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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5천만원이라네요.” 촬영장 한편에서 수군거림이 들린다. 폭포가 담긴 유화가 스탭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방치돼 있는가 싶더니, 얼른 스탭 한명이 다가와 다칠세라 고이 그림을 모셔간다. <돈의 맛> 촬영이 한창인 파주 헤이리 세트장. 오늘 촬영장소는 영화 속에 묘사된 대한민국 상위 1%, ‘슈퍼 리치’ 백 회장 가문의 서재다. 대리석 바닥재와 1, 2층이 트인 높은 천장. 벽면 한쪽으론 잡지에 나온 서가에서 보았을 법한 전면 책장이 들어서 있다. 도대체 몇권이나 되는 건가 싶어 다가가 한권을 꺼내보니, 진짜 책 사이에 교묘하게 꽂힌 소품용 원서가 잡힌다. 책장을 배경으로 2층엔 윤회장(백윤식)이, 1층의 바에는 윤 회장의 아내 백금옥(윤여정)의 비서인 주영작(김강우)이, 그 앞엔 윤 회장의 딸 나미(김효진)가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이 넓은 서재에 삼각편대로 서 있는 셋의 대화를 도대체 어떻게 한 화면에 잡으려는 걸까? 크레인에 올라 공간을 지그재그로 담아내는
현장리스트 01. “돈에 중독돼서, 끊기가 무섭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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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현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타 감독들의 귀환과 장르의 다변화로 기대작들의 풍년인 임진년. 촬영장만큼 바쁘고 활기찬 곳이 또 있을까. 경기도 파주와 양수리에서부터 강원도 덕진, 저 멀리 제주도까지 전국에 켜진 ‘촬영 중’ 사인을 찾아 나섰다. <하녀>에 이은 부자의 실체,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한국판 히어로즈를 꿈꾸는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 자본주의 사회의 괴물을 구현하는 변영주 감독의 <화차>,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의 멜로 <건축학개론>,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을 그린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조선시대 서빙고를 둘러싼 코믹액션 활극이자 차태현의 첫 사극 도전작인 김주호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실공히 코믹배우의 입지를 굳히려는 송새벽의 야심작인 정승구 감독의 <아부의 왕>까지 총 7편이다.
촬영현장이라는 '쌩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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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소설을 각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탐정이라는 인물들이 얼마나 정적인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고 육체적 액션도 많지 않다. 작가의 인기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당하기 일쑤다. 셜록 홈스 영화가 그렇게 많은 건 그가 보통 명탐정들보다 훨씬 육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심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 각색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처럼 탐정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예외가 있다면 토미와 터펜스 정도? 하긴 가장 먼저 각색된 크리스티 소설도 이들의 출연작이었다.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 드루리 레인도 각색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온 엘러리 퀸 영화들 중 한편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리려면 영화보다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게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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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는 100년의 영화사를 통과하며 드라마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수없이 각색됐다. 홈스의 외양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1929 <셜록 홈스의 귀환>(The Return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클라이브 브 룩
1939 <셜록 홈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바질 래스본
1959 <바스커빌가의 개>(Hound of the Baskervilles)
홈스 역 피터 쿠싱
1970 <셜록 홈스의 미공개 파일>(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로버트 스티븐스
1976 <명탐정 등장>(The Seven-Per-Cent Solution)
홈스 역 니콜 윌리엄슨
1984 <명탐정 번개>(名探偵ホㅡムズ)
1985 <피라미드의 공포>(Young Sherloc
사진으로 보는 홈스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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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황금가지 펴냄)은 문학계에서 찾아온 홈스 메이크오버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홈스 시리즈의 외전이 존재한다. 이 책이 조금 특별해 보이는 건 ‘아서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적으로 선정한 작가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책이라는 사실 덕분이다. 후손들이 공식적으로 선정했든 아니든 좋은 외전은 좋은 외전이고 나쁜 외전은 나쁜 외전이다. 다만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좋은 홈스 소설’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는 앤서니 호로비츠의 소설이 마치 코난 도일이 쓴 것처럼 원전 시리즈의 문체와 에센스를 거의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왓슨 박사의 서문과 함께 시작된다. “여기서 공개하려는 사건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라 출간할 수가 없었다.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금고에 넣어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된다는 지시 사항도 첨부할
사건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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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 메이크오버의 시작은 2009년 개봉한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다. 물론 셜록 홈스 시리즈의 변용은 <셜록 홈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코난 도일이 활발하게 시리즈를 내놓던 1892년에 역사상 최초의 모작(模作) <페그람의 수수께끼>가 나왔으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나온 모작을 모두 거론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코난 도일의 가장 위대한 후배 중 한명인 엘러리 퀸 역시 모작들을 수록한 <셜록 홈스 앤솔로지>를 펴낸 바 있다. 가이 리치의 영화에서 홈스와 왓슨의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감이 영 거슬렸던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인터넷에 가서 검색해보시라. 홈스와 왓슨을 본격적인 동성애 커플로 만들어버린 모작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사실 가이 리치의 홈스 시리즈는 그리 나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이게 쓸모있는 비교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이클 베이가 최근에 내놓은 블록버스터 시나리오와 비교하
더 과감해진 현대의 셜록 홈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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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호의 프록코트를 입은 명탐정이 21세기에 컴백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두 번째 홈스 영화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의 개봉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아예 무대를 현재로 옮겨버린 영국 <BBC>의 미니시리즈 <셜록> 시즌2가 방영을 시작했고, 코난 도일 재단의 인증을 받은 홈스 소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출간됐다. 물론 홈스는 지난 100여년간 한번도 팝문화와 랑데부를 멈춘 적이 없는 역사적 아이콘이다. 컴백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2012년의 컴백은 뭔가 조금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홈스 익스트림 메이크오버(Makeover)’라고 부를 만도 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오덕들이 있다. <스타트렉>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트레키(Trekkie)라고 부른다. 몇년 전만 해도 트레키는 한낱 우주 사이파이물에 인생을 바치는 오덕들을 경멸스럽게 부르는 단어였
홈스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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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은 누구인가?
1954년 8월15일에 태어난 스티그 라르손은 반나치 공산주의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 일찍부터 정치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극우주의에 대한 그의 저항심은 1977년 그가 스웨덴의 대형 통신사에서 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1980년대의 스웨덴은 특히 인종주의적 살인이 빈번했던 시기여서 기자들 사이에서 스티그의 극우파에 대한 정보력은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그는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위를 주지 않자 1999년, 스티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1995년에 자신이 창간한 ‘엑스포’에 헌신하기로 한다. 엑스포는 그가 1982년부터 통신원으로 있었던 영국의 반파시즘 월간지 <서치라이트>를 사례로 삼아 설립한 신문사였다. 앞서 1991년에도 안나레나 로데니우스와 함께 <극우파>라는 책도 냈던 그는 평생 극우파들의 테러 협박에 시달렸다.
스티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밀레니엄>
[밀레니엄] 2편도 핀처가 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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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에서 먼저 영화로 완성됐고 뒤이어 할리우드에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스웨덴 버전과 미국 버전이 한주를 사이에 두고 개봉했다.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해보자. 1번은 스웨덴 감독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연출작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번은 미국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작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3번은 기타 내용.
상영 정보
1. 인터내셔널 버전 152분. 스웨덴 확장판은 180분.
2. 158분. 첫 번째 최종 완성본은 187분(“관객이 지루해할 만한 장면을 삭제했다.”-데이비드 핀처)
원작과의 관계
1. 다소 소박한 규모. 사회드라마의 정서 유지.
2.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규모. 사회적 배경보다 스릴러물로서의 장르적 성격에 치중.
3. 신의 진행 순서는 두 작품 모두 매우 유사. 원작에서 취하거나 제외하는 일화들도 상당수 겹침. 예컨대 원작에서 헨리크 방
[밀레니엄] 비교! 스웨덴판 vs 미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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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진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나.
=원작 소설은 물론 대본에서도 캐릭터가 무척 명확하게 표현됐기 때문에 큰 기대를 했다. 모든 에센스가 들어가 있다. 물론 소설 속의 모든 디테일까지 포함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캐릭터는 아주 명확하게 대본에 쓰여 있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본이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캐릭터 자체가 좋았다. 도덕적이니 신념을 지키는 것도 좋았고, 권선징악을 믿는 것도 좋았다. 물론 여자를 밝히는 호색가라는 결점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인간 같아 보였다. 책에는 그의 호색가 성향이 더 많이 묘사돼 있는데 영화라 그걸 다 넣을 공간이 없었다. (웃음) 하지만 이런 결점도 그 사람의 한 부분이다. 소설의 제목에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고 쓰여 있잖나. 미카엘은 그런 남자 중 하나가 아니다.
-극중에서 왜 여자들이 미카엘을 좋아할까.
=솔직해서 그렇지 않을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할래? 말래?
[밀레니엄] 배우들이 말하는 캐릭터 혹은 데이비드 핀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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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나.
=원작 소설을 참조했다. 책에 모든 것이 나와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원작 소설과 가장 근접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러 준비과정이 있지 않았나.
=물론이다. 트레이닝과 리서치를 많이 했다. 모터사이클과 컴퓨터, 스케이트보드 타기, 킥복싱 등을 연습했고, 책을 많이 읽었다. ‘헬프그룹’을 방문해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곳은 자폐증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치료하고 상담해주는 센터에서도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했다.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인데, 개인적으로 이 역할의 매력에 대해 말해달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면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리스베트는 이율배반적인 캐릭터다.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냘프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반대이지 않나.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조숙하지만 동시에 순진한 면
[밀레니엄] 배우들이 말하는 캐릭터 혹은 데이비드 핀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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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흥미를 끈 요소는 연쇄살인보다 두 주인공간의 관계였다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관계였다. 사람들이 소설에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두 사람이 보여주는 묘하고, 약간은 삐뚤어진, 과격한 우정 때문이지 않나 싶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관계가 평범했다면 스티그 라르손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릴러로서도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재빨리 보여주고 지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보다는 두 인물이 결합하는 방식, 그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 그녀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두는 방식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이 갔다. 이건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 에이미 파스칼(소니픽처스 대표)도 시리즈물이라고 12세 관람가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맡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도 남녀간의 성정치적 측면이었다.
-시리즈물이다 보니 제약이 많았을 텐데, 어떤 점들을 고려
[밀레니엄] 두 주인공의 성정치성에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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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열성 독자 중 한 사람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뒤마의 총사들과 디킨스의 소설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고 <밀레니엄> 시리즈에 관한 그의 독후감에 쓰고 있다. 덧붙여 “물론 <밀레니엄> 시리즈가 완벽하게 잘 쓴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줄거리의 설득력이 강력하고, 명확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매혹적인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독자들은 개의치 않고 소설의 기술적인 부족함을 뛰어넘는다. 달콤하게, 기쁘고, 놀라서”라고 칭송을 보내고 있다. 이 저명한 소설가의 찬탄은 일반적으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장점으로 꼽히는 사회소설로서의 면모들, 즉 세계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괴물 기업과 그 기업가의 부패, 광란적 민족주의와 우월주의로 가득한 나치즘의 연대기 그리고 여성과 하층민과 외국인에관한 여전히 현
[밀레니엄] 매혹적인 인물과 영화적 스타일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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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어른들의 시리즈 소설 <밀레니엄>이 마침내 그 소문 그대로 데이비드 핀처의 손에 의해 영화로 태어났다. 대니얼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가 각각 남녀주인공을 맡았다. 데이비드 핀처의 프랜차이즈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어떤 영화인지 살폈다. 감독의 인터뷰를 모았고 두 주연배우와는 뉴욕에서 만났다. 한주 먼저 개봉한 스웨덴판과의 비교도 즐겨보시고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에 관한 모든 것도 빠뜨리지 마시길! ‘밀레니엄, 불멸의 영화에 온 걸 환영한다!’
[밀레니엄] 세계의 베스트셀러, 스크린을 흔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