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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64살이 되면’(‘When I’m sixty four’) 오노 요코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그 유명한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존 레넌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일랜드 해안가에 사는 멋진 노부부이거나 뭐 그 비슷한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의 광기를 스크랩해놓은 책을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는 64살을 맞이하지 못했다. 존 레넌은 1980년 12월8일 뉴욕의 아파트 앞에서 자신의 팬인 마크 채프먼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지 30년, 탄생으론 70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그의 ‘광기’를 스크랩하려는 움직임들을 보게 된다. 어쨌든, 그의 예언은 실현된 것이다.
20세기를 정리하던 세기말 시점에, 록 잡지 <스핀>은 예수와 비틀스를 비교하는 17개의 항목을 제시한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존 레넌이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라고 발언해 전세계적
한 이상주의자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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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오노 요코
비틀스는 생명체다. 이방인들은 비틀스라는 이 외계를 받아들이고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하나씩 갖고 살아간다. 그들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이런 우연성을 제공해주고 자신들의 고유한 점유율을 나누어 주었는가? 그들은 이방인인가? 그들은 자연인인가? 비틀스는 우리에게 맹목적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무력감을 가능하게 한다. 비틀스는 오노 요코의 어느 날 작품 스케치의 한 구절처럼 ‘하늘을 관찰하기 위한 하나의 그림’이었다가, 어느 서정적인 날 ‘불조심 강조의 달’에 어울릴 법한 맹랑한 포스터였다가, 갈레아노의 <거울 너머의 역사>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의 요염함을 가졌다. 비틀스는 자신들의 여정을 기억하도록 음악 속에 ‘숨겨진 차원’을 마련해 두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음들을 떠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때가 시절을
당신의 악몽이 들릴까봐 늘 두려운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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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 탄생 70주년, 사망 30주기 되는 올해, 존 레넌과 비틀스를 기념하기 위한 음반·도서 발매와 추모 공연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비틀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그룹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컬렉션 음반과 책이 나올 때마다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달을 허리띠 졸라매고 살지언정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새 책과 도서들이 올해 우수수 쏟아져나왔다.
우선 존 레넌 <<Signature>> 박스 세트가 지난 10월 발매됐다. 음악의 질적 수준은 높이고, 음악의 정수는 그대로 살렸다. <<Signature>> 박스 세트는 존 레넌이 생전에 내놓은 8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미수록곡, 미발표 음원을 수록한 보너스 디스크를 포함한 총 11장의 CD로 구성됐다. 팬들을 만족시키는 건 의외로 리미티드 존 레넌 아트 프린트와 오노 요코, 숀 레넌, 줄리안 레넌이 쓴 에세이가 실린 65페이지의 두툼한 소책자다. 4가지 테마
헬로, 굿바이… 그들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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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리버풀에서 막 로큰롤과 맞닥뜨리던 질풍노도의 시기, 함부르크로 떠나 클럽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시기, 꿈에 그리던 미국시장을 정복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만남 등 멤버들의 개별적인 활동이 도드라지던 시기, 그리고 인도에서의 명상수업과 겹치며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다.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이하 <노웨어 보이>)는 바로 그 첫 번째 시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존 레넌이 있다. <노웨어 보이>는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밴드를 꾸리게 되는 초기 비틀스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전기영화이면서 오노 요코와의 만남만큼이나 존 레넌 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존 레넌 개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잃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게 되고, 폴 매카트니를 만나면서 그렇게 존 레넌은 세상과 음악에 눈을 뜨게 됐다.
십대의 존 레넌을 보
비틀스, 전설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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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은 올해로 탄생 70돌, 사망 30년을 맞았다.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존 레넌의 청년기, 그리고 ‘쿼리멘 밴드’로 시작해 이제 막 비틀스가 형성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존 레넌 탄생 70주년 기념 박스 세트와 비틀스의 <<레드/블루>> 앨범이 새로이 발매되고 팬들이 기다려온 <비틀스 앤솔로지>가 드디어 출간되는 등 비틀스를 추억하는 연말 분위기가 훈훈하다. 시인 김경주가 비틀스에 대해 가슴 깊숙이 개인적 기억을 더듬고,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가 존 레넌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 회고한다. 끝으로 비틀스가 출연하고 다뤄지고 또 인용되고 패러디된 수많은 영화들에서 딱 20개의 인상적인 순간을 펼쳤다. 그렇게 비틀스가 다시 우리 앞으로 한 걸음 더 걸어왔다.
All you need is th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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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질문
1. 지난 조희문 위원장 체제 영진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2.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이 현재 국회 예산 심의 중이다. 이것이 그대로 진행되었을 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3. 영진위 정상화 방안에 대해, 새로운 영진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
1. 영진위 위원장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잘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조희문을 비롯한 이 정부의 인사들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가 아닌 ‘(영진위 위원장) 자리에 가는 것’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위원장이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을 대할 때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2. 영화산업이 잘 기능하기 위해 영화를 진흥하는 게 영진위가 해야 할 일이다. 영화라는 매체는 예술적인 측면을 버릴 수 없다. 영화가 예술적인 긴장감을 가질 때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현재 한국시장은 예술영화가 버티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
이념 논쟁은 집어치우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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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제작지원금이 전액 삭감된다고 한다. 1998년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13년 만이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은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영화진흥공사 시절 처음 생겼다. 좌파들이 좌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 처음 300만원씩 20편의 필름 단편영화에 균등 지원하던 방식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영화와 장편영화, 다큐멘터리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왔고, 매년 40여편의 작품들이 작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지원받았다. 한국영화로는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수상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수혜를 받았다. 어린 시절 단편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은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역시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더 늦게 나왔을 것이다. 직접지원이 문제라고? 이 제도는 영화를 만든
미래의 영광을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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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안의 가장 큰 이슈는 지원방식의 변화이다.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있었던 사전공모형식 직접지원사업 부분(기획개발지원/마스터영화지원/예술영화지원/독립영화지원)을 스탭인건비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간접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기획개발비든, 독립영화, 예술영화, 저예산상업영화든 구분없이 투자는 알아서 받으라는 것이다. 개발비든 제작비든 알아서 재원을 마련해서 제작만 들어가면 일정 정도 스탭들의 인건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직접지원에서 불거지는 심사문제나 작품 미완성 문제, 지원금 유용 문제를 다 해결하고 스탭인건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생각인 듯하다. 문화부의 현실적인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정말 이것밖에 해결방안이 없었나라는 의구심과 함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케이블과 공중파로 떠나는 작가, 감독, 제작
소통만 있다면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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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영진위의 현재 분위기가 “영화계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이상 영화계와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가질 시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나 영진위에서 작성하여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살펴보면, 2011년 역시 그리 녹록한 미래일 수 없을 것 같다. 예산안이 미칠 현실적인 파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우려, 조희문 전 위원장을 떠나보낸 영진위의 심기일전을 요구하는 기대를 한자리에 모았다.
잃어버린 3년.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영화계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영화 정책의 큰 틀을 잡아나가고 집행하는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강한섭, 조희문 두 위원장을 거치며 방향성과 영화계의 신뢰 모두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이 차례로 불명예스럽게 위원장직을 그만두었다. 모두가 한숨 돌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
심기일전心機一轉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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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류승범의 20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단어다. 20대의 류승범은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게 명확한” 사람이었다. 그 고집은 <품행제로> 촬영 당시 조근식 감독과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류승범은 스탭이 “저렇게 덤비는데 가만 놔둬도 되냐”고 말릴 정도로 치열하게 감독에게 캐릭터를 되물으며 중필이란 인물에 접근했다. 고집은 몰입을 낳았고, 몰입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당시 <품행제로>의 각본을 맡았던 이해영 감독은 현장에서 처음 ‘중필이’를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시나리오에는 원래 중필이에 대한 두 가지 결이 있었다. 봉태규와 함께 있을 때 나오는 껄렁함과 공효진, 임은경과 연기할 때 나오는 쭈뼛쭈뼛함. 그 두 가지 결을 배우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군산 촬영현장에서 승범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가 배우 때문에 생명력을 얻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건 계산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6가지 키워드로 류승범 파헤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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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은 최근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림 앞에 서면 갑자기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거기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인사동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작품을 봤다. 대리석에 사진과 미술을 합쳐놓은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때 갑자기 세상이 빡, 하고 끊기는 느낌이 오더라. 지구상에서 이 시간에, 이 그림을 나 혼자 보고 있다는 느낌. 그 순간이 굉장히 가치있게 다가왔다.”
그런데 류승범이 지금 이 시점에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배우는 최근 연기의 본질을 고민하며 점점 자신의 핵심을 향해 파고드는 중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만끽하는 시간도 있었고, 그 시절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서른이 넘은 지금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생각의 변화들이 조금씩 움트고 있
사랑합니다, 승범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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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를 보다가 문득 놀랐다. 류승범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까지 류승범은 어떤 영화,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나 여기 있다는 존재감을 온몸으로 표출하던 배우였다. 그런데 <부당거래>에서 기자가 본 건 류승범이 아니라 먹고, 때로는 먹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먹이사슬을 대변하는 여러 유형의 등장인물(그는 건설사 회장과 은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검사 주양을 연기한다) 중 한명이었다. 뒤이어 개봉하는 <페스티발>에서도 류승범은 한 동네를 기점으로 서식하는 귀여운 변태남녀 중 한명(인형 오타쿠)으로 등장한다.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나 <만남의 광장>을 생각하면 장면 도둑, 웃음 도둑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극의 이음새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드는 느낌이다. 이해영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류승범은 이제 영화의 한 부분을 장악하기보다 “캐릭터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터득한
사랑합니다, 승범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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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나서 가장 긴 자취를 남기는 것은 하나의 장소다. 함께 걸었던 거리, 영화를 보았던 극장, 커피를 마셨던 카페…. 이별 뒤에도 그곳을 지날 때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떨쳐버리고자 애를 써야 했던 순간들이 있다. <500일의 썸머>는 바로 그 사랑의 장소들에 관한 영화다. 무엇보다 LA라는 도시의 풍경과 정취, 우리가 잘 몰랐던 LA의 근대 건축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무대인 LA 다운타운은 사실 오랫동안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2003년 대대적인 재개발 붐이 일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촬영된 최근의 영화들은 주로 웨스틴 보나벤처 호텔이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아이콘이 된 빌딩들을 스크린에 옮기곤 했다. <500일의 썸머>는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모던의 정서와 낭만을 기록한다. 톰과 썸머가 만난 지 95일째 되는 날, 본격적으로 LA 근대 건축의 면모가 소개
기억의 자극제와 그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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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구도심, 인천역과 청관거리 일부가 이 영화의 중심공간이다. 구도심이라? 화려했던 과거가 연상되지 않는 쇠락한 거리 풍경, 그것은 이 영화의 제작연도인 2001년이나 10년이 지난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에 노출되는 시간의 코드로만 보면 동시대 인천의 공간은 송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자유구역의 초반 개발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작은 것들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던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시선이 인천의 구도심을 향하고 있는 것은 ‘큰 계획’에 대한 조용한 저항의지로 읽혔다. 개봉 초반, 이 영화가 관객 일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은 설정 인물의 성장소설적 구성이 강하게 다가온다는 인상이 짙었던 까닭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작은’ 영화는 초반 부진을 털고 세간의 화제작으로 반짝 떠오른다. 이 영화 얘기가 인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 급기야 공직자들이 대거 착석한 가운데 인천에서 재개봉되는 해프닝을 겪는다.
소녀들의 우울한 잿빛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