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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안의 가장 큰 이슈는 지원방식의 변화이다.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있었던 사전공모형식 직접지원사업 부분(기획개발지원/마스터영화지원/예술영화지원/독립영화지원)을 스탭인건비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간접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기획개발비든, 독립영화, 예술영화, 저예산상업영화든 구분없이 투자는 알아서 받으라는 것이다. 개발비든 제작비든 알아서 재원을 마련해서 제작만 들어가면 일정 정도 스탭들의 인건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직접지원에서 불거지는 심사문제나 작품 미완성 문제, 지원금 유용 문제를 다 해결하고 스탭인건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생각인 듯하다. 문화부의 현실적인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정말 이것밖에 해결방안이 없었나라는 의구심과 함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케이블과 공중파로 떠나는 작가, 감독, 제작
소통만 있다면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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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영진위의 현재 분위기가 “영화계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이상 영화계와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가질 시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나 영진위에서 작성하여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살펴보면, 2011년 역시 그리 녹록한 미래일 수 없을 것 같다. 예산안이 미칠 현실적인 파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우려, 조희문 전 위원장을 떠나보낸 영진위의 심기일전을 요구하는 기대를 한자리에 모았다.
잃어버린 3년.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영화계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영화 정책의 큰 틀을 잡아나가고 집행하는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강한섭, 조희문 두 위원장을 거치며 방향성과 영화계의 신뢰 모두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이 차례로 불명예스럽게 위원장직을 그만두었다. 모두가 한숨 돌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
심기일전心機一轉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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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류승범의 20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단어다. 20대의 류승범은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게 명확한” 사람이었다. 그 고집은 <품행제로> 촬영 당시 조근식 감독과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류승범은 스탭이 “저렇게 덤비는데 가만 놔둬도 되냐”고 말릴 정도로 치열하게 감독에게 캐릭터를 되물으며 중필이란 인물에 접근했다. 고집은 몰입을 낳았고, 몰입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당시 <품행제로>의 각본을 맡았던 이해영 감독은 현장에서 처음 ‘중필이’를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시나리오에는 원래 중필이에 대한 두 가지 결이 있었다. 봉태규와 함께 있을 때 나오는 껄렁함과 공효진, 임은경과 연기할 때 나오는 쭈뼛쭈뼛함. 그 두 가지 결을 배우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군산 촬영현장에서 승범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가 배우 때문에 생명력을 얻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건 계산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6가지 키워드로 류승범 파헤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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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은 최근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림 앞에 서면 갑자기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거기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인사동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작품을 봤다. 대리석에 사진과 미술을 합쳐놓은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때 갑자기 세상이 빡, 하고 끊기는 느낌이 오더라. 지구상에서 이 시간에, 이 그림을 나 혼자 보고 있다는 느낌. 그 순간이 굉장히 가치있게 다가왔다.”
그런데 류승범이 지금 이 시점에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배우는 최근 연기의 본질을 고민하며 점점 자신의 핵심을 향해 파고드는 중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만끽하는 시간도 있었고, 그 시절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서른이 넘은 지금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생각의 변화들이 조금씩 움트고 있
사랑합니다, 승범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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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를 보다가 문득 놀랐다. 류승범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까지 류승범은 어떤 영화,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나 여기 있다는 존재감을 온몸으로 표출하던 배우였다. 그런데 <부당거래>에서 기자가 본 건 류승범이 아니라 먹고, 때로는 먹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먹이사슬을 대변하는 여러 유형의 등장인물(그는 건설사 회장과 은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검사 주양을 연기한다) 중 한명이었다. 뒤이어 개봉하는 <페스티발>에서도 류승범은 한 동네를 기점으로 서식하는 귀여운 변태남녀 중 한명(인형 오타쿠)으로 등장한다.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나 <만남의 광장>을 생각하면 장면 도둑, 웃음 도둑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극의 이음새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드는 느낌이다. 이해영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류승범은 이제 영화의 한 부분을 장악하기보다 “캐릭터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터득한
사랑합니다, 승범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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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나서 가장 긴 자취를 남기는 것은 하나의 장소다. 함께 걸었던 거리, 영화를 보았던 극장, 커피를 마셨던 카페…. 이별 뒤에도 그곳을 지날 때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떨쳐버리고자 애를 써야 했던 순간들이 있다. <500일의 썸머>는 바로 그 사랑의 장소들에 관한 영화다. 무엇보다 LA라는 도시의 풍경과 정취, 우리가 잘 몰랐던 LA의 근대 건축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무대인 LA 다운타운은 사실 오랫동안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2003년 대대적인 재개발 붐이 일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촬영된 최근의 영화들은 주로 웨스틴 보나벤처 호텔이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아이콘이 된 빌딩들을 스크린에 옮기곤 했다. <500일의 썸머>는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모던의 정서와 낭만을 기록한다. 톰과 썸머가 만난 지 95일째 되는 날, 본격적으로 LA 근대 건축의 면모가 소개
기억의 자극제와 그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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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구도심, 인천역과 청관거리 일부가 이 영화의 중심공간이다. 구도심이라? 화려했던 과거가 연상되지 않는 쇠락한 거리 풍경, 그것은 이 영화의 제작연도인 2001년이나 10년이 지난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에 노출되는 시간의 코드로만 보면 동시대 인천의 공간은 송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자유구역의 초반 개발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작은 것들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던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시선이 인천의 구도심을 향하고 있는 것은 ‘큰 계획’에 대한 조용한 저항의지로 읽혔다. 개봉 초반, 이 영화가 관객 일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은 설정 인물의 성장소설적 구성이 강하게 다가온다는 인상이 짙었던 까닭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작은’ 영화는 초반 부진을 털고 세간의 화제작으로 반짝 떠오른다. 이 영화 얘기가 인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 급기야 공직자들이 대거 착석한 가운데 인천에서 재개봉되는 해프닝을 겪는다.
소녀들의 우울한 잿빛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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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으로 <건축학개론>을 준비하면서 영화 속 ‘좋은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고 또 건축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이기보다 반대의 경우로 작용해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를 논하기 전, 한국에서의 집은 본연의 가치를 잃고, 교환가치로만 인정받아왔다. 좋은 벽지가 곧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해주는 세상. 왜곡된 가치는 영화에 그대로 적용됐고, 화려한 치장이 곧 좋은 영화 공간으로 받아들여져왔다.
인상적인 공간을 구현한 작품으로 내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꼽는 이유는 그래서 명확해진다. 두 작품의 공간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서가 숨쉰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자고 있는 정원(한석규)의 장면. 햇빛이 비치면서 그가 누워 있는 바닥의 마루 결이 살아 있는 공간. 또 정원이 마당에서 파를 다듬을 때, 하수구로 들어가는 물을 따라잡는 클로즈업
그 남자가 사는 곳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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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007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는 이 물음에 각각 다른 답을 하고 있다. 007 시리즈가 즉물적이고 유려한 선형적인 형태와 은색 톤을 주조로 한 기계미학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 건축의 순백을 유쾌함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배트맨> 시리즈는 시카고 창으로 대표되는 고층 빌딩군과 그 그늘로 펼쳐지는 포스트모던 클래시즘 건축의 우울을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는 모두가, 모든 것이, 유쾌하다. 건물의 창도 유쾌하고, 소파도 유쾌하며, 가장 은밀해야 할 첩보부의 사무실도 창은 없지만 전체가 알루미늄이나 제물치장 콘크리트의 순수함으로 빛난다. 가장 음침해야 할 악당까지도 순진한 유쾌함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결벽증을 성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 유쾌함을, 이 순결함을 오염시키는 존재가 바로 제임스 본드다(그래서 나는 악당 편이 된다). 007 시리즈에서 건축은, 모더니즘의 영원불멸을 구가한다. 반면에 <배트맨>
모더니즘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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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어느 늦은 겨울밤, 작업실에서 몇몇 친구와 함께 옹기종기 담요를 둘러쓰고 비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듯 거친 화질과 음질을 구현하는 영화 한편이 시작됐다. 제목은 <시계태엽 오렌지>.
난 당시 건축과 3학년 학생이었다. 뭔가 세상은 건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믿었던,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시기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시선도 그랬다. 영화의 얼개와 건축의 프로세스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영화 속 공간이 설계 작업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훌륭한 영화도 언어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자막이 없었기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늦은 시각의 압박까지 겹치는 바람에 나는 초반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환청처럼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갑자기 정신을 확 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이 고급주택의 장면이었다. 마치 처참한 강간신을 적나라하게 보이고자 설계한 것
잠이 확 깨는 ‘화면발’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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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를 설계할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처음으로 데려간 꿈속 공간은,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닌 꿈속, 즉 가상공간이라는 기대답게 중력을 무시한 엄청난 도시로 표현된다. 아리아드네에게 설명하는 ‘펜로즈의 계단’뿐만 아니라 ‘킥’, ‘토뎀’, ‘투영체’와 같은 용어까지, 아니 ‘미로’라는 단어까지, 이 영화는 여태껏 상상하지 못했던 가상공간적 볼거리로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그러나 총상당한 피셔를 위해 다시 한번 꿈의 아래 레벨로 간 곳, 바로 코브가 부인 멜과 함께 50년 동안 만들었다는 도시는 사람이 배제된 적막감으로 사이버 이미지를 만들 뿐이다.
사실 도입부에서 그려진 꿈이라는 가상공간은 전제된 상상력답게 그 가능성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현실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 되어버린 설원 요새까지의 가상공간은 언뜻 사이-파이(Sci-Fi)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무중력을 호텔 복도에 펼쳐 놓았을 뿐이고 사이토를 구해와야 할 림보와 같은 매력적인 공간표현마저 너무도 평이하게 그려졌으니 말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진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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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기억 속의 첫 <샤이닝>은 굉장히 어두운 영화였다. 몇 차례의 비디오 카피의 결과물이 낡은 프로젝터의 뿌연 조도를 통해 영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 오버룩의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나오는 피가 복도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정말 어둡고 검게 느껴졌다. 잭이 도끼를 들고 아들 대니를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쫓아가는 미로공원의 장면은 너무 어두워 스테디캠의 존재감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새까만 장면이었다. 그 이후 다시 보게 된 좋은 화질의 <샤이닝>은 시각적으로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오버룩 호텔의 곳곳은 귀신이 나타날 때도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조명 아래서 플랫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밝은 조도의 영화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 <샤이닝>은 아주 어두운 공간감을 보여준 영화라고 기억된다. <샤이닝>은 요즘의 공포영화들이 과도한 어둠을 통해 표피적인 어둠을 추구하는 데 비해, 어떤 외부의 소음도 차단된 적막의 고립
텅빈 호텔이 토해내는 지독한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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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는 회화사에서 주로 간송학파를 중심으로 널리 회자되어 온 것이지만, 진경건축이나 진경영화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실제 컨텍스트를 창작의 배경으로 삼는 태도를 가리키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진경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경 창작인인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서 또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도시라면 으레 있을 법한 산비탈의 한 동네. 감독의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아파트처럼 하나도 특이할 것 없는 장소다. 하지만 장소와 스토리가 갖는 관계의 수상한 점성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높아만 간다. 도준 엄마에게 진태가 한 말, “동네가 이상해. 꼭 연극 무대 같아”는 그 끈끈함에 대한 결정적 표현이다. 그리고 사건의 단서 또한 좁은 골목길에서 불편하게 붙어 있는 건물간의 교차하는 시선 속에 존재한다. 결국 그 이야기는,
모든 동네에는 전설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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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2회를 맞이했다. 11월11일부터 오는 17일까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영화를 통해 건축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국내외 현대 건축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마련됐다. 건축은 사회와 역사, 문화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하나로 어우르는 매개로 존재한다. <씨네21>은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제시한 건축과 스크린의 상관관계를 영화 속 공간과 캐릭터로 규정해 보았다.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 스크린 속 공간은 이 가상의 세계를 현실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이다. 공간을 분석하는 순간, 캐릭터는 프레임 안에서 실제의 인물로 둔갑한다. 영화 속, 인물이 존재하는 각각의 점들을 연결하는 순간, 그를 규정할 이유가 생기는 것은 물론, 그의 행동, 그의 사정을 모두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거대한 도시도, 거리의 풍경도, 건축물도, 또 가상으로 만든 미래의 모습도 모두 영화 속 공간에 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크린 속에 구현된 공간에 관한 좋은 예는 무엇일
프레임 안에서 탄생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