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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변호인>과 비슷한 법정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변호인>처럼 구체적인 실존인물과 실화의 기억을 공유하는 ‘뜨거운’ 영화는 아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소수의견>의 주인공이 지방대 출신 국선변호사로 처음에는 사건에 별 관심이 없다가 어느 순간 국가로 대표되는 검찰과 맞서 싸우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동명 원작을 쓴 손아람 작가는 2009년 용산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용산참사는 상가 대로변에서 밤에 일어난 일인데 영화는 재개발 달동네 마을의 낮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극적 효과를 위해 밤 배경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데, 일부러 용산참사를 피해가려고 그랬다기보다 특정한 실제 사건을 넘어 우리 주변에서 언젠가 불쑥 일어날지도 모를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이 실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최근 만들어진 여러 사회참여적 영화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
“선정성과 거리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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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펀딩과 개인투자로 제작되었다고 들었다.
=2011년 6월,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가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이 이야기를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엔 크라우드 펀딩으로 종잣돈 1억2천만원을 모았는데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제작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로 했다. 자금 압박이 있었지만 다행히 돈이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돈이 모이더라.
-쉽지 않을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소재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공식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니까. 개인적으로는 충무로의 대기업 시스템에 지쳐 있었다. 다른 길을 고민하고 있을 때 황유미씨 사연을 들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유가족을 옆에서 직접 보며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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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한국 영화계를 전망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사회참여’ 영화다. 이른바 ‘실존인물’ 혹은 ‘불편한 진실’을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공식은 옛이야기가 됐다.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보다 투자배급 환경과 시스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차례 인혁당 사건의 영화화를 구체적으로 준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임순례 감독 또한 백범 김구 선생을 시해한 암살범 안두희를 정의봉(正義棒)으로 응징한 박기서 선생에 대한 영화를 꿈꿨지만 역시 미완으로 남았다.
지난 2005년 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가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사람들>(2004)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시작된 재판이 3년여 만에 재판부의 조정판결로 종결된 사건은 무척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는 극장에서 상영 시 영화 자막에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
눈치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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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말할 때 분노라는 정서는 거의 피해가기 어렵다. <26년>에서 전두환을 모델로 하여 ‘그 사람’을 연기한 배우 장광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것을(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그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의 분노의 감정들이 살아날 거라고 봤다.” 유사하게도 <변호인>을 말할 때는 슬픔이라는 정서를 거의 피해가지 못한다. 일명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작가 이외수는 <변호인>을 본 다음 “내가 저토록 어두운 세월을 건너 여기까지 왔구나. 세상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정의는 지금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몇번이나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만약 누군가가 영화의 만듦새를 두고 <26년>보다 <변호인>이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다면 동의하지 못하겠다. 반대로 <26년>이 <변
우울증의 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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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이하 <남영동>)와 <변호인>은 모두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두 영화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발생했던 ‘공안 사건’과 그에 연루된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남영동>에는 고 김근태씨가 피의자로 연루되었던 1985년의 ‘민추위 사건’이, <변호인>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로 참여했던 1981년의 ‘부림 사건’이, 각각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남영동>의 마지막 부분에는 각각 대통령과 장관이 된 두 인물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고, <변호인>의 마지막 부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집회 대열의 맨 앞에 앉아 있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1987년의 장면이 등장한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추위 사건에 연루된 수배자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런 공통점과 관련성에도
고문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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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에게 노무현은 <변호인> 시절의 노무현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정의로운 탄생과 비장한 끝, 이렇게 두 이미지의 작용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적어도 <변호인>을 보는 동안, 그들에게 노무현의 대통령 재임기간을 포함한 지난 30여년의 대한민국, 정치인 노무현의 행로, 그리고 우리의 때묻은 시간은 망각 속에 있다. 그 망각 속에서, 그러니까 각자의 위장된 기억 속에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한때 우리에게는 영웅이 있었고, 그 영웅이 상징하던 가치가 있었으나, 그 영웅도, 가치도 빼앗겼다는 향수와 상실감이다. 실은 온전히 가져본 적도 없으나 잃었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그 감정은 지금 우리의 참혹한 현실과 무력감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그 반응이 딱히 이례적이라거나 정치적인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난 한국의 대중정치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방식에는 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국가 대신 국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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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출산 직전의 아내를 손수레에 싣고 달리다 엉겁결에 시위대의 행렬에 섞인다. 이내 군인들의 총탄이 쏟아지고 부상자들이 속출하자 시위대 중 몇명이 내달리는 성한모를 붙들고 사정한다. “선생님, 여기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성한모가 겸연쩍어하며 하는 말. “아… 이 (흰색) 가운을 보고 오해들을 하시는 모양인데… 나는 의사가 아니에요….” 한편 <변호인>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체면 따위는 버리고 어디든 가서 명함을 돌린다. 그날도 한 고급 술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사장님들에게 달려가 명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술집 웨이터에게 멱살을 잡히는 봉변을 당한다. “어디 남의 점포 앞에서 찌라시를 돌리노?” 다급해진 송우석이 말한다. “저…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송… 우석… 이라 캅니다.”
직업에 대한 오인이라는 사건이 두 영화의 이발사와 변호사에게 똑같이 일어났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다음과 같은 후속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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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기대의 박수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어느 쪽도 이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까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2014년을 장식할 첫 1천만 영화는 <변호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 19일 만인 1월7일에 벌써 8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의 기세는 개봉 3주차에도 123만명을 기록하며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게다가 800만 돌파 시점이 2013년 1천만 영화였던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역대 흥행 1위였던 <아바타>(최종 관객수 1362만명)보다 6일이나 빠르다. 설연휴까진 특별한 경쟁작도 눈에 띄지 않아 벌써부터 역대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의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예상마저 조심스레 나온다.
극장가에 불어닥친 <변호인> 열풍을 읽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오간다. 누군가는 시대정신의 대변이라 치켜세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잘 만든 상업영화일 뿐이라며
보편타당하게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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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소재였기에 이 같은 열풍은 더욱 놀랍다. 사람들은 왜 지금 ‘변호인’에 열광하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소재가 한국영화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호인>의 흥행을 계기로 최근 한국영화가 사회적인 소재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변호인>을 중심으로 4편의 사회적 소재 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각기 결이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아울러 개봉을 앞두고 있는 사회적 소재 영화들 소식도 알아본다. 당신은 <변호인>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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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감독이 입을 열었다. <변호인>의 1천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양우석감독이 인터뷰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홍보 마케팅의 차원을 넘어 “오해와 편견이 여러모로 예상된 작품이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한 다음 나서는 게 맞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 MBC 프로덕션 영화기획실 프로듀서, 올댓스토리 창작본부 이사 등을 역임한 그는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스틸 레인> 등 ‘웹툰 작가’로 이름을 알렸고 이제 <변호인>을 통해 ‘영화감독’이 됐다.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라 일컬은 그는 내내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영화와 ‘그’에 대해 얘기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변호인>이 엎어질 거라 예상한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완성했다. 무엇보다 대단한 끈기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영화감독이 아니었으니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진다고 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든가…, 하여간 나
“노무현이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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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영화가 분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9번째를 맞아 1월16일부터 2월2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올해도 영화의 영원한 친구를 자청하는 이들이 엄선한 총 25편의 영화가 당신을 찾아간다. 단순한 희귀작부터 올 타임 마스터피스, 짐작불가 괴작까지 다양하다. 그중 친구 9인의 각양각색 추천사와 함께 그들 각자의 기억으로부터 꺼내 든 추천작을 소개한다.
영화들이 모여 영화가 되길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추천작
<마일스톤> Milestones
로버트 크레이머, 존 더글러스 / 1975년 / 195분 / 미국 / 컬러 / 35mm / 15세 관람가
“올해로 사후 15년을 맞는 작가 로버트 크레이머는 더이상 찾아보지 않는 작가가 됐고 거론하는 이도 많지 않지만, 그의 1970년대 문제작 <마일스톤>을 이제 보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과 68혁명을 뜨겁게 겪어낸 젊은이들
언젠가 당신이 추천하게 될 영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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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공개한 뒤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영화에 쏟아진 찬사와는 별개로, 영화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는 케시시 감독의 노동력 착취와 독단적 스타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원작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레즈비언의 섹스 신’이 비현실적이라며 감독의 연출에 딴죽을 걸었다. 케시시 감독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러한 논쟁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네마를, 관객을, 영화 만드는 사람을 그리고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심사위원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정리해봤다.
노동력 착취가 있었다?
“촬영 과정은 착취에 가까웠다.”
“주중, 주말 관계없이 일해야 했다.”
“하루 8시간 근무로 계약했으나 실제 근무시간은 16시간이었다.”
2013년 5월23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
감독과 배우들의 불화가 심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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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라티프 케시시는 프랑스의 이민자 출신 감독을 대표하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시네아스트 중 한명이다. 지난해 9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정킷자리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영화에 대한 각종 논란이 프랑스 여론을 뜨겁게 달군 그때, 케시시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유감스럽게 여기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하고 힘 있게 대답하며 영화 예술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다. 어떻게 이러한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흥미로운 주제다.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 관계의 복잡한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만남과 운명, 우연, 사회계층의 차이 등의 주제도 다룰 수 있게 해준다.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이런 다양한 다른 테마들도 다룰 수 있다고 봤다.
-레즈비언 러브 스토리에 대한 영화를 만든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수년 전에 생각했
계급을 넘어 사랑하는 일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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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라티프 케시시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이 다시 유행하는 ‘9.11’ 이후에 주목을 받은 감독이다. 말하자면 ‘테러사건’ 이후 아랍권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제기됐고, 특히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조국을 떠나 사는 이슬람 출신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할 때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튀니지 출신 케시시는 독일의 터키 출신 파티 아킨과 더불어 유럽 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수용됐다. 그 신호탄이 2003년 발표한 두 번째 장편 <레스키브>이다.
이주민들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다
<레스키브>는 케시시가 좋아하는 18세기 프랑스 코미디 작가 마리보의 <사랑과 우연의 유희>를 모티브로 삼았다. 이야기의 시공간은 파리 근교의 북아프리카인들이 몰려 사는 현대로 옮겨놓았다. 주로 알제리, 튀니지 출신의 이주민 2세들인 10대 고교생들이 학내 행사를 준비하며 마리보의 연극 <사랑과 우연의 유희>를 연습하고
디아스포라의 영혼이 현실을 응시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