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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 아니 무려 오고초려를 해서 모셨다. 6월23일 극장 개봉하는 음악영화 <플레이>의 남다정 감독은 <씨네21> 남다은 영화평론가의 친동생이다. 그래서 남다은 영화평론가에게 동생 남다정 감독과의 <플레이> 수다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남다은 평론가는 “남다정 감독은 이제 첫 장편을 찍은 신인이고 나는 정성일, 허문영 선배처럼 유명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쟤네 뭐야?’라고 비웃을까봐 걱정된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자매의 수다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영화라는 분야에서 각기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친구 같은 두 자매의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두 자매의 소소한 수다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언니가 본 ‘동생’ 남다정
남다정 감독은 남다은 영화평론가를 ‘언니’가 아닌 ‘남다은’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남다은 평론가는 어릴 때
내가 <플레이>를 혹평하면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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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지금 세상이 예전보다 더 나은 세상일까, 아니면 다음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까, 그것도 아니면 태고의 시간이 이미 더 나은 세상이었을까. 덴마크의 흥행감독이자 할리우드의 새로운 ‘외국’감독으로 촉망받고 있는 수잔 비에르의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매우 예민하고 스타일리시한 방식으로 세상의 상태에 대해 질문한다.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과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모두 석권한 영화다.
<인 어 베러 월드>의 초반부에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한명은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의사이며 또 한 사람은 덴마크의 한적한 도시에 살고 있는 소년이다. 두 사람의 배경에 관하여 영화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할 경우 우린 두 사람의 관계를 궁금해한다. 저 소년과 의사는 어떤 관계일까. 대개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한다. 소년은 의사의 아들일 것이다. 지금 그는 아프리카에 있고
폭력으로도 꺼지지 않는 희망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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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에서 <별일 없이 산다>를 무척 좋아했어요. “내 이야기를 들으면 두 다리 쭉 못 뻗고 잘 거다. 난 별일 없이 산다”라고 노래하는 점이 좋았어요. 정말 별일 없이 사는 게 좋은가요?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를 싫어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즐기는 편이에요?
장기하_좋은 별일이냐 나쁜 별일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저는 매사에 느려서 갑자기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일단 당황하고 재빨리 적응을 못하는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다보면 다른 길이 열리고 새로운 방법이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고현정_<별일 없이 산다>를 듣다가 하루 종일 웃은 날도 있어요.
장기하_원래 어머니 말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곡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서로에게 안부를 묻잖아요. 진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보통 “별거 없어”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사람 심리가 “이번에 우리 애가 수능을 못 봐서…” 뭐 이런 걱정거
장기하를 보았네 그만의 리듬에 취했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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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藝人)에 관한 세간의 낭만적 짐작은 아랑곳없이, 배우 고현정은 웬만해선 도취되지 않는 사람이다. 촬영 한복판에서도 본인의 연기에 만족해 고양되는 일이 거의 없는 건 물론이고, 대부분의 세상사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는 담담하다. 요컨대 ‘별일’이 없는 것이다. 이 권태의 이면으로서, 그녀는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라면 눈을 빛낸다. 이를테면 짜릿한 “서프라이즈!”의 찰나를 위해서라면 벽장 속에 그 길쭉한 몸을 구겨넣고 한두 시간쯤 숨어 있는 수고도 마다않을 인사가 고현정이다. 또한 여전히 그녀의 귀를 순식간에 쫑긋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흥미로운 개인이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고현정이 읊조린 대사대로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을 통해 얻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지금까진 그러니까, 배우 고현정이 <씨네21>의 비상근 게릴라(?) 인터뷰어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한 배경 설명이다. 인터뷰어로서 고현정에게
장기하를 보았네 그만의 리듬에 취했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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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국내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홍길동 2084>를 제외하면 <다이노맘> <아웃백> <뽀로로와 신나는 아이스레이싱> <넛잡>까지 모두 국내시장만 바라보고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해외 진출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침체기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이들의 성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진출 프로젝트의 공통된 특징은 아동용 콘텐츠이고 공룡, 코알라, 다람쥐, 펭귄 등 친숙한 동물 캐릭터가 많다는 점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뽀로로와 신나는 아이스레이싱>
제작_오콘
우는 아이 달래는 데는 뽀로로만한 게 없다. 구식 조종사 모자를 쓴 펭귄인 뽀로로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원 소스 멀티유즈 캐릭터 상품이다. 2003년 EBS에서 처음 선보인 TV시리즈 <뽀롱뽀롱 뽀로로>의 인기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해외시장까지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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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순수한 토종 창작 스토리였다. 외국의 문학이나 동화를 각색해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야기만 좋다면야 외국의 고전과 동화로부터 이야기를 빌려오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the Moon>의 이명하 감독 역시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the Moon>은 영국의 아동문학가 엘리너 파전의 동화집 <작은 책방>에 수록된 단편 <달을 갖고 싶어 하는 공주님>을 원작으로 끌어온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번역 출간된 <작은 책방>은 카네기상, 안데르센상과 루이스 캐럴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집이다. 진정한 과제는 여기서부터다. 다분히 영국적인, 혹은 서구적인 동화를 어떤 방식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럴 경우의 위험성은 어슐러 K. 르귄의 원작을 끌어왔다 주저앉아버린 지브리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영국 단편 동화를 우리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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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니 새나 물고기를 주제로 한 작품인 것 같다. 맞다. 이대희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물고기의 세계를 그린다.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2003)가 떠오른다고? 인간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는 것이 주인공의 목표라는 점에서 <파닥파닥>은 <니모를 찾아서>와 비슷하긴 한데,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배경은 어느 어촌에 자리한 한 작은 횟집 수족관 안. 그곳에 갇힌 넙치, 붕장어, 노래미, 농어, 도다리, 도미 등 한 무리의 물고기들은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서슬 퍼런 사시미 칼에 언제 베일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말이다. 어느 날 수족관에 새로 들어온 망망대해 출신인 자연산 고등어가 탈출을 도모한다. 이미 이곳의 삶에 익숙해진 넙치는 수족관의 질서를 흐리는 고등어가 탐탁지 않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도전도 망설이지 않는 고등어와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는 넙치 사이에서 물고기들은 눈치를 봐가며 한쪽을 선택해
하이킥!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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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쫓겨본 적 있나?” 6월6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지금이 아니면 안돼’ 스튜디오에서 만난 장형윤 감독에게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대답이다. 단순히 ‘쫓기듯이’ 임하고 있는 첫 장편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시나리오 작업을 뜻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는 좀더 길게 설명한다. “사실 나는 그냥 편하게 풀이나 뜯어먹으면서 놀고 싶은 애인데, 실제로는 현실에 이리저리 치여 살고 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그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멜로드라마다. 남자는 얼룩소고 여자는 인공위성인데 서로 어떻게 지내는 게 맞는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잃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게 어떤 느낌인지…. 그런 것들을 멜로와 액션을 통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의 기발한 상상력은 그대로
몇 가지 단서가 나왔다. 그러니까 &
사랑조차 힘든 이 시대 청춘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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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은 아마도 ‘19금 딱지’를 달고 극장에 걸릴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으레 있어야 할 꿈과 희망은 <돼지의 왕>에 없다. 대신 1990년대 초반의 중학생이 겪는 잔혹한 폭력과 지옥 같은 현실이 존재한다. 전작 <지옥: 두개의 삶>에 이어 연상호 감독이 창조해낸 세계는 오로지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아동용, 가족용 애니메이션만이 흥행한다는 오래된 관념을 깨기 위해 <돼지의 왕>은 스스로 ‘애니메이션적’이라는 기준에 반하는 전략을 세웠다. 연상호 감독도 “<돼지의 왕>이 개봉하면 왜 이걸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의 옷을 입고 실사영화처럼 행동한다.
아내를 살해한 실패한 사업가 경민이 15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친구 종석을 찾으면서 <돼지의 왕>은 시작한다. 경민이 인생에 실패했듯이 작가를 꿈
이것이 바로 본격 성인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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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연필로 명상하기’의 혜화동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살짝 웃음이 났다. 안재훈 감독의 방에는 빈티지 가게에서 사모은 소품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벽에는 깨알처럼 뭔가를 기록한 포스트잇이 틈없이 붙어 있다. 오랜 기억의 흔적을 긁어모아 만들어진 <소중한 날의 꿈>이 대체 어떻게 태어났는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사무실이다. 사실 ‘연필로 명상하기’는 <모험왕 장보고>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TV용 시리즈를 제작하거나 미국 애니메이션 하청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회사다. 안재훈 감독은 소중한 첫번째 극장용 장편이 비용 문제로 중단될 때 마다 다른 작업들을 하면서 시간과 제작비를 벌었다. <소중한 날의 꿈>이 나오기 전까지 ‘연필로 명상하기’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가을연가> 애니메이션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사무실에 빈티지한 소품들이 많다. 하나씩 다 수집한 건가.
=주말마
창작은 내 주변을 보며 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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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날의 꿈>은 개봉 대기 리스트에 전설처럼 올라 있는 수많은 작품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완성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소중한 날의 꿈>은 기획으로부터 거의 10년 만에 드디어 완성되어 6월23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주무른 결과물이니 지금 개봉하면 좀 올드해 보이지 않겠냐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중한 날의 꿈>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온전히 견뎌낸 아름다운 셀애니메이션이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소중한 날의 꿈>은 70년대 말에서 1981년 사이의 어느 순간을 무대로 한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소녀들이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을 꿈꾸던 시절. 작은 도시의 떡집 딸 이랑(목소리 출연 박신혜)은 계주에서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추월당하자 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넘어져버린다. 이랑은 수많은 미련을 떠안고 육상부를 탈퇴하지만 달리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게 없고 별
연필의 명상에서 빚어진 ‘셀’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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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기다렸다. 안재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이 마침내 6월23일 개봉한다. 이 장편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작기간 7년이 걸린 명필름의 <마당을 나온 암탉>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동안 한국영화계에서 사라졌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돌아오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지구대표 롤링스타즈>, 6월에는 <엄마 까투리>가 개봉했고, <홍길동 2084> <돼지의 왕> <다이노맘> 등의 신작도 개봉 대기 중이다.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자본을 투입하는 거대 프로젝트와 TV시리즈의 성공을 발판으로 제작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이 시동을 걸고 있는 동시에, 촉망받는 작가들의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역시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2011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는 걸까.
돌이켜보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실패의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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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장편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주목을 받은 적이 언제였던가. 2011년의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은 정말 심상치 않다. 안재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이 10년이라는 긴 산고를 이겨내고 드디어 개봉한다. 7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명필름의 <마당을 나온 암탉>도 7월 극장 문을 두드린다. 실패의 역사로 점철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이 새 활로를 발견하고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변화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10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날의 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장형윤 감독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이대희 감독의 <파닥파닥>, 이명하 감독의 <the Moon> 등 현재 진행 중인 장편애니메이션 4편을 중심으로 새바람의 근원지를 찾아본다.
디즈니, 지브리? 애니메이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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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효선(30)씨는 칭찬에 유독 부끄러워했다. 스스로는 시네필보다 문학도에 가깝다고 밝히지만 일단 관심이 가는 영화감독이 생겼다 하면 전작을 몰아 보고 글로 기어이 정리를 해내는 타입이다. 서울대 영문과 박사과정 중이고 이번 학기에 수료한다. 3년 전에는 다르덴 형제 작가론을 써서 최종 심사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고 올해 두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장기적으로는 좋은 영문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한번 뛰어든 이상 영화평론가의 길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언제부터 영화에 관심을 뒀나.
=7∼8년 전에 영상제작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비로소 스토리가 아니라 요소별로 영화를 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때 해보고 영화연출에 대한 꿈은 깨끗하게 접었다. 누구도 봐서는 안되는 영화 한편을 남겼을 뿐이다. (웃음) 평론가라는 직함은 아직 부담스럽다. 다만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해보고
긴 호흡의 감독론 쓰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