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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팜프파탈이 왔다
조해원 감독의 <불나비>(1965)
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와 연구원들 사이에서 이전부터 한국영화사의 숨은 걸작쯤으로 운위되던 일군의 목록이 있었다. 여기서 소개할 <불나비>를 비롯하여 정진우의 <하숙생>, 강범구의 <동굴 속의 애욕>, 이성구의 <지하실의 7인> 등의 몇몇 작품이 그것이다. 이른바 정전이나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고 충분한 조명을 받는다 할지라도 기존 정전과 작가의 명단을 뿌리째 흔들 엄청난 작품들은 아니지만 1960년대 한국 영화사를 풍요롭게 만든, 그냥 묵히기엔 아쉬운 그런 영화들이다. 2008년 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 때 작은 섹션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한번의 소개로는 한계가 있었던지 여전히 이 영화들은 작품성에 걸맞은 정당한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불나비>가 흥미로운 것은 무엇보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영화적인 팜므파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적인 팜므파탈’은
이 영화를 아시나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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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발견을 기다리는 영화들의 목록이 있다. 김수용의 <혈맥>, 조해원의 <불나비>, 최무룡의 <나운규 일생>, 유현목의 <문>, 그리고 임권택의 <가깝고도 먼 길>. 감독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제목은 낯선 영화들이다. 그 감독의 알려진 영화들에 비하면 다소 모자라거나 넘치는 영화들이지만 이중에는 모두가 잊고 지낸 걸작도 있고 마니아들의 눈도장을 기다리는 작품도 있다. 어쨌건 손에 닿을 수 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영화들이다. 여기 한국 고전의 상상의 박물관을 뒤지는 5명의 전문가가 비장의 5편을 일러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로 관람 가능한 영화들만 선정했다.
욕망의 속살을 냉정하게 끄집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
김수용의 영화세계는 동시대의 김기영, 이만희의 그것에 비해 덜 극적으로 보인다. 김수용, 그 자신이 시스템에 반해 자기 것을 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제
이 영화를 아시나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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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다. 때마침 구스 반 산트의 신작 <레스트리스>가 개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의 최고작이 아니라는 평가는 일찌감치 들은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이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관람을 가로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구스 반 산트는 이전의 영화들과 유사한 범주의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완연히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레스트리스>는 과연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말해지지 않은 진짜 매력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소년과 소녀가 만난 곳은 장례식장이다. 소년의 이름은 에녹(헨리 호퍼), 소녀의 이름은 애너벨(미아 와시코스카)이다. 에녹은 지금 자기와 상관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에 와 있다. 거기 와서 가족이나 친구 중 한 사람인 척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추모사를 경청하거나 고인의 창백한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린다. 벌써 여러 사람의 장례식을 그렇게 참관하던 중에 애너벨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사랑하니 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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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책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던 중 궁금증이 들었다. 영화평론가들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할까. 그래서 세 가지 항목으로 물었다. 1. 복간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2.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3.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출간되면 좋을 상상의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셋 중 한 항목을 선택하셔서 한권의 책을 추천해주시고 짧은 선정 이유도 부탁드립니다. 필자에 따라 세 항목 모두에 답하거나 한권 이상 추천한 분들이 계신다.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아마도 추천자들은 그들의 영화책 베스트를 적었다기보다는 함께 읽으면 좋을 목록을 우리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들의 추천 명단을 보자.(이하 가나다순)
김봉석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
=<映畵はおそろしい>(영화는 무섭다) 구로사와 기요시: 구로사와 기요시가 쓴 공포영화론
=<See No Evil: Banned Films and Video Controversy>, 데이비드 케레케스, 데이
제발 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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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기 권장 지수 ★
패러독스 지수 ★★★★
고다르의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지수 ★★★★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일상에 휩싸이던 어느 찰나, 문득 우리 속 심연이 말을 걸어온다. 네가 처음에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냐? 지금 당신의 모습이 정말 처음에 원한 것과 같아? 그제야 떠오르는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 “생각을 해야한다.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 고칠 수 있다. 생각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이제 이 질문을 영화한테로 돌린다. 영화를 생각하다 혼란에 빠질 경우 보아야 하는 지평,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고다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영화는, 그렇게나 고다르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데이비드 스테릿이 엮은 <고다르X고다르>는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나온 2년 뒤, 그러니까 <비브르 사 비>가 개봉된 1962년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1996년 <필름 코멘트>
장 뤽 고다르의 34년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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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시네필 지수 ★★★★★
정성스런 번역지수 ★★★★
읽고나서 일본영화 지식 증폭지수 ★★★★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미 1993년에 “동아시아에서 활약하는 28명의 감독들을 열전의 형태로 다루어, <전영풍운>이라는 책을 상재한 적이 있다”.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에 대한 감독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영화사의 전반적인 개설과 북한의 영화 상황에 대한 논문을 덧붙였”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다음 요모타 이누히코는 외국의 친구들에게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당신은 동세대의 일본 감독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가?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가 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월간지 <세카이>에 1997년 7월호부터 1998년 12월호에 걸쳐 <전영풍운, 일본 영화의 신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고 이후 대폭 수정 보완을 통해 19
80년 이후 일본을 이끄는 전영풍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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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펴냄
스타 등장 지수 ★★★
시각 자극 지수 ★★
다독 요구 지수 ★★★★
빨리 구입하라고 권할 만한 사진집은 아니다. 그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시신경을 자극할 요소들을 찾아내고 추출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극적으로’ 포착하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더 다가갈 수 있는데도, 더 물러설 수 있는데도, 빔 벤더스의 ‘눈’은 언제나 모호한 위치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이러한 망설임은 대상을 대하는 그의 확고한 태도다. 늙은 텍사스 카우보이(280∼284쪽)를 보라. 빔 벤더스는 카우보이에게 다가가서 그의 육체에 새겨진 굵은 주름을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사진은 보는 것보다 듣는 행위에 더 가깝다.” 언젠가 빔 벤더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에 담긴 수백장의 이미지들 역시 주목보다 경청을 요한다. 구부정한 허리와 느린 걸음걸이의 카
풍경의 이야기를 들어봐 ·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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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 이순진 지음 / 한국영상자료원 펴냄
학술적 가치 지수 ★★★★★
자료 활용도 지수 ★★★★
간편한 휴대성 지수 ★★★
영화 <접속>이 인상적으로 포착했듯 종로라는 공간은 개인의 영화 경험을 환기시키는 정서 공간이자, 그 경험을 공유하는 대중의 무의식이 자리잡은 대중지성적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진의 <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 영화체험의 중심 공간이던 단성사의 위상을 복합문화생산의 맥락으로 풀어낸 알찬 학술서적이자 영화사적 증언이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 대상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출발했던 단성사의 등장, 번영, 몰락을 다루고 있다. 1907년 구극 공연장으로 설립된 단성사는 1918년 흥행의 귀재 박승필에 의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활동사진관으로 재편되었다. 키네오드라마, 키노드라마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동사진의 일부로 도입하며 변사와 악사
오래된 극장에서 조선영화의 힘을 보다 · 불꽃처럼 살다간 30년대 중국의 국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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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등 도판 수록 지수 ★★
한 분야 깊이 파기 지수 ★★★
필자의 준비성과 박식함 지수 ★★★★
“나는 많은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다. (…) 나는 타이완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요즘 독립을 강력히 원하는 타이완 토박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중국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곳에서는 타이완인이다. 현재 나는 미국에 살고 있고 어디를 가든 이방인 같은 존재다.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힘든 것이다.” _1993년 리안의 말
리안은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중국 문화권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영국의 고전과 미국 역사, 대중문화를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리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쿵후, 제인 오스틴, 남북전쟁, 헐크, 우드스톡 사이의 공통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리안의 영화세계에서는 하나로 묶인다. 정체성과 아이러니, 이것은 리안을 관통하는 단어다. 이 두 단어조차 사실은 아이러니한 정체성이라고 묶을 수 있다. 타이완 스신대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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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잭 C. 엘리스, 베시 멕레인 지음, 허욱, 김영란, 이장욱, 김계중, 노경태 옮김 / 비즈앤비즈 펴냄
이해 안되는 오탈자 출현 지수 ★★★☆
좋은 도판이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 지수 ★★★★
이 책 읽고 다큐멘터리에 관심 가질 지수 ★★★★
두명의 저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잭 C. 엘리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이름이다. 국내에 <옥스포드 세계 영화사>도 없고, 데이비드 보드웰이 쓴 <세계 영화사1, 2, 3>도 없던 때다. 그때에 믿을 만한 영화사 번역서로 꼽히던 것이 잭 C. 엘리스가 버지니아 라이트 웩스만과 함께 써냈던 <세계 영화사>(이론과 실천 펴냄, 1990)였다. 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을 열심히 외우던 시기라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를 마주하고 보니 이 사람이 영화사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이야기꾼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 영화와 문학이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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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골라이틀리와 캐리 브래드쇼의 도플갱어 지수 ★★★★
오드리 헵번의 쌩얼 지수 ★★★★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티파니에서 아침을> 관람자극 지수 ★★★★★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는 64년의 인생을 카메라 앞에서 살았고, 한 여자는 스크린 위에서 2시간을 살았다. 그 여자들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과 홀리 골라이틀리다. 순수의 상징이자 “미국 딸들의 롤모델” 그리고 마침내 고결하게 삶을 마감한 헵번과 달리 50달러에 웃음을 팔고 책임감보다는 욕망과 본능에 의해 몸을 움직이는 골라 이틀리는 일견 극과 극의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우 헵번은 골라이틀리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관습적인 기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영화 속 골라이틀리는 배우 헵번을 만나면서 그저 천박한 속물이 아닌 자신의 삶을 즐기는 싱글걸, 시대를 앞서는 여성 캐릭터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 빌리 와일더가 말한 대로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꾸어버린” 셈이다. 그렇게 한 시
그리고 60년대의 여성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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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서점을 찾았습니다. 영화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을 정성스럽게 골랐습니다. 리안의 영화세계를 탐구하는 이론서도, 중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롼링위의 삶을 그리는 평전도, 일본 영화감독들에 관한 꼼꼼한 감독론도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즐겁게 이 책들을 찾아 읽으시리라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좀 모자란 생각이 들어, 영화평론가 13인에게서 추천의 도서 목록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여러분의 관심을 자극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안목을 넓혀드릴 영화책을 소개합니다.
그윽하다, 영화 읽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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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로봇과 경기하라고? OK!
복싱 컨설턴트 슈거 레이 레너드
-어떻게 <리얼 스틸>의 복싱 컨설턴트로 참여하게 됐나.
=제작자 스테이시 스나이더가 내 의중을 물었을 때, 내게 어떤 역할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나리오를 읽었고, 그 뒤에야 영화를 이해했다. 내 역할은 휴 잭맨을 복서처럼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이 영화의 복싱장면들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한 책임이 컸다. 주먹을 날리는 것뿐만 아니라 주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포함됐다. 그리고 찰리와 아톰의 관계에서는 말하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다음 전략을 알리고 알아차릴 수 있는 코치와 복서의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로봇 복싱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20~30년 뒤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복싱에 대한 인기가 사라진 거나 다름없는 지금 이 시점에 나왔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MMA나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면 사람들이 링 위에
Interview: 슈거 레이 레너드 · 휴 잭맨 · 숀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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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기다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괄제작한 <리얼 스틸>은 그가 직접 챙겨온 몇 안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빛나는 소년 배우가 합류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 영화는 마침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고, 공개된 예고편은 로봇 복싱 액션의 쾌감으로 가득하다. 감독 숀 레비, 주연배우 휴 잭맨, 복싱 컨설턴트로 참여한 전설의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LA 현지 인터뷰를 전한다.
할리우드 스포츠영화의 공식 첫 번째, 주인공의 승리하는 순간이 빛날 수 있도록 그의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질 필요가 있다. 공식 두 번째, 보통은 짐이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는 가족이 곁에 있어야 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시리즈의 감독 숀 레비가 메가폰을 잡고, <슈퍼 에이트> <카우보이 & 에이리언> <트랜스포머3> 등 2011년 한해 동안 왕성한 제작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괄제작한 영화 <리얼 스틸>은 스
볼트와 너트가 튀는 로봇 복싱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