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은 우울하다. 난니 모레티의 신작 <하베무스 파팜>은 우울한 교황, 혹은 교황의 우울함을 다루는 도발적인 영화다. 바티칸이 있는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교황을 풍자하는 영화라니, 이야기는 더욱 도발적이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라틴어)은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선포하는 선언문을 말한다. 교황이 죽자 세계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콘클라베, 즉 새로운 교황을 선출한다. 새롭게 당선된 교황(미셸 피콜리)은 막상 자신이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의 종교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시티라는 독립된 국가를 다스리는 세속 지도자라는 위치를 자각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시름시름 앓는다. 교황의 근심은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바티칸은 교황을 치료할 정신과 의사(난니 모레티)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이제 정신과 의사는 교황을 도와서 교황의 우울장애를 치료해야 한다.
바티칸 시티와 시스틴 예배당 촬영 거부
우울한 교황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
특명! 교황의 우울증을 치료하라
-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등 잇단 누벨바그 감독들의 비보와는 반대로, 알랭 레네는 17번째 장편영화 <잡초>(2009)로 노장의 힘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흔살에 가까운 그는 <잡초>를 소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10년부터 다시 신작 <당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 착수했고, 온갖 언론과 평단의 환호성을 들었다. 2011년 초 현재, 레네는 언론에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면서 아주 비밀스럽게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며 프랑스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개봉일은 미정이다.
유리디스와 오르페의 사랑과 질투
프랑스 언론에 공개된 제한된 정보에 따르자면, 캐스팅상의 큰 이변은 없어 보인다. 그의 단골 배우 사빈 아제마, 피에르 아르디티가 여전히 출연하고, <잡초>로 레네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된 마티외 아말릭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알랭 레네는 홀로 시나리오 쓰기를 워낙 싫어해 그간 마그리트 뒤라스, 알랑 로브 그리에 등 유명 작가와 호
누벨바그는 살아있다, 여전히
-
거장의 이름이 즐비하면 안이한 명단이라 불평하고 신인이 많으면 차림표가 빈약하다고 투덜대는 것이 국제영화제 구경꾼들의 간사한 입맛. 2010년 칸영화제 선정작이 발표되기 무섭게 평론가들은 2011년이야말로 풍년이 되리라는 조기예보를 성급히 제출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장편 <내가 사는 피부>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위험한 메소드>,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 다르덴 형제의 제목 미정 프로젝트와 나란히 2011년 칸영화제를 흥청이게 만들 후보로 꼽혔다.
프랑스 작가 티에리 종케의 소설 <땅거미>가 원작
구구절절한 비련을 히치콕식 스릴러로 푼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에 이어 알모도바르가 예고한 ‘장르’는 공포(terror). “비명이나 경기(驚起)가 없는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는 부연 설명에 마음을 놓을까 싶다가도 “과거 나의 어떤 영화보다 심한(h
서늘한 공포의 메스를 든 성형외과 의사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서 기적은 항상 상실 이후 찾아왔다. <아무도 모른다>의 버려진 아이들이 만들어낸 애절한 드라마, <걸어도 걸어도>의 상처를 머금은 가족의 일상은 아픔 이후를 지그시 응시한 고레에다의 카메라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기적>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 가족의 이별 이후를 그린다.
부모의 이혼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된 두 형제는 신칸센의 규슈지역 개통 소식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재회 계획을 꾸린다. 개통 첫날 하타카에서 남하하는 열차 ‘츠바메’와 가코시마에서 북상하는 열차 ‘사쿠라’가 순간 교차한다는 뉴스에 머리를 굴린 것이다. 두 아이의 계획에 주변 사람들이 말려들고 한번 이별을 맛본 가족이 서로의 삶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열차가 통과할 때, 열차가 교차할 때의 두근거림을 영화 속에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철도 마니아로도 알려진 그는 “한 열차의 탄생과 사라짐 속에 담긴 일본 사람들의 추
철도마니아가 신칸센 규슈선에 바칩니다
-
-
2007년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만든 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한때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웠던 단편 <욧짱>을 찾아 나섰다. <욧짱>의 무대인 오사카로 가 당시의 종적을 되짚으며 단편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 마음에 품었던 영화와 내가 다소 멀어진 건 아닌가 고민했다”. <마을의 부는 산들바람>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은 해였다.
그리고 4년 뒤.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1960년대 전공투 시대의 언론인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마이 백 페이지>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평론가 가와모토 사브로의 논픽션 <마이 백 페이지 어느 60년대 이야기>가 원작으로 시대가 격변하던 시기 변화를 꿈꾸던 두 청춘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쓰마부키 사토시가 이상에 불타는 신입기자 사와다를 연기하며, 마쓰야마 겐이치가 사와다와 교류하며 그를 자극하
60년대 전공투 시대의 열기를 다시 한번
-
이와이 순지는 종합예술가다. 그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고 동시에 소설을 쓰며 작곡도 한다.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크린과 동시에 사진집 혹은 에세이 형태로도 공개됐다. 국내에선 영화감독이란 크레딧이 유독 크게 알려져 있지만 이와이 순지는 좀더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사실 그의 대표작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인터넷 소설이 출발점이었고, 아오이 유우의 출연작으로 인기를 끈 <하나와 앨리스>는 한 기업의 광고가 시작이었다. 이와의 순지는 영화란 매체를 통해 세계를 사고하는 감독이라기보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상을 글과 음악 그리고 영상을 통해 완성하는 예술가에 가깝다. <하나와 앨리스>를 끝내고 이와이 순지가 임한 작업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휴대폰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었다. 그는 아미노 산이란 펜 네임도 갖고 있다.
아이돌 뮤직비디오, 각본 집필, 드라마 제작에 몰두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종합예술가
-
지금 막 개점한 2011년 중화권 영화계의 키워드는 바로 ‘거장의 귀환’과 ‘무협’이다. 앞서 소개한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를 비롯해 서극, 허우샤오시엔, 진가신, 지아장커 감독이 무협 블록버스터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않아 2011년 개봉이 불확실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 거대한 이름들이 동시에 대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중국영화계의 엄청난 활력이 느껴진다.
서극 감독은 <신용문객잔>의 3D 리메이크작인 <용문비갑>을 준비하고 있다. 1992년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등 당대의 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한 <신용문객잔>을 제작했던 서극은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모양이다. 캐릭터와 줄거리 모두 대폭 수정할 거라 알려졌으나, 중심인물과 플롯은 원작과 같다. 명나라 장수 주유안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환관 인내시의 군대와 용문 여관에서 대적한다. 주유안은 환관 세력에 맞서기 위해 여관의 매혹적인 안주인
허우샤오시엔이 만든 무협영화?
-
모험일까, 확신일까. 2009년 왕가위 감독이 중국의 전설적인 무예가 엽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대종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 모두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선점자가 있었다. 2008년 겨울 대륙의 박스오피스를 휩쓴 엽위신 감독의 <엽문>이다. 영춘권의 대가이자 무술의 대중화에 힘쓴 엽문의 일대기를 충실히 훑은 이 영화는 현재 중국 무협영화계의 ‘넘버 원’ 액션배우 견자단을 앞세워 절정의 액션장면으로 관객을 홀렸다. 그런 <엽문>이 무술감독 홍금보가 참여한 속편을 제작하고, 뒤이어 2010년 허먼여우 감독이 엽문의 청년 시절을 다룬 <엽문전전>을 만들면서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는 중국영화계의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엽문 영화에 대한 구상을 최초로 얘기한 사람은 2002년의 왕가위였으나, 이러한 일련의 유행으로 인해 그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란 부담감과 함께 경쟁자들이 보여주지 못한, 미
강호에 돌아온 고수 중의 고수
-
스티븐 소더버그는 2010년 단 한편의 영화도 내놓지 않았다. 원래 감독들이 1∼2년 쉬었다 갈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소더버그는 아니다. 그는 재기작인 <조지 클루니의 표적>(1998) 이후 한해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어쩌면 이 남자는 힘이 좀 빠진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걸작 <체>(2008)는 미국 개봉도 제대로 못한 채 잠들어버리고, <인포먼트>(2009)는 평단의 반응도 좀 미지근했다. <컨테이전>은 오랜만에 거대 예산과 스타 군단을 데리고 돌아오는 소더버그의 ‘큰 영화’다.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컨테이전>은 전염성 바이러스에 관한 의학스릴러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공기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각국의 의료단이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동안 바이러스는 번져간다. 시나리오작가 스콧 Z. 번즈(<본 얼티메이텀>)는 <컨테이전>이 “소더버그의 <트래픽>을 재난 장르에 이식한 듯
할리우드식 스타군단의 마지막 앙상블?
-
테렌스 맬릭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둘째 치고 그는 정말 게으르다. 1973년 <황무지> 이후 맬릭은 오직 네편을 찍었다. 마지막 영화는 2005년의 <뉴 월드>였다. 통계적으로 따지자면 다음 영화는 2015년 즈음에 나오는 게 맞을 터이나, 다행히도 맬릭의 신작 <생명의 나무>는 5년 만에 완성됐다. 그것도 숀 펜과 브래드 피트라는 두 할리우드의 아이콘을 데리고 말이다. 스타 시스템에 실려가는 맬릭의 첫 번째 주류영화냐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간략한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1950년대, 텍사스 소년이 순결한 유년기에서 어른으로 각성해가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간다.” 이 평범한 시놉시스에 사람들이 당황해할 때쯤 (그러니까 지난 12월)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11살 소년 잭에게 엄마(제시카 채스테인)가 말한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단다. 자연의 길과 은총의 길. 너는 어떤 걸 따를지 선택해야만 할 거다.” 폭군 아빠(브래드 피트)는 말한다.
우주의 본질을 캐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
스웨덴의 재벌 총수 헨리크 반예르(크리스토퍼 플러머)는 40여년 전 손녀 하리에트가 실종된 이후 한시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좌파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대니얼 크레이그)를 고용하여 자신의 자서전을 쓰도록 지시한다. 미카엘이 벼르고 있던 부패한 사업가 베네르스트룀의 범죄 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넘겨주겠다는 조건이다. 내키지 않게 제안을 받아들인 미카엘은 가족 중심 기업(그야말로 ‘재벌’) 반예르 그룹의 어두운 핵심으로 파고든다. 하리에트 실종 사건은 1966년에 벌어졌지만 실상 비밀은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더 복잡하고 끔찍한 진실의 파편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해커 리스베트(루니 마라)가 미카엘을 돕기 시작한다.
아이폰 시대에 맞는 시대 분위기
데이비드 핀처가 스티그 라르손의 슈퍼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국내 출간제목은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g
스웨덴산 슈퍼 베스트셀러와 할리우드 명장의 만남
-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한때나마 칼 구스타브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둘은 1906년에 서신을 교환하기 시작해 1907년에 서로 만나고 19010년에 각자의 길을 갔다고 전해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 깊이 교류했을 뿐인데 그 이유는 각자의 학문적 진리가 서로 다른 데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대개 말해지는 프로이트와 융의 사연이다. 그런데 먼 훗날 스위스의 한 지하실에서 젊은 시절의 융이 한 여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발견되었다. 그 상대는 융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법 ‘토킹 큐어’(대화치료)를 이용하여 고친 첫 번째 환자 사비나 슈필레인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억압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융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난 뒤 그녀 역시 정신분석학자가 됐다. 하지만 융과 사비나의 연애 관계에 관해 프로이트는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어긴 것이라며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융과 프로이트 그리고 사비나의 삼각관
프로이트와 융을 상담의자에 앉히다
-
마틴 스코시즈가 동화책에 손을 댔다! 어느 모로 보나 도무지 감이 잡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스파이크 존즈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웨스 앤더슨이 <판타스틱 Mr. 폭스>를 호기있게 책장에서 집어들었을 때. 그 정도에서 가늠할 만한 꿍꿍이가 아니다. 더럽고 추악한 부패의 거리야말로 언제나 스코시즈를 인증하게 해주는 영화 속 공간이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현실을 뒤로하고 꿈과 희망의 세계를 선언한 거다. 영화가 어드벤처라고? 이 정도 도전이면 노장 스코시즈 본인의 일대 어드벤처라고 봐도 무방하다. 뜬금없어 보이는 건 그러나 속단일지도 모르겠다. 스코시즈가 <위고 카브레의 발명품>에 손을 댄 건 벌써 2007년의 일. 그러니 그에게 ‘위코 카브레’의 동화 속 세계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셔터 아이랜드>의 무시무시한 섬을 기술할 때도,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부패한 애틀랜틱시티를 그릴 때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거장, 3D에 손을 뻗치다
-
샤를 드골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상에서 나의 유일한 라이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땡땡이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를 태양왕처럼 군림했던 그의 말은 거짓말이다. 역사상 유럽의 어떤 왕과 대통령, 총리도 땡땡처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대중에게 미친 적은 없다. <땡땡의 모험>은 벨기에 작가 에르제가 1929년 탄생시킨 만화로, 소년 기자인 땡땡과 애완견 밀루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펼치는 모험을 그린다. 이 벨기에의 국보적 만화 시리즈는 전세계 60개국에서 3억부가 팔려나갔고, 한국에서도 80년대의 전설적인 만화 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다. 그런데 20세기의 아이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왜 지금까지 영화화되지 않았냐고? 대답은 하나다. 땡땡이 스티븐 스필버그를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아니, 스필버그가 땡땡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오로지 스필버그만을 원한 원작자 에르주
사실 스필버그가 <땡땡의 모험>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
드디어 만나는 20세기의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