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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친동생으로 법무부 장관과 상원의원을 지냈고 형이 대통령이 되었던 그해로부터 정확히 8년 뒤에 민주당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던 로버트 F. 케네디가 이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그를 모른다 해도 영화팬인 우리는 그를 이미 다른 경로로 몇 차례 만나왔다. <대부2>에 등장하여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맹공을 퍼붓던 검사가 그였고 대니 드비토가 연출한 <호파>에서는 지미 호파의 사나운 정치적 적수로 등장한 적도 있다. 그가 지지자들에게는 ‘바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 날’을 살았던 인간들의 프레스코화
형인 존 F. 케네디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불운한 역사에 떠밀려 갑작스러운 총탄을 맞고 운명을 달리했다. 1968년 6월4일에서 5일로 넘어가던 그때,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앰배서더 호텔에서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예비선거의 승리를 자축하는 자정 연설을
[must see] <바비> 재난영화의 정치적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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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윈투어는 더이상 패션계만의 인사가 아니다. 그녀를 왜곡했다지만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녀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영화화된 캐릭터 미란다는 안나 윈투어와 일거수일투족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대중은 이제 안나 윈투어의 주변 인물들의 기술을 토대로 그녀를 기술한 책 <워너비 윈투어>를 사 읽으며 안나 윈투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궁금증의 8할은 도대체 그녀가 누구기에 패션업계에 이토록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나쁜 편집장’인지로 귀결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는 악독한 여자로 기록된 기존의 안나 윈투어에 대한 다른 ‘보기’를 제시한다. 굳이 이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의 정도를 따지기에 앞서, 질문이 앞선다. 안나 윈투어가 도대체 누구기에, 대중매체가 그녀를 소비하지 못해 이토록 안달하는지.
“정말 흥미로운 영화가 되겠군요. 그렇지만 이 영화가 얼마나 진실을 담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안나 윈투어만큼
그리고 악마는 패션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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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래로 ‘새로운 영화보기’를 내세운 서울의 문화학교 서울, 서울시네마테크, 하이퍼텍나다, 일주아트하우스, 전주의 온고을 영화터, 광주의 영화로 세상보기, 청주의 씨네 오딧세이, 제주의 씨네 아일랜드 등 전국의 젊은 영화 애호가들이 주축이 된 시네클럽이 성장해 지금의 시네마테크가 됐다. 이미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은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고, 1999년 부산은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설립해 시네마테크가 상영관과 교육시설을 갖춘 모습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전까지 시네마테크는 상상의 영역이었다.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2002년 전국적인 시네마테크네트워크 조직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설립됐고, 같은 해 서울에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했다. 시네클럽의 활동이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난 뒤였다. 개관 이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천편이 넘는 영화가 상영됐고 40만명의 관객이 영화와 새롭게 만났다. 5주년을 맞는 ‘시네마테크
언제 또 쫓겨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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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주년을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이해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감독이 모였다. ‘늘 보는 얼굴들’이라며 서로 식상해하지만 이들만큼 그간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쏟아온 감독들도 드물다. 이들은 자신의 추천작 얘기를 시작으로 시네마테크의 ‘지속 가능한 상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현재 박찬욱 감독이 대표로 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고 안정적인 공간 확보, 서울시의 예산 확보,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비전을 꿈꾸며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영화인들과 함께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월15일(금)에는 이들 외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명세·최동훈·정윤철·윤제균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과 안성기, 강수연 등의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추진위원회
인구 천만 서울에 전용관이 없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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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는 신연식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감독은 데뷔작 <좋은 배우>로 초저예산(300만원)에도 불구하고 결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두 번째 행보에서는 그 결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에 새겨넣었다. <페어러브>를 소개할 때 먼저 로맨틱코미디라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가 일반화한 장르적 공식을 일부분 따르면서도 때로 줏대있게 튕겨낼 줄 안다. 무작정 납품을 목적으로 한 몇몇 한국의 로맨틱코미디와는 다르며 그로써 단순 공산품이 되는 비운을 잘 피해낸 것 같다.
<페어러브>는 많은 로맨틱코미디처럼 우연의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꿈결 같은 행복의 땅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감독은 “바티칸 교황청의 사진사”에서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게 흥미로운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 공고한 세계에 수십년간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새로운 외부의 영향력. 그게 사랑이라면 그는 어떻게
특별한 사랑은 어떻게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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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추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
니콜라스 뢰그 | 도널드 서덜런드, 줄리 크리스티 | 1973년 | 110분 | 미국, 이탈리아
빨간 코트를 걸친 딸아이가 강가에서 혼자 놀고 있고, 그와 멀지 않은 집에서 교회 슬라이드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던 벡스터(도널드 서덜런드)는 잔을 엎지르면서 피 같은 얼룩이 슬라이드 표면에 번지자, 불현듯 밖으로 달려나간다. 물에서 이미 죽어버린 딸을 건져올려 울부짖는 벡스터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 인상적인 오프닝은 강박관념과 죄의식이라는 테마를 풍부한 시각적 암시와 상징으로 묘사한다. 히치콕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 <레베카>(1940)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부부는 베니스로 이사를 가 슬픔을 잊어보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심령술사 여성과 그 언니를 만나면서 그 아픔은 좀더 불길하게 번져간다. 심령술사가 죽은 딸의 영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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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찾아온다. 2006년 시네마테크의 설립취지에 공감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의 참여로 처음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를 선택하고, 관객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매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시네마테크로서는 연일 매진을 기록할 만큼 ‘흥행’ 영화제이자 영화를 추천한 영화인들과 관객이 만나 함께 대화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최근 시네마테크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는 대내외적 요인이 불거지면서 과연 이 친구들을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그래서 이 영화제가 시작된 이래로 염원해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시작된다. 그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해 모였던 영화감독, 배우, 교수, 영화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참여해 ‘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1월15일 개막식과 후원의 밤을 시작으로 막
봉준호 감독과 볼까 홍상수 감독과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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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데뷔작은 이경미의 <미쓰 홍당무>였다. 2009년의 데뷔작은 이용주의 <불신지옥>이었다. 한국 영화계의 선후배 지도에 민감한 독자라면 둘 사이의 공통점을 이미 짚어냈을 게 틀림없다. 이경미는 박찬욱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고, 이용주는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한국영화의 명장들이 드디어 후계자를 내놓고 있다. 그럼 2010년은? <씨네21>은 점집이 아니라 벌써부터 단정짓긴 쑥스럽다만, 주먹이 울고 장풍을 가르는 ‘다찌마와 류’의 후계자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데뷔작 <해결사>의 촬영을 목전에 둔 권혁재 감독은 류승완 아래서 현장 일을 배운 다찌마와 사단이다. “2003년 제대하고 <아라한 장풍대작전> 연출부로 일했다. <짝패>와 지금은 보류된 <야차>에서 퍼스트 조감독을 하며 일을 배웠고,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부터는 각본과 조감독으로
[권혁재] 한국 스릴러의 패기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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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영화계에서 입질이 없었을 리 없다. 25만명이 관람한 <김종욱 찾기!>, 17만명이 찾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뮤지컬계의 스타 장유정 감독을 탐내는 이들은 많았다. 사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뒤 그녀는 영화쪽에 먼저 뛰어들었지만, 2년 동안 대여섯편이 전부 엎어지면서 ‘영화와 인연이 없나보다’ 지레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라이선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를 준비하며 극중 주인공 엘 우즈처럼 ‘모든 도전에는 편견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다짐을 떠올렸다고. “뮤지컬을 잘하고 있는데 굳이 영화쪽으로 옮겨가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스스로도 여러 번 자문했다.” 그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한결같았지만 기회가 안됐다. 그러다가 진짜 기회가 왔다. 현재에 머무르는 게 답일까, “밑바닥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올라가는 중”이라며 점핑하는 게 답일까. 장유정 감독
[장유정] 뮤지컬을 흔든 그 괴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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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희(38) 프로듀서에게 2009년은 기로였다. 2007년에 시오필름에서 프로듀서 직함을 얻었지만, 준비하던 프로젝트들이 제작 연기되거나 무산됐다. 2007년 말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을 만났으나 근 2년 동안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일주일도 쉬어본 적 없는 복 많은 영화인”이었다는 박대희 프로듀서는 제작부원 꼬리표를 떼자마자 “시련이 찾아들었다”고 말한다. “이참에 아내와 아이 데리고 외국에 다시 나갈까 고민을 여러 번 했죠.” <방자전>이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남자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10년 전 그에게 충무로는 그저 ‘견학코스’였다. 영국에서 저널리즘과 영화이론을 공부한 그는 박사 과정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광복절특사> 제작부 일을 하게 됐다. “이론만 파고들다 보니 현장이 궁금하잖아요. 사돈에 팔촌까지 다 뒤져봐도 주변에 영화인이 없어 막막했는데, 알고보니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약국 손님 중 한분이 강우석 감
[박대희] 한국영화 제작의 구심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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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몇 십분 일찍 만났고, 주변엔 사람들이 많은 터였다. 인터뷰를 앞두고 <밤과낮>을 머릿속에서 복기해보긴 했지만, 성남(김영호)의 꿈속에 난데없이 침입한 여자의 얼굴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베를린영화제 때의 사진 한장을 발견했는데, 멀리서 똑딱이로 찍은 것이라 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카페 느와르>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대단한 우연이라고 말하긴 좀 뭣하다. 미술학교 보자르에 입학하기 위해 파리에서 어학원을 다니던 정지혜가 홍상수 감독을 만난 인연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선배가 <밤과낮> 스탭으로 결합하면서 주어진 오디션 기회. “그냥 재밌을 것 같아” 응했고, 친한 친구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난 여자의 반응을 “무덤덤하게 연기해서” 합격했다. “대본이 아침에 나오잖아요. 불안한 상황에서 대본을 외우고, 슛 전에 떨면서도 그
[정지혜] 비현실적인 개성을 응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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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리스>의 아사노 다다노부를 연상시켰다. 백승빈 감독의 <장례식의 멤버>를 촬영하던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고, 19살에서 20살로 넘어오던 무렵 이주승의 얼굴에 이미 그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배어 있었다. “난 신이거든. 죽음의 신. 나를 통해 가는 길은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이도다. 단테의 <신곡>, 그게 내 얘기야,” 자신이 만난 세명의 가족에 관한 소설을 쓰는 소년, 죽음을 예견하는(혹은 미리 계획한) 소설을 끝마치고서 자살하는 희준. 세 가족이 각자 필요로 했던 무언가로,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던 어떤 존재로 그는 매순간 바뀐다. 희준은 거의 웃지 않은 채 서늘한 눈매와 그늘을 드리우는 입술로 그렇게 위선적인 삶의 한켠에 서성거리다가 몸을 던졌다. “희준이가 생각하는 대로 영화가 흘러간다. 희준이는 상대방의 약점만 취하여 그에 맞는 주제를 끄집어내며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걸 다 알 순 없다.
[이주승] 고집스럽고 서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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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서는 좀처럼 초조해하지 않는 배우다. 서울예대 연극과 2학년 시절인 2003년 MBC 공채 연기자로 선발된 뒤로 지금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바탕을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김효서는 드라마 조·단역을 통해 경험치를 쌓았고, 대학로에서 기본기를 다시 닦았다. 어린 나이에 깜짝 인기를 모으며 두둥실 떠오르는 다른 배우들을 곁눈질하기보다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효서에게 2010년은 그렇게 다져놓은 바닥 위에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리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김종관 감독의 중편영화 <바람의 노래>다. 여기서 그녀는 옛 남자친구와 재회하는 지연을 연기했다. 김종관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 안에서 김효서는 신비로움과 성숙미, 그리고 현실감을 동시에 간직한 여성의 면모를 드러낸다.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또한 김효서의 진가를
[김효서] 김종관 감독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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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들이 모여 졸업작품 품평회를 열었다. 조성희(31) 감독의 <남매의 집>도 졸업작품 중 한편이었다. 시사가 끝난 뒤 누군가는 “망했네”라고 말했다. 다른 동기들은 “형도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위로했다. 반 농담이었지만, 조성희 감독은 수긍했다. “연기는 딱딱하고, 사운드도 거칠고, 편집도 서툴렀고, 미술도 부족했고, A부터 Z까지 허점투성이였어요.” 하지만 바깥 온도는 달랐다. <남매의 집>은 2009년 단편에 주어지는 영예를 싹쓸이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칸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까지 수상했다.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를 만하다. 혹독한 내부 시선도 누그러들지 않았을까. “음, 요즘은 너무 과대평가받았다고들 하세요. (웃음)”
영화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영화의 ‘영’ 자도 몰랐다”지만, 이야기를 비주얼로 묶어내는 훈련만큼은 혹독하게 치렀다.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4년 동안
[조성희] 영화적 울림 이전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