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영화를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당시, 영화 대신 연극 작업에 빠져 있던 정정훈 촬영감독이 영화에 빠져 있던 학과 선배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데뷔작 <유리>(1996)를 시작으로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부당거래>(2010) 등 지금까지 꾸준히 촬영감독으로서 작업하고 있는 반면 그때 그에게 잔소리했던 선배들 중 지금 충무로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 촬영감독은 학창 시절에 했던 연극 작업이 지금 현장에서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극은 사회, 정치,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많이 거론하는 작업이다. 이야기와 인물, 배경을 분석하다 보면 무대 위에서 캐릭터가 움직여야 하는 동선이 보이고, 극에 쓰이는 음악을 집중해서 듣다 보면 이야기와 관
기본을 아는 게 중요하다
-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는 지난 1999년 11월, 한국 개봉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개봉한 이와이 순지의 장편 연출작은 <하나와 앨리스>로, 개봉 시기는 2006년 11월이었다. 사실 그의 <러브레터>는 한국에 개봉하기 2년 전부터 당시 국내 시네필들이 열광한 영화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2011년 영화과 신입생들에게 한국과 미국외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가장 많이 손꼽힌 감독이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꼽힌 감독일 뿐 지금의 신입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군에서 이와이 순지의 존재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와이 순지를 꼽은 신입생은 설문조사에 응한 421명의 학생들 가운에 4%에 해당하는 17명이다. 그리고 미셸 공드리와 기타노 다케시, 이누도 잇신, 왕가위 등이모두 1.9%에 해당하는 8명에게 선택됐다. 사실 이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전체의 66.2%를 차지한
시네필 몰라, 그러나 취향은 변하는 법
-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민망한 고백 하나. 이 글을 쓰는 기자는 00학번으로 대학 때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신입생 시절, 꿈은 ‘당연히’(?) 영화감독이었다. 한국 감독으로는 장선우, 이명세 감독처럼, 외국 감독으로는 데이비드 핀처, 토니 스콧 감독(장 뤽 고다르도!)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동기나 선배들 역시 각기 닮고 싶은 감독이 있었다. 모두가 영화감독을 꿈꾸던 시절이었고, 학교 다니는 동안만큼은 현실적인 고민은 뒤로하고 어떻게 하면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청춘을 보냈다.
이번 ‘<씨네21> 설문조사’에 응한 2011학년도 영화과 신입생들은 기자가 신입생이던 때와 많이 달랐다(설문 결과표 참고). 물론 ‘영화의 꽃은 감독’이라는 말을 입증하듯 전체 응답자의 46.3%에 달하는 학생들이 졸업한 뒤 영화감독이 되기를 희망했다. 영화과 교수들의 말에 따르면, 이는 전체적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다소 감소한 수치라고 한
낭만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다
-
이거 <씨네21>에 실리는 건가요? 와, 대~박. 입학 전에도 자주 읽었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주 사서 읽은 건 아니에요. 친구들이 사오면 잠깐 보거나 인터넷에서 보곤 했어요. 어쨌든 이제 제가 영화과를 지망한 이유를 말하면 되는 거죠? 사실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는 않아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영화를 보는 게 좋았어요. 내가 만든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참 멋진 일 같아요. 당연히!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죠. 이왕이면 봉준호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미국의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이름이 뭐더라? <아바타>를 만든 감독이 누구죠? 아, 제임스 카메론. 그런 감독들도 제 로망이에요. 무엇보다 뛰어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돼요. 영화감독 하면 이분들이 최고인 건 맞지 않아요? 영화를 봐도 그렇고, TV를 봐도 그렇고, <씨네21> 같은 영화잡
영화감독, 꼭 그것만 고집하진 않아요
-
-
지난 2월, 한 시나리오작가가 죽었다. 사인은 지병이었지만, 명문 영화학교를 나온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까지 작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죽음은 영화계에 상당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처우문제부터 전체 영화스탭이 놓여 있는 피폐한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정부는 정부대로, 영화계는 영화계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해법을 찾아나섰다. <씨네21>은 지난 792호 특집‘2011 한국영화 스탭 생태보고서’에 이어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질문의 대상은 이제 막 대학 영화과에 입학한 2011학번 신입생이다. 그토록 힘들고 열악하다고 소문난 영화를 선택하면서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리고 영화산업 이전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영화과에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영화적 경험과 현재의 영화적인 취향, 그리고 영화과 졸업 뒤 희망하는 직업에 대해 물었다. 설문조사 결과 나온 답변에는 한국 영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꿈입니까?
-
잭 스나이더 감독의 신작 <써커펀치>는 스나이더 영화 최초로 오리지널 스크립트로 만들어진 영화다. 배경은 1950년대, 사악한 계부의 계락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정신병원에 갇힌 베이비돌(에밀리 브라우닝)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다른 차원의 정신세계로 탈출한다. 정신병원이라는 현실에서 탈출한 베이비돌의 2차 현실은 강압적인 사장이 운영하는 고급 클럽. 현실에서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소녀들이 클럽에서도 자유를 박탈당한 채 낮에는 청소하고 밤에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약물치료와 상담, 구속복에서 탈출한 두 번째 현실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베이비돌은 춤을 추라는 강압에 한번 더 현실에서 탈출하는데, 세 번째 현실에서 만난 현자에게서 지도, 불, 칼, 열쇠, 그리고 미지의 한 가지 아이템을 찾으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귀띔을 받는다. 이때부터 베이비돌은 스위트피(애비 코니시), 로켓(제나 말론), 앰버(제이미 정), 블론디(바네사 허진스)와 함께 탈출을 궁리하고, 각각
영화야? 비디오게임이야?
-
#프롤로그
별똥별처럼 날아든 한 감독과 그의 괴이한 영화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감독 이상우와 그의 영화들입니다. 2008년경에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 뒤부터 각종 국내외 영화제에 출현하는가 싶더니 그때마다 욕설과 칭찬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2002년에 UC버클리대 영화과 졸업, 실험영화 전공, <시간> 촬영부, <숨> 연출부라는 평범한 경력 소개가 있긴 합니다만 놀라운 건 사실 그의 다음 행보입니다. 예컨대 2008년에 <트로피컬>을 공식 데뷔작으로 선보인 그는 2011년 초인 지금까지 약 3년 사이에 다섯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단편이 아닙니다. 이중에서 <엄마는 창녀다>의 개봉을 비로소 눈앞에 두었고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정식 개봉작입니다. 게다가 이상우 감독은 올해 안에 네편의 장편영화를 한꺼번에 완성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표현력 면에서나 왕성한 창작력에서나 그를 김기덕 사단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보는 평도 그래서
문제아, 독종, 휴지통, 포주, 변태, 불도저…이 감독을 보라
-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젊은이의 양지>는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작품으로 드디어 만인의 연인, 세기의 미인으로 떠오른다. 야망과 비애로 가득 찬 한 남자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티없이 맑은 여인, 그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역할이다. 영화사상 가장 그윽한 눈매를 지닌 남자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시선을 앳되고 환한 미소로 찰랑거리듯 응시하는 그녀의 연기가 더없이 인상 깊다.
<자이언트> Giant 1956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연인이었다. 말하자면 신사와 반항아 혹은 듬직하고 다정한 남자와 신비하고 거친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황야를 일구는 두 남자의 사랑과 야망의 서사시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결국 그 두 남자가 끝
만인의 연인에서 정신병 환자까지
-
고전 할리우드의 마지막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절대적인 미의 대명사였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지난 3월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살. 테일러의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은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정작 본인은 싫어했다) 테일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테일러가 입원했던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는 그녀의 네 자녀가 모두 모여서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테일러는 2004년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아왔고,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6주간 치료를 받다가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언론은 일본 원전사고나 리비아 공습 등 국제적인 이슈를 젖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죽음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마지막 고전 할리우드의 아이콘에게 표하는 경의였을 것이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부부의 둘째로 태어난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미술상이었고 어머니는 뉴욕에서 배우로 활약했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할리우드 마지막 여왕의 퇴관
-
2월7일,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클래리지(Claridges) 호텔에서는 60년째 지구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는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룬 <황당한 외계인: 폴>의 인터내셔널 정킷 행사가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온 50여 명의 기자들이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전날 미리 관람한 이 작품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렉 모톨라 감독
사이먼과 닉의 안목을 믿었지
-각본가이자 주연배우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힘들지는 않았나.
=이번 영화는 <아바타>처럼 자본이 넉넉하지도 않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막 등지에서 촬영해야 하는 작품이라 각본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몇몇 장면은 촬영 중 급하게 바꿔야 했는데 사이먼과 닉이 함께해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그들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미국식 유머와 둘의 영국식
런던에서 만난 괴짜들
-
<황당한 외계인: 폴>에는 사이먼과 닉 콤비, 그렉 모톨라, 세스 로건 말고도 또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 존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다. 사실 70~80년대 할리우드 SF장르를 오마주하면서 스필버그의 영향력을 드러내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에서 스필버그가 감독한 SF영화라고는 <우주전쟁>밖에 모르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한번 정리를 해보자면 스필버그는 B무비의 협소한 카테고리 속에 머무르던 SF장르를 대중적인 장르로 치켜세운 선구자 중 한명이다. 특히 외계인 장르를 이야기하면서 <미지와의 조우>와 <E.T.>를 거론하지 않는 건 목이 떨어져나가야 할 중죄다. 사이먼과 닉 역시 그 시절 스필버그 영화들에 바치는 일종의 경배로서 <황당한 외계인: 폴>의 각본을 썼다. 장르 팬이라면 외계 모선과의 접선지가 <미지와의 조우>의 마지막 무대였던 와이오밍주의 데블스 타워(사진)라는 걸 알아채고는 극장이 떠나가게 박수를 쳐댈지도
스필버그에 바치는 오마주
-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가 돌아왔다.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좀비물과 액션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는 코미디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의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 말이다. 두 사람이 새롭게 비틀고 엎어치기 한판에 도전한 장르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다. 게다가 콤비는 오랜 영국인 동료 연출자 에드거 라이트 대신 주드 애파토우 사단을 끌어들였다. 결과? 끝내준다.
당신은 미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이다. 서부의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서 외계인과 조우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IA가 따라붙는다. 이쯤 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E.T.> 이후 쏟아져나왔던 ‘외계인 조우 장르’(이런 용어는 아마 없을 테지만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 그냥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 그리고 <X파일> 이후 줄줄이 생산된 ‘외계인 음모이론 장르’(물론 이런 용어도 아마 없을 테지만 그
코미디 괴물들 우주를 정복했구나!
-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로 성장해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법칙이 있다. 사실 이건 법칙이 아니다. “~는 어렵다”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푸는 문장이 어떻게 법칙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법칙’의 예외는 예상외로 찾기 쉽다. 내털리 우드, 주디 갤런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키 루니, 조디 포스터가 빠진 할리우드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그들의 존재감과 경력은 단순한 예외로 칠 만큼 만만치가 않다. 살아남을 수 있는 아역들은 살아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의 관문을 거치면서 살아남지 못한 배우들 역시 기억한다. 셜리 템플은 30년대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배우였지만, 성인배우의 경력은 결코 아역배우 시절에 견줄 수 없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의 마거릿 오브라이언의 경력은 더 초라하다. 열성팬이 아닌 사람 중 12살 이후의 오브라이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자
태초부터 그들은 작은 성인이었다
-
축구 잡지는 아니지만 축구 얘기 잠깐 하자.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정책에 의해 길러진 ‘바르샤의 에이스’ 리오넬 메시는 축구 잡지 <포포투>와 가진 인터뷰에서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기본기’를 필수조건으로 들었다.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길거리 캐스팅’,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다’와 같은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은 아역배우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씨네21>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역배우 매니지먼트사 ‘별사탕’을 찾아 아역배우의 트레이닝 과정을 사진에 담았다.
1. 연기 수업은 자기소개, 발성, 포즈, 대사연습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대사연습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속 아역 출연자의 대사 5∼6줄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수업한 내용을 3주마다 발표하는 수업을 가진다. 학부모 김소영씨는 “아역배우의 상당수가 한글을 못 읽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역배우가 대사를
어느 날 갑자기는 옛말, 이제는 길러지는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