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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젊은이의 양지>는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작품으로 드디어 만인의 연인, 세기의 미인으로 떠오른다. 야망과 비애로 가득 찬 한 남자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티없이 맑은 여인, 그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역할이다. 영화사상 가장 그윽한 눈매를 지닌 남자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시선을 앳되고 환한 미소로 찰랑거리듯 응시하는 그녀의 연기가 더없이 인상 깊다.
<자이언트> Giant 1956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연인이었다. 말하자면 신사와 반항아 혹은 듬직하고 다정한 남자와 신비하고 거친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황야를 일구는 두 남자의 사랑과 야망의 서사시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결국 그 두 남자가 끝
만인의 연인에서 정신병 환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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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할리우드의 마지막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절대적인 미의 대명사였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지난 3월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살. 테일러의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은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정작 본인은 싫어했다) 테일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테일러가 입원했던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는 그녀의 네 자녀가 모두 모여서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테일러는 2004년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아왔고,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6주간 치료를 받다가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언론은 일본 원전사고나 리비아 공습 등 국제적인 이슈를 젖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죽음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마지막 고전 할리우드의 아이콘에게 표하는 경의였을 것이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부부의 둘째로 태어난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미술상이었고 어머니는 뉴욕에서 배우로 활약했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할리우드 마지막 여왕의 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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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클래리지(Claridges) 호텔에서는 60년째 지구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는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룬 <황당한 외계인: 폴>의 인터내셔널 정킷 행사가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온 50여 명의 기자들이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전날 미리 관람한 이 작품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렉 모톨라 감독
사이먼과 닉의 안목을 믿었지
-각본가이자 주연배우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힘들지는 않았나.
=이번 영화는 <아바타>처럼 자본이 넉넉하지도 않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막 등지에서 촬영해야 하는 작품이라 각본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몇몇 장면은 촬영 중 급하게 바꿔야 했는데 사이먼과 닉이 함께해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그들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미국식 유머와 둘의 영국식
런던에서 만난 괴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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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외계인: 폴>에는 사이먼과 닉 콤비, 그렉 모톨라, 세스 로건 말고도 또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 존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다. 사실 70~80년대 할리우드 SF장르를 오마주하면서 스필버그의 영향력을 드러내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에서 스필버그가 감독한 SF영화라고는 <우주전쟁>밖에 모르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한번 정리를 해보자면 스필버그는 B무비의 협소한 카테고리 속에 머무르던 SF장르를 대중적인 장르로 치켜세운 선구자 중 한명이다. 특히 외계인 장르를 이야기하면서 <미지와의 조우>와 <E.T.>를 거론하지 않는 건 목이 떨어져나가야 할 중죄다. 사이먼과 닉 역시 그 시절 스필버그 영화들에 바치는 일종의 경배로서 <황당한 외계인: 폴>의 각본을 썼다. 장르 팬이라면 외계 모선과의 접선지가 <미지와의 조우>의 마지막 무대였던 와이오밍주의 데블스 타워(사진)라는 걸 알아채고는 극장이 떠나가게 박수를 쳐댈지도
스필버그에 바치는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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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가 돌아왔다.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좀비물과 액션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는 코미디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의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 말이다. 두 사람이 새롭게 비틀고 엎어치기 한판에 도전한 장르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다. 게다가 콤비는 오랜 영국인 동료 연출자 에드거 라이트 대신 주드 애파토우 사단을 끌어들였다. 결과? 끝내준다.
당신은 미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이다. 서부의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서 외계인과 조우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IA가 따라붙는다. 이쯤 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E.T.> 이후 쏟아져나왔던 ‘외계인 조우 장르’(이런 용어는 아마 없을 테지만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 그냥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 그리고 <X파일> 이후 줄줄이 생산된 ‘외계인 음모이론 장르’(물론 이런 용어도 아마 없을 테지만 그
코미디 괴물들 우주를 정복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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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로 성장해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법칙이 있다. 사실 이건 법칙이 아니다. “~는 어렵다”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푸는 문장이 어떻게 법칙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법칙’의 예외는 예상외로 찾기 쉽다. 내털리 우드, 주디 갤런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키 루니, 조디 포스터가 빠진 할리우드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그들의 존재감과 경력은 단순한 예외로 칠 만큼 만만치가 않다. 살아남을 수 있는 아역들은 살아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의 관문을 거치면서 살아남지 못한 배우들 역시 기억한다. 셜리 템플은 30년대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배우였지만, 성인배우의 경력은 결코 아역배우 시절에 견줄 수 없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의 마거릿 오브라이언의 경력은 더 초라하다. 열성팬이 아닌 사람 중 12살 이후의 오브라이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자
태초부터 그들은 작은 성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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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잡지는 아니지만 축구 얘기 잠깐 하자.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정책에 의해 길러진 ‘바르샤의 에이스’ 리오넬 메시는 축구 잡지 <포포투>와 가진 인터뷰에서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기본기’를 필수조건으로 들었다.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길거리 캐스팅’,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다’와 같은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은 아역배우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씨네21>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역배우 매니지먼트사 ‘별사탕’을 찾아 아역배우의 트레이닝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1. 연기 수업은 자기소개, 발성, 포즈, 대사연습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대사연습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속 아역 출연자의 대사 5∼6줄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수업한 내용을 3주마다 발표하는 수업을 가진다. 학부모 김소영씨는 “아역배우의 상당수가 한글을 못 읽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역배우가 대사를
어느 날 갑자기는 옛말, 이제는 길러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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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세명의 아역이 한국과 할리우드 미디어를 뒤흔들었다. <여행자>와 <아저씨>의 김새론과 <해운대>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김유정, 그리고 <킥애스: 영웅의 탄생>과 <렛미인>의 크로 모레츠다. 생각해보면 천재적인 아역배우들이 미디어를 뒤흔든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의 아역배우들에게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
크로 모레츠는 <레옹>으로 아역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찬사를 들었으나 성적인 대상이 되는 걸 견디지 못했던 내털리 포트먼의 경우와도 조금 다르다. 모레츠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역할을 스스로 즐기며 연기했고,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디딤돌이라는 걸 어린 나이에도 잘 이해하고 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제 연기의 벽에 새로운 벽돌을 하나씩 쌓고 있어요. 벽돌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연기도 점점 늘겠죠.” 김새론과 김유정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를 지닌
이 소녀들이 남다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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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기사라면 무릇 그렇듯이 비극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여기 이르게 생을 마감한 아역배우의 리스트가 있다. 지난해 3월 코리 하임이 사망했다. <루카스>(1986)와 <로스트 보이>(1987)로 코리 펠트먼과 한데 묶여 80년대 할리우드의 가장 돈값하는 아역배우 출신의 코리 하임은 마약 중독으로 재활원을 오가다가 결국 사망했다. 코리 펠트먼은 어떻게 됐냐고? 다행히도 그는 죽지 않았다. 대신 싸구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리스트는 끝도 없다. 한국에서도 아역배우는 성인배우로 성장하지 못한 채 경력의 죽음을 맞이하는 특정 배우군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물론 한국은 할리우드가 아니고, 약물 중독과 지나친 스타덤의 고통도 비교적 덜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때 국민적인 꼬맹이었던 ‘순돌이’ 이건주와‘미달이’ 김성은의 성장통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성공적인 아역 출신 배우의 대표적인 사례는 5살 나이에 김기영의
될성부른 떡잎으로 자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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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의 공통점이 뭘까? 답은 간단하다. 내털리 포트먼과 크리스천 베일은 공히 아역배우 출신이다. 포트먼은 <레옹>(1994)으로, 베일은 <태양의 제국>(1987)으로 각각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니 올해 오스카는 성공적으로 성인배우가 된 두 아역배우 출신의 성장을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술과 약물과 실패의 나날’의 준말이었던 아역 출신 배우들이 직업적인 성공을 큰 어려움 없이 쟁취하는 건 분명 21세기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다. 게다가 우리는 <아저씨>와 <킥애스: 영웅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아역배우군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아역은 진화하고 있는가.
13인… 아니 수많은 아해가 질주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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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룩 칸에 관한 한국어 정보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인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http://cafe.daum.net/indiamovie/)이다. 최신 인도영화를 전반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샤룩 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정도로 샤룩 칸 팬이 많다. 샤룩 칸의 출연작을 따라가기만 해도 굵직한 감독이나 배우, 안무가 등 인도영화의 주요 인물들을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인도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저 샤룩 칸을 이정표 삼아 따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인도영화인 <춤추는 무뚜>가 발리우드영화의 대표작이라고 믿는 보통 한국인을 인도영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데는 우선 <데브다스> <옴 샨띠 옴> 콤보가 효과적이다. <데브다스>(Devdas, 2002)는 100여년 전에 씌어진 인도 소설이 원작이며, 그 뒤로 지금까지 수차례나 영화화된 인도식 사랑 이야기의 전형인데,
그가 잠깐만 나와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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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생, 한국 나이로 40대 중반을 넘긴 샤룩 칸은 여전히 인도영화 최고의 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80년대부터 활동한 샤룩 칸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연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지극히 성실한 남성을 연기해왔으며, 그 이미지는 감독 카란 조하르와의 6번째 협업인 <내 이름은 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자 칸의 눈물겨운 여정은, 인도영화 역사상 해외에서 가장 큰 수익을 벌어들이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인도영화의 열렬한 팬인 SF작가 배명훈이 샤룩 칸을 향한 애정을 고백한다.
배명훈 SF작가 <타워> <안녕, 인공존재!>
2009년 8월 어느 날, 미국으로 향하던 인도인 한 사람이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아 미국 공항에서 두 시간 동안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성인 칸(Khan)이 모슬렘 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상
황을 생
샤룩 칸 그가 곧 인도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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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길어올리기>에는 아내인 채령 여사를 비롯해 큰아들 임동준, 막내아들 권현상까지 가족 모두가 총출동했다. 어쩌면 영화 카메라로 찍은 가족사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의 얘기에 따르면 계획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공방 주인으로 나온 채령 여사의 경우 “연출부가 처음부터 농간을 부린 건진 모르겠는데, 출연하기로 한 사람이 안 왔다며 무조건 아내에게 잠깐 출연해달라고 떼를 썼어요. 아무리 남편이라도 내가 그런 걸 강제로 시키고 그러진 않거든요”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채령 여사가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제가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제가 원래 배우를 하던 사람인데 아무 준비도 없이 그렇게 출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출부들이 자꾸 ‘사모님 살려주세요!’ 하면서 내가 꼭 해야 한다고 해야 하니까…”라고 약간은 원망스런 말투로 얘기를 잇는다. “옷도 몸에 딱 맞지 않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하게 됐다”고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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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배우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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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달빛 길어올리기>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들이 더 남았기 때문이다. <천년학>(2007) 이후 ‘101번째 영화’라는 깊은 울림에 답하는 <달빛 길어올리기>는 그 스스로 ‘신인감독의 심정으로 만든 영화’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100이라는 숫자를 채우고 난 다음 박중훈이라는 배우와 드디어 조우했고, 무엇보다 거장의 첫 번째 디지털영화라는 점에서도 질문하고 싶은 것들은 많다. 게다가 수많은 화려한 카메오들의 면면을 보자면 그 101번째라는 기념비를 축복하는 우정의 영화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 속 한지와도 같은 임권택 감독과의 만남은 지난 화요일(3월8일) 늦은 저녁 자택에서 이뤄졌다. 이미 시사회를 끝낸 다음날,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 자신의 새 작품에 쏟아진 호의적인 평가들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씨네21>을 향해서도 “너무 밀어주기식으로 그러면 안되는 거 아뇨”라고 웃으며 그는 조용히 찻잔을 들고 정성껏 답을
‘천년 가는 영화’를 마음으로부터 길어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