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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말이 눈앞의 실체마저 흐릴 때가 있다. 다양성, 예술, 저예산영화와 독립영화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독립영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가 독립영화를 말하지만 그럴수록 의문은 더해진다. 독립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꾸준히 고민해온 변성찬 평론가를 만나 독립영화비평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물었다.
-거두절미하고 묻겠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답하면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영화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출범할 때부터 논의되어왔던 문제인데 소극적으로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 정의했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확대하자면 다른 무엇보다 정서적 독립이 중요하다. 예산, 제작방식, 배급경로는 다양할 수 있지만 만드는 쪽의 태도가 분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제작 여건만 놓고 본다면 전국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다 독립영화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핵심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각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 그 긴장관계를 놓
너무 많이 아는 굳은 머리를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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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선긋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우문에 대한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현답이다. 다양성, 저예산, 예술영화 등 여러 용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편의상 자의적으로 용어를 섞어 쓰는 사이 감내해야 하는 첫 번째 불편은 독립영화의 테두리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하도 여기저기 ‘독립’ 두 글자를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쓰다 보니 진짜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독제를 가보면 된다. 사실 영화제만큼 확실하고 선명한 노선을 드러내는 집단도 드물다. 한해의 경향부터 장기적인 방향까지 쌓여온 시간들이 기록으로 증명된다. 오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겹쳐만들어진 서독제는 그 단단한 결기로 뭉치고 연대하며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1월27일부터 12월5일까지 9일간 개최
‘어떻게 만들까’에서 ‘어떻게 보여줄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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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고 있는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식당을 차리기 전까지는 떠돌이 요리사로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내 레시피를 선보이는 것이 뭐 어떤가요. 먹는 사람이 맛있다면 된 거 아닐까요. 전 떠돌이 요리사로 지내는 게 즐거워요.” <은하해방전선>(2007),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 <도약선생>(2010)으로 독특한 윤성호식 세계관을 만들어낸 윤성호 감독의 이후 행보는 다소 뜻밖이었다. 영화감독이 시트콤(<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을 연출하겠다고 했을 때 세상은 조금 시끌시끌했다. 그 뒤 윤성호 감독은 차례로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2013), <썸남썸녀>(2014), <출중한 여자>(2014)를 연출했고, 대중은 그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든 더이상 의아해하지 않게 됐다. 윤성호식 “레시피”가 대중의 입맛에 맞은 모양이다.
-그런데 왜 “떠돌이 요리사”를 자처하나.
=2000년대 영화계는 나쁘
영화계라는 생태계에서 건강히 생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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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이 ‘독립영화의 조상을 찾아서’인가? 이런 인터뷰를 하려면 머리 희끗한 그런 사람을 찾아가야지 이렇게 젊은 날 찾아오면 어떡하나. 내가 비록 머리는 하얗지만 이거 조금 버텼다고 벌써부터 원로 취급이라니 억울하다.” 포장이 거창하다며 투덜댔지만, 이송희일 감독이 지금껏 밟아온 길이 한국의 독립극영화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독립영화 창작자 인터뷰를 하는데 “왜 또” 자신을 찾아왔느냐는 타박 아닌 타박의 한편엔 쓸쓸함도 묻어 있다. “외롭고 지겹다. 처음 나와 같이 영화 시작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독립영화를 떠났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건 결국 자기증명을 놓아버린 게 아니겠나. 젊은 감독들은 많지만 남아 있는 또래 감독이 이젠 거의 없다.” 그의 말대로 십여년 이상 독립영화 한길만을 오롯이 걸어온 창작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송희일 감독이 소속돼 있던 영화창작집단 ‘젊은영화’의 구성원들 중에서도 이송희일 감독이 가장 늦게 영화 연출을 시
어떻게 관객을 모을까, 마케팅에 눈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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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당의 2014년 3월 집계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스크린 수는 모두 60개다. 이 통계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을 받는 영화관과 영진위의 지원은 받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영화관이라고 인식되는 영화관들(대표적으로 씨네큐브), CGV의 다양성영화관 무비꼴라쥬, 롯데시네마의 예술영화관 아르떼, 그리고 독립영화전용관을 모두 합한 것이다(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영화관만 집계하면 25개이며, 최근 결과가 발표된 2014년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을 기준으로 20개다). 그렇다면 이 스크린들에서 한국 독립영화가 상영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독립영화를 상영할 가능성이 있는 스크린’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전체 스크린 2184개의 2.7%다. 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가 20%인 것을 감안해보면, 독립영화가 상영될 가능성은 전체 스크린 수 대비 0.5% 이하인 셈이다. 독립영화 관
0.5%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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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선 한 뭉텅이의 명함이 쏟아졌고, 입에선 속사포 랩과 다를 바 없는 대구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명함을 뭘로 드릴까요? 영화계 명함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국숫집 명함 하나 드릴까? 만복국수가 현업입니다. 그들(아마도 박근혜 정부)이 ‘시장으로 가라’ 해서 시장으로 갔고, 잘 벌고 있습니다.” 국숫집 사장님으로부터 명함을 받고서야 독립과 가난, 두 단어가 꼭 쌍으로 붙어다니라는 법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대구 동성아트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서 탈락하다
“망하니까 (날) 찾네.” 면목 없지만 그의 말이 맞다. 남태우 대구동성아트홀 프로그래머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나는 친박이다-시즌3> 32회 ‘문성근의 민주집권 대망론’ 편에서,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6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형편이 걱정됐다. 악덕 극장주가 돈을 떼먹어서가 아니다. 동성아트홀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14년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
문화로 시작해 문화로 끝내는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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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심사 결과가 나왔다. 독립영화인들의 오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힘빠지는 결과였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대구 동성아트홀의 남태우 프로그래머에게 먼저 괜찮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송환> <워낭소리>를 배급한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조영각 집행위원장, 20년간 독립영화감독으로 살아온 이송희일 감독에게도 차례로 안부를 물었다.독립영화라는 땅이 더 비옥해질 수 있도록 10년 이상 힘써온 4인의 독립영화인들에게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곧 현재의 독립영화가 짊어지고 있는 근심과 걱정일 것이다. 물론 깨달음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독립영화 영화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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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연출 전공으로 동국대 영상대학원에서는 이론을 전공했다. 단편영화를 대여섯편 찍었고 <인사동 스캔들>(2009) 제작 초기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일하던 중 제작이 무산되어 나온 경험도 있다. 영화는 한참 뒤 새로운 스탭을 꾸리면서 완성됐다. <씨네21> 영화평론상은 2011년, 2012년 최종 본선까지 올랐다. 수상자 발표 심사평에도 내 이름이 언급됐었기에 좌절이 컸다. (웃음) 작품비평과 이론비평 모두 미국영화로 결정하는 게 전략상(?)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솔직하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해 써보자고 생각했다.
-연극 연출가로도 데뷔했다고.
=지난해 연극 <거짓말 게임>을 연출하며 데뷔했는데, 처음에는 희곡만 쓰고자 했다가 제작사인 ‘블루 바이씨클’ 대표이기도 한 김준삼 교수가 ‘하는 김에 연출까지 할래?’ 권유하셨다. (웃음)
-그들 영화와 감독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는 뭔
“직관을 합리로 풀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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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을 확신하며 조르주 멜리에스를 낭만적으로 소환한 <휴고>(2011)와 몇몇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한 마틴 스코시즈의 근작 세편은 모두 본질과 허상의 괴리가 파생하는 긴장을 담고 있다. <디파티드>(2006)는 갱단에 위장 잠입한 경찰이 정체성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누아르이고 <셔터 아일랜드>(2010)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내면 탐방기를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이다. 두 영화에서, 자아를 잃은 주인공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끝없는 투쟁을 벌인다. 부재와의 투쟁은 애초에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허상을 적으로 상정한 캐릭터의 서사는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 스코시즈는 장르적 쾌감에 한껏 공을 들여 관객을 몰입시킨 후, 캐릭터의 패배를 고스란히 함께 맛보게 한다. 동일시를 통한 열패감의 전달은, 개인의 희생을 종용하는 사회 시스템에선 누구나 실패의 가능성을 짊어졌음을 깨닫게 한다.
무알코올맥주에 취한 시대를 위무하는 마틴 스코시즈의 해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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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작은 예년보다 많은 수의 112편이었으며, 예심을 거쳐 그중 11편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은 변성찬, 송효정 영화평론가와 이영진 <씨네21> 편집장이 맡았다. 특정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쏠림 현상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치열한 대결을 요하는 대상영화의 부재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베를린>까지의 1기 류승완 영화의 궤적과 한국영화 세대론을 살펴보는 작가론이 본심에 2편이 올라왔다는 점이다. 올해 특히 한국영화 감독론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감안할 때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마틴 스코시즈, 조너선 글레이저, 소노 시온, 제임스 그레이, 마이클 만에 대한 장르론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금 왜’ 그 작가, 그 장르인가에 대한 치열한 내적 고민은 부족해 보였다.
심사평
최종적으로 박소미, 김명기, 송아름, 김수씨의 글에 주목했다. 각 글이 지닌 미덕이 단점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최우수상 선정에 주저하게 되
성실함과 명징함에서 발견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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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의 수상 결과가 전해지자 한층 관심이 쏠린 영화들이 있다. 베니스 남녀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쥔 <헝그리 하츠>도 그중 하나였다. 뉴욕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이탈리아 여자는 결혼과 임신을 거치며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위험에 빠트리는 엄마 미나 역을 맡은 알바 로르와처의 섬뜩한 연기에 토론토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남편 주드 역의 애덤 드라이버는 <While We’re Young> <This Is Where I Leave You> 등 3편의 영화가 동시에 초청되며 토론토영화제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베니스가 끝난 지 3일 뒤인 9월9일 오후 <헝그리 하츠>의 사베리오 코스탄조 감독을 만나 채 식지 않은 수상의 흥분을 전해 들었다.
-엊그제 베니스에서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토론토에는 언제 왔나.
=베니스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출발해 7일 일요일에 도착했다. 토론토는 관객의 열기를 코앞에서 느낄 수 있다고 들었
사실 나를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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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울만의 <미스 줄리>는 스웨덴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단막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도도하고 오만한 귀족 줄리의 이루지 못할 욕망을 그린 이 작품은 억압받는 여성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배우로서는 잉마르 베르만의 페르소나로 활약했고 감독으로서는 여성의 이중적인 심리를 깊이 있게 그려낸 리브 울만이 이 연극을 원작으로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여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줄리 역에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를 주로 소화해온 제시카 채스테인이 낙점된 것 역시 필연인 듯 보인다. 엄마와 딸처럼 닮은 두 여인의 숨겨놓은 마음을 들었다.
-토론토와 인연이 깊다고 하던데.
=나의 개인적이고 작은 이야기와 함께하는 도시다. 2차대전 때 공군 비행기를 수리하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토론토로 건너왔다. 항상 가죽점퍼를 입고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묻어 있다.
-<미스 줄리>는 이미 유명한 연극이지만 오래
서로를 바라보지만, 서로가 듣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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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자신을 알아봐주는 친구의 입을 통해 퍼져나간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 사랑에 빠지며 시작된 지오반나 펄비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차세대 감독들에 대한 내리사랑으로 이어진다. 10년 동안 TIFF에서 한국영화의 동반자로 함께해온 지오반나 펄비에게 시티 투 시티-서울 기획에 얽힌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왜 이 시점에 다시 ‘서울’인가.
=2002년 TIFF는 ‘내셔널 시네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영화를 처음 주목했다. 박찬욱, 이창동 감독의 영화 등 10편의 영화가 초청되었는데 관객의 만족스런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로부터 10년, 한국영화의 오늘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는 좋은 감독들이 많고 프로덕션의 수준도 높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안전한 선택이었다.
-8편의 영화는 어떻게 선정되었나.
=카메론 베일리와 함께 프로그램을 짜면서 각기 필요한 영화를 선정했다. 프로그래머로서 한국에서 얼마나 다양한 영화가 나오는지 보여주는
“우리 영화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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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0일 TIFF를 상징하는 벨 라이트박스에서 ‘시티 투 시티-서울’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카메론 베일리 집행위원장이 직접 진행을 맡은 이 행사에는 박정범, 부지영, 정주리, 김성훈 감독이 자리했다. 서울의 오늘은 물론 이창동, 홍상수를 이을 차세대 한국 영화감독들의 얼굴을 알린 자리였다. 여기에서 감독들이 전한 서울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짧게 전한다.
김성훈 서울은 수도로서 600년이 넘는 시간과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도시다. 한국영화가 주로 자극적인 폭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름답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들도 많다. 그런 영화들도 많이 불러주면 좋겠다.
부지영 1990년대 한국영화는 다양했다. 2000년 이후 불안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영화 중 장르영화로는 조폭영화가, 아트하우스 경향의 영화로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영화 등이 성취를 이루며 폭력, 남성성 등의 인식이 굳어진 것 같다. 산업 전반에 남성
한국의 차세대 감독을 알리는 자리