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추창민 감독의 첫 사극이다. 한명의 메인 캐릭터를 중심에 놓은 영화도 처음이다. 역사의 맥락과 왕이라는 지존의 캐릭터를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영화와 드라마가 앞다투어 왕을 그리는 이때, 그들과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고민했을 법하다. 무엇보다 <광해>를 통해 드러났을 그가 바라는 왕의 상에 대해 묻고 싶었다.
-평소 사극을 좋아했었나.
=즐겨본 건 아닌데, 사극이라는 장르에 매력은 느끼고 있었다. 다소 낯선 이야기라도 사극이라서 허용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광해>의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호기심을 가진 이유도 사극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사극에 등장했던 왕과 비교할 때,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한 차별성이란 어떤 거였나.
=기존의 사극에서는 왕이 왕이라는 이미지답지 않게 다소 좁고 작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왕이라면 그가 가진 공간이나 권력의
하선은 지금 대중이 원하는 왕의 모습일 수도
-
“지랄하고 자빠졌네.” 한마디의 욕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을 각인시켰다. 극본을 쓴 박상연 작가는 방영 뒤 인터뷰에서 “사극은 금기를 깨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사실 스포일러 아닌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 안에서 점점 금기를 깰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이제는 왕에게 욕까지 시키게 된 거다. 다음에는 영화가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더 센 게 나올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개월이 지났고,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의 왕은 그의 말처럼 더 센 욕을 입에 담았다. “이런 X같은….” <뿌리 깊은 나무>의 ‘지랄’과 <광해>의 ‘X’는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백성의 단어다. 차이가 있다면 세종에게 ‘지랄’은 백성의 마음을 읽는 키워드이고, <광해>의 X는 왕이 분노를 못 이겨 터트린 비명이라는 점이다. 보는 이에게 전하는 느낌도 조금은 다르다. 전자의 욕이 쾌감을 전했다면, 후자
시대는 캐릭터를 춤추게 한다
-
왕이 많아도 너무 많다. 왕이 하는 일도 많다. 백성을 긍휼하고, 대신들의 간언에 시달리는 것에 더해 사랑도 한다. 지난해 방영된 <뿌리 깊은 나무>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만난 왕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르면 뜻밖의 기회로 왕을 대신하게 된 남자까지 만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왕은 언제나 많았고, 조선이든 고구려든 신라든 국적도 다양했지만 대선을 앞둔 올해 들어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아졌다는 건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게다가 그들은 연산군처럼 광기에 젖은 인물도 아니고, 숙종이나 정종처럼 여인들이 벌이는 암투의 한복판에 놓인 왕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왕을 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계기삼아 지난 1년 동안 관객이 만났던 왕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을 통해 관객의 열망을 흡수하는 대중문화의 태도를 엿보려
2012년, 우린 어떤 해를 품고 있는가
-
<씨네21>은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매체에 속한다. 그와 나눈 인터뷰도 여러 차례다. 따라서 영화에 관한 김기덕 감독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짐작게 해주는 인터뷰 요약 발췌 모음을 준비했다. 여전히 중요해 보이는, 혹은 지금 보니 의미가 새로워 보이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맥락과 분량을 위해 일부 편집을 거쳤으나 문답이 오고간 상황은 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두 영화에 대해 나는 제작자라기보다는 후원자에 더 가깝다. 난 항상 감독이고 싶지, 제작자이고 싶진 않다. 평가를 하자면 <아름답다>는 참 괜찮은 소재인데, 완성된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되고 감독에겐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는 꽤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이는데, 사실 시나리오는 훨씬 경쾌했다. 그걸 장훈 감독이 조금 무겁게 누른 것이다. 다들 거꾸로 알고 있지만. <영화는 영화다> 제작비는
“말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
-
김기덕 감독이 <씨네21>의 카메라 앞에서 사라진 지 어느덧 만 4년이 되어간다. 정확하게 2008년 9월24일 오후 3시경,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위 요리학교의 카운터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김 감독이 웃으면서 “<씨네21>에서 갖고 있는 내 사진들로 전시회를 해도 되겠네요. 그죠?”라고 얘기했고, 나는 “우리 언제 한번 정말 전시회 할까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번듯한 곳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그의 사진들로 멋지게 꾸미는 전시회는 아니지만, 여기 그와의 추억이 깃든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전쟁터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는 영화 촬영장 한켠에서 점심을 햄버거로 때우며 콘티북을 들여다보던 그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약간 미안해하며 내게 햄버거는 먹었냐고 다정히 물어봐주던 그의 살가운 인사말도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김기덕 감독이 우리를 그의 치열한 영화 현장으로 다정하게 초대해주기를 소망한다.
촬영현장의 김기덕 감독을 다시 만나다
-
데뷔작 <악어> 때부터 김기덕 감독을 주목한 이는 드물었다.
<씨네21> 전 편집장이었던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실장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 <악어> 이후 김기덕 감독을 꾸준히 응원하고 지지해왔던 그의 감회 또한 남다를 터. 그에게서 김기덕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최근의 만남까지,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H.O.T 팬과 윤제에겐 <응답하라 1997>이지만 한국영화 역사가에겐 <응답하라 1996>이 맞는 숫자일 것이다. 1996년은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한 장을 장식할 만한 해다. 그해 5월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고 11월 김기덕의 <악어>가 선을 보였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그해, 우리는 동시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작가와 처음 만났다. 당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평단의 기립박수를 받은 반면 <악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야생의 영화
-
한동안 베니스를 떠나 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돌아와 올해부터 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바로 당시 무명이었던 김기덕 감독의 <섬>(2000)을 베니스로 초청했던 장본인이다. 올해 <피에타>의 베니스 입성은 그렇게 시작부터 뭔가 분위기가 좋았다. 이내 <피에타>는 영화제 상영 직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9월3일 언론을 상대로 한 시사회장에서 기립박수 10분이 터져나왔다는 뉴스도 날아들었다. 실제로 베니스영화제 언론 시사회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도 “다른 일정 때문에 영화제 중간에 떠나게 되어 시상식까지 보진 못했지만 <피에타>에 대한 반응은 영화 상영 직후부터 아주 뜨거웠다”고 전해준다. 이탈리아 현지 평론가들이 참여하여 별점을 매기는 영화제 공식 데일리 <베네치아 뉴스>에서도 <피에타>는 별점 다섯개 만점에 네개 반을 얻으며 선전했다. 마침내 폐막
넌더리나게 폭력적인, 하지만 예기치 않게 감동적인
-
김기덕 감독은 원래 곧장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 아니었다.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이 결정됐고 이를 축하하는 국내 기자회견이 마련되면서 급히 발길을 돌리게 됐다. 참석자는 김기덕, 조민수, 이정진. 물론 많은 취재진이 모였다. 9월11일 베니스 수상 기념 기자 회견장, 주인공들은 수상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사회자_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김기덕_좋은 일이다. 내가 받은 상이지만 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한국의 좋은 영화들이 꾸준히 국제무대에 소개되고 그 결과가 누적되어서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이다. 결국은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민수_바로 이 자리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찾아준 것 같아 감사하다. 현지에서 내가 느꼈던 걸 여기서 다 전달 못해 아쉽다. 감독님, 그리고 한국영화, 대단했다.
이정진_사실은 낯선 광경이다, 이런 환영이.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 대표로 받은 것 같아 기쁘고 이 자
“이제 0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한국영화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베니스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씨네21>은 수상을 계기로 <피에타>와 김기덕 감독에 관련한 이모저모를 엮었다. 급히 귀국하여 가진 감독, 배우들의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정리했다. 베니스 현지의 뜨거웠던 반응도 전한다. 그간에 김기덕 감독이 <씨네21>과 나눴던 역대 인터뷰 중 특기할 만한 내용들도 발췌 요약하여 정리했다.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데뷔작 <악어>부터 이미 작가 김기덕을 알아보고 강력하게 지지해온 남동철 <씨네21> 전 편집장은 ‘내가 본 김기덕’에 관한 애정 어린 글을 보내왔다. 그동안 우리가 찍은 김기덕 감독의 생생한 사진들도 화보로 넣었다.
김기덕을 말하다
-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인가.
=정말 ‘짱’ 좋아한다. 특히 디즈니가 과거에 만든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라이온킹>이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같은 고전을 어릴 때부터 많이 봤다. <뮬란>은 태어나서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이기도 하다. 영어 공부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외동딸인 나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사주셨다. 자막이 없는 비디오였는데,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쓰면서 조금씩 알게 된 거다. 등장인물이 ‘love’란 단어를 말하고 키스를 하면 아, ‘love’가 사랑이라는 뜻인가보다, 이런 식으로 보곤 했다.
-메리다의 목소리 연기를 하게 돼 기쁨이 컸겠다.
=매우 행복했다. 메리다라는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더빙을 하는 동안 메리다가 망토를 벗는 장면에서 확 빠져버렸다. “내 신랑감은 내가 찾겠다”고 하는 장면인데, 메리다의 캐릭터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꽉 끼는
디즈니 애니로 영어 공부했을 정도로 광팬
-
-<업>에서도 인간이 주인공이었지만,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그보다 더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마크 앤드루스(오른쪽)_캐릭터를 구현하는 과정이 이전과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곤충이든 자동차든 로봇이든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건 외모에서 성격이 한눈에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메리다의 경우 그녀의 자신감을 드러내려 했고, 엄마인 엘리노는 점잖고 완벽한 인상을 주려 했다.
캐서린 사라피안(왼쪽)_괴물이나 장난감에 비해 자유로움에서 한계는 있다. 그들의 생활은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지만, 사람의 움직임은 실제와 가깝게 보여야만 한다. 메리다가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쉬는 모습도 우리에겐 도전과제였다. 기존 작업에 비해 하나의 층이 더 있다고 보면 된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만드는 동안 자주 언급된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있는가. 아마도 이 작품을 본 많은 이들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모노
픽사의 작품은 패턴이나 공식을 규정할 수 없다
-
어둠이 깔리자 별들로 반짝이던 하늘에는 별똥별이 날아다녔다. 지난 8월27일,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보러 찾아간 픽사 스튜디오 내 상영관의 천장 풍경이다. 픽사의 관계자는 “종종 이곳에 초청되는 픽사 직원들의 아이들은 이 순간 다 함께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고 말했다. 퀵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 어느 때나 마음껏 놀 수 있는 각종 게임기구들, 역시 언제나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케이터링 등으로 알려진 픽사의 정체가 달리 보였다. 이들은 자유롭고 편한 걸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재밌는 걸 원하는 게 분명했다. 스튜디오의 구석구석에서 재미있으려고 만들어놓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남자화장실 표지를 알리는 ‘우디’의 실루엣, 그리고 누군가 그 옆에 연필로 그려넣은 <라따뚜이>의 생쥐 ‘레미’. 공교롭게도 픽사를 찾았던 그 주에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 참여한 직원들이 회사에서 조그만 선물을 받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봉투에
픽사가 달라졌어요?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수, 엄마와 아들, 신체훼손과 강제추심, 근친(으로 추정되는) 섹스, 죄책감 없는 잔혹함. <피에타>의 모티브들을 단순 나열해보니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의 모티브들과 동어반복적이다. 김기덕의 18번째 영화 <피에타>는 이 모든 한국영화의 컨벤션들을 모두 껴안고 있다. 게다가 청계천이라는,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적 맥락을 지닐 수밖에 없는 민감한 공간을 제시했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떠오른 것인데 그간의 김기덕 영화에 대해 논평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무성의함이 있는 듯하다. 첫째, 위처럼 영화가 소재로 삼은 모티브들로 영화의 주제를 단순 환원하여 설명하는 방식. 이는 기존의 김기덕 영화가 매춘과 원조교제, 현대사회의 소외와 불통에 대한 폭력적 외화라고 진부하게 평가하는 것만큼 의미없다. 둘째, 감독 당신은 이러한 의도로 보이고 싶겠지만 사실 그 저변에는 무의식적으로 비윤리적이고도 남근적인 마초 성향이 내재해 있다
그 남자의 죄가 아니다
-
※이 글은 눈치빠른 분이라면 충분히 해독 가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거대한 쇠사슬을 감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목을 한번 감고 배로 연결한 쇠사슬이 탯줄과 연결된 태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태아에게 생명을 주었던 탯줄의 본래 목적- 때때로 탯줄은 사내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태아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과 달리 쇠사슬은 남자의 생명을 앗아간다. 그는 왜 죽었을까? 그것을 푸는 과정이 이 영화의 시작이며 끝이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그 질문은 죽어간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로 확장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에 얼마만큼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떤 죗값을 치러야 하는가?
채무자의 신체를 훼손해서 타낸 보험금으로 그들이 빌린 돈의 열배에 해당하는 사채를 변제하도록 하는 이강도(이정진)에게 불현듯 장미선(조민수)이 찾아온다. 그녀는 “미안해. 널 버려서. 용서해줘. 이제
괴물을 만든 세상에 들이대는 날카로운 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