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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용의자를 ‘배우’라고 부르는 것, 경찰 내에서의 전문용어나 ‘경찰대 라인’에 관한 얘기, 그리고 병맥주를 생맥주 따르듯 하는 강 국장(천호진)의 모습 등 치밀한 조사가 엿보인다.
=‘배우’라는 표현은 박훈정 작가의 각본에 있었던 말인데 그런 식으로 원래 있던 것과 내가 더한 것 등이 섞여 있다. 내가 더한 것에도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과 창작한 게 있다. 가령 미행당하는 걸 알고는 ‘자석 붙었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들끼리의 전문용어처럼 느껴지지만 그냥 내가 지어낸 말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정보부(the Circus) 같은 존재랄까. 국장이 병맥주를 치이익 부어 마시는 건 실제 형사들과 만나서 보고 배운 거다. 천호진 선배는 “그냥 부어 마시지 왜 그래?” 그러면서(웃음) 연습을 좀 했는데 ‘탁!’ 뚜껑을 따는 장면을 편집해서 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거 기술적으로 제대로 하면 거품이 안 나거든. (웃음)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그냥 저렇게 가는 게 재밌겠다고 해서 롱
[류승완] 액션 없이 찍으려니 사실 미치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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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싸움. 류승완의 <부당거래>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그의 서명과도 같은 액션신들은 완전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듯 작정하고 덤벼든다. 우리가 흔히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향해 기대하는 것, 장르나 액션이라는 축에 기대어 예상하는 것, 그리고 영화광 감독의 작품을 헤집기 위해 여타의 ‘한 핏줄 영화’들을 마구 떠올려보는 것 그 모두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나 있다. 그의 이전 영화들과 명쾌하게 이어지는 교집합이라면 류승범이라는 배우 정도랄까. <부당거래> 안에는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1994)도 있고 봉준호의 <마더>(2009)도 있지만 아련하게 홍형숙의 <경계도시2>(2009)의 느낌도 배어난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원본을 찾는다는 행위는 무모하다. 오히려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주할 때 많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부당거래>가 이전 류승완의 영화와는
거침없이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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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나는 길이라고 해서 늘 경치가 똑같은 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것일까.’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2008)는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시대의 이야기다. 전쟁은 계약을 맺은 전투기업에 맡겨지고, 사람들은 게임 중계를 보듯 TV를 통해 전황을 지켜본다. 그들에게 전쟁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감을 얻고, 죽어가는 이들을 동정하거나 지켜볼 뿐이다. 실제로 전투를 담당하는 이들은 킬드레라 불리는, 아이에서 성장이 멈추어버린 존재들이다. 전장에서 죽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그러면서도 어른이 되지 않는 가련한 존재. 모리 히로시의 6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카이 크롤러>는 그 킬드레의 비애와 의지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의 <공각기동대>에서 2004년의 <이노센스>에 이르기까지, 오시이 마모루의 관심은 실재를 인지할 수 없는 현실, 현실을 압도하는 가상
노장은 말한다, 그래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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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마틴 스코시즈가 창조한 100년 전 씬시티
<보드워크 엠파이어> Boardwalk Empire
| 출연 스티브 부세미, 마이클 피트, 켈리 맥도널드, 마이클 섀넌 / 채널 <HBO>
2006년, <소프라노스>의 후속작을 물색하던 마크 왈버그와 스티브 레빈슨은 <소프라노스>의 작가 테렌스 윈터를 찾아가 <Boardwalk Empire: The Birth, High times, and Corruption of Atlantic City>라는 책을 내밀었다. “이 책이 시리즈가 될 만한지 한번 봐줘요.” 그러고 나서 한마디 보탰다. “만약 이 시리즈가 진행되면 마틴 스코시즈가 같이 할 거예요.” 그리고 2010년 가을 TV시리즈로 탄생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금주령이 시행됐던 1920년부터 10여년간 애틀랜틱시티를 주무른 인물 너키 톰슨(스티브 부세미)를 구심점에 놓는다. 주(州) 회계사인 너키는 앞에서는 금
[2010 미드] 가을 시즌 미드 신작 9편 -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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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는 여전히 범죄와의 전쟁 중
미국드라마 장르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가 수사물과 법정물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2010년 가을 TV에서도 범죄없는 도시를 향한 경찰과 법조계의 노력은 꾸준히 이어질 예정이다. 새 시즌으로 컴백한 드라마들은 제외하고 따끈따끈한 새 드라마들만 소개해본다.
“LA에는 할리우드 스타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라고 취지를 설명한 <로 앤 오더>의 LA 스핀오프(<로 앤 오더: 로스앤젤레스>)는 테렌스 하워드, 앨프리드 몰리나 등 영화배우를 기용해 선악의 경계가 분명한 클래식한 수사물을 내놓았다. 역시 경찰드라마인 <하와이 파이브 오>와 <블루 블러드>로 신작 중에서는 선두를 달리는 <CBS>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일하는 두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물 <디펜더스>를 내놓았다. 짐 벨루시와 제리 오코넬이 절친한 로펌 파트너로 분했고 <더티 섹시 머니> <저스티파이드>의 내털
[2010 미드] 가을 시즌 미드 신작 9편 - 수사·법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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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글로벌 시대, 변방의 전화소리
<아웃소스드> Outsourced
| 출연 벤 라파포트, 아니샤 나가라잔, 디드리히 베이더, 리즈완 만지 / 채널 <NBC>
“돌아갈 곳이 없어요, 여기서 성공해야만 한다고요!” 비장한 이 선언은 캔자스에서 뭄바이로 근무지를 옮긴 ‘중미엽기쇼핑몰’의 콜센터 매니저 토드(벤 라파포트)의 대사다. 저렴한 통화요금과 임금을 내세운 인도가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 기지로 각광받은지도 어느덧 10년.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근무지를 옮겨버린 사장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학자금 대출이 4만달러”가 남은 그는 군소리없이 뭄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겉과 속이 다른 현지 부매니저 라지브를 비롯해 한번 입을 열면 다물 줄을 모르는 굽타, 카스트의 가장 하층민이라서 제대로 말하지도 웃지도 못하는 마두리, 통신판매 대신 폰섹스를 하는 맨미트(이름이 ‘인육’이라서 코미디의 소재가 됨)까지, B급만 모아놓은 직원들을 데리고 벤이 금의환향할 수 있을
[2010 미드] 가을 시즌 미드 신작 9편 -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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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액션 없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긴장감
<루비콘> Rubicon
| 출연 제임스 배지 데일, 제시카 콜린스, 알리스 하워드 / 채널 <AMC>
자동차 추격신, 드라마틱한 격투장면이 있어야만 흥미로운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루비콘>은 <매드맨> <브레이킹 배드> 등 탄탄한 구성력으로 승부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AMC>의 신작 드라마다. ‘한번 건너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강의 메시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 작품은 장인의 죽음 뒤에 거대한 집단의 음모가 있음을 깨달은 정보 분석가가 그들에 맞서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API라는 국가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암호해독가 윌 트래버스(제임스 배지 데일)는 어느 날 주요 일간지의 십자말풀이 퍼즐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정보분석팀장인 그의 장인에게 알리지만 이를 상부에 보고한 장인은 며칠 뒤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윌은 장인이
[2010 미드] 가을 시즌 미드 신작 9편 -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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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여년 만에 귀환한 미국판 <수사반장>
하와이 파이브-오 Hawaii Five-O | 출연 알렉스 오러플린, 스콧 칸, 대니얼 대 김, 그레이스 박 / 채널 <CBS>
“체포해, 대노.”(Book’em, Danno) 1970, 80년대 미국 전역을 강타했던 이 대사를 올가을부터 다시 들을 수 있게 됐다. <하와이 파이브-오>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범죄와 사투를 벌이는 특별수사팀 경찰관 네명의 이야기를 다루는 수사물이다. 이 작품은 스티브 맥가렛(알렉스 오러플린)이라는 해병대 출신 요원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향 하와이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의 배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부임한 경찰이자 파트너 대니(스콧 칸·애칭 ‘대노’로 더 유명하다), 아버지의 동료이자 전직 경찰 친 호 켈리(대니얼 대 김), 그의 동생이자 신참 경찰 코나(그레이스 박)가 맥가렛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동명의 7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를 리메이
[2010 미드] 가을 시즌 미드 신작 9편 -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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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많은데 먹을 건 부족한 밥상. 올가을 방영을 시작하는 미국 드라마의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지난 시즌 <글리>와 <모던 패밀리> <굿 와이프>가 이뤄낸 성취를 이어받을 유망주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가을에는 제작자들의 소심한 선택이 신작들을 몇개의 비슷한 흐름으로 인도했다. 누구나 제2의 <로스트>를 꿈꾸지만 어떻게 그 위치에 닿을지 알지 못하는 형국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말처럼 이번 시즌에는 주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극의 안정을 꾀하는 작품들이 종종 눈에 띈다. <앨리어스>의 정서를 닮은 스파이물 <언더커버스>, 수사물 <로 앤 오더>의 갈래로 볼 수 있을 <체이스> <블루 블러드>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 안정이 독이 된 사례도 있다. 도덕의 경계를 넘나드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웃로&
[2010 미드] 부실하다고? 그래도 진수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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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바쁜 배우였다. 드라마 <위대한 계춘빈>,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옥희의 영화>를 완성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한 스모키 화장 뒤에 숨어 꽤 강렬한 여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진상’ 캐릭터로 등장하는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가 곧 개봉하며,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역시 개봉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개봉하는 거, 아까워 죽겠어요. 이러면 내년에 할 게 없잖아. (웃음) 천천히 개봉하면 좋을 텐데요.” 그 사이에 베니스국제영화제도 다녀왔다. 프레스한테만 제공된, 그래서 정작 게스트였던 본인은 선물받지 못한 영화제 공식 가방이 너무 탐이 나 결국 광장시장에서 비슷한 빨간색 천을 끊어왔다고 했다. “제가 그냥 만들려고요. (웃음)” 나한테 그 가방이 있다면 주저없이 선물해주고 싶었던, 올해 가장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보석처럼 내내 아껴주고 싶은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잊어버
[정유미] 이상한 나라의 女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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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 Day>
시놉시스 지공, 한규, 용걸, 승범, 상우는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턴 각자의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건달 형을 둔 지공, 부유한 검사 아버지 밑에서 무기력하게 성장한 한규, 재능없는 대학 야구선수 승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생활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는 용걸,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다 재수를 포기하고 군입대를 결심한 상우. 상우의 입대 직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다섯명은 사소한 실수로 유치장에 끌려간다. 유치장에서 보내는 하룻밤, 이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청춘드라마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부조리한 사회 안에서 청춘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풀어놓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청춘드라마가 애써 이야기하지 않았던 지점, 그곳을 조금 다르게 짚어보고 싶었다.”(최정열)
<바비>
시놉시스 미국의 내과의사 스티브는 어린 딸
또다른 상상력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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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인기배우 우주현이 자살한 뒤, 그녀의 출연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로맨스 조는 영화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낙향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내려간 고향에서 그는 일본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년과 마주치고, 소년의 엄마가 자신의 첫사랑 초희였음을 알게 된다. 한편 새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시골에 온 유명인사 이 감독은 심심해서 부른 다방 레지로부터 로맨스 조의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의 여정과 결말에 대해 듣게 된다. 이 감독은 로맨스 조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욕심내지만, 이야기는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로맨스 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데 글이 막혀 괴로워하고 있던 도중 다른 손님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들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한테는 이야기가 필요하구나. 정보든 소문이든, 지적인 부분이든 끊임없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황은 다를지
[이광국] "의지가 있다면 방법도 있다" 홍상수 감독님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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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낮술> 때문이었다. 2009년 임순례 감독은 노영석 감독의 ‘1천만원 프로젝트’ <낮술>을 관람한 뒤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템도 좋고 독립영화적인 정신도 좋은데, 감독 혼자서 게릴라식으로 만들다보니까 기술적 완성도 문제라든가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이 아쉽더라.” 1996년 데뷔작 <세 친구>를 삼성영상사업단의 신인감독 제작 지원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임순례 감독은 “요즘 관객의 취향도 그렇고 배급 시스템 역시 지나치게 양극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신인감독들에게 연민을 갖고 있었다. “모든 영화들이 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일 순 없는 거다.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다운 성격을 유지하면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넓히는 일에 뭔가 도움을 줄 순 없을까?” 소박한 아이디어는 씨네21i의 콘텐츠기획팀 양동명 부장이라는 고리를 통해 씨네21(주)에 연결됐다. 양동명 부장은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응원합니다! 영화의 새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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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어느 교사의 섬뜩한 고백
<고백> Confessions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 출연 마쓰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개봉 11월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습니다.” 봄방학이 시작하는 날, 여교사 모리구치는 교단에서 충격적인 개인사를 고백한다. 더 큰 충격은 그녀의 다음 고백에서 온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범인에게 자기만의 응징을 가하기로 결심한 모리구치는 범인의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넣었다고 말한다. 이에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올해 6월 일본에서 개봉해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세우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일본 출품작으로 선정된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여교사와 제3자 입장의 학생, 범인과 범인의 부모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결을 효과적으로 살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불량공주 모모코>를
불어라 칼바람, 외화의 공습이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