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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을 다시 만났다.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일부 장면이 인간의 존엄을 해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논란이 된 <악마를 보았다>는 최종적으로 1분30여초를 삭제하고 예정대로 8월12일 개봉했다. 하지만 영화는 다시 급격한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개봉 전날인 11일 오후 5시 기자 시사회를 가진 이후 수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렸고, 12일 조조 개봉 이후부터 네티즌의 반응 또한 각양각색이다. ‘1점과 10점으로 나뉜 평점’이라는 말이 그 화제성을 증명한다.
·기자시사가 열리고 불과 10여 시간 만에 극단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반응을 살펴봤을 텐데 어떤가.
=어떤 기자분이 쓴 리뷰를 보니까 ‘수박을 반으로 쪼개는 것처럼 찬반양론으로 나뉠 것’이라는 얘기가 보이더라. ‘정육점 스릴러’라는 표현도 재밌었고. 아까는 조카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인터넷 반응을 쭉 훑어보니 평점이 1점 아니면 10점인 것 같다고
“전리품 없는 싸움에 뛰어든 남자의 허망한 파국을 그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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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과 이병헌, 두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매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온 김지운 감독이 여섯 번째 작품 <악마를 보았다>를 끝내고 자신의 영화를 향해 던진 몸서리치는 소회다. 장경철(최민식)과 김수현(이병헌)의 끝없는 대결을 담으려 밤샘 촬영을 하면서 감독 또한 악마의 얼굴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촬영현장은 극단적으로 그 못지않은 즐거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김지운 감독이 최민식, 이병헌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직접 사진을 고르고 얘기를 덧붙여줬다.
1. 살인마, 최민식
경철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짐작할 수 없는 살인마다. 그리고 최민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상을 입게 만드는 배우다. 헤어스타일부터 의상, 그리고 표정에 이르기까지 그는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현재 최민식의 가장 뜨겁고도 멋진 얼굴이 영화 속에 담겼다.
2. 냉혈한, 이병헌
수현은 연쇄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뒤 이
뜨거운 두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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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최민식과 복수심에 불타는 이병헌, 그리고 한국영화계에 ‘트렌드 세터’라는 표현을 적용해본다면 가장 잘 어울릴 법한 김지운 감독의 만남. 제목에서 풍기는 기운도 그러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두말할 것 없이 올해 하반기 가장 뜨거운 영화다. <달콤한 인생>(2005)의 선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창이에 이르기까지 최근 김지운 영화의 페르소나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병헌과 살인마를 연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입 닥치고 그저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최민식의 충돌은 ‘악마’라는 단어와 어우러져 용광로처럼 꿈틀거린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8월4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살인과 복수와 관련된 몇몇 장면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고 있다며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 그리하여 애초 5일 열릴 예정이었던 기자시사회가 한주 뒤로 밀려 12일 개봉일 전날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미치도록 궁금하다!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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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짐 자무시의 첫 장편영화 <영원한 휴가>를 본 그의 아버지는 망설이며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얘야… 그러니… 까… 내가 영화를 다 본 게 아닌 거지…?” 도통 알 듯 모를 듯한 터라 빠진 내용이 있었던 건 아닌지 그렇게 물었다. <브로큰 플라워> 이후 5년 만에 짐 자무시가 신작 <리미츠 오브 컨트롤>로 돌아왔다. 이 신묘하기 그지없는 영화를 보는 당신이 혹시라도 그런 심정일까 싶어 영화에 관한 짧은 해제를 전한다. 하지만 잊지 말 것!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해석보다는 경험이 필요한, 당신의 뇌에 박힌 통제의 조정장치를 제거해줄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 속 고독한 한 사나이를 따라나서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작가주의라는 걸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이렇게 말은 해야 한다고 본다. ‘영화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영화감독이 만들어야 한다.’ 예술영화라 지칭됨으로써 내 영화는 고립된다. 사람들이 어느 록밴드를 아트록이
Use Your Imag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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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내가 어떤 자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재즈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와인 좋아하세요? 둘째,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세요? 이상하게도 찰리 파커를 좋아하느냐 혹은 키스 자렛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기억은 내게 없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예’라고 대답한다. 술은(와인뿐만 아니라) 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적어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상실의 시대>는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그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노무’ 재즈는 아직도 우리에게 독립된 음악이 아니구나. 그저 장식물이구나. 와인 마실 때의 배경음악 혹은 하루키풍 라이프스타일(또는 그것에 대한 로망) 속의 무엇.
그렇다. 언감생심, 나는 하루키를 질투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세계 어디서든 베스트셀러 작가가 재즈 뮤지션보다 유명한 것은 당연하며, 그렇다면 그 작가의 눈을 통해 사람들이 재즈를 바라보는
단카이 세대의 모던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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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호른이라는 악기가 있다.”
“마유미가 처음으로 쇄골을 으깨놓은 젊은 남자는, 스포일러가 붙은 하얀 닛산 스카이라인을 몰고 있었다.”
“나는 얼음 사나이와 결혼하였다.”
“토니 다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 토니 다키타니였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작은 이렇다. 툭 안기는 첫 문장의 매력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의 첫 장을 넘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하얀 워크 스페이스에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을 몇분 혹은 몇십 분을 바라보다가 다잡히지 않은 생각들과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에 마우스를 내려놓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돈다. 방을 치워보기도 하고 발을 씻어보기도 하고 스탠드의 조도를 낮추고 음악을 틀고 하얀 머그잔에 가루 녹차를 풀어놓아보기도 한다. 의자에 앉은 채로 무릎을 굽혀 발뒤꿈치를 허벅지 앞쪽에 올려놓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짧은 글들이 모여 있는 책들에 눈이 간다.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이라 해도 상관없다.
책을 들고
상상력을 이완시키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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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학번인 내가 분포된 나이 띠 근방의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란 이름에 비슷한 감정을 품지 않을까? 그러니 만인의 우상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게 참 부끄럽다. 그 이름에 누가 될 텐데 이거 참…. 그러나 이런 소심한 사람을 용기내게 만든 게 바로 그이다. 그의 고백이다.
그는 고백한다. 소설을 시작할 때 앞일을 모르고 출발한다고. 대충의 도착지만 있을 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여행. 그런데 그렇게 나온 글이 때로 자신을 앞질러 있기도 하단다. 비슷한 고백이 하나 더 있다. 그가 번역해준 레이먼드 카버의 <글쓰기에 대하여>에 나오는 고백이다.
‘첫 문장을 쓴다. 그러나 그 다음 문장이 무엇이 될지 모른다.’ 이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가 대학교 4학년이었다. 앞으로 뭘 하며 먹고살지 세상은 넓고 자신은 극도로 초라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내게 이 말은 구원의 메시지였다. 서점에 가득 깔린 책이나 넘쳐나는 영화 포스터만 봐도 기가 죽었다. ‘와~ 세상엔 참
근육의 소설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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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은 것은 스무살 때였다. 1990년대였다. 386세대가 뜨겁게 청춘을 산 다음의, 스무살. 이념과 투쟁에의 부담감은 어느 정도 사라진 뒤였고, ‘신세대’라는 신조어가 내 또래를 지칭할 즈음이었다. 스무살의 나는 막걸리 대신 생맥주를 마셨고, 세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록카페에서 서태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즐거웠다. 하지만 어쩐지 좀 먹먹하고 헛헛했다. 개인주의까지는 좋은데 그래서 과연 그게 무엇인지, 실체를 몰랐다. 정작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스무살을 규정해줄 ‘말’이 없었고 ‘코드’가 없었다. 그런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묘했고 적절했다. 뜨겁지 않아도, 차가운 방식으로도 죄책감없이 세상을 살 수 있는 거라는, 어떤 선배의 고마운 전언 같았달까. 그의 책에는 가장 사적이고 사소한 영역에 대한 찬사가 있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값지고 빛날 수 있다는 예시가 있었다. 그렇게, 이념의 공백을 시나브로 채워가며 하루
그때 그 시절 로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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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꿈 이야기를 올리는 커뮤니티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만큼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근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낮 동안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쨌건 많은 양의 꿈을 ‘다작’하다 보니 때로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어제(이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며칠 뒤에) 꾼 꿈을 가감없이 적어보자면 이렇다.
나는 관처럼 생긴 수조에 반듯하게 누워 있다. 사람들은 어떤 시기가 되면(혹은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의무적으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고, 지금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살짝 초조했으며,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약간의 뿌듯함을 동반한 일종의 윤리적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대간 재분배와 관련한 어떤 경제이론을 떠올린 것도 같은데, 그것이 꿈속에서였는지 깨어난 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절차를 안내하는
무한의 무한과 꿈의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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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상실의 시대>를 읽은 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나는 아직 불이 켜 있던 아파트의 불이 꺼지던 순간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서던 발길 같은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불빛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에게 삶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을까? 앞날이 마치 불빛이 꺼진 아파트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때도 아파트와 도시와 곧 가버릴 청춘을 육체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 거대한 것들의 시대는 갔고, 영웅과 모험과 혁명과 열렬한 논쟁과 모색의 시대도 갔고, 세상은 가볍고 변덕스럽고, 반짝거리되 찬란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열정과 소망과 성취 역시 작아졌을 때 그때도 우리는 무의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때도 또다시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란 것을 입 밖으로 내 물어보아야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상실감의 시대에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게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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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적이다.’ 트란 안 훙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의 영화화에 착수하자 배급사인 도호는 즉각 놀라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1981년,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화화한 오모리 가즈키 감독의 동명 영화가 처음. 그 뒤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단편 <토니 타키타니>를 각색, 미야자와 리에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토니 타키타니>(2004) 두편이 전부였다. 그간 하루키 소설은 인간 내면의 심리묘사, 일상에 대한 언어 위주의 표현이라는 특징 때문에 영화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인식돼왔다. 그러나 정작 실질적인 사정은 하루키 본인이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데 부정적인 탓이 더 크다.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화하고 싶어 하는 왕가위 감독 역시 까다로운 하루키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결국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중경삼림>을 연출했
무라카미 하루키+트란 안 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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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무라카미 류씨를 만났는데, “이봐요 하루키씨, 한번 정도는 밀리언셀러 같을 것을 써놓는 게 좋을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연해서 ‘태평한 말을 하는 사람이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밀리언셀러의 작가가 되고 보니 그가 말한 대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지쳐버렸지만요. -무라카미 하루키
2010년 7월28일. 트위터 최고의 화두는 재보궐선거와 <1Q84> 3권 출간이었다. 서점에서 <1Q84> 3권을 구입한 사람들은 인증숏을 올리며 책 구입 사실을 알렸다. 그럴만도 하다. <1Q84> 1, 2권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총 115만 부가 팔려나갔고, <1Q84> 3권은 예약판매가 시작된 직후 모든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1Q84> 1, 2권이 출간 12일만에 100만권이 판매되는 기록적인 성적을 기록하던 중인 8월5일, &l
‘종합 소설가’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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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감독, 이윤정 PD 등 그와 함께 청춘을 보낸 이들의 에세이를 함께 싣는다
<1Q84> 3권이 한국 독자들에 선을 보였다. 또 한번, 이게 끝이 아닐지 모른다는 설이 돌고 있다. 출간도 되기 전에 빠르게도 베스트셀러 수위를 점했다.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만의 열광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이 40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출간될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상실의 시대>로부터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하루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해영 감독, 김종관 감독, 밴드 못[Mot]의 이이언,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 정혜윤 PD, 이윤정 PD가 보내온 에세이들은 90년대를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선 당신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어줄 것이다.
하루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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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주연배우 원빈과 함께 다니다 보니 이유없는 수모(?)를 당한다. 하필이면 원빈과 단둘이 서 있는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아놓았다고 한다. “원빈 옆에 서 있는 저 코 있고 눈 달린 건 뭐냐?”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다. 시사회 다음날 관계자들의 호의적인 평에 그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일반 관객의 반응은 또 어떤 것일까. 가령 이런 것이 최상이다. “여자가 남자 애인의 손을 끌고 들어가서 보게 되는데, 끝난 다음에는 남자가 더 반해서 극장을 나서게 되는 그런 영화.”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이어서 더 물어봤다.
-시나리오 작업이 오래 걸렸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사실 이 작품으로만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린 건 아니다. <열혈남아>가 끝나고 <시크릿 보이>라는 로맨틱코미디를 2년 동안 썼다. 완고까지 마쳤다
[이정범] 피와 땀이 흐르는 카타르시스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