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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다가왔다. 31번째 5·18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했던, 30주년 행사의 참담한 풍경이 맨 먼저 떠오른다. 폭도가 투사가 되면서 도청을 뺏겼고, 투사가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뺏겼다. 5월12일 개봉한 김태일 감독의 <오월愛>는 껍데기만 남은 5·18이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하고 방치했음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31번째 5·18을 앞두고 김태일 감독, 그리고 주로미 조감독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그들은 다시 찾은 광주에서 오월애(愛)를 느꼈을까, 오월애(哀)를 느꼈을까.
“어디부터 갈까요?”
“그러게요. 어디부터 갈까요?”
서로 물었다. 조금 이상한 취재였다. 조금 특별한 여행이기도 했다. 행선지가 광주라는 것 말고 아무것도 몰랐다.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림잡았지만, 누구부터 만나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애당초 김태일 감독과 주로미 조감독 뒤를 졸졸 따라다닐 참이었다. 부부이자 동료인 두 사람
오월이 가고, 다시 오고…삶은 이렇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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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타운>
연출 황의경, 김진원 | 각본 서숙향 | 출연 성유리, 정겨운, 김민준, 민효린 | 5월11일부터 수·목요일 밤 9시55분 | KBS
‘식모’가 돌아왔다. <로맨스타운>은 도박꾼인 아버지 때문에 상위 1%의 사람들이 산다는 1번가의 재벌집에서 3대째 식모살이를 하게 된 20대 여성 노순금(성유리)의 이야기다. 몸에 감겨드는 메이드복에 하이힐을 신은 순금의 스틸컷을 보면 영락없이 <하녀>의 은이가, ‘가정부와 주인집 아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보면 자연스럽게 <지붕뚫고 하이킥!>의 세경이 생각난다. 그러나 <로맨스타운>이 조명할 가정부 이야기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첨예한 계급 갈등이나 못 가진 자의 서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제작진의 기획 의도를 들어보자. “5년 전에 모 방송사에서 일하던 40대 청소부 아주머니가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돼 100억원이라는 초유의 상금을 받고도 그 사실을 숨긴
1번가 식모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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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
연출 최이섭 | 각본 김선영 | 출연 김승우, 이다해, 박유천, 강혜정 | 5월30일부터 월·화요일 밤 9시55분 | MBC
방탕한 부잣집 아들 주위를 맴돌며 그를 모방하던 가난한 청년(리플리)은, 자신이 곧 부잣집 아들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주꾼 리플리>의 줄거리다. 하이스미스가 만들어낸 이 섬뜩한 캐릭터가 어디선가 언급된다면, 그건 분명 욕망과 거짓된 환상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장치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짝패>의 후속작으로 알려진 <미스 리플리>는 제목에서 연상 가능하듯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일삼으며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아로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 20대 여성이 학력을 위조해 출세하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려는 거짓말을 반복하게 되면서 파멸의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이쯤에서 선명히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2007년 학력 위조와 변양균 전
The Talented Miss 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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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의 드라마 ‘육첩반상’이 대중적이고 밋밋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분명 있을 것이다. 원래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란 게 가장 보통의 시청자를 위한 작품 아니겠는가. 지상파의 ‘빅 네임’에 안주하지 못하는 시청자라면 KBS2에서 심야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와 케이블 채널이 제시하는 새로운 메뉴들에 주목해보자.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는 2010년 5월부터 11월까지 KBS2가 매주 토요일 밤 11시15분에 방영했던 단막극을 연작 형식으로 확대한 프로그램이다. <락 rock 樂> <특별수사대 MSS> <화이트 크리스마스> <사백년의 꿈> <헤어쇼> 등의 작품이 4부작·8부작 등의 형식으로 각각 한달씩 방영됐다. 여섯 번째 연작 시리즈인 <완벽한 스파이>(5월8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는 총 4부작으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며 역시 KBS2에서 방영
황금시간 미니시리즈가 2% 부족한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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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감독 진혁 | 각본 황은경, 최수진 | 출연 이민호, 박민영, 구하라, 이준혁, 김상중 | 5월25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밤 9시55분 | SBS
1980년대, 영화계에 <영웅본색>이 있었다면 만화계엔 쓰카사 호조의 <시티헌터>가 있었다. 돈 밝히고 여자 좋아하는 속물이지만 경찰이 감당할 수 없는 ‘도시 정의’를 바로세우는 ‘해결사’ 사에바 료의 호탕한 매력은 남성 팬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시티헌터>가 드라마로 제작된다. 일본 YTV에서 제작한 동명의 애니메이션(1987)이나 성룡, 왕조현이 출연하고 왕정 감독이 연출을 맡은 동명의 홍콩영화(1992)가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시티헌터>를 드라마로 제작하는 건 한국이 최초다.
‘도시의 해결사’를 주인공으로 삼는 기본 구조는 같지만 드라마 <시티헌터>는 원작 만화보다 큰 스케일의 작품이 될 듯하다. 만화 <시티헌터>
화려한 도시의 영웅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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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미녀>
연출 이진서, 이소연 | 각본 오선형, 정도윤 | 출연 장나라, 최다니엘, 류진, 김민서 | 월·화요일 밤 9시55분 현재 방영 중 | KBS2
명랑 ‘소녀’도 이제 나이먹었다. 역경을 헤쳐나가는 젊은 캔디에게도 타계책이 필요했다. 극약처방은 바로 ‘동안’이다. 이름하여 이 시대 최고의 가치가 있으니 그건 바로 탱탱한 피부의 ‘동안’이다. 그리하여 <동안미녀>는 장나라를 앞세워 서른네살 노처녀의 ‘명랑 동안 성공기’를 고안해냈다. 전반부는 철저히 역경모드다. 고졸에 신용불량자인 소영은 7살이나 나이를 속이고 패션회사에 취직한다. 하는 일, 되는 일 하나없는 그녀의 고행은 마치 패션회사를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상케 할 정도. 꿋꿋한 캔디를 위한 테리우스는 비록 어수룩해 보이지만 족발집 계승도 마다하고 패션계에 입문, 결국 소영에게까지 투신하는 소신남 진욱이다. 학력차별, 88세대의 고충, 외모에 대한 편견 등등의 온갖 사회적 메시지를 한꺼
캔디의 나이를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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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사랑>
연출 박홍균, 이동윤 | 각본 홍정은, 홍미란 | 출연 차승원, 공효진, 윤계상, 유인나 | 매주 수·목요일 밤 9시55분 현재 방영중 | MBC
<최고의 사랑>은 본격 ‘연예’ 드라마다. 톱스타와 한물간 스타의 만남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 드라마는 지금 방송가의 캐스팅, 스캔들, 권력관계 등 모든 걸 훑는다. 톱스타와 작가, PD라는 재료는 이미 익숙하다. 김은숙 작가의 <온에어>나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 모두 이들 재료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으며, 여기에 필연적으로 ‘사랑’을 결부해왔다. <온에어>가 알싸한 맛의 ‘매운 홍합’ 같은 맛으로, <그들이 사는 세상>이 국물이 진한 ‘설렁탕’ 같은 맛으로 방송가의 현재와 사랑을 매칭했다면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로 ‘잘난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사는지 이미 너무 잘 아는 홍 작가는 역시 달콤새콤하여 먹는 재미를
연예하는 사람들의 달콤살콤 연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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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봐>
연출 김수룡, 권혁찬 | 각본 김예리 | 출연 윤은혜, 강지환, 성준, 조윤희, 박지윤 | 5월9일부터 월·화요일 밤 9시55분 |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씨네21>이 엄선한 신작 드라마 중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작품이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줄거리부터 들어보자. 첫사랑에게 차인 5급 공무원 공아정(윤은혜)이, 자존심을 세우려고 우연히 알게 된 일류호텔 대표이사 현기준(강지환)과 결혼했다며 주변에 말해버린다. 이를 알게 된 기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가짜 결혼 소식을 자기 편한 대로 이용하려 한다. 두 남녀의 거짓말이 커지고 주변 인물들이 이 결혼 사기극에 휘말리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정석 공식- 엉뚱하지만 정감가는 여주인공과 완벽하지만 까칠한 남주인공의 티격태격- 을 충실히 따르려 한다는 건 자명해 보인다. 작품명 또한 20세기
그 여자의 뻥과 그 남자의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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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좀 장중했다. 드라마 말이다. 브라운관에 <로열 패밀리>와 <마이더스> 같은 재벌가의 아귀다툼이나 <짝패>처럼 운명이 뒤바뀐 인물들이 주를 이뤘다. 봄날을 맞아 겨울코트 정리하듯, 드라마도 무게를 툭툭 털어냈다. 이미 방송을 시작한 <동안미녀> <최고의 사랑>을 비롯해 <내게 거짓말을 해봐> <로맨스타운>처럼 단연 로맨틱코미디가 대세. 액션물 <시티헌터>, 스릴러 구조를 띤 <리플리>도 주목할 만하다. 6편의 봄 드라마를 정리했다.
신작 드라마에 채널이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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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생으로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장정초는 너무 어리고 연약해 보인다. 그처럼 바람에 쉬이 쓸려갈 것처럼 가냘픈데도 종종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버텨선 여자로 등장했다.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펑샤오강의 <대지진>(2010)에서 지진 복구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어쨌건 그녀는 먼 길을 날아와 힘을 보탠다. 비록 이동승의 <문도>(2007)에서 피폐한 마약중독자 미혼모 역할로 자신의 존재감을 홍콩에까지 각인시켰지만 사실 <대지진>에서의 모습이 장정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륙인들의 인상이다. 베이징중앙연극학원을 나와 <샹그릴라에서 온 신부>(2004)를 비롯해 구창웨이의 <공작>(2005)에서 1970년대 문화대혁명 이후 여전히 혼란스런 중국사회를 밝고 저돌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상주의자 소녀로 등장했을 때, <빨간 버스>(2006)에서 씩씩한 버스 안내양으로 변신
제2의 장쯔이를 예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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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정뢰처럼 단 하나의 표정으로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배우는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결코 흥분하지 않으며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 외유내강의 이미지는, 홍콩으로 건너와 여러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본토 여배우들이 홍콩영화계에서 어색하게 액션연기를 소화하거나 단지 미모로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경우는 흔했지만 서정뢰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풍운>(1998)에서 곽부성에게 죽임을 당하는 단역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중국 본토 바깥에서 작업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이후 <상성: 상처받은 도시>(2006)에서 양조위의 아내로 나와 병상을 지키면서도, <명장>(2007)에서 유덕화와 이연걸 모두의 사랑을 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면서도, <신주쿠 사건>(2008)에서 성룡의 오랜 첫사랑이자 일본 야쿠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굳
명장의 강인함을 오롯이 새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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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는 판빙빙 말고도 또 한명의 빙빙이 있다.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2009)와 <적인걸>(2010)의 리빙빙이다. 둘이 라이벌인 건 당연한 일이다. 정상의 여배우가 이름도 같다면 언론과 대중은 어쩔 도리 없이 라이벌 의식을 부추기게 마련이다. 리빙빙 역시 판빙빙과의 라이벌 관계를 잘 알고 있다. <적인걸>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을 당시 그녀는 농담삼아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중국에선 판빙빙과 앙숙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판빙빙과 리빙빙이 이미지가 꽤 다른 배우들이라는 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상하이엑스포 홍보대사, 세계자연보호기금의 글로벌 친선대사를 줄줄이 맡을 정도라면 중국 내에서 리빙빙의 이미지가 어떤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판빙빙이 기자 폭행이나 거부와의 밀애 스캔들로 중국을 뒤집어놓는 동안 리빙빙은 홍보대사로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우아하게 머리를 쓸어넘긴다. 판빙빙이 디바라면 리빙빙은 만인의 연인이다
대륙의 기품을 간직한 만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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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4대천후’가 있다. 지금 가장 인기있는 네명의 여배우 장쯔이, 조미, 주신, 서정뢰를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물론 한 시대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법이고, 지금 대륙에서는 새로운 천후 후보들이 서서히 부상하는 중이다. 이 지면에 소개되는 모든 배우들이 강력한 천후 후보지만 단 한명을 꼽으라면? 역시 판빙빙의 이름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판빙빙이 대륙을 뒤흔드는 스타가 된 건 역시 미모 덕분이다. 유역비나 탕웨이, 그녀의 최대 라이벌인 리빙빙이 기품있고 우아한 얼굴을 지녔다면 판빙빙은 애플의 신제품처럼 틈없는 미모를 가졌다. 국내 개봉한 <신주쿠 사건>이나 <소피의 연애매뉴얼>을 떠올려보시라. 판빙빙의 뼈와 가죽은 디자이너 공방에서 칼과 무두질로 빚어낸 것 같다(그녀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성형중독설’은 잠시 잊어버리도록 하자). 하지만 판빙빙을 외모 하나로 스타가 된 배우라고 취급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그녀의 데뷔작인 TV드라마 <황
치명적인 미모, 끊임없는 센세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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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통고>(2010)에서 유역비는 안경을 쓰고 출연한다. 안경을 쓰고 있어도 변함없는 천상의 미모를 뽐내지만 역시 그녀의 미모는 ‘생얼’ 그 자체에 있다. 영화에서 유역비를 흠모하는 왕리홍의 노래가 흐르며 비를 맞는, 그러면서 안경도 벗겨지고 긴 생머리도 물에 흠뻑 젖은 그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백옥 같은 피부에 긴 생머리, 숨을 멎게 만드는 그 고혹적인 모습은 드라마 <천룡팔부 2003>의 왕어언, <신조협려 2006>의 소용녀를 거쳐 지금의 <천녀유혼>의 섭소천에게 이르기까지 한결같지만 늘 빠져들게 만드는 그녀만의 매력이다. 영미권에서 리어왕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오직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이라면 중화권에서 소용녀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1987년생으로 베이징전영학원 연기과를 나온 유역비는 드라마 <금분세가>(2003)를 통해 데뷔한 이래 언제나 고전적인 시대극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해왔다
당신의 숨을 멎게 할 천상의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