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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제작환경에선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장르영화의 장점이라면 장르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밀반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웃음) 나는 <렛미인>의 스웨덴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를 보면서 뱀파이어 이야기 안에 담긴 청소년기의 고통과 보편적인 고독을 느꼈다. 나는 <렛미인>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맷 리브스) 제작 당시부터 찬반양론을 일으켰던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이 드디어 공개됐다. <클로버필드>로 호러스릴러의 총아가 된 맷 리브스가 과연 이 시적이고 내밀한 뱀파이어 성장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맷 리브스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원작과 무척 닮은 듯하지만 많이 다르기도 한 할리우드 <렛미인>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본다.
리메이크의 운명은 언제나 잔인하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거대 예산으로 빅스타를 고용하여 만든 리메이
레이건 시대 미국의 서늘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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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노래방에서 더이상 신곡을 찾지 않고 익숙하게 아는 노래번호를 누르고 있을 때, 어느새 오래된 노래만 부르던 삼촌의 예전 표정을 내가 짓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나 이제는 시간에 밀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처지다. 익숙하게 쓰던 다른 사이트들을 잠시 접고 낯선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런 위기감 때문이었다.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어려워도 배워야 하는 것, 이른바 살아남기라고 할까. 아직은 내 손의 연장처럼 생각되던 것이 아닌 까닭에 느껴지는 타자의 감각. 나는 여전히 그 위에서 페이스북을 대한다.
그 자식이 친구신청하면 어쩌지
그런 만큼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감정이입되는 것은 천재 마크 저커버그가 아닌 그의 여자친구 에리카다. 그녀는 지금의 나처럼 혹은 첫 장면의 폭풍 같은 대사들을 따라가느라 당황하는 당신
끊임없는 친구 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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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새 카이사르!” <베니티 페어> 10월호가 페이스북의 창립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를 ‘떠오르는 인물’ 1위로 선정하면서 바친 칭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3인방(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에릭 슈미트), 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드 머독을 밟고 차지한 전리품다웠다.
‘팔로 알토’(페이스북 본사가 위치한 곳)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집과 부모가 운영하는 치과사무실 컴퓨터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마크 저커버그의 천재적인 취미는 하버드대학에 진학해서도 계속됐다. 2학년이던 2003년 10월, 학교 기숙사를 해킹해 만든 여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웹사이트 ‘페이스매시’를 통해 영악한 장난을 쳤다. 페이스매시는 학교 당국에 의해 하루 만에 폐쇄됐지만, 하룻밤 동안 무려 5천여명이나 불러모은 그의 명성은 하버드를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페이스북의 시발점이 되는, 동시에 이후 그를 골치 아프게
평범하면서 비범한 천재 마크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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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웨스트 윙>의 열혈 시청자였던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좋아하는 TV쇼 목록을 만든 다음 당연하게도 이 드라마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알려지면서 그의 페이스북에서 <웨스트 윙>은 슬며시 사라졌다. <웨스트 윙>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소셜 네트워크>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일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모습이 긍정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은 이 영화를 환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아론 소킨의 반응도 변함없고 분명하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미지를 돕는 게 내 직업은 아니다. 내가 뭐 그가 소유한 신문사의 대표도 아니고 그의 랍비(유대교의 지도자)도 아니니까. 내가 그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를 (있는 그대로) 사진 찍는 게 아니라 그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느꼈던 거다.”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감독 이전에 각본가에게서 많은 것이 이미
당신이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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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본적인 수단이 말(언어)인 인물, 그런 인물을 다룬 건 당신의 다른 영화에서는 없던 일이다.
=하지만 말을 지탱하는 것은 그 말이 나오는 입이고 그 말이 나오는 입을 지탱하는 몸이고 그 몸이 거주하는 집과 방들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의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버드와 그 아이들과 그 재능에 걸맞게 말이다. 재미있는 건 뭐냐하면, 정말로 영리하면서도 놀랍도록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들을 한 움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투로 말을 할 만한 종류의 아이들처럼 보이도록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직조하는 것이다.
-구석에 있던 마크는 완벽하게 주류로 나아간다.
=그가 주류를 소유하고 그가 주류이며 그가 주류의 입구다. 아이러니한 것 같다. 창조적인 변화는 변두리에서 일어난다. 항상 가장자리에 있고 구석에 있고 그 다음에 군중에 편입된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를 발명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케이
[데이비드 핀처] “하버드 아이들의 <라쇼몽>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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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웅 탄생에는 신화가 있다. 대개 그것은 승리자를 중심으로 한 신화다. 다만 그 승리의 마지막까지 동참하지 못했거나 그 주변에 머무른 자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야기는 종종 달라진다. 여기엔 피하지 못한 갈등과 의문스러운 배신 혹은 주장하기에 따라서는 정당치 못한 약탈이 자리할 것이다. 말을 바꾸어야겠다. 모든 영웅 탄생에는 신화가 있다. 불미스러운 일 없이 완성된 영웅 탄생의 신화가 적을 뿐이다. 승리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패배했거나 뒤처진 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가 지금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모았을 때 하나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더 관건이다. 어떤 영웅 탄생의 신화는 그것에 온전하고 완벽한 찬미를 보낼 수 없을 만큼 불미스럽고 불명료한 경우여서 더 흥미로울 수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가장 젊은 억만장자의 실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의 창업에 얽힌 이야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을 때 이것이 인터넷 시대의 그러한 영웅담으
21세기 인터넷 영웅의 탄생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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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소셜 네트워크>는 그의 최근작 <조디악>이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는 또 다른 이유로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페이스북을 창립해 인터넷 업계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마크 저커버그, 그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매끈하면서도 경쾌한 솜씨로 담아냈다. 그리하여 완성된 영화의 흥미로운 모양새를 소개해본다. 한편 마치 영화처럼 감독 데이비드 핀처, 각본가 아론 소킨, 마크 저커버그, 그들의 서로 다른 입장으로 영화에 접근해본다. 평소 페이스북 애용자인 영화평론가 송경원씨의 <소셜 네트워크>와 페이스북에 대한 단상도 함께 부쳤다.
(*페이스북 창립자 Mark Zuckerberg의 한글 표기를 마크 저커버그로 통일합니다.)
21세기 인터넷 영웅의 탄생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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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SF 안에서 인간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좋다. 예를 들어 멜로드라마라도 둘이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내가 저 여자를 왜 사랑하고 있을까?”를 자문하는 영화가 좋다. 겉으로는 그런 물음을 표내지 않고 줄곧 신나게 달리는데, 들여다보면 생각이 보이는 영화가 좋다.
-<초능력자>도 그 취향의 연장선에 있을 텐데.
=<초능력자>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초인과 규남 중 하나는 (타인과) 섞이는 인물이고 하나는 섞이지 못한다. 초인은 혼자지만 규남은 친구와 소속이 있다. 반면 초인이 남의 의식을 조정해 무수한 ‘나’를 만들어낼 때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은 혼자다. 그런 다양한 상황을 통과하며 원초적인 ‘나’를 발견하는 영화였으면 했다.
-초능력자라는 모티브에 착안한 과정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연출부 하면서 막판에 넋이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마
[김민석] 원초적인 ‘나’를 발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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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반경에 들어온 사람들을 몽땅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제 뜻대로 움직이는 초능력의 남자(강동원)가 있다. 세상이 온통 나 아니면 나의 복제품일 뿐인 이 남자에게, 나와 남을 분별해줄 이름 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아니, 실은 이름이 있다 한들 불러줄 이도 없다. 애초 낳아준 부모마저 두려워하여 없애버리려 했던 생명이다. 뭇 사람들은 초능력의 꼭두각시가 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므로, 초능력자는 애정은 고사하고 증오라는 감정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스락! 그가 정지시킨 세상 구석에서, 누군가 꼼지락거리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초능력자의 힘이 통하지 않는 이 예외적 인간 규남(고수)은 그에게 시선을 되돌려주고 그를 외쳐 부른다. 절대고독의 성벽에 금이 가고 투쟁이 시작된다.
한쌍의 의인화된 관념 같은 존재
그러니까, 이건 다시 두 남자 이야기다. 남성 투톱은 한국 대중영화에서 제일 빈번히 마주치게 되는 인물 구도다. 그러나 <초능력자>가 설
당신의 두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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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렌스는 2010년 현재 할리우드 평단이 가장 사랑하는 신인배우다. 이 문장이 의심스럽다면, 깐깐하기로 소문난 기자·평론가가 로렌스의 신작 <윈터스 본>(2010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면 된다. “험프리 보가트가 17살의 소녀로 재탄생한 것 같다”(<보스턴 글로브>, 타이 버), “제니퍼 로렌스는 연기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그 파급력은 굉장하다.”(<롤링스톤>, 피터 트래버스), “결함없는 연기다. 로렌스는 <윈터스 본>을 보통 인디영화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뉴욕타임스>, A. O. 스콧). 이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바치는 제니퍼 로렌스의 자질은 ‘캐릭터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다. <윈터스 본>에서 그녀는 정신질환을 겪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돌보는 한편,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낸 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17살 소녀가장 리 돌리를 연기한다. 장작을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험프리 보가트를 닮은 소녀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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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에서 이름도 없는 ‘소년’을 연기했다. 이 작품이 이해가 되던가.
=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세상이 왜 멸망했는지가 궁금했다. 나중에 원작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원작자인 코맥 매카시에게는 세상의 종말보다 아버지와 아들이 둘만 남게 된 상황이 더 중요했을 것 같았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만약 아버지가 사라질 경우,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게 <더 로드>의 매력이다. 난 코맥 매카시가 원했던 그대로의 캐릭터가 드러나기를 원했다.
-나이답지 않게 고민이 많았나보다. 몇살인가.
= 1996년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내 연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빠인 앤디 맥피는 20년 넘게 활동한 배우고, 누나인 시아노아 스밋 맥피도 연기를 했다. 특히 아버지는 나를 오디션에 데려간 장본인이다. <렛미인>에 함께 출연한 크로 모레츠는 오빠가 연기연습을 도와준다고 하는데, 난 아빠와 함께 연습한다. 물론 촬영현장에서는 다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캐릭터 읽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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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이름난 혈육을 두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엘르 패닝에게 그건 축복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대스타가 되어버린 언니 다코타 패닝 덕분에 엘르 패닝은 겨우 세살이 되던 해에 할리우드 시사회장의 레드 카펫을 밟았고, 영화 <아이 엠 샘>, TV 미니시리즈 <테이큰>에서 다코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자연스럽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 아역배우가 대단한 까닭은 언니의 이름이 부담으로 작용할 무렵, 똑 부러지게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켜나갔다는 점이다. 엘르 패닝은 제프 브리지스와 킴 베이싱어의 딸로 출연한 <킴 베신저의 바람난 가족>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내정되어 있던 역할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2006년에는 TV드라마 <로스트 룸>에서 사라진 방에 갇힌 딸을, 2008년에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케이트 블란쳇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할리우드 관계자의 눈에 들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영민한 바비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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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관한 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에마 스톤은 진짜 순금이다.” <좀비랜드>에 함께 출연한 빌 머레이의 평가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할리우드의 무서운 신예를 언급할 때면 이제 88년생의 어린 여배우 스톤을 빼놓기 힘들게 됐다. <슈퍼배드>와 <좀비랜드> 그리고 최근 제작비의 다섯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할리우드의 화제작 <미스 A>에 이르기까지, 예기치 않은 성공에는 항상 스톤의 이름이 함께했다. 빨간 머리에 다소 고집스러우면서도 이지적인 얼굴.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특이함으로 스톤은 할리우드의 ‘잇걸’로 등극했다. 물론 스톤의 폭발력을 단적으로 입증해준 사건은 또래의 주목할 만한 배우를 제치고 그녀가 <스파이더맨4>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일이다. 기존 시리즈보다 청춘멜로의 역할에 신경을 썼다는 마크 웹 감독의 말대로라면, 스톤이 맡은 피터의 첫사랑 그웬 스테이시의 비중도 그만큼 커진 것. 지금껏 보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금발이 깜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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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의 임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조셉 고든 래빗 보러간 여성 관객이 극장문 나오면서 ‘톰 하디!’를 외치게 만든 캐릭터. 모든 사람을 알고,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정보통으로, 꿈속에서 신원을 위조해 표적을 속이는 역할이다. 싸움은 기본, 임기응변과 유머도 수준급이다. <인셉션>의 ‘포인트맨’ 조셉 고든 래빗과 함께 ‘임스아서’로 맹위를 떨쳤다. 이른바 폼잡는 건 디카프리오 몫, 몸을 쓰는 건 임스아서의 역할.
앤서니 홉킨스 1977년 런던 해머스미스 태생. 아버지는 광고와 코미디 등의 극작가로 활동했다. 하디가 연기를 시작한 건 1998년. 런던 드라마센터에서 연기공부할 때 앤서니 홉킨스 경에게 사사했다. 2003년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어워드 최우수 신인상, 2004년 로렌스 올리비에 시어터 어워드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재능있는 신예로 입증됐다.
조니 뎁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영국의 조니 뎁’이라 불림. 하디가 생각하는 ‘가장 다재다능한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팔색조 이 남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