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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어느 저명한 경제사학자는 현대 인도사회에서 마이너리티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운 인도인은 없다고 단언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건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의 총수건 인도사회의 기저에서 왕성하게 작동하고 있는 카스트, 젠더, 언어, 종교적 문제 중 한 가지와 반드시 결부돼 마이너리티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마이너리티를 다룬 소재는 인도 영화계가 열기 꺼려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하지만 올해 내셔널필름어워즈는 인도 내에서 불가촉천민 이상으로 천대받고 있다는 모슬렘의 삶을 담은 남인도영화 <아부, 아담의 아들>(Abu, Son of Adam)에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을 주며 그간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더 나아가 3억여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살림 아하메드 감독의 이 영화는 84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출품할 인도영화에 선정되는 등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영화는 잭푸르트 나무
인도 - 모슬렘, 그리고 남인도영화 <아부, 아담의 아들> / 최고 흥행작 <더티 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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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과 제제 다카히사. 지금 일본영화는 두 남자가 움직인다. 대중영화가 TV 품속에서 내수용 블록버스터를 양산하고, 인디영화가 안이한 일상을 읊조리는 범작을 반복하는 사이, 동시대의 이야기를 급진적이고 발전적이며 동시에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두 남자다. 그리고 2011년. 또 한명의 중년 감독이 있었다. <새드 배케이션>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아오야마 신지는 이전과 사뭇 다른 온기의 영화 <도쿄공원>(東京公園)을 내놓았다. 분명 걸작은 아니지만 몇몇 변화들이 눈길을 끈다. 회색빛에 갇혀 있던 아오야마의 영화가 햇살 아래 놓였다.<도쿄공원>은 쇼지 유키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카메라맨 지망생 코지(미우라 하루마)가 한 남자의 기이한 부탁을 수락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처증에 시달리던 수상한 남자는 코지에게 아내의 미행과 도촬을 청하고, 용돈 벌이로 그 청을 받아들인 코지는 꾸준히 공원을 맴돈다. 코지의 시선을 오가는 여성
일본 - 그의 온기가 반갑다 <도쿄공원> / 최고 흥행작 <코쿠리코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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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부터 한번 보시길. 17살 파트리시아(아스트리드 베르지-프리스비)는 우물 파는 일을 하는 아버지(다니엘 오테유)의 점심을 나르던 중 부자 상인의 아들인 작 마제(니콜라 듀보셸)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 만남에 함께 밤을 보낸 두 사람은 세 번째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지지만, 갑자기 2차대전에 호출받은 작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난다. 곧 그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파트리시아는 작의 실종 소식을 접하고 실의에 빠진다.
만약 제목과 줄거리만을 보고 마르셀 파뇰의 1940년 동명작을 생각했다면, 맞다. 이 영화는 마르셀 파뇰 원작, 클로드 베리 연출의 1986년작 <마농의 샘>과 속편에서 ‘우골린’ 역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뒤 현재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 중인 다니엘 오테유가 파뇰의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우물 파는 사내’를 부활시키고자 뛰어든 프로젝트다. 그간 파뇰의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좋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던 오테유는 파
프랑스 - 문학 속 인물 현실을 호흡하다 <우물 파는 사내의 딸> / 최고 흥행작 <언터처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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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명의 신부가 도망갔다. 예식장에서 하객에게 울며 파혼을 선언한 디에고(킴 구티에레스)를 위로하던 사촌 호세 미겔(아드리안 라스트라)과 훌리안(라울 아레발로)은 이참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첫사랑을 찾아주겠다며 여행을 제안한다. 십년 만에 어린 시절의 휴가지 코미야스를 찾아간 디에고는 첫사랑 마르티나(인마 쿠에스타)와 재회해 새로운 로맨스를 꿈꾼다. 과보호 속에 사는 강박증 환자 훌리안은 정신연령이 비슷한 마르티나의 9살짜리 아들 다니의 단짝이 되고, 한량인 호세 미겔은 주정뱅이 불알친구 바치(안토니오 데 라 토레)와 그의 열아홉살짜리 창녀 딸 사이를 오가며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달아났던 신부가 디에고를 찾아오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의 제목인 <프리모스>는 스페인어로 ‘사촌’이라는 의미 외에 ‘덜떨어진 놈들’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언뜻 로맨틱코미디로 보이지만, 사실 여자 배우들은 얼간이 같은 이 세 남자의 코믹한 성장 스토리를 완성시
스페인 - 스페인의 세 얼간이 <프리모스> / 최고 흥행작 <토렌테4: 치명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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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주인공 40대 부부 프랑크와 지모네와 담당의사의 면담장면은 거의 8분짜리 롱테이크다. 의사가 뇌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진지하지만 담담하게 검사결과를 전해주는 동안 카메라는 둘의 표정을 살핀다. 이런 와중에도 의사에겐 전화가 걸려와 일상적인 통화가 이뤄진다. 블랙홀에 빠진 부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내 지모네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남편 프랑크의 표정은 소리없이 흔들린다. 프랑크의 병명은 뇌종양이다. 수술은 불가능하고, 남은 시간은 불과 몇 개월이다. 죽음은 여느 영화에서나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지만 안드레아스 드레젠 감독의 영화 <스탑 비트윈 스테이션스>(Halt auf der freier Strecke)는 특별하다. 언제나 실업자, 이혼녀, 노인 등 소외된 계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다큐멘터리적 극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이번 17번째 영화도 적당한 거리감을 두며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의사, 심리치료사 역은
독일 - 2011 칸이 주목한 시선 <스탑 비트윈 스테이션스> / 최고 흥행작 <코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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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정말 좋은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며 성장해간다면? 아마 그녀는 어떤 국민적인 영화적 보배가 되리라. 그런데 캐나다는 정말로 국민 여동생 출신의 감독을 한명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는 <스플라이스>와 <새벽의 저주>의 주연으로 잘 알려진 배우 사라 폴리다. 그녀는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TV시리즈를 통해 캐나다의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고, 이후에는 아톰 에고이얀의 <엑조티카> 등에 출연하며 성인 여배우로 성장했다. 그녀가 연출에도 재능이 있음을 알린 첫 번째 영화는 주연 줄리 크리스티를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만든 <어웨이 프롬 허>였다. 그리고 올해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왈츠를 타고>(Take This Waltz) 역시 캐나다 현지에서 잔잔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영화는 젊은 여인 마르갓(미셸 윌리엄스)과 남편 로 루빈(세스 로건), 불륜 상대 남자 다
캐나다 - 감독으로서의 빛나는 재능 <왈츠를 타고> / 최고 흥행작 <선생님 라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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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줄라이의 2005년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본 관객이라면 신작 <더 퓨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이 올 것이다. 약간은 엉뚱하지만 진실한 줄라이의 연출과 각본, 연기가 만들어내는 어떤 감수성 말이다. 그런데 <더 퓨처>는 거 기서 더 나아간다. 어느 30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더 퓨처>에서는 고양이가 내레이션을 하고,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며, 달이 이야기를 하고, 노란 티셔츠가 주인을 찾아 계속 기어다닌다. 이게 무슨 장르의 영화냐고? 말하자면 <더 퓨처>는 어느 한 장르에 넣을 수 없는 영화다. 소피(미란다 줄라이)와 제이슨(해미시 링클레이터)은 30대 커플이다. LA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4년간 동거 중인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과 금전적인 욕구에 연연하지 않는 이 커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미니멀한 직업(소피는 어린이 무용강사, 제이슨은 컴퓨터 전화 상
미국 - 마력의 감수성 <더 퓨처> / 최고 흥행작 <미드나잇 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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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는 건 아니다. 어쩌겠는가. 한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흥행적인 가치 외 수많은 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개봉의 기계장치’를 통과하는 일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 잔인한 기계장치로부터 걸러진 7개국의 2011년 화제작들을 여기에 모았다. 미란다 줄라이와 사라 폴리의 신작에서부터, 프랑스 배우 다니엘 오테유의 데뷔작,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하는 스페인 코미디와 계급을 이야기하는 인도영화 등 우리가 알고도 혹은 모르고 놓친 영화들이 여기에 있다. 동시에 각국의 2011 최고 흥행작도 함께 알아봤다.
우리도 올해엔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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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과 설렘이 교차했던 2011년 한국영화계. 기대했던 스타들의 영화가 조용히 사라진 자리에서 의외의 영화들이 힘자랑을 했고, 3D영화의 원년은 되지 못했지만 국산 애니메이션 성공의 원년이라고는 말할 수 있었으며, 기다려왔던 감독들은 해외에서의 작업을 통해 재회의 시간을 유보했다. 실화영화들이 주목받을 때 실패와 소멸의 진짜 ‘실화’의 순간도 많은 영화인과 관객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1년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침체’와 ‘격동’ 그 두 가지로도 설명할 수 있는 해였다. <개그콘서트>의 ‘애정남’과 ‘일수꾼’이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여기에 보태고 싶은 당신의 또 다른 사건과 실화는 무엇인가.
Keyword 06. 한국 애니메이션의 도약
닭과 돼지의 해
일수꾼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만드는 거 어렵지 않아요. 6년 동안 한 작품에만 매달려서 일하다가 힘들면 3번 정도 사무실을 옮기면 돼요. 그러면서 시나리오작가는 2번 정도만 바꾸면 돼요. 힘든 일도 없어요.
올해 영화계, 이렇게 보면 한눈에 보입니다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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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과 설렘이 교차했던 2011년 한국영화계. 기대했던 스타들의 영화가 조용히 사라진 자리에서 의외의 영화들이 힘자랑을 했고, 3D영화의 원년은 되지 못했지만 국산 애니메이션 성공의 원년이라고는 말할 수 있었으며, 기다려왔던 감독들은 해외에서의 작업을 통해 재회의 시간을 유보했다. 실화영화들이 주목받을 때 실패와 소멸의 진짜 ‘실화’의 순간도 많은 영화인과 관객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1년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침체’와 ‘격동’ 그 두 가지로도 설명할 수 있는 해였다. <개그콘서트>의 ‘애정남’과 ‘일수꾼’이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여기에 보태고 싶은 당신의 또 다른 사건과 실화는 무엇인가.
Keyword 01. 심형래의 몰락
라스트 오브 용가리
일수꾼 "한국영화로 할리우드 진출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일단 무조건 큰 영화로 만들어야 하니까 투자를 많이 받아서 제작비를 부풀리면 돼요. 그러면 자동차 수출 몇 백대 한 것 같은 돈을 벌어오라며 나라에서도 돈
올해 영화계, 이렇게 보면 한눈에 보입니다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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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영화를 선정한 건 <씨네21> 기자와 평론가뿐만이 아니다. 올해는 8명의 영화감독과 7명의 프로듀서도 올해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각각 1편씩 꼽았다. 그들 각자의 리스트와 선정 이유를 함께 공개한다(배치 순서는 직군별, 이름 가나다순).
★감독
김한민 <최종병기 활> 감독
<리얼스틸>
“한국영화는 내가 연출한 <최종병기 활>을 꼽고 싶지만…(웃음),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면서도 굵직한 리듬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점에서 <리얼스틸>은 올해 최고의 대중?상업영화였다.”
박정범 <무산일기> 감독
<두만강> <세상의 모든 계절>
“장률 감독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과 영화 자체가 가진 메시지가 많은 영감을 주었다(<두만강>). 개인적으로 마이크 리 감독을 좋아한다. 그가 매 작품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회 언저리에 있는 인물을 보여주는 시선
영리한 내공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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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올해의 과대평가 외국영화
해묵은 주제와 형식
테렌스 맬릭의 영화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뉴 월드>부터지만 나는 초점이 없는 서사와 추상적으로만 성격이 부여된 인물들이 어슬렁거리는 그 영화에서도 맬릭이 젠체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는 소화불량의 예술적 야심이 체증을 일으킨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맬릭의 실책은 구체성을 가진 맥락들을 모두 거세해버린 것이다. 짐작건대 이 영화는 미국의 상흔, 특별히 <황무지>에서부터 그가 질기게 붙들고 온 베트남전의 기억이 텍스트 뒤편에 어른거리는 우화다. 열아홉살 동생의 죽음을 고지하는 우체부의 전보에서 희미하게 이런 상황이 암시되지만 기억이 형성되고 쌓여가는 의식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긴 채 영화는 미로를 헤매고 고답적인 상징화로 빠져든다.
구체적인 실감을 누락하고 순전히 머리로만 만들어낸 이야기다 싶게 &
올해의 과대·과소평가 외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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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1. <세상의 모든 계절>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안을 그리다
지질학자 톰과 심리 상담사 제리 부부 이야기가 올해의 외국영화 1위에 올랐다.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평범한 노부부의 이야기 한 토막이 이렇게 따스하면서도 서늘하게 가슴을 어루만질 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상했을까. <해피 고 럭키> <비밀과 거짓말> 등을 연출한 마이크 리의 영화이기에 감동을 예감하긴 했으나 결과는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많은 이들에게 골고루 지지를 받았다. 일상적인 삶과 관계 속에서 종종 드러났다가도 은연중 묻혀버리거나 사그라지는 미묘한 문제에서부터 언젠가는 결국 마주쳐야 하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마이크 리는 현자의 시선으로 그 모든 행복과 잔인함과 소란들을 포용한다. 영화는 어느 한 배우도 흠잡기 어려운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 연기력과 그걸 끌어낸 감독의 조화가 이 영화의
현자 마이크 리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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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제작자 <마당을 나온 암탉> 심재명 명필름 대표
거침없는 기획력과 돌파력
<마당을 나온 암탉>은 명필름의 29번째 작품이자 첫 애니메이션이다. 원작과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는 해도 실사영화를 제작할 때와 분명 달랐다. “제작기간도 길었고, 한국시장에서 수익을 낸 애니메이션이 없어서 힘들었다. 무엇보다 타깃 관객층을 설정하는 게 어려웠다.” 그럼에도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이와 부모 관객 모두 사로잡으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첫 2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국산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믿어준 그의 투지에 경의를 표한다”(김지미), 그러나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이번 성과는 명필름 혼자의 힘이 아닌 함께 제작한 ‘오돌또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파트너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명필름의 30번째 영화는 이용주 감독의 신작 <건축학 개론>이다. “지금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올해의 제작자, 시나리오,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