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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동명 논픽션 소설 <고모라>는 유럽에서 살인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폴리, 그곳을 근거지로 삼은 마피아 조직 카모라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잠입 취재하여 이 범죄 세계의 실상에 관한 글을 썼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론 베스트셀러를 냈다. 마테오 가로네가 이 소설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자 이번에는 영화계에서도 파란이 일어났다.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예컨대 “<고모라>는 가로네가 이전에 몰두했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야심적인 프로젝트”(<시네아스트>)라는 평가를 얻어냈고 단지 야심뿐 아니라 영화의 수준도 높게 평가받았다. 마테오 가로네에 관한 현재의 평가가 지나친 감이 없진 않지만 그는 지금 전세계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자리에 이미 올라섰다. “나폴리의 폭력적인 세계 제국으로의 여행”이라는 부제로 불리기도 하고 “로셀리니 갱스터 무비”로 불리기도 하는 <고모라>의 감독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관
마테오 가로네를 영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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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1월18일(화)부터 2월27일(일)까지다. 국내의 유명 영화감독 13인과 평론가 2인 그리고 음악인 2인이 뽑은 영화들이 상영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우정의 이름으로 각자가 보유한 영화들을 보내왔다. 지난해 타계한 에릭 로메르 추모전과 미지의 감독 마테오 가로네 특별전도 함께 열린다. 한겨울을 녹일 만큼 풍성하다. 그중 오랜만에 상영하거나 새롭게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품들 위주로 소개한다. 매년 초 우리를 찾아오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기대된다. 지금부터 감상해보자.
개막작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Quatre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에릭 로메르 │ 1987년 │ 95분 │ 프랑스 │ 컬러 │ 35mm │ 12세 관람가
시골 소녀와 도시 소녀가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다. 흑발의 시골 소녀의 이름은 미
거품키스보다 달콤한 씨네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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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좋아지셨네요.” 사진을 촬영하던 도중 오계옥 사진기자가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몸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어제는 새벽 3시까지 폭탄주를 마셨다”고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이끼> 때와 확실히 다른 얼굴이다. 그는 “<글러브>를 찍을 때부터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이상하게 본다. 예매율도 확인 안 하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도 않으니까. 이런 인터뷰도 거의 안 하려고 한다. 할 말이 별로 없다. (웃음)” 안 그래도 빠르기로 정평이 난 그의 대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촬영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글러브>는 내 영화 중 손님이 가장 안 드는 영화일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마음을 비웠다는 얘기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느낄 거다. 내가 다시 신인일 때로 돌아간다고 했었거든. <강철중: 공공의 적1-1>을 할 때부터 내 영화가 왜 이렇게 맛이 가나 싶었다. 계속 관객을 자극하고 놀래키고 쓸데없
[강우석] “어쨌든 영화는 다이내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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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이후 강우석 감독의 캐치프레이즈는 ‘언제나 도전’이었다. <공공의 적2>와 <한반도> <이끼>에 이르기까지 규모의 확장과 장르에 대한 시도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강우석은 “이번에 안되면 나는 끝”이라거나, “이번이 가장 가혹한 시험대”였다고 말해왔다. 17번째 작품인 <이끼>는 그중 가장 가혹한 실험이었을 것이다. 강우석 감독은 지난해 2월 <이끼>의 마무리 촬영을 하던 도중 18번째 영화 <글러브> 연출을 발표했다. <글러브>는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장애와 스포츠를 통한 휴먼영화라는 점에서 <글러브>는 그의 최근작과 멀리 있는 듯 보였지만 지난 1월10일 공개된 <글러브>는 시험에서 해방된 강우석 감독이 자신의 주무기를 마음껏 펼친 영화로 드러났다. 도전을 외치기 이전의 영화들, 다시 말해 웃음과 감동을 주된 테마
강우석의 직구 승부, 이번엔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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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미친 여자.’ 춤과 음악, 그리고 혁명의 열정만 맛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정호현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쿠바의 연인>이 아니라 <쿠바에 미친 여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쿠바는 정호현 감독에게 뜻밖의 연인 오리엘비스(오로는 그의 애칭)을 안겼다. 낙천과 긍정의 나라 쿠바에서 오로를 만나면서 정호현 감독의 카메라는 이국적인 풍광만을 담을 순 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담는 건 현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13일 개봉하는 <쿠바의 연인>은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국적도, 피부색도, 나이도 다른 두 남녀가 벌이는 애정행각은 국경을 넘어선 뜨거운 사랑이 존재함을 증명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차별받지 않고 대우받을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를 따져 묻는다. 한국과 쿠바를 오가며 벌이는 두 남녀의 도발적인 사랑은 그러니까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자신들의 사랑을 내걸고 체제도, 국가
차별받지 않는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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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단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건 분명하다. 그해의 황금종려상은 아리 폴만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에 돌아가야만 했다. 아리 폴만은 황금종려는커녕 아무 상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이제 그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는 폴만의 차기작 <더 콩그레스>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다.
<더 콩그레스>는 폴란드 SF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미래학적 회의>(The Futurological Congress)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우리에게 스타니스와프 렘은 타르코프스키와 소더버그가 연출한 <솔라리스>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지만, 렘의 또다른 장기는 국내 출간된 <사이버리아드>처럼 끝내주는 풍자의 블랙코미디다. <미래학적 회의>도 마찬가지다. 향정신성 마약이 횡행하는 현대의 어느 도시에서 반정부 세력의 폭동이 일어난다. 이를 피해 두 세력의 회의가 열리는 호텔 아래 하수구에 숨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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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이라면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해피엔딩은 없다. 심지어 신작 제목이 ‘우울증’을 의미하는 <멜랑콜리아>라면 해피엔딩은 약에 쓰려도 없을뿐더러 정말로 무시무시한 엔딩을 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라스 폰 트리에는 그간 신작이 “사이콜로지컬한 재난영화”라느니 “세상의 종말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라느니 떠들어댔다. 재난과 종말이라는 단어가 메타포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멜랑콜리아>는 정말로 지구가 종말하는 이야기다. 라스 폰 트리에가 유일하게 공개한 저 위의 말도 안되는 스틸 좀 보시라.
영화의 주인공은 자매다. 하나는 우울증에 걸린 여자(커스틴 던스트), 또 하나는 평범한 성격의 여자(샬롯 갱스부르)다. 우울증에 걸린 자매가 결혼식 이후 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안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지구는 멸망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아예 영화의 첫 장면이 지구의 종말이라고 최근 스웨덴에서 열
사상 유례 없이 괴로운 지구 멸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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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우울하다. 난니 모레티의 신작 <하베무스 파팜>은 우울한 교황, 혹은 교황의 우울함을 다루는 도발적인 영화다. 바티칸이 있는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교황을 풍자하는 영화라니, 이야기는 더욱 도발적이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라틴어)은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선포하는 선언문을 말한다. 교황이 죽자 세계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콘클라베, 즉 새로운 교황을 선출한다. 새롭게 당선된 교황(미셸 피콜리)은 막상 자신이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의 종교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시티라는 독립된 국가를 다스리는 세속 지도자라는 위치를 자각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시름시름 앓는다. 교황의 근심은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바티칸은 교황을 치료할 정신과 의사(난니 모레티)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이제 정신과 의사는 교황을 도와서 교황의 우울장애를 치료해야 한다.
바티칸 시티와 시스틴 예배당 촬영 거부
우울한 교황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
특명! 교황의 우울증을 치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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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등 잇단 누벨바그 감독들의 비보와는 반대로, 알랭 레네는 17번째 장편영화 <잡초>(2009)로 노장의 힘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흔살에 가까운 그는 <잡초>를 소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10년부터 다시 신작 <당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 착수했고, 온갖 언론과 평단의 환호성을 들었다. 2011년 초 현재, 레네는 언론에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면서 아주 비밀스럽게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며 프랑스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개봉일은 미정이다.
유리디스와 오르페의 사랑과 질투
프랑스 언론에 공개된 제한된 정보에 따르자면, 캐스팅상의 큰 이변은 없어 보인다. 그의 단골 배우 사빈 아제마, 피에르 아르디티가 여전히 출연하고, <잡초>로 레네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된 마티외 아말릭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알랭 레네는 홀로 시나리오 쓰기를 워낙 싫어해 그간 마그리트 뒤라스, 알랑 로브 그리에 등 유명 작가와 호
누벨바그는 살아있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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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이름이 즐비하면 안이한 명단이라 불평하고 신인이 많으면 차림표가 빈약하다고 투덜대는 것이 국제영화제 구경꾼들의 간사한 입맛. 2010년 칸영화제 선정작이 발표되기 무섭게 평론가들은 2011년이야말로 풍년이 되리라는 조기예보를 성급히 제출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장편 <내가 사는 피부>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위험한 메소드>,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 다르덴 형제의 제목 미정 프로젝트와 나란히 2011년 칸영화제를 흥청이게 만들 후보로 꼽혔다.
프랑스 작가 티에리 종케의 소설 <땅거미>가 원작
구구절절한 비련을 히치콕식 스릴러로 푼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에 이어 알모도바르가 예고한 ‘장르’는 공포(terror). “비명이나 경기(驚起)가 없는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는 부연 설명에 마음을 놓을까 싶다가도 “과거 나의 어떤 영화보다 심한(h
서늘한 공포의 메스를 든 성형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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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서 기적은 항상 상실 이후 찾아왔다. <아무도 모른다>의 버려진 아이들이 만들어낸 애절한 드라마, <걸어도 걸어도>의 상처를 머금은 가족의 일상은 아픔 이후를 지그시 응시한 고레에다의 카메라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기적>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 가족의 이별 이후를 그린다.
부모의 이혼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된 두 형제는 신칸센의 규슈지역 개통 소식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재회 계획을 꾸린다. 개통 첫날 하타카에서 남하하는 열차 ‘츠바메’와 가코시마에서 북상하는 열차 ‘사쿠라’가 순간 교차한다는 뉴스에 머리를 굴린 것이다. 두 아이의 계획에 주변 사람들이 말려들고 한번 이별을 맛본 가족이 서로의 삶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열차가 통과할 때, 열차가 교차할 때의 두근거림을 영화 속에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철도 마니아로도 알려진 그는 “한 열차의 탄생과 사라짐 속에 담긴 일본 사람들의 추
철도마니아가 신칸센 규슈선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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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만든 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한때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웠던 단편 <욧짱>을 찾아 나섰다. <욧짱>의 무대인 오사카로 가 당시의 종적을 되짚으며 단편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 마음에 품었던 영화와 내가 다소 멀어진 건 아닌가 고민했다”. <마을의 부는 산들바람>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은 해였다.
그리고 4년 뒤.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1960년대 전공투 시대의 언론인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마이 백 페이지>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평론가 가와모토 사브로의 논픽션 <마이 백 페이지 어느 60년대 이야기>가 원작으로 시대가 격변하던 시기 변화를 꿈꾸던 두 청춘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쓰마부키 사토시가 이상에 불타는 신입기자 사와다를 연기하며, 마쓰야마 겐이치가 사와다와 교류하며 그를 자극하
60년대 전공투 시대의 열기를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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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순지는 종합예술가다. 그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고 동시에 소설을 쓰며 작곡도 한다.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크린과 동시에 사진집 혹은 에세이 형태로도 공개됐다. 국내에선 영화감독이란 크레딧이 유독 크게 알려져 있지만 이와이 순지는 좀더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사실 그의 대표작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인터넷 소설이 출발점이었고, 아오이 유우의 출연작으로 인기를 끈 <하나와 앨리스>는 한 기업의 광고가 시작이었다. 이와의 순지는 영화란 매체를 통해 세계를 사고하는 감독이라기보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상을 글과 음악 그리고 영상을 통해 완성하는 예술가에 가깝다. <하나와 앨리스>를 끝내고 이와이 순지가 임한 작업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휴대폰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이었다. 그는 아미노 산이란 펜 네임도 갖고 있다.
아이돌 뮤직비디오, 각본 집필, 드라마 제작에 몰두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종합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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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개점한 2011년 중화권 영화계의 키워드는 바로 ‘거장의 귀환’과 ‘무협’이다. 앞서 소개한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를 비롯해 서극, 허우샤오시엔, 진가신, 지아장커 감독이 무협 블록버스터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않아 2011년 개봉이 불확실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 거대한 이름들이 동시에 대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중국영화계의 엄청난 활력이 느껴진다.
서극 감독은 <신용문객잔>의 3D 리메이크작인 <용문비갑>을 준비하고 있다. 1992년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등 당대의 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한 <신용문객잔>을 제작했던 서극은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모양이다. 캐릭터와 줄거리 모두 대폭 수정할 거라 알려졌으나, 중심인물과 플롯은 원작과 같다. 명나라 장수 주유안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환관 인내시의 군대와 용문 여관에서 대적한다. 주유안은 환관 세력에 맞서기 위해 여관의 매혹적인 안주인
허우샤오시엔이 만든 무협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