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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말죽거리 잔혹사>로 소년들이 과격한 청춘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소녀들은 아기자기한 자신들의 방식으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꺼내놓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 추억으로 뭉뚱그려 부르기엔 조금 더 깊숙한 소녀들의 이야기. <과속스캔들>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이 두 번째 작품으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소녀들의 성장은 고요하다. 이소룡처럼 요란스럽게 쌍절곤을 휘두르지 않고도, 포르노 잡지를 사러 청계천씩이나 나가 돌아다니지 않고도 소녀들은 알게 모르게 한뼘 자란다. 지랄같이 변덕스럽고 요상하게 생겨먹은 게 사춘기라지만, 하고많은 세월 중 그 찰나의 순간쯤 뭐 그리 대수라고! 맘먹고 돌이켜본다 해도 그게 그렇다. 내가 모아둔 ‘아하’의 사진 한 박스를 ‘듀란듀란’의 최신 사진 한장과 맞바꾼다거나, 교과서 사이로 할리퀸 로맨스를 숨겨놓고 읽다가 선생님한테 한대 쥐어박히는 정도. 브랜드가 절대 영향력을
40대가 된 ‘소녀’들의 청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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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디지털 매거진이 곧 출시된다. 그래서 초보자들을 위한 사용설명서를 준비했다. 시작은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의 앱스토어에서 <씨네21>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는 일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면 <씨네21> 디지털 매거진의 특별판이 있다. 준비는 끝났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씨네21> 디지털 매거진 특별판(무료)을 마음껏 체험해보자. 읽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잡지를 읽는 독자(reader)에서 디지털 매거진을 체험하는 사용자(user)로 변신할 때다. 이 가이드에는 디지털 매거진 공식 버전에 포함될 기능들도 첨부되어 있다.
지면 파괴
무한한 정보를 향해 열린 창을 만나다
잡지는 네모난 종이 안에 갇혀 있다. 반면 디지털 매거진은 네모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같은 네모 안에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창과 같다. 창의 숫자는 무한대다. “디지털 매거진의 스크린은 하나의 창이 된다. 창 뒤에 무한한 공간을 사
리더에서 유저로, 디지털 진화를 경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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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지털 잡지는 어떻게 볼 수 있나요.
간단합니다. 태블릿PC의 스토어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국내외 잡지들이 디지털 잡지를 발매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패드 혹은 갤럭시탭 같은 태블릿PC를 먼저 구입해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죠?
2. 그럼 디지털 잡지는 갤럭시탭이나 아이패드를 사야만 볼 수 있는 건가요? 인터넷으로는 못 보나요.
당연히 못 봅니다. 우회로는 있습니다 디지털 버전을 발매하는 많은 신문이나 잡지들은 여전히 인터넷으로도 기사를 서비스하고 있거든요. 다만 많은 회사가 아예 태블릿PC로만 볼 수 있는 신문이나 잡지를 내놓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인터넷으로는 맛보기 기사만 서비스하면서 디지털 잡지에 주력하는 매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3. 디지털 잡지가 생기면 종이 잡지는 없어지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디지털 잡지가 종이 잡지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아닙니다. 잡지를 볼 수 있는 통로 하나가 더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디지털 잡지들은
디지털 바보를 위한 디지털 잡지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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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지중독자다. 가만 생각해보니 <씨네21> 입사원서에도 ‘잡지가 좋아서’라는 말을 ‘영화가 좋아서’라는 말 뒤에 다소곳하게 써붙였던 것 같다. 단순히 영화가 좋았다면 평론가가 됐거나 시나리오작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럴 능력은 없었던 걸까. 어쨌든 나는 잡지가 좋다. 보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도 좋다. 잡지를 배송받아 뜯는 순간의 희열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매주 잡지 한권을 만들면서 매달 수십권의 잡지를 사모은 것도 어언 7년째다. 매달 나오는 교양, 패션 잡지, 디자인 관련 잡지, 인테리어 잡지는 물론, 동서양 잡지도 끊임없이 사모은다. 언젠가는 매달 잡지 구입에 쓰는 비용이 얼마인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적어도 10여만원, 많게는 20여만원. 그걸 월급으로 나누면 몇 퍼센트가 되는지 계산해보았더니….
하루는 큰 방 가득 쓰러질 듯 쌓여 있는 잡지를 보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단행본보다 많은 잡지들이 방 안의 습기를 빨아들이며 서로의
종이잡지 말고 디지털 솔직히 어떻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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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스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나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물론 우리는 여전히 CD로 음악을 듣고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과 카메라가 음악과 사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건 사실입니다. 당신이 지금 읽게 될 것은 디지털 잡지에 대한 기사입니다. <씨네21> 디지털 잡지가 곧 세상에 나옵니다. 곧 무료로 공개될 <씨네21> 디지털 특별판에는 오달수가 주연한 바이럴 뮤직비디오도 있습니다. 감독은 무려 박찬욱입니다. 그래서? 읽고 있는 종이 잡지를 곧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날이 왔다고 주장하냐고요? 아닙니다. 또 하나의 매력적인 신세계가 열린다는 이야깁니다.
잡지 혁명 웰컴 투 디지털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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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언론 시사회 직전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그는 호들갑을 떨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제 막 영화가 공개되기 직전의 흥분 상태에 놓인 감독답지 않게 시종일관 또렷하고 편안했다. 그는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앞으로 남은 장기적인 관심사까지 말했다.
-이 영화를 하게 된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들이 몇 가지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 문장들이 나를 크게 건드리는 게 있었다. 그즈음에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진부했는데 가깝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니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일들이 옛날에 놓쳤던 사람들까지 떠올리게 했다. 첫 영화를 찍을 때 외할
실컷 울고 용서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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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드라마로 방영된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노희경 원작의 단막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차이 그리고 영화가 새로 추구한 점들을 살피며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말해본다.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한편의 드라마가, 그것도 단지 이틀 동안 방영된 네 시간짜리 단막극 한편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고 희귀하다. 1996년에 MBC 창사 특집극으로 방영됐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서 오랫동안 얘기되어왔다. 본 사람은 눈물의 수기를 고백하는 마음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못 봤어도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 말이 통했다. 훗날 극본을 쓴 노희경은 유명 극본가가 되었고 마니아층을 둔 지 오래됐다. 그가 초기에 썼던 이 드라마는 다시 연극
한 떨기 야생화의 마지막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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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때 부자연스러운 화장은 굉장히 싫어
고현정_가만. 너의 멜로영화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이미연_멜로 하고 싶어. 그런데 이제 내가 멜로드라마를 하려면 벗는 연기를 한다거나 대중이 보기에 좀 새로운 면모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될 때도 있어. 그런데 난 노출 연기 자체가 편하진 않아. 사실 지난 작품을 다시 보면 난 약간 후회가 될 정도로 메이크업이나 의상에 설정이 없어. 연기할 때 속눈썹 붙이거나 부자연스럽게 진한 입술화장을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 처음에는 이번에는 달리 가보자고 설정했다가도, 좋은 연기가 있고 그 다음에 헤어, 의상, 메이크업이 있는 거라는 생각에 결국은 또 편안한 스타일로 가게 돼. 이렇게 입으면 아주 예쁘다는 걸 알아도 화보촬영도 아닌데 동작이 불편해서 연기에 거슬리는 걸 못 참는 거지. 그런 내가 과연 노출연기가 편할 수 있을까? 배우로서 부족한 면일 수도 있지. 아무튼 최근에 접해본 시나리오는 멜로드라마보다 주
영화현장은 내겐 행복이지만 절실한 장소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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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1990년에 동국대학교에 함께 입학했을 때 이미연은 최고의 스타였고 옆에 갈 수 없는 존재였어. 아직 기억나는데, 신입생 환영회에서 무대에 한명씩 올라가 선배들이 던지는 혹독한 질문을 견뎌야 하는 순서가 있었잖아? “<빙점>의 여주인공 이미연!” 하고 호명돼서 네가 올라갔는데 선배들 중 아무도 선뜻 공격하지 못하고 한참 바라만 보고 있었어. 질색하는 표현인 건 알지만, 그때 너 정말 굉장히 아름다웠어. 나 역시 미스코리아가 된 다음 입학했지만 내 존재는 아무도 모를 때고 난 대중이 배우 보는 마음으로 동기인 너를 봤지. 미스롯데에 당선되고 <하이틴> 잡지에 나오는 걸 보면서 “최수지 이후 이렇게 예쁜 사람이 또 있나!” 하고 있다가 학교에 와서 직접 만난 거야. 본인은 몰랐을지 몰라도, 네가 움직이면 동국대 전체가 술렁이고….
이미연_얘 또, 오버한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 (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활동하느라 힘들어서 대학만 가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영화현장은 내겐 행복이지만 절실한 장소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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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반면 기자이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종류의 인터뷰가 있다. 16년간 매주 영화잡지를 만들며 배우를 만났으나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련다. 김지하 시인의 시구를 막무가내로 인용하자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우상인 동시에 무당인, 지긋지긋하게 예민한 동시에 폭력적으로 대담한 이 희귀한 ‘종족’에게, 특별한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번번이 이족의 언어로 눈치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능하다면 아바타의 몸이라도 빌려입고 배우들의 나라에 잠입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을 냈다. 우리가 배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직업상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배우에게 기자가 되어달라고 매달려보자. 조심스레 인터뷰어의 자리에 청한 배우 가운데 고현정이 “오케이!”를 외쳤다. 그녀가 제일 먼저 만나고 싶어 한 배우는 이미연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이미연은 예정된 다른 스케줄을 앞으
고현정, 이미연을 만나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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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의 ‘팔팔세대’를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현장은 오늘도 끊임없이 가동 중이고,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대변할 4인의 젊은 영화인을 선정해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부탁했다. 지금 여러분의 현재, 그리고 고민은 무엇인가요?
<왼쪽부터 이소영, 한지혜, 이인성, 손상범>
이소영
시나리오작가. 18살 때 <화성으로 간 사나이> 시나리오로 영화계 입문, 시나리오작가가 부족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고괴담3: 여우계단> <아파트> <미확인 동영상> 등의 시나리오 작업. 계속 쓰는 것이 길이라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깨닫고 시나리오 작업 중.
한지혜
감독.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있다. 지난해 전주영화제 숏숏숏 2010 프로젝트였던 옴니버스영화 <환상극장>이 개봉.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는 그녀는 다시 심기일전해 단편작업에 매진하고 있
구조적인 악순환을 고치는 꿈 대박의 꿈보다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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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혜
1981년 | 영화미술 팀장 | 5년차 |
방송국 미술팀에서 3년간 일하다가 뉴욕필름스쿨에 갔고, 그 뒤 영화 일을 시작했다. <마음이2> <악마를 보았다>의 영화미술 작업에 참여했고 올해는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아이폰영화 <파란만장>의 미술을 맡았다. 언젠가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사는 중,
1. 예전엔 영화미술 파트에 관한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젠 영화를 하는, 영화를 아는 영화인이 되고 싶어졌다.
2. 영화의 경계. 영화가 드라마,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리고 있다. 미디어아트 전시를 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에게 경이감을 느꼈고, 아이폰영화 <파란만장>에 참여하며 좋은 결과와 경험을 얻었다.
3. 쉬지 않고 일한 1년이다. 영화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미디어아트 전시회도 했고, To Do list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4. 장르영화, 40년대 리얼리즘영화
지난 1년은 어땠나요? 팔팔세대 영화인들에게 물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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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는 영화계의 ‘팔팔세대’들을 찾아나섰다. 80년대에 태어나 사회적으로는 ‘88만원 세대’의 불안을 떠안고 있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이들 세대는 충무로를 혁신하고 발전시킬 가장 생동감있는 존재, 무엇도 하기 힘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팔팔한’ 기운으로 영화계에 큰일을 낼 인재들이 바로 ‘팔팔세대’에 대한 <씨네21>의 정의였다. 고맙게도 이들은 지난해 지면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 더불어 영화계에 쓴소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현장에서 전하는 생생한 칼럼 ‘팔팔통신’으로 독자들과의 소통에 동참해주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팔팔세대들의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침체기로 수식되던 한국영화계가 다시금 소생의 기운을 얻게 된 지난 한해, 팔팔세대들은 과연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궁금했다. 50인의 팔팔세대 대다수가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팀장이 됐고, 승진을 했으며 결혼을 했다. 1년의 시간 동안 참여한 작품의 필모
지난 1년은 어땠나요? 팔팔세대 영화인들에게 물었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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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영화가 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다. 제목이 풍기는 도전적인 뉘앙스만큼이나 영화는 첫 공개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찬반양론에 휩싸여왔다. 강력한 표현 수위에서부터 영화가 포괄하는 생각들까지 논란의 여지는 강력하다. 그 찬반의 의견들을 짚으며, 동시에 그 의견들이 놓치고 있는 <안티크라이스트>의 핵심을 새롭게 탐색하며 이 논란의 작품을 소개한다.
영화를 공개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작업의 진정한 최후 공정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다. 극장에서의 야유와 박수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말과 글의 공방전 그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소동들. 예컨대 2009년 칸에서 열린 <안티크라이스트> 기자회견장의 풍경. 어쩌면 그 자리의 모두가 공모자였을지도 모르지만(자, 누가 시비를 거는지 보자!), 하여간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지 기자가 손을 들었고 “어떻게 당신의 영화를 정당화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일단 심사가 한번
끔찍한 농담인가 극한의 예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