뚫어서라도 가셨을 분인데. (웃음)
나영석_(진지하게) 사실 지진은 헤쳐갈 수 있었어요.
고현정_어머, 이거 보세요. 맞잖아요. (둘러보며) 방금 눈빛 보셨어요?
나영석_(웃음) 안전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칠레 국민에겐 큰 재해상황인데 다큐멘터리팀도 아니고 웃음을 만드는 사람인 저희가 그곳에 들어간다는 점이 신경이 쓰였어요. 접는 게 맞다고 결정했죠.
고현정_결정 내린 직후 혹시 동료들 얼굴을 둘러보셨나요? 작가님, 스탭들 얼굴이 맑아지지 않던가요? 이후로 더 열심히 일하셨다거나…. (좌중 폭소)
나영석_아뇨. 저… 그런데 고현정씨는 남극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고현정_제가요? 오늘 대화에 집중을 안 하셨나봐요. 집 밖을 좀처럼 안 나가서 <1박2일>을 좋아한다니까요. (웃음)
나영석_저도 <1박2일> 끝나고 여행을 안 다녔는데 딱 한번 아이
고현정의 '쪽' - 고현정씨는 남극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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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처음에 <1박2일>이란 제목은 감독님께서 지으셨나요?
나영석_직전에 저희가 만들던 <준비됐어요>라는 프로가 시청률 5%였어요. 새 기획을 하면서도 잘될지 확신이 없으니까 일단 여행가는 프로로 정하고 시간도 없으니 제목도 대충 지었어요. 이틀 찍을 거니까 그냥 <1박2일>로 하자. (웃음) 그래서 처음엔 <강호동의 1박2일>이었어요. 잘 안되면 원래 의도인 양 강호동의 다른 무엇으로 바꾸려고요.
고현정_TV를 볼 때 저는 사람구경하는 맛도 있는데 <1박2일>이 전국을 돌며 우연히 마주치는 여러분을 보는 일도 즐거웠어요. 어쩌면 그렇게 호의적이신지 놀라웠고요. 멤버들끼리 서로를 속이려고 작전을 세울 때 일반인의 도움을 받잖아요? 그럴 때 능청스럽게 연기하시는 걸 보며 전 깜짝 놀라는 거죠. 그 장면만 보면 홍상수 감독님 영화 같아요. (웃음) 한적하니 배경도 비슷하고 약간 빈티나는 화면하며…. (좌중 폭소) 전 또 나름
고현정의 '쪽' - 장소는 <1박2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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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제 삶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미처 몰랐어요. 몇달 전 고현정의 한숨 섞인 너스레였다. 문제의 남자는 KBS의 주말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 1박2일>(이하 <1박2일>) 시즌1을 연출한 나영석 PD다. 2007년 8월 충북 영동에서 삼각깃발을 들어올린 <1박2일> 첫 번째 시즌은 올해 2월 말 전북 정읍에서 마침내 긴 캠핑을 끝냈다. 오래된 영화관에서 인상적으로 연출된 ‘고별 파티’에서 제일 많이 흐느낀 사람은 곰살맞은 구석이라곤 식은 맨밥에 반찬으로 쓰려 해도 없어 보이던 나 PD였다. 여행을 즐기지도, 자주 감행하지도 않는 고현정이 주야장천 여정에 오르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개근하다시피 정을 붙인 건 어찌된 영문일까. 이 부조화는, <1박2일>의 투어가이드 나영석 PD 역시, 숙련된 자발적 여행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로 어렴풋이 납득이 간다. <1박2일>은 번번이 시청자에게 권할 만한 행선지를
고현정의 ‘쪽’ - 계획이 어그러질 때 심장이 짜릿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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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영화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난 김미영 셰프는 영화가 아닌 요리를 택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도 했지만 ‘매체’가 영화에서 요리로 달라질 뿐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요리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만들어본 음식 중 하나가 ‘라타투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도 나오는 이 프랑스식 야채스튜는 한국 요리로 치면 김치찌개랑 비슷하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고 찌개 맛이 다르잖아요. 라타투이도 100명이 만들면 100가지 맛이 날 수 있는 요리예요. 엄마가 해주던 라타투이의 맛, 이라는 게 있는 거죠.” 말하자면 라타투이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지만 그 안에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 음식이다. “<라따뚜이>에서도 입맛이 아주 고급인 음식평론가 이고가 레미가 만든 라타투이를 먹고 환상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잖아요. 그 맛의 본질
김미영 셰프의 <라따뚜이> 라타투이 파스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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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레몬파이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슬픈 음식 중 하나다. 프랭키는 여자 복서 매기와 함께 홈메이드 레몬파이를 먹고 나서 말한다. “이제는 죽어서 천국에 가도 여한이 없겠어.” 그러나 매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낸 프랭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레몬파이를 먹는다. 아마도 눈물과 함께.
유쾌한 요리책 <이기적 식탁>의 이주희 작가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5년 전에 처음 봤다. 내가 아는 가장 근사한 주방을 가진 요리꾼답게 그녀는 영화를 보자마자 레몬머랭파이를 만들어봤단다. “요즘 세상에 파이를 집에서 만드는 사람이 어딨겠나. 한 조각에 5천원이면 사먹을 수 있잖아. (웃음) 하지만 5년 전 만들어본 레몬파이는 지금껏 영화를 보고 만든 요리 중 가장 맛있었다. 그 기억을 살려서 다시 한번 만들어볼까 싶었다.”
맞다. 홈메이드 레몬파이를 만들어 먹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의외로 레몬머랭파이는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주희 작가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레몬머랭파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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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의 한 장면에서 포복절도했다. 여주인공 엠마가 호감을 갖고 있는 젊은 요리사의 식당에서 새우요리를 입에 넣는 순간, 그녀의 주위에만 연극처럼 조명이 탁 켜진다. 혹시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미스터 초밥왕> 같은 일본 요리만화의 팬인 걸까. 초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풍요로운 바다의 감칠맛이 혼을 쓸어내린다”고 외치는 과장법과 <아이 엠 러브>의 과장법에는 어쩐지 닮은 데가 있지 않은가.
여하튼 <아이 엠 러브>는 21세기의 가장 맛있는 미식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작품인데, 특히 중요한 요리는 러시아식 생선수프인 ‘우하’(уха)다. 우하는 이탈리아 상류 가문에 시집 온 엠마가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러시아의 기억이자, 결국 파국을 불러오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거 답답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라면 대충 맛이라도 짐작해보련만 러시아 요리라니 어떤 맛일지 상상이 가질 않는 탓이다. 효자동에서 시끌벅적한 펍 ‘퍼
구정아 PD의 <아이 엠 러브> 우하수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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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스폰지이엔티의 조성규 대표가 최고의 영화 속 요리로 고른 <나를 둘러싼 것들>의 냄비카레를 보다 왠지 오즈 야스지로의 카레전골이 떠올랐다. <라블레의 아이들>이란 책을 보면 오즈가 같이 일하는 스탭들에게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는 카레전골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 카레전골의 맛이 “동료들간의 연대의식으로 유지”되는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나를 둘러싼 것들>의 냄비카레가 별미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어리바리한 신참 법정 화가를 위해 선배들이 환영회를 열어주겠다며 기자실에서 한 냄비 가득 카레를 끓여 맥주와 함께 먹는데, 달콤한 카레와 쌉쌀한 맥주가 입안에서 엉기며 감칠맛을 내는 동안 그들도 어색함을 내려놓고 한데 어울리게 된다. 그 ‘나누어 먹는’ 행위에 스민 따뜻한 유대감이 하루하루가 살벌한 법정에 온기를 가져다준다.
<카모메 식당>을 비롯해 ‘맛’나는 일본영화를 주로 수입해 온 조성규 대표가 지인과 동료들에게 즐겨 대접하는 메뉴
조성규 대표의 <나를 둘러싼 것들> 냄비카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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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비가 40%를 넘어가면 그 집은 망한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꼼마’의 주방을 지켜온 박찬일 셰프의 단언이다. 레스토랑을 경영한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되돌아보자면 좋은 재료를 못 알아봐주는가 하면, 미국에서 먹은 이탈리아 음식을,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길들여진 입맛과 편견의 세상에서 ‘정통’과 ‘진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영화 속 요리 좀 부탁드려요, 라는 주문과 동시에 그래서, 박찬일 셰프가 꺼낸 영화는 <빅 나이트>였다. 50년대 말, 뉴저지로 이민 온 이탈리아 형제 프리모(토니 샬롭)와 세콘도(스탠리 투치). 미트볼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전부라고 여기는 미국인에게 정통 이탈리아 요리가 통할 리 없다. 영화는 미국을 동경해 타협을 시도하는 동생과 정통 요리만을 고집하는 형과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다. “뭐든 진짜를 하는 건 힘든 일이다. 프리모의 입장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이더라.”
형제가 말다툼하고 치고받는 사이, 영화에는 눈이 번쩍 뜨
박찬일 셰프의 <빅 나이트> 프리타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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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요리가 등장할 때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오물오물한 오믈렛과 꼬리꼬리한 카레를 지켜보는 건 어떤 면에서 슬래셔영화의 학살장면을 보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다(당신이 식사도 거른 채 겨우 상영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뛰어들어온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뿐인가. 영화 속 요리의 맛을 상상해본 뒤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종종 부족한 레피시 정보와 귀차니즘 앞에서 좌절되고 만다. 러시아 수프나 아일랜드식 레몬파이를 어떻게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영화 좀 보고 요리 좀 한다는 다섯명을 불러모아 요청했다. 당신이 아끼는 영화 속 요리를 직접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박찬일 셰프-프리타타
구정아 PD-우하수프
조성규 대표-냄비카레
이주희 작가-레몬머랭파이
김미영 셰프-라타투이 파스타
음.식.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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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원에 한명의 게이 의사가 있고, 또 한명의 레즈비언 의사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민수(김동윤)와 효진(류현경)이다. 민수는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고, 효진은 애인과 함께 입양하고 싶은 아이가 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민수와 효진은 모두의 축복 속에 위장결혼을 한다. 그리고 민수는 우연히 만난 석(송용진)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효진 역시 그의 애인 서영(정애연)과 따로 살림을 차린다. 이것은 영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의 간단한 줄거리다. <두결한장>은 동성애자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여전히 동성애를 문제로 바라보는 편견을 다룬 유쾌하고 상큼한 퀴어영화다. 여전히 철이 안 든 김조광수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가 철이 안 들었냐고? 그건 다음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한번 만들고 관둘 줄 알았다. 아니다. 김조광수 감독의 첫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촬영현
소년, 진짜 진짜 사고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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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2012) <셜록 홈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2011) <쓰릴미>(2010) <김종욱 찾기!>(2009)
독도가 고향이고 해병대 출신에 이라크 파병 이력까지. 어느 뮤지컬 관련 사이트에선 이런 조강현을 두고 양파 같은 배우라 했다. 그 표현이 옳다. 조강현은, 안다고 섣불리 말하기 힘든 배우다. 하지만 그가 최근 2, 3년 사이 뮤지컬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뜨겁게 떠오른 샛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6월4일 열린 더뮤지컬어워즈에서 그는 <셜록 홈즈>의 앤더슨 역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기대를 크게 했다 낙담도 크게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엔 정말 마음을 비웠었다고. “지난번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 전날 돼지꿈을 꿨다. 그래서 부랴부랴 옷도 준비했다. 그런데 (박)은태 형 이름이 불렸다.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 (웃음)” 배우가 되고서 처음으로 받은 상 그리고
미확인 물체, 조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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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풍월주>(2012) <늑대의 유혹>(2011) <빨래>(2010∼11) <옥탑방 고양이>(2010) <싱글즈> <내 마음의 풍금>(2009) <김종욱 찾기!>(2007∼8, 2011) <햄릿>(2007) <그리스>(2006∼7) <아가씨와 건달들>(2005)
그의 나이 딱 계란 한판이다. 스물셋에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앙상블로 데뷔한 뮤지컬 배우 성두섭은 서른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선배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남자 느낌이 나고 배우 분위기가 나는 때가 30대다.’ 그래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했어요. 나도 곧 서른이 될 거니까.” 말하자면 그에게는 서른 이전과 서른 이후가 있었다. 그리고 서른 이전이든 이후든 변함없이 가지고 가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뮤지컬 팬들에게 20대의 성두섭은
부드러운 마초, 성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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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의 연인> <헤어 스프레이>(2012) <스트릿 라이프> <넥스트 투 노멀>(2011) <엣지>(2010) <스프링 어웨이크닝>(2009) <오즈의 마법사>(2008) <찰리 브라운>(2005)
엄마를 졸랐다. 학교 가는 길 빵집 옆에 붙은 벽보에서 <레 미제라블> 오리지널 공연팀이 한국 소녀 한명에게 코제트 역할을 맡긴다는 오디션 소식을 본 꼬마 오소연은 그렇게 엄마를 졸랐다. 서울 가자고. “학예회라는 학예회는 전부 주름잡았고, 요즘 나오는 꼬마 트로트 신동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잘 불렀다”는 천안의 명물 오소연을 데리고 엄마는 정말 서울에 왔다. 한국말로 불러도 되고 영어로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영어로 불러야 더 폼이 날 것 같아 밤새 영어 가사를 외웠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렇게 울다 잠들었는데, 웬걸, 아침에 가사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되려는
들장미 소녀, 오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